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루이 비통 남성복, 수트를 풀고 소비를 묶다

SS27 Formal이 넓힌 출근·이동·저녁의 옷장…복장 규정은 느슨해지고 명품 소비의 범위는 더 촘촘해졌다

2026-07-28     박인경 기자
Pharrell Williams Redefines Modern Tailoring for Louis Vuitton SS27 Formal Menswear Collection. 사진=Louis Vuitt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인경기자]루이 비통의 2027 봄·여름 남성 포멀 컬렉션은 네이비 수트에서 시작해 블루종과 백팩, 로퍼로 이어진다. 셔츠와 넥타이는 남아 있지만 수트 재킷이 차지하던 자리는 줄었다. 출근할 때 입는 정장과 이동 중 걸치는 아우터, 저녁 약속에 필요한 가방과 구두를 한 컬렉션에 묶은 결과다.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가 손댄 대상은 수트의 재단만이 아니다. 회사와 공항, 식당과 행사장을 오가는 남성의 하루를 세분화하고, 일정마다 다른 제품을 배치했다. 복장 규정이 느슨해진 자리에 루이 비통의 옷과 가죽 제품이 들어간다.

SS27 Formal은 타임리스 비즈니스(Timeless Business), 모던 테일러링(Modern Tailoring), 이브닝(Evening)으로 구성됐다. 이름만 놓고 보면 업무복과 현대적 정장, 저녁 행사복을 구분한 체계다. 실제 착장은 세 영역을 자주 넘나든다. 수트 위에 기술 아우터를 겹치고, 넥타이 차림에 블루종을 입는다. 턱시도에는 작업복에서 가져온 무릎 보강 구조와 금속 리벳을 붙였다.

타임리스 비즈니스에는 네이비와 회색, 검정, 베이지 수트가 놓였다. 흰 셔츠와 넥타이, 가죽 구두를 갖춘 전통적인 업무복 형식도 유지했다. 가스통(Gaston), 나폴리타나(Napolitana), 퐁뇌프(Pont Neuf)로 이어지는 수트 체계를 바탕으로 재킷 길이와 팬츠 폭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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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수트에는 실크 캐시미어 직조로 모노그램을 넣었다. 큰 로고와 강한 대비를 줄이고 직물의 조직 안에서 문양이 드러나도록 처리했다. 멀리서는 단색 수트에 가깝고 가까이에서는 반복 무늬가 보인다. 브랜드 표식이 재킷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방식을 피한 선택이다.

재단의 변화는 제한적이다. 어깨와 라펠, 셔츠와 넥타이의 관계는 그대로 남았다. 베이지 수트와 넓은 팬츠, 밝은 색 넥타이도 남성복에서 이미 익숙한 구성이다. 로고 표현은 차분해졌지만 파렐 윌리엄스 시대의 루이 비통을 단번에 알아보게 할 새로운 수트 실루엣까지 나오지는 않았다.

타임리스 비즈니스가 맡은 역할은 급격한 전환보다 기존 고객을 붙잡는 데 있다. 수트의 기본 규칙을 지키면서 직물과 색, 비례를 조금씩 바꿨다. 남성 정장을 새로 정의했다기보다 루이 비통의 가방과 구두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바탕을 마련했다.

회색 수트에는 짙은 녹색 가방이 붙고, 검정 수트에는 큰 갈색 브리프케이스가 들어간다. 의류의 장식이 줄어든 만큼 가죽 제품의 색과 크기가 착장의 인상을 결정한다. 가방을 덜어내면 일반적인 비즈니스웨어에 가까운 옷도 적지 않다. 수트가 컬렉션의 중심에 놓였지만 브랜드의 존재감은 손에 든 제품에서 더 강하게 남는다.

Pharrell Williams Redefines Modern Tailoring for Louis Vuitton SS27 Formal Menswear Collection. 사진=Louis Vuitt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모던 테일러링에서는 수트 재킷의 자리를 블루종과 트랙 재킷, 집업 니트, 질레(gilet)가 나눠 갖는다. 트랙 재킷은 펠티드 울과 매끈한 송아지가죽으로 만들었고, 3-in-1 기술 재킷과 양면 플란넬 질레도 포함했다. 한 벌의 수트를 완성하는 방식보다 여러 상의를 일정과 날씨에 맞춰 겹치고 덜어내는 방식에 비중을 뒀다.

셔츠와 넥타이 위에 검정 블루종을 입은 착장은 모던 테일러링의 성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상의는 허리 부근에서 짧게 끝나고 팬츠는 넓고 길게 떨어진다. 색은 검정과 회색으로 정돈했지만 높은 칼라와 지퍼, 밑단 구조는 스포츠웨어의 형태를 그대로 남긴다.

값비싼 직물과 정교한 가공이 트랙 재킷을 정장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소재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옷의 형식은 블루종과 집업 아우터에 가깝다. 셔츠와 넥타이, 가죽 구두가 빠지는 순간 고급 캐주얼웨어와 포멀웨어의 구분도 흐려진다.

루이 비통이 제시한 모던 테일러링은 새로운 재단법보다 조합의 변화에 가깝다. 정장 재킷을 반드시 입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사라진 재킷의 자리에 여러 제품을 넣었다. 블루종과 질레, 니트와 기술 아우터가 하나의 업무복 안에 들어오면서 남성의 선택지는 늘었다.

