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K-콘텐츠⑤] 한국 게임 65.7%·웹툰 호감도 85.8%, IP 확장의 다음 시장
모바일·e스포츠로 넓어진 게임, 아랍어 플랫폼 계약으로 시작된 웹툰…드라마·K-팝 이후 달라진 소비 경로
[KtN 전성진기자]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 게임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는 65.7%다. 이용 경험자의 호감도는 79.9%로 집계됐다. 웹툰 이용 경험률은 31.0%에 머물렀지만 경험자 호감도는 85.8%로 조사 대상 한국 콘텐츠 가운데 가장 높았다. 게임은 이미 넓은 이용층을 확보한 장르이고, 웹툰은 이용자 규모보다 만족도가 앞선 초기 시장에 가깝다.
두 장르는 한국 드라마와 K-팝을 소비하는 방식과도 차이가 난다. 한국 게임 이용자는 제작 국가보다 게임 지식재산권과 장르, 실제 이용 경험을 중심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성향이 강하다. 한국산이라는 표시만으로 이용자가 움직이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게임명, 플레이 방식, 다른 이용자의 평가, 대회 노출이 선택에 직접 영향을 준다.
연령별로는 20대의 한국 게임 이용 경험률이 70.6%로 가장 높았다. 남성 이용 경험률은 69.7%, 여성은 58.3%로 나타났다. K-팝 팬덤이 10∼30대 여성까지 폭넓게 형성된 시장이라면 한국 게임은 젊은 남성 이용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구조다. 같은 K-콘텐츠라도 이용자를 만나는 플랫폼과 소비 시간이 다르게 형성돼 있다.
게임 플랫폼 이용에서도 모바일 비중이 두드러진다.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게임 비율은 22.1%,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은 21.8%로 집계됐다. 엑스박스(Xbox)는 3.9%, PC는 2.9%, 닌텐도 스위치(Nintendo Switch)는 0.8%였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바로 접속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이 한국 기업의 가장 넓은 유통 경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수치다.
모바일 게임은 통신망과 앱마켓만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사우디가 대규모 국제 대회와 국가 리그를 운영하면서 게임 이용과 경기 관람, 팬 활동이 함께 커졌다. e스포츠 월드컵(Esports World Cup·EWC)에서는 ‘배틀그라운드(PUBG: BATTLEGROUNDS)’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PUBG MOBILE)’이 공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 게임 지식재산권이 PC와 모바일 양쪽에서 선수와 관람객, 온라인 시청자에게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구조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은 2025년 사우디 e스포츠연맹과의 협약을 거쳐 국가 챔피언십인 사우디 e스포츠리그(Saudi eLeague·SEL)에 편입됐다. 리그 우승팀은 e스포츠 월드컵으로 이동한다. 일반 이용자가 모바일에서 게임을 시작하고, 국내 리그와 국제 대회를 거쳐 프로 선수와 팀을 응원하는 소비 경로가 마련된 것이다.
국제 대회 출전과 국가 리그 편입은 앱 다운로드와 다른 방식으로 게임 수명을 늘린다. 정기적인 경기가 열리면 신규 이용자 유입뿐 아니라 기존 이용자의 복귀, 경기 영상 시청, 팀과 선수 관련 상품 소비가 함께 발생할 수 있다. 게임 업데이트와 시즌 운영도 대회 일정에 맞춰 반복되면서 일회성 흥행보다 긴 서비스 기간을 확보할 수 있다.
아랍어 지원은 모바일 게임의 이용 기간을 좌우한다. ‘검은사막 모바일(Black Desert Mobile)’을 비롯한 한국 모바일 게임은 아랍어 서비스와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중동 이용자의 접근성을 넓혔다. 메뉴와 튜토리얼만 번역하는 수준보다 신규 콘텐츠, 고객 지원, 공지, 결제 정보까지 같은 언어로 제공해야 장기 이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게임과 K-팝의 결합도 사우디 시장에서 소비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활용됐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은 블랙핑크(BLACKPINK), 베이비몬스터(BABYMONSTER)와 협업해 게임 안에 테마 콘텐츠와 가상 공연, 전용 아이템을 제공했다. K-팝 팬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의상과 음악, 공연을 보기 위해 게임에 접속하고, 기존 게임 이용자는 새로운 음악과 아티스트를 접한다.
