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산업 대전환①] 스트리밍 시청시간 48%, TV를 다시 정의한 플랫폼 경쟁
유튜브 13.4%·넷플릭스 9.0%…스포츠·크리에이터·FAST가 거실로 들어오며 콘텐츠 유통과 광고 기준 재편
[KtN 전성진기자]2026년 2월 미국의 전체 TV 시청시간 가운데 스트리밍이 차지한 비중은 48.0%까지 올라갔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54%를 기록했다. 방송사가 정한 시간에 프로그램을 보는 지상파·케이블 시청보다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영상 하나를 선택하는 소비가 텔레비전 이용의 절반을 차지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시청자가 떠난 곳은 텔레비전 기기 자체가 아니다.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에서 빠져나온 시간이 유튜브(YouTube), 넷플릭스(Netflix), 디즈니+(Disney+), 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 텔레비전(FAST)으로 이동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에서 성장한 플랫폼이 거실의 대형 TV 안으로 들어오면서 ‘방송을 보는 기기’였던 텔레비전은 여러 영상 서비스를 불러오는 접속 장치로 성격이 달라졌다.
콘텐츠 시장의 경쟁 기준도 함께 바뀌었다. 프로그램 편성표와 채널 번호보다 애플리케이션 첫 화면, 추천 알고리즘, 스포츠 생중계 시간, 크리에이터의 새 영상 공개 일정이 시청시간을 좌우한다. 드라마와 영화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스포츠와 뉴스, 팟캐스트, 장편 크리에이터 영상, 무료 실시간 채널, 쇼핑 콘텐츠까지 같은 TV 안에서 이용자의 시간을 나눠 갖는다.
유튜브 13.4%, 넷플릭스 9.0%…거실에 들어온 디지털 플랫폼
유튜브의 미국 TV 시청시간 점유율은 2025년 7월 13.4%까지 상승했다. 넷플릭스가 같은 해 12월 기록한 최고 점유율 9.0%보다 4.4%포인트 높다. 개별 작품의 흥행 여부를 넘어 플랫폼 전체에서 소비되는 영상의 합계가 기존 방송사의 시청시간과 경쟁하는 구조다.
유튜브의 상승은 짧은 영상의 인기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크리에이터들은 수십 분에서 한 시간을 넘기는 예능, 다큐멘터리, 인터뷰, 스포츠 해설과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휴대전화에서 잠시 소비되는 영상과 TV에서 이어 보는 장편 프로그램의 경계도 약해졌다.
뉴욕에서 열린 스포터 쇼케이스(Spotter Showcase)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광고주를 상대로 장편 콘텐츠와 시청자 규모를 제시했다. 상위 40개 크리에이터가 매달 공개하는 장편 오리지널 에피소드는 250개, 누적 시청시간은 250억분으로 집계됐다. 크리에이터 콘텐츠가 단발성 협찬이나 짧은 홍보 영상에서 벗어나 정기 편성과 반복 시청을 갖춘 미디어 상품으로 이동한 수치다.
방송사는 몇 개 채널을 운영하지만 유튜브는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동시에 프로그램을 공급한다. 제작 편수와 장르가 중앙 편성 조직의 결정에 묶이지 않고, 이용자의 검색과 추천 결과에 따라 노출된다. 시청자는 예능을 본 뒤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로 이동하는 대신 요리 영상에서 스포츠 분석, 음악 공연, 영화 리뷰로 넘어간다. 플랫폼은 영상 사이의 이동 경로를 데이터로 축적하고 다음 콘텐츠와 광고를 배치한다.
시청시간을 확보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제작자의 지위도 바뀌었다. 크리에이터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지도를 얻는 보조 인력이 아니라 자체 채널과 구독자, 광고 상품을 보유한 제작·유통 사업자가 됐다. 방송사와 OTT가 크리에이터를 섭외하는 구조와 크리에이터가 플랫폼 안에서 독립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구조가 함께 형성됐다.
스포츠 생중계가 만든 시청시간의 급등
피콕(Peacock)의 미국 TV 시청시간 점유율은 2026년 2월 3.0%로 급상승했다.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전 경기와 제60회 슈퍼볼 중계가 같은 시기에 집중된 영향이다. 넷플릭스가 2025년 12월 9.0%의 최고 점유율을 기록한 기간에도 크리스마스 미국프로풋볼(NFL) 중계가 편성됐다.
