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최혜정 ‘Circle2–geometry’, 두 중심이 맞물린 회전의 질서

태양과 달, 프라나와 아파나의 상반된 에너지…연필의 농도와 여백으로 구축한 2026년 기하학적 평면

2026-07-26     박준식 기자
최혜정 CHOI HyuJung Circle2 –geometry Circle2 –geometry Year 2026 Medium Pencil on paper Dimensions 91x116.8 Category flat painting

[KtN 박준식기자]두 개의 회전축이 종이 중앙에서 서로의 궤도를 밀어낸다. 검정과 회색으로 채운 곡선대는 각자의 중심을 향해 급격히 좁아지고, 종이 바탕을 남긴 흰 띠는 같은 방향으로 휘어지며 또 하나의 형상을 만든다. 원을 닫힌 도형으로 제시하기보다 팽창과 수렴이 계속 교차하는 운동으로 풀어낸 구성이다.

최혜정(CHOI HyuJung)의 2026년작 ‘Circle2–geometry’는 91×116.8cm 종이에 연필로 제작한 평면 작업이다. 두 개의 원형 구조를 좌우에 병치한 뒤 여러 겹의 곡선대로 분할하고, 각 곡선의 폭과 농도, 진행 방향을 달리해 하나의 복합적인 회전장을 만들었다.

제목에 포함된 ‘Circle’은 완결된 원보다 순환과 반복에 가깝다. 곡선은 넓게 부풀어 오르다가 중심으로 급격히 말려 들어가고, 날카로운 첨점을 남긴 채 다른 궤도와 겹친다. 시작과 끝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아 시선은 하나의 중심에 머물지 않고 두 회전축 사이를 계속 왕복한다.

왼편의 회전 구조에는 비교적 옅은 회색이 넓게 분포한다. 연필 자국 사이로 종이의 바탕이 비치고, 곡선대마다 명암의 층차도 다르게 나타난다.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짙은 면이 늘어나지만 검정이 전체를 장악하지는 않는다. 회색과 흰 띠 사이의 간격이 회전의 속도를 늦추며 넓은 호흡을 만든다.

오른편에는 더 짙은 농도가 집중됐다. 검은 곡선대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시선은 빠르게 안쪽으로 수렴한다. 양쪽의 기본 구조와 규모는 유사하지만 시각적 중량은 동일하지 않다. 오른편의 압축된 검정과 왼편의 넓은 회색이 서로 다른 속도로 균형을 조정한다.

비대칭적인 농도는 작품을 단순한 대칭 도형에서 벗어나게 한다. 오른편의 검정이 무게중심을 끌어당기면 왼편의 넓은 곡선과 흰 공간이 반대 방향에서 부피를 확보한다. 양쪽이 같은 힘으로 정지한 상태가 아니라 밀도와 간격을 바꾸며 계속 갱신되는 가변적 평형이다.

종이 바탕을 남긴 흰 띠도 수동적인 배경으로 물러나지 않는다. 검은 곡선과 비슷한 폭을 유지하며 독립된 궤도를 형성하고, 일부 구간에서는 검정보다 먼저 시선을 끌어간다. 채워진 면과 비워진 면이 번갈아 전면으로 나오면서 양과 음, 실체와 공백의 위치가 고정되지 않는다.

곡선대를 채운 연필 자국에는 손의 반복이 선명하게 남았다. 짧은 획을 겹쳐 쌓은 방향과 압력이 부분마다 다르고, 같은 검정 안에서도 미세한 농도 차이가 이어진다. 정교하게 설계된 외곽선과 수작업에서 생긴 표면의 편차가 공존하면서 기하학적 질서에 물질적인 깊이를 더한다.

흰 영역 곳곳에 남은 희미한 보조선도 눈에 들어온다. 곡선의 간격과 분할 지점을 정하기 위해 그은 선들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아 완성된 형태와 제작의 흔적이 한 종이 안에 함께 놓인다. ‘Geometry’는 완벽한 도형의 결과보다 원을 측정하고 나누며 다시 연결한 과정까지 포함한다.

바깥으로 뻗은 곡선의 끝은 부드럽게 닫히지 않는다. 일부 곡선대는 칼날처럼 가늘어지고, 다른 궤도와 만나는 구간에서는 윤곽이 갑자기 끊긴다. 원의 유연한 곡률과 첨점의 날카로움이 충돌하면서 회전은 장식적인 반복을 넘어 방향성과 긴장을 갖는다.

두 중심 사이에는 곡선대의 중첩이 가장 복잡하게 형성됐다. 왼편에서 출발한 궤적이 오른편 회전축의 경계까지 넘어가고, 오른편의 검은 띠도 반대쪽 구조 안으로 깊게 파고든다. 각자의 중심을 유지하면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는 방식이다.

상단과 하단에서도 두 원을 분리하는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바깥쪽 곡선대가 반대편 궤도와 교차하고, 일부는 상대 중심을 감싸는 방향으로 휘어진다. 두 구조는 독립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의 회전 반경과 속도를 바꾼다.