가상 공연과 전용 아이템은 광고 영상과 성격이 다르다. 이용자가 게임 안에서 직접 참여하고 아이템을 구매하며 한정된 기간 동안 반복 접속한다. 아티스트의 이미지가 게임 배경과 캐릭터, 음악, 보상 체계에 들어가면서 협업 자체가 플레이 콘텐츠가 된다. 음악 감상과 게임 이용을 별도 시장으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지식재산권 소비 안에 배치한 방식이다.
게임의 이용 경험률이 넓은 시장을 나타낸다면 웹툰의 85.8% 호감도는 아직 만나지 못한 이용자가 많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웹툰 이용 경험률 31.0%는 조사 대상 한국 콘텐츠 가운데 가장 낮았다. 작품을 접한 이용자의 평가가 높았다는 점에서 아랍어 유통과 작품 노출이 늘어날수록 소비층이 확대될 여지가 남아 있다.
사우디 앱마켓에서는 한국계 웹툰 플랫폼이 이미 상위권에 진입했다. 구글플레이 코믹스 무료 앱 순위에서는 웹툰(WEBTOON)과 리디(RIDI)가 1∼3위를 유지했다. 앱 매출 순위에서는 네이버웹툰(NAVER WEBTOON)이 1위, 글로벌 서비스 웹툰이 2위, 리디가 3위, 태피툰(Tappytoon)이 6위, 레진(Lezhin)이 10위에 올랐다. 이용 경험률은 낮지만 플랫폼 경쟁에서는 한국 기업의 존재감이 먼저 형성된 셈이다.
앱 순위만으로 작품별 소비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하나의 플랫폼 안에는 한국 작품과 다른 국가의 만화, 웹소설, 전자책이 함께 들어간다. 실제 시장 규모는 한국 웹툰의 열람 횟수와 완독률, 유료 회차 구매, 구독 유지, 아랍어 작품 수에서 확인된다. 플랫폼 설치가 한국 작품의 장기 소비로 이어지는지를 작품 단위로 나눠 볼 필요가 있다.
현지 미디어 기업과의 계약은 아랍어 유통을 넓히는 또 다른 통로다. 사우디 미디어그룹 SRMG 계열사인 망가아라비아(Manga Arabia)는 2025년 4월 키다리스튜디오·V-브로스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메디컬 리턴’, ‘플랜츠 휴먼’ 등 한국 웹툰의 아랍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 플랫폼이 직접 이용자를 확보하는 방식과 현지 플랫폼에 작품을 공급하는 방식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현지 플랫폼은 언어 번역뿐 아니라 결제 방식과 작품 편성, 연령 분류, 이용자 홍보에서 역할을 맡는다. 아랍어 작품명과 소개문, 세로 읽기 방식, 회차 공개 일정이 사우디 이용자의 사용 환경에 맞춰지면 검색과 첫 회차 진입이 쉬워진다. 한국 제작사는 직접 플랫폼을 운영하는 비용을 줄이면서 기존 지역 이용자에게 작품을 노출할 수 있다.
플랫폼 경쟁도 세분화되고 있다. 창작자 확보부터 제작·유통·수익화를 직접 운영하는 수직 통합형 플랫폼, 외부 작품의 라이선스를 확보해 공급하는 콘텐츠 집적형 플랫폼, 특정 장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전문 플랫폼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용자를 확보한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웹툰(Kakao Webtoon)은 제작과 유통을 하나의 체계로 묶은 수직 통합형 사업자로 분류됐다.
애니메이션은 웹툰과 게임 사이에서 한국 지식재산권의 접점을 넓힌다. 한국 애니메이션 이용 경험률은 51.2%, 경험자 호감도는 77.9%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높은 인지도와 팬덤을 확보한 사우디 시장에서 한국 기업은 같은 장르를 정면으로 따라가기보다 키즈·가족 콘텐츠와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영역을 넓혔다.
‘핑크퐁’, ‘뽀로로’, ‘타요’는 가족 단위 이용자를 중심으로 알려졌다. 핑크퐁컴퍼니(The Pinkfong Company)는 사우디 투자부와 협력하고 복스시네마(VOX Cinemas)를 통해 콘텐츠를 상영하며 온라인 영상에서 극장과 현지 사업으로 접점을 넓혔다. 키즈 콘텐츠는 가