영화와 드라마는 공개 뒤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 소비된다. 스포츠 경기는 시작 시간이 정해져 있고 결과를 미리 알게 되면 상품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다. 이용자가 특정 시간에 한꺼번에 접속하고 중간 이탈도 상대적으로 적어 광고주가 원하는 동시 도달 규모를 확보하기 쉽다.
넷플릭스는 2026년 NFL 중계를 5경기로 확대했다. 시즌 전체를 구매하는 대신 개막전과 추수감사절 전야 경기, 크리스마스 더블헤더, 정규시즌 18주차 경기처럼 관심이 집중되는 일정을 선택했다. 5경기와 NFL 어워즈 방송권 비용은 약 5억달러로 추정됐으며, 넷플릭스 연간 콘텐츠 예산 200억달러의 약 2.5%에 해당한다.
대형 경기만 골라 확보하는 방식은 시즌 내내 중계권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서 특정 날짜의 시청시간과 신규 가입자, 광고매출을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스포츠 리그도 지상파와 케이블에 중계권을 일괄 판매하던 방식에서 방송사와 OTT, 무료 스트리밍 플랫폼에 경기를 나눠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스포츠가 모든 플랫폼에 같은 결과를 주는 것은 아니다. 피콕은 동계올림픽과 슈퍼볼, NBA 올스타전을 연이어 중계하며 분기 매출 20억달러를 처음 넘어섰지만, 2026년 1분기 가입자 이탈률은 9%로 주요 경쟁사의 6% 이하보다 높았다. 경기가 끝난 뒤 이용자를 드라마와 예능, 영화로 이동시키지 못하면 시청시간의 급등이 지속적인 구독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청시간 경쟁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왔는지와 함께 얼마나 오래 남았는지가 중요하다. 스포츠는 접속자를 단기간에 모으는 데 강하지만, 오리지널 콘텐츠와 추천 체계는 경기 뒤에도 이용자를 붙잡는 역할을 맡는다. 생중계와 주문형 콘텐츠를 따로 운영하던 기존 구분이 약해진 배경이다.
무료 채널로 돌아온 편성표
구독형 OTT가 방송의 편성표를 해체한 사이 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 텔레비전은 채널을 다시 불러왔다. 삼성 TV 플러스(Samsung TV Plus), 투비(Tubi), 로쿠 채널(Roku Channel), 플루토 TV(Pluto TV)는 이용자가 별도의 구독료를 내지 않고 광고를 보는 조건으로 실시간 채널과 주문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삼성 TV 플러스의 월간 글로벌 이용자는 2025년 말 1억명을 넘어섰다. 스트리밍 시간은 전년보다 25% 증가했고, 이용을 시작한 뒤 4개월 후 유지율은 92%로 집계됐다. 30개국에서 4300개가 넘는 채널을 제공하며 삼성 TV뿐 아니라 갤럭시 휴대전화와 태블릿, 스마트 모니터까지 이용 기기를 넓혔다.
FAST는 방송과 OTT의 중간에 놓여 있다. 이용자는 콘텐츠 한 편을 직접 검색하지 않아도 뉴스, 스포츠, 예능, 음악, 특정 배우나 프로그램을 묶은 채널을 계속 틀어둘 수 있다. 방송의 연속 시청과 OTT의 인터넷 유통, 개인화 광고가 한 서비스 안에서 결합한다.
삼성 TV 플러스는 스포츠 리그와 디지털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함께 편성하고 있다. 아마존 라이브(Amazon Live)의 FAST 채널은 오리지널 시리즈와 쇼핑 행사를 연결한다. 프랑스에서는 현지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묶은 전용 채널도 공급했다. TV 채널이 방송사가 보유한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통로에서 스포츠 리그와 전자상거래 기업, 크리에이터가 직접 운영하는 유통 공간으로 넓어진 셈이다.