최혜정은 하(Ha)를 프라나(prana)이자 태양으로, 타(Tha)를 아파나(apana)이자 달로 설명한다. 해와 달, 음과 양처럼 상반된 힘의 만남을 충돌과 균형, 해체와 결합, 긴장과 이완이 이어지는 유랑으로 바라봤다.

하와 타는 작품의 좌우에 하나씩 고정되지 않는다. 두 회전 구조 모두 검정과 흰 바탕, 팽창과 수렴을 함께 품고 있다. 태양과 달이 서로 다른 영역에 격리되기보다 각각의 중심 안에서 교차하며 상대의 운동에 개입한다.

프라나와 아파나의 관계는 곡선대의 방향에서 구체화된다. 바깥으로 넓어지는 호는 에너지를 방출하는 원심적 움직임을 만들고, 폭을 좁히며 중심으로 휘어드는 선은 힘을 모아들이는 구심적 흐름을 형성한다. 확장과 응축은 서로 다른 단계가 아니라 하나의 궤도 안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호흡 역시 들이마심과 내쉼의 반복으로 유지된다. 중심에 모인 힘은 바깥으로 퍼지고, 확장된 곡선은 다시 안쪽으로 돌아간다. 두 회전축은 서로 다른 에너지가 충돌하는 지점인 동시에 순환을 멈추지 않게 하는 구조적 장치가 된다.

작가가 말한 ‘유랑’은 직선적인 이동보다 원을 따라 되풀이되는 운동에서 형태를 얻는다. 곡선대는 바깥으로 전진하는 듯하다가 다시 중심으로 말려 들어가고, 종이 가장자리까지 뻗은 궤적도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는다. 이동과 회귀가 한 흐름 안에서 반복된다.

해체와 결합도 완전한 분리와 통합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하나의 곡선대는 다른 띠에 가려지거나 절단된 뒤 새로운 위치에서 다시 이어진다. 연속된 원은 여러 파편으로 분산되고, 시선이 궤적을 따라가는 동안 다시 하나의 회전으로 재구성된다.

명암의 층차는 두 중심의 속도를 다르게 조율한다. 짙은 면이 밀집한 오른편에서는 시선이 빠르게 압축되고, 회색과 흰 띠가 넓게 펼쳐진 왼편에서는 이동이 상대적으로 완만해진다. 동일한 기하학적 모듈을 사용하면서도 양쪽의 리듬과 호흡은 다르게 설정됐다.

오른편에 집중된 검정은 시각적 중심을 한쪽으로 이동시키고, 중앙의 복잡한 중첩은 곡선의 진행 방향을 즉시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다만 시선이 잠시 지연되는 구간은 두 에너지가 충돌하고 간섭하는 밀도를 높인다. 완전한 대칭 대신 긴장을 품은 균형을 선택한 결과다.

연필의 농담은 수묵의 흑백 감각을 환기하지만 표면을 만드는 방식은 다르다. 물과 먹의 번짐 대신 연필심과 종이의 마찰, 같은 자리를 되짚은 횟수와 압력이 명암을 형성한다. 동양적 음양 사유를 전통 도상으로 재현하지 않고 현대적인 드로잉의 물성과 기하학적 운동으로 번역했다.

흰 바탕도 검은 형상을 둘러싼 여백에 머물지 않는다. 검정과 같은 폭으로 회전하고, 곡선대를 분절하며, 두 중심 사이의 거리를 조절한다. 비워 둔 부분이 채운 부분과 동등한 조형 단위로 작동하면서 작품의 기하학은 선과 면, 공백을 함께 포괄한다.

“작가의 시선으로 해석한 신과 인간의 시(詩), 서(書), 화(畵)의 놀이터”라는 설명은 최혜정의 작업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선언에 가깝다. 다만 ‘Circle2–geometry’의 개별 구조는 시·서·화라는 포괄적인 개념보다 두 회전축의 간섭, 곡선대의 중첩, 농도의 층차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놀이터’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자유로운 실험도 이번 작업에서는 치밀한 설계와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나타난다. 곡선의 폭을 계산하고 수많은 연필선을 겹쳐 농도를 조율한 과정은 즉흥적인 유희보다 통제와 변주의 긴 관계에 가깝다. 작가 설명의 개방성은 하와 타, 팽창과 수렴, 채움과 비움이라는 구체적인 조형 문법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Circle2–geometry’는 태양과 달, 프라나와 아파나를 서로 분리된 상징으로 세우지 않는다. 각각의 회전 안에 밝음과 어둠, 원심과 구심, 긴장과 이완을 함께 배치하고 상대의 궤도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게 한다.

두 중심은 끝까지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 검은 띠와 흰 띠도 어느 한쪽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서로의 속도와 방향을 바꾼다. 완전한 합일보다 차이를 유지한 접촉, 정지된 균형보다 끊임없이 조정되는 평형이 작품의 결론에 가깝다. 최혜정이 말한 유랑은 두 원 사이를 오가는 시선과 에너지의 지속적인 변환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