[사우디 문화산업②] PIF 투자 재편, 메가 이벤트에서 상설 수익모델로
재무적 수익·투자 효율·민간 참여 앞세운 2026~2030 전략…GEA의 관객시장과 문화부의 로컬 IP, 키디야 상설 인프라에서 결합
[KtN 최기형기자]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ublic Investment Fund·PIF)는 2026년 4월 15일 확정한 2026~2030년 전략에 재무적 수익 극대화와 투자 효율 제고, 민간 부문 참여 확대를 전면에 배치했다. 대규모 자본을 빠르게 투입해 신산업과 시설을 만드는 방식에서 이미 조성된 자산의 가치를 높이고 장기간 수익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투자 기준을 조정했다. 문화·관광·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개장 실적과 방문객 수를 넘어 운영수익과 자본 효율을 따지는 단계가 시작됐다.
PIF의 새 전략은 투자 자산을 비전 포트폴리오, 전략 포트폴리오, 금융 포트폴리오로 재편했다. 비전 포트폴리오에는 사우디 국내 산업을 구성하는 6개 생태계를 연계하고, PIF 계열사와 민간기업 사이의 거래와 투자를 확대한다는 방향이 담겼다. 민간 부문은 공사와 장비를 공급하는 하도급 사업자를 넘어 투자자와 운영사, 장기 사업 파트너로 참여하게 된다.
2016년 Vision 2030 출범 이후 사우디 문화경제는 국가가 시설과 콘텐츠, 흥행 위험을 함께 부담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국부펀드가 대형 부지와 시설에 자금을 투입했고, 엔터테인먼트종합청(General Entertainment Authority·GEA)은 공연과 축제, 해외 아티스트,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를 빠르게 늘렸다. 문화부(Ministry of Culture·MoC)는 영화와 음악, 공연예술, 시각예술, 패션, 출판 등 현지 제작 기반을 맡았다.
세 기관의 역할은 같은 시장 안에서 분명하게 나뉜다. PIF는 토지와 자본, 대형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GEA는 상업행사와 라이선스, 관객시장 확대를 맡는다. 문화부는 분야별 위원회를 통해 예술인 육성과 제작지원, 문화유산 보존, 현지 지식재산권 축적을 담당한다. 시설을 만드는 자본, 관객을 모으는 행정, 콘텐츠를 생산하는 문화정책이 각각 분리돼 움직이는 구조다.
GEA는 테마파크와 엔터테인먼트센터, 공연장 같은 상설 시설부터 콘서트와 라이브쇼, 식당·카페 공연까지 허가한다.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와 시설 운영, 군중 관리, 티켓 판매도 별도 사업영역으로 분류된다. 해외 가수를 초청해 공연 한 차례를 여는 시장에서 기획사와 공연장 운영사, 매니지먼트사, 티켓 플랫폼, 안전관리 업체가 각각 매출을 만드는 산업으로 세분화됐다.
공식 집계에는 관객 7690만명, 행사 1810건, 발급 라이선스 6760건이 제시돼 있다. 수치의 집계 기간과 세부 분류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지만, GEA의 기능이 직접 행사를 개최하는 기관에 머물지 않고 민간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허가하고 관리하는 규제기관으로 넓어졌다는 흐름은 분명하다. 창업자와 기업을 대상으로 전략기획, 재무, 마케팅, 행사 운영, 시설 관리, 인사, 브랜딩, 콘텐츠 개발 자문도 제공하고 있다.
문화부는 건축·디자인, 시각예술, 영화, 공연예술, 음악, 패션, 음식예술, 문화유산, 박물관, 도서관, 문학·출판·번역을 담당하는 11개 위원회를 구축했다. 각 위원회는 별도의 산업 범위와 예산, 인력 양성 체계를 두고 현지 제작사와 창작자의 성장을 지원한다. 상업행사의 관객과 티켓 매출을 빠르게 늘리는 GEA와 달리 문화부는 제작 역량과 문화 정체성, 지식재산권을 장기간 축적하는 데 무게를 둔다.
영화 제작비 현금 환급과 음악 제작시설 구축은 현지 생산을 늘리기 위한 정책에 해당한다. 해외 완성작과 아티스트를 수입하는 데 국가 예산을 집중했던 초기 단계에서 촬영과 녹음, 후반작업, 고용, 유통 수익을 사우디 안에 남기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현지 창작자가 사용할 스튜디오와 제작지원 제도가 늘어나야 PIF가 건설한 공연장과 테마파크, 복합문화시설도 수입 콘텐츠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다.
리야드에서 약 45㎞ 떨어진 키디야 시티(Qiddiya City)는 국가 자본의 역할이 건설에서 운영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식스플래그 키디야 시티(Six Flags Qiddiya City)는 2025년 12월 첫 방문객을 받았고, 아쿠아라비아 키디야 시티(Aquarabia Qiddiya City)는 2026년 4월 23일 공식 개장했다. 계절마다 설치하고 철거하는 행사장이 아니라 연중 입장권과 식음료, 상품, 광고, 숙박 수요를 만드는 상설 시설이다.