무료 서비스의 확장은 유료 OTT와 별개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용자는 비용을 내지 않는 FAST에서 콘텐츠를 발견하고, 광고형 요금제나 프리미엄 구독으로 이동할 수 있다. 반대로 유료 구독을 해지한 뒤 무료 채널에 머물 수도 있다. 플랫폼은 무료·광고형·무광고 상품을 단계별로 배치해 이용자가 서비스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시청시간을 따라 이동한 광고비
18∼49세 미국 성인이 스트리밍에서 소비한 시간 가운데 81.1%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디즈니+, 훌루(Hulu), 프라임 비디오(Prime Video), HBO 맥스(HBO Max), 피콕, 파라마운트+(Paramount+)의 광고 지원 상품에서 발생했다. 나머지 19%는 투비와 로쿠 채널, 플루토 TV 등 FAST가 차지했다. 젊은 성인의 스트리밍 시청 대부분이 이미 광고와 결합돼 있다는 의미다.
OTT의 초기 성장기는 광고 없이 원하는 콘텐츠를 보는 경험에 초점이 맞춰졌다. 2026년의 스트리밍 시장은 구독료와 광고, 무료 채널, 쇼핑을 동시에 운영하는 복합 수익구조로 이동했다. 시청시간이 늘어난 플랫폼은 구독매출뿐 아니라 광고 노출과 상품 구매, 콘텐츠 추천 데이터까지 확보한다.
텔레비전 광고를 구매하는 방식도 채널과 프로그램 중심에서 이용자와 시청 맥락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같은 스포츠 경기를 보더라도 지역과 구매 이력, 시청 기기, 접속 시간에 따라 다른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 스마트TV 제조사는 기기 운영체제와 첫 화면을 통해 플랫폼의 노출 순서와 광고 공간을 확보한다. 콘텐츠 사업자와 기기 제조사, 광고기술 기업의 영역이 겹치는 배경이다.
시청시간의 이동은 콘텐츠의 가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방송 시청률은 정해진 시간에 프로그램을 본 가구를 중심으로 측정해 왔다. 스트리밍에서는 실시간과 다시보기, 짧은 영상과 장편 영상, 유료와 무료 이용, TV와 스마트폰 시청이 동시에 발생한다. 조회수만으로는 이용자가 몇 분을 봤는지 알기 어렵고, 월간활성이용자 수만으로는 유료 결제와 반복 시청을 구분하기 어렵다.
국내 콘텐츠 시장에 필요한 통합 성적표
국내에서도 지상파 시청률과 OTT 월간활성이용자, 유튜브 조회수, 영화 관객 수가 각각 다른 기준으로 발표된다. 한 작품이 방송과 OTT, 유튜브 클립, 해외 플랫폼에서 동시에 소비돼도 전체 시청시간과 수익을 한꺼번에 파악하기 어렵다.
제작사는 작품이 어느 플랫폼에서 몇 명에게 도달했는지뿐 아니라 시청자가 얼마나 오래 봤고 다른 콘텐츠로 이동했는지 확인해야 투자와 후속 제작을 판단할 수 있다. 광고주도 방송 시청률과 디지털 조회수를 따로 구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TV와 모바일, OTT를 합친 도달률과 구매 전환을 요구하게 된다.
국내 플랫폼이 글로벌 사업자와 경쟁하려면 작품 수와 가입자 규모만으로는 부족하다. TV 기기에서 확보한 시청시간, 스포츠 중계 뒤 재방문율, 무료 이용자의 유료 전환, 크리에이터 콘텐츠의 장편 시청, 광고와 커머스 매출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사도 보유 프로그램을 자사 채널에만 묶어두기보다 OTT와 FAST, 유튜브에서 시청시간을 다시 확보하는 유통 전략이 필요해졌다.
2026년 하반기 플랫폼 실적과 광고 계약에서는 가입자 수보다 시청시간을 어떻게 매출로 전환했는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전망이다. 스포츠가 만든 일시적인 접속 증가, 크리에이터 장편물의 반복 시청, FAST 채널의 유지율, 거실 TV 안에서 확보한 첫 화면이 각각 다른 수익으로 연결된다. 방송사와 OTT, 유튜브를 나눠 보던 시장 구분은 약해지고 있다. 텔레비전 한 대를 두고 누가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느냐가 콘텐츠 제작과 유통, 광고비의 흐름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