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잃은 엄마의 지독한 사랑” 이정은·공효진·박소담·이연이 뭉친 가족 복수극 ‘경주기행’ [KtN 현장]
이정은·공효진·박소담·이연의 네 모녀 복수극… 영화 ‘경주기행’ 8월 26일 개봉 - 8년 기다린 엄마와 세 딸의 ‘알리바이 여행’ - 공효진 “이정은 엄마라면 기꺼이 들러리” - 박소담 “힘든 시간 들어준 사람과 모녀로 재회” - ‘기생충’·‘동백꽃’ 잇는 역대급 모녀 케미… 2년 만에 베일 벗은 영화 ‘경주기행’ 제작보고회 현장
[KtN 김동희기자] 이정은이 “촬영 내내 지독한 사랑을 유지하려 했다”고 말하자 공효진·박소담·이연은 기다렸다는 듯 ‘엄마’와의 시간을 꺼냈다. 막내딸을 잃은 네 모녀의 복수극 ‘경주기행’은 배우들이 실제 가족처럼 가까워진 촬영 현장을 지나 8월 26일 관객과 만난다.
“촬영하는 내내 지독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7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경주기행’ 제작보고회에서 이정은은 엄마 옥실을 움직이는 감정을 ‘지독한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막내딸을 잃고도 일상을 이어온 엄마가 세 딸과 함께 복수를 위한 여행에 나서는 이야기다.
무대에는 이정은과 공효진, 박소담, 이연, 김미조 감독이 자리했다. 복수와 상실을 다룬 작품이지만 제작보고회 분위기는 무겁지만은 않았다. 배우들은 촬영지 경주에서 함께 먹고 지내며 가까워진 시간을 꺼냈고, 이정은에게 붙은 ‘엄니’라는 애칭을 소개하며 웃음을 더했다.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을 기다린 엄마와 세 언니가 여행을 떠나는 가족 복수극이다. 동네 수선집 ‘옥패션’을 운영하는 엄마 옥실(이정은)과 첫째 장주(공효진), 둘째 영주(박소담), 셋째 동주(이연)가 막내의 죽음 이후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정은이 기다린 세 딸…“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정은이 맡은 옥실은 네 딸을 키우며 삶을 버텨온 엄마다. 스스로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옥실의 인생은 막내 경주가 돌아오지 못한 날부터 달라진다. 8년 동안 품어온 슬픔과 분노는 남은 세 딸을 복수 여행으로 불러 모은다.
이정은은 “시나리오를 보고 너무 마음에 들었다”며 “1년 동안 딸들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작품에 먼저 합류한 뒤 공효진과 박소담, 이연이 세 딸의 자리를 채울 때까지 기다렸다는 설명이다.
옥실의 감정을 단순한 복수심으로만 접근하지도 않았다. 이정은은 “촬영하는 내내 지독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사랑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막내를 잃은 엄마의 행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지만, 출발점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이 놓여 있다. 이정은이 말한 ‘지독한 사랑’은 복수를 결심한 옥실과 끝내 엄마를 따라나서는 세 딸을 하나로 묶는 감정이 됐다.
공효진 “정은 엄마라면 기꺼이 들러리”
공효진은 첫째 장주를 연기한다. 장주는 일찍부터 옥패션 일을 도우며 동생들을 돌봤고, 가정을 꾸린 뒤에도 친정 식구들을 가장 먼저 챙기는 인물이다. 엄마의 복수 계획 앞에서 흔들리면서도 동생들을 이끌고 여행에 동참한다.
공효진은 다른 작품 일정과 촬영 시기가 겹치면서 처음에는 출연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한 차례 대본을 떠나보낸 뒤에도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6∼7개월이 지나도 계속 대본이 생각났어요. 촬영 시기가 밀리면서 다시 저에게 대본이 왔습니다.”
이정은과의 재회도 출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두 배우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모녀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공효진은 “이 영화는 엄마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며 “‘동백꽃 필 무렵’ 이후 정은 언니와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 정은 엄마라면 기꺼이 들러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작품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로는 “가족 일에 무슨 논리가 필요하냐”를 꼽았다. 공효진은 장주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누르면서도 엄마와 동생들을 붙드는 대사라고 해석했다.
“다들 이 기행을 걱정하고 믿지 않으려 할 때 장주도 도망가고 싶었을 거예요. 그래도 엄마가 병이 나도록 꿈꿔온 일이라고 되뇌면서 동생들을 끌고 가기 위해 스스로 최면을 걸었던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효진은 “무엇을 예상하든 다를 것이라는 생각으로 극장에 와주시면 좋겠다”며 “논리는 필요 없으니 그냥 보러 와주시길 바란다”고 작품 속 대사를 다시 인용했다.
박소담 “힘든 시간을 들어준 사람과 엄마·딸로 만났다”
박소담은 둘째 영주를 맡았다. 법대를 나온 엘리트지만 현재는 코인 시세를 들여다보며 지내는 백수다. 감정이 앞서는 가족 사이에서 계획을 세우는 인물이지만, 엄마 옥실과 가장 자주 부딪힌다.
박소담은 “저도 삼남매인데 형제들의 관계가 너무 재미있게 읽혔다”며 “어떻게 이렇게 세세하게 썼을까 싶었고, 영주의 대사가 입에 붙었다”고 말했다.
