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K-콘텐츠③] K-드라마 82.1%, 가족 공동 시청이 넓힌 한국 영상물 소비
한국 영화 이용 경험률 82.4%·드라마 호감도 81.6%…로맨스와 가족 서사에서 스릴러·메디컬까지 확장
[KtN 전성진기자]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 영화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는 82.4%, K-드라마 이용 경험자는 82.1%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 한국 콘텐츠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K-드라마 호감도는 81.6%, 한국 영화는 79.9%를 기록했다. 한류 팬만 찾아보는 콘텐츠를 넘어 일반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이용자의 선택지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한국 문화 콘텐츠 전반에 대한 사우디 소비자의 호감도는 73.8%로 조사 대상 국가 평균 69.7%를 웃돌았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의향은 74.9%, 한국 콘텐츠를 경험한 뒤 한국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은 79.0%였다. 드라마와 영화는 작품 소비를 넘어 한국에 관한 인식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접점으로 자리 잡았다.
넷플릭스(Netflix)와 샤히드(Shahid)를 통한 접근성 확대가 소비 저변을 넓혔다. 글로벌 신작은 넷플릭스에서 여러 국가와 동시에 공개되고, 아랍권 플랫폼인 샤히드는 아랍어 자막과 별도 편성을 통해 한국 작품을 지역 콘텐츠 목록 안에 배치한다. 한국 드라마를 처음 접하는 일반 이용자와 후속 작품을 찾는 시청자가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만나는 구조다.
샤히드는 ‘K-드라마 특별관’을 마련해 ‘김비서가 왜 그럴까’, ‘선재 업고 튀어’, ‘또 오해영’ 등 20여 편을 묶어 제공했다. 개별 작품이 공개될 때마다 검색해야 하는 방식보다 한국 드라마를 하나의 콘텐츠군으로 제시하는 편성이다. CJ ENM도 2025년 샤히드와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 드라마 20편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 공급하기로 했다.
플랫폼의 확산력만으로 80%가 넘는 이용 경험률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우디의 영상 소비에는 개인 시청과 가족 공동 시청이 함께 존재한다. 2025년 11월 사우디를 포함한 15개국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사우디 응답자의 79%는 가족과 영화를 함께 본다고 답했다. 가족 구성원과 스트리밍 계정을 공유한다는 응답도 61%였다.
가족 중심의 디지털 이용은 영화 시청에 국한되지 않았다. 응답자의 63%는 가족과 온라인게임을 함께 이용했고, 72%는 가족과 정기적으로 영상통화를 한다고 답했다. 사우디에서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는 개인 여가 수단인 동시에 가족 구성원이 경험을 공유하는 통로로 쓰인다.
스트리밍 계정 하나를 여러 가족 구성원이 이용하면 작품 선택 기준도 달라진다. 특정 연령대만 이해할 수 있는 설정보다 가족관계와 우정, 세대 갈등, 성장, 화해처럼 여러 세대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서사가 넓은 시청층을 확보하기 쉽다. 한국 드라마가 반복해서 다뤄온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직장 동료, 친구 사이의 관계가 사우디의 공동 시청 환경과 만나는 대목이다.
한국과 아랍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강한 가족 유대와 우정, 이타성, 비교적 절제된 애정 표현도 초기 한류 수용의 배경으로 분석됐다. 노골적인 표현보다 감정의 변화와 관계의 축적을 따라가는 한국 드라마의 서사가 아랍권의 가족·공동체 중심 가치와 맞닿았다는 설명이다.
초기 소비에서는 로맨스와 가족물이 앞섰다. 인물 사이의 감정과 갈등을 여러 회에 걸쳐 쌓아가는 드라마 형식은 가족이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공유하기에 적합했다. 주인공의 연애만 다루기보다 부모와 자녀, 형제, 친구, 직장 관계를 함께 배치하는 구성도 작품의 접근 연령을 넓혔다.
가족 공동 시청을 곧 가족극 선호로만 좁힐 수는 없다. 사우디의 한국 영상물 소비는 로맨스에서 서바이벌, 스릴러, 복수극, 메디컬, 학원 액션, 범죄물로 넓어졌다. 가족·관계 서사를 통해 형성된 초기 친숙도가 배우와 제작 방식, 한국형 이야기 전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면서 다른 장르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흐름이다.
‘오징어 게임’과 ‘더 글로리’ 이후에는 독창적인 설정과 강한 서스펜스, 복수 서사를 앞세운 작품이 젊은 시청자의 관심을 받았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공개 하루 만에 사우디 넷플릭스 TV 부문 1위를 기록했다. 도덕적 판단과 정의를 둘러싼 설정, 인물의 심리 변화가 종교적·철학적 주제에 익숙한 현지 시청자의 관심과 맞물렸다.
‘중증외상센터’, ‘약한영웅 Class 2’, ‘김부장’, ‘참교육’ 등 메디컬·학원 액션·범죄물도 사우디 넷플릭스 상위권에 진입했다. 2026년 7월에는 ‘동궁’이 사우디를 포함한 80여 개국 넷플릭스 톱10에 올랐다. 특정한 로맨스 공식을 반복해서 찾는 시장보다 한국 작품이라는 익숙한 범주 안에서 여러 장르를 선택하는 시장으로 이동한 흐름이다.
장르 확장은 한국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집단이 넓어진 결과와도 맞닿아 있다. 사우디의 일반 이용층은 넷플릭스와 샤히드, 유튜브 등에서 화제가 된 작품을 선택적으로 시청한다. 특정 장르에 대한 충성도보다 플랫폼 접근성과 추천 알고리즘, 소셜미디어 화제성이 선택에 더 큰 영향을 준다. 드라마와 영화의 높은 이용 경험률은 일반 이용자가 한국 콘텐츠에 들어오는 첫 통로로 작동한다.
한 작품의 순위가 오르면 출연 배우의 이전 작품과 비슷한 장르의 한국 드라마가 함께 검색되는 소비도 가능해진다. K-팝 팬덤이 드라마로 이동하고, 배우의 글로벌 인지도가 신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교차 소비도 확인됐다. 플랫폼이 한국 드라마 특별관과 연관 작품 추천을 운영하면 일회성 시청을 후속 작품 소비로 연결할 수 있다.
가족 공동 시청은 편성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개인 계정에서 한 사람이 작품을 끝까지 보는 비율만으로는 사우디의 실제 소비를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 한 계정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고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환경에서는 작품별 재생 계정 수와 실제 시청 인원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의 연령과 취향에 따라 같은 계정에서 로맨스, 범죄물, 예능, 키즈 콘텐츠가 연속해서 소비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 콘텐츠 기업과 플랫폼은 첫 주 순위와 이용 경험률에 더해 후속 작품 재생, 가족 계정 내 장르 이동, 완주율, 재시청, 연관 콘텐츠 선택을 함께 살펴야 한다. 한국 드라마 한 편을 본 이용자가 다른 한국 작품으로 이동했는지, 배우와 원작·음악까지 소비를 넓혔는지가 시장의 지속성을 가르는 지표가 된다.
사우디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이용 경험률이 80%를 넘어선 것은 디지털 접근성과 현지 플랫폼 편성, 가족 공동 시청 문화가 함께 만든 결과다. 로맨스와 가족 서사에서 형성된 친숙도는 스릴러와 메디컬, 액션, 범죄물로 이어졌다. 샤히드의 한국 드라마 편성 확대와 넷플릭스 장르물의 순위 유지, 한 작품 이후의 후속 시청률이 사우디 한국 영상 콘텐츠 시장의 다음 흐름을 보여줄 지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