Pharrell Williams Redefines Modern Tailoring for Louis Vuitton SS27 Formal Menswear Collection. 사진=Louis Vuitt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구매해야 할 품목도 많아졌다. 수트와 셔츠, 구두로 끝나던 출근복에 짧은 아우터와 조끼, 백팩과 선글라스가 추가된다. 복장 규정의 완화가 옷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다. 남성은 수트 한 벌에서 벗어났지만 더 많은 옷을 상황에 따라 골라야 한다.

이브닝 부문에는 정통 턱시도와 패턴 셋업, 니트와 집업 상의가 함께 들어갔다. 흰 셔츠와 검정 보타이를 갖춘 블랙타이는 그대로 남아 있다. 파렐 윌리엄스는 턱시도를 없애지 않고 주변에 다른 선택지를 추가했다.

그랭 드 푸드르 울(grain de poudre wool)과 니트에는 작업복에서 가져온 더블니 패널을 덧댔다. 연결 부위에는 모노그램 플라워 리벳을 사용하고, 크리스털 다미에 버튼과 실크 자카드 셔츠로 광택을 더했다. 노동복의 보강 구조와 저녁 행사복의 장식이 한 컬렉션 안에서 만났다.

작업복의 무릎 패널은 원래 마모를 견디기 위한 장치다. 턱시도에 들어간 뒤에는 기능보다 장식과 대비가 앞선다. 리벳도 봉제 부위를 보강하기보다 모노그램 플라워를 드러내는 역할에 가깝다. 작업복의 실용성을 옮겼다기보다 시각적 흔적을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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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블랙타이와 작업복 디테일의 결합은 낯설지만 수트의 구조까지 바꾸지는 않았다. 변화는 무릎 패널과 리벳, 버튼, 직물 표면에 집중됐다. 파렐 윌리엄스가 넓힌 영역은 턱시도 자체보다 턱시도를 입지 않아도 되는 저녁 약속의 복장이다.

공식 만찬에는 검정 턱시도가 남고, 격식이 낮은 저녁 모임에는 패턴 니트와 집업 상의가 들어간다. 남성의 저녁 옷차림이 자유로워진 동시에 행사 성격에 따라 골라야 할 제품도 세분화됐다. 하나의 턱시도로 여러 자리를 버티던 옷장은 일정마다 다른 상의와 구두를 요구하는 구조로 바뀐다.

가방과 구두에서는 루이 비통이 원하는 남성의 생활 반경이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LV 에어로그램(LV Aerogram)은 초콜릿 브라운으로 확장됐고, 키폴(Keepall)과 크리스토퍼 백팩(Christopher backpack)에는 포레스트 그린 토리옹 가죽(Taurillon leather)을 사용했다. 타이가(Taïga) 제품군에는 네이비와 올리브, 그르나(grenat)가 들어갔다.

새로운 가방 형태보다 기존 제품군의 색과 소재를 조정한 구성이 많다. 출근에는 브리프케이스, 이동에는 백팩, 출장에는 키폴을 배치한다. 수트와 블루종, 니트가 달라질 때마다 가방의 크기와 색도 바뀐다. 남성의 일정이 세분화될수록 루이 비통의 가죽 제품이 들어갈 자리도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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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는 로퍼와 더비, 첼시 부츠로 구성됐다. 루브르(Louvre)와 메이페어(Mayfair) 라인에는 굿이어 플렉스(Goodyear Flex) 제법을 적용해 수선 가능성을 내세웠다. 색과 장식에 머물지 않고 제품 수명과 착화 구조를 언급한 부분은 컬렉션 가운데 비교적 실질적인 변화다.

굿이어 제법은 전통 남성화에서 오래 사용돼 왔다. 루이 비통은 유연성을 더하고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의 밑창에는 트렁크에서 가져온 로진(Lozine)을 적용했다. LV 옥스퍼드 로퍼에는 카퓌신(Capucines) 가방을 연상시키는 크리스털 장식 하프 모노그램 버클을 넣었다. 수선과 착화감은 기능을 맡고, 트렁크와 가방에서 가져온 세부는 브랜드의 계보를 드러낸다.

SS27 Formal이 보여주는 남성패션의 변화는 수트의 종말과 거리가 멀다. 셔츠와 넥타이, 라펠 재킷과 가죽 구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달라진 부분은 수트를 입는 시간과 수트 주변에 놓이는 제품의 수다.

과거의 남성 정장은 회사와 공식 행사를 하나의 규칙으로 묶었다. 재킷과 팬츠를 갖춰 입으면 하루의 여러 일정에 대응할 수 있었다. 루이 비통은 회사와 이동, 저녁 모임을 잘게 나누고 각각 다른 아우터와 가방, 구두를 배치했다. 한 벌의 수트가 맡던 역할을 여러 제품이 나눠 가진 셈이다.

남성복의 자유도 소비와 분리되지 않는다.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는 대신 어떤 집업 니트와 블루종을 입을지 결정해야 한다. 브리프케이스를 내려놓을 수 있지만 백팩과 키폴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정장의 규칙은 약해졌고 취향과 지위를 드러내는 구매 선택은 더 촘촘해졌다.

루이 비통은 수트를 폐기하지 않았다. 수트의 권위를 낮추고 주변 품목을 늘렸다. 파렐 윌리엄스가 풀어낸 것은 남성 정장의 형식이며, 루이 비통이 묶어낸 것은 출근에서 이동, 저녁 약속으로 이어지는 하루 전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