식스플래그에는 28개 놀이기구와 체험시설이 들어섰고, 인접한 아쿠아라비아는 22개 놀이시설과 체험 프로그램을 갖췄다. 두 시설은 보행으로 이동할 수 있는 하나의 구역 안에 배치됐으며 호텔과 식당, 상업시설도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 하루 공연의 티켓 한 장을 판매하는 방식보다 방문객이 오랜 시간 머물며 여러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설계된 구조다.
아쿠아라비아의 운영 방식에는 상설 엔터테인먼트 시설의 수익구조가 구체적으로 담겼다. 성인 입장권은 275사우디리얄, 어린이 입장권은 170리얄부터 시작하며, 대기시간을 줄이는 별도 이용권과 서핑 프로그램, 전용 카바나 상품을 추가로 판매한다. 시설 안에는 식음료 매장 24곳과 소매점 7곳이 배치됐다. 입장료 외에 프리미엄 체험, 식음료, 상품 판매를 결합해 방문객 한 명당 지출을 늘리는 방식이다.
상설 시설은 사우디 문화·엔터테인먼트 시장의 계절 편중을 줄이는 역할도 맡는다. 공연과 야외 축제는 기온이 낮아지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집중되고, 여름에는 야외 행사가 크게 줄어든다. 실내 체험시설과 워터파크, 영화관, 쇼핑몰 결합형 공간은 폭염기에도 관객과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 계절형 행사 중심의 시장에서 연중 운영되는 공간으로 투자가 이동한 배경이다.
개장 이후에는 건설비보다 운영비가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 냉방과 전력, 시설 보수, 안전관리, 전문인력, 신규 프로그램 제작에는 매년 비용이 들어간다. 개장 초기에는 새로운 시설을 경험하려는 방문객이 몰릴 수 있지만 같은 관객이 다시 찾게 하려면 가격과 접근성, 가족 단위 상품, 프로그램 교체, 식음료 품질이 뒷받침돼야 한다.
PIF의 새 전략이 ‘급속한 성장’에서 ‘지속적인 가치 창출’로 표현을 바꾼 배경도 운영 단계와 연결된다. 건설 중인 프로젝트는 투자액과 공정률, 개장 일정으로 성과를 제시할 수 있다. 영업을 시작한 시설은 매출과 비용, 재방문율, 민간 투자, 자본 회수 기간으로 평가받는다. PIF는 전략 자산의 잠재가치를 실현하고 장기 위험조정수익을 높이는 목표를 2026~2030년 투자 기준으로 제시했다.
GEA가 허가한 민간 사업자도 국가의 손실 보전에 기대던 구조에서 독자적인 매출원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 스폰서십과 중계권, 티켓 판매, 상품, 식음료, 광고, 시설 대관을 묶어 행사와 공간의 손익을 맞춰야 한다. 정부가 미판매 티켓과 대형행사의 손실을 보전하던 비중이 줄어들면 관객 수만 많고 수익을 내지 못한 사업부터 조정을 받게 된다.
문화부의 제작지원은 상설 시설의 운영수익과도 연결된다. 대형 공연장과 테마파크가 해외 유명 지식재산권과 수입 공연만으로 프로그램을 채우면 티켓 수입이 늘어도 콘텐츠 사용료와 출연료가 해외로 빠져나간다. 사우디 영화와 음악, 공연, 패션, 시각예술이 정기적으로 편성돼야 제작사와 창작자, 기술 인력에게 수익이 돌아간다. 국가가 만든 시설 안에서 누가 콘텐츠를 소유하고 매출을 가져가는지가 산업의 내재화를 가르는 기준이다.
기관 간 분업은 사업 일정과 수익 배분이 맞지 않을 때 부담으로 바뀔 수 있다. PIF 계열사가 시설을 완공해도 문화부의 제작지원과 인력 양성이 늦으면 프로그램은 해외 콘텐츠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GEA의 라이선스와 행사 일정이 시설 운영계획과 어긋나면 개장 후 가동률도 낮아질 수 있다. 자본과 허가, 콘텐츠가 각각 다른 기관에 놓인 구조에서는 공동 사업계획과 일정 조정이 중요하다.
리야드와 키디야에 집중된 투자도 장기간 확인해야 할 변수다. 대형 상설 시설은 관광객과 고소득 소비자를 모으는 데 유리하지만 건설비와 유지비가 크고 이용권 가격도 높다. 수도권의 대형 시설이 성장하는 동안 지방 도시의 영화관과 공연장, 가족 단위 문화시설이 함께 늘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문화소비 기반은 제한될 수 있다.
2026~2030년 사우디 문화경제의 성적표에는 개장한 시설 수보다 운영 결과가 더 크게 반영된다. 키디야의 연간 방문객과 객단가, 재방문율, 식음료·상품 매출, 민간 스폰서십, 현지 고용, 사우디 콘텐츠 편성 비중, 시설 유지비가 투자 효율을 가르게 된다.
PIF는 자본과 공간을 공급하고, GEA는 민간기업과 관객시장을 관리하며, 문화부는 현지 창작자와 지식재산권을 축적한다. 세 기관의 역할이 하나의 수익구조로 연결될 때 국가가 만든 문화시장은 일회성 흥행을 넘어 산업으로 남는다. 사우디 문화산업의 두 번째 단계는 더 큰 행사를 개최하는 경쟁보다 이미 문을 연 시설을 누가 운영하고, 어떤 콘텐츠로 채우며, 얼마나 오래 수익을 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