이정은과는 영화 ‘기생충’ 이후 다시 만났다. 작품 밖에서 쌓인 관계는 모녀 연기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박소담은 “아프고 난 뒤 요양할 때 정은 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새벽에도 제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털어놨다.
“힘든 시간들을 지나고 엄마와 딸로 만나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영주는 엄마와 가장 많이 대립하지만, 사랑이 너무 많아서 그러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촬영을 마치고 이 가족과 헤어지는 일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박소담과 이정은 사이에 이미 쌓여 있던 신뢰는 옥실과 영주의 충돌에도 무게를 더했다. 사랑이 없어서 부딪히는 모녀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이 너무 커서 물러서지 못하는 관계다.
이연 “동주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인물”
이연은 셋째 동주로 출연한다. 동주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프로레슬링 선수다. 가족의 복수 계획에서도 넘치는 힘과 에너지를 담당한다.
이연은 이정은과 공효진, 박소담의 출연 소식을 듣고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저에게 큰 성장을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동주 역할은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임했습니다.”
촬영 과정에서 선배들의 연기와 현장 대응을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도 전했다. 이연은 “정은 선배가 이 작품에 너무 잘 맞는 귀한 역사를 가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선배들과 함께하면서 저도 모르게 노하우를 흡수해 다른 작품에서 활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네 배우는 경주 촬영 기간 동안 실제 가족에 가까운 관계를 쌓았다. 공효진은 이정은을 ‘엄마’와 ‘언니’를 합친 ‘엄니’라고 부르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엄마로 만났지만 나이 차이가 아주 큰 편은 아니어서 ‘엄니’라고 부르고 있어요. 경주에서 함께 맛집도 많이 다녔고, 매일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촬영했습니다.”
복수 여행을 연기하기 위해 모인 배우들은 촬영이 끝날 무렵 실제 여행을 함께한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제작보고회에서도 한 배우의 말이 끝나면 다른 배우가 자연스럽게 말을 보태며 촬영 당시의 기억을 이어갔다.
딸 넷 집 막내 김미조 감독…엄마의 여러 얼굴에서 출발
‘경주기행’은 김미조 감독의 가족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김 감독은 실제로 딸 넷인 집의 막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엄마와 딸들의 관계가 네 모녀의 출발점이 됐다.
김 감독은 “모녀 관계는 서로를 자기 자신처럼 인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엄마가 딸의 수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영화 안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엄마 옥실은 세 딸에게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장주에게는 평생 지켜야 할 가족이고, 영주에게는 사랑하지만 끊임없이 맞서게 되는 대상이며, 동주에게는 행동으로 따라가게 되는 중심이다. 한 명의 엄마가 딸마다 다른 표정과 관계를 드러내는 구조다.
김미조 감독은 장편 데뷔작 ‘갈매기’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경주기행’은 첫 상업영화다. 개인적인 가족의 기억에서 출발했지만, 막내를 잃은 뒤 남은 가족이 슬픔과 분노를 나누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넓혔다.
여행지와 막내딸의 이름 ‘경주’…제목에 담긴 두 겹의 뜻
영화의 배경인 경주는 김미조 감독의 실제 가족 여행에서 출발했다. 낮에는 관광객이 찾는 익숙한 도시지만, 밤이 되거나 비가 내리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드러낸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 감독은 “경주가 관광지로 많이 알려졌지만 밤이 되거나 비가 오면 스산한 분위기를 풍긴다”며 “그 느낌이 가족과 살인 여행기라는 아이러니에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제목 ‘경주기행’에도 두 가지 의미가 겹친다. ‘경주’는 네 모녀가 향하는 도시이자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의 이름이다. ‘기행’에는 여행을 기록한 글이라는 의미와 기이한 행동이라는 뜻이 함께 담겼다.
가족 여행처럼 출발한 네 모녀의 이동은 막내 경주의 죽음과 맞닿으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관광지의 익숙한 풍경과 복수를 준비하는 가족의 행동이 한 공간에서 교차한다.
2년 기다린 개봉…해외 영화제 거쳐 8월 26일 극장으로
‘경주기행’은 촬영을 마친 뒤 약 2년 만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김미조 감독은 영화를 완성하고도 공개하지 못한 채 기다려야 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연출자로서 가장 힘든 순간은 내가 만든 영화를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하고 작업만 하는 순간입니다. 긴 시간을 통과해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어 기쁩니다.”
이정은은 기다림마저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기다림이 있어야 작품이 잘 나오는 것 같다”며 “침착하게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이 아니면 이렇게 못했을 정도로 가족이 돼 촬영했다”며 배우들과 함께 만든 시간을 강조했다.
‘경주기행’은 국내 개봉에 앞서 하와이 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해외 관객과 먼저 만난 작품은 오는 8월 26일 국내 극장에서 개봉한다.
막내딸을 위한 복수라는 강한 설정을 앞세웠지만, 제작보고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은 살인이나 복수가 아닌 가족과 사랑이었다. 이정은이 붙든 ‘지독한 사랑’, 공효진이 선택한 이정은과의 재회, 박소담이 의지했던 시간, 이연이 현장에서 얻은 성장이 네 모녀의 관계 안으로 모였다.
‘경주기행’이 관객에게 건넬 감정도 복수의 결과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상실 이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무너진 엄마와 딸들이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다시 움직이는 과정, 가족이라는 이유로 끝내 서로를 놓지 못하는 관계가 영화의 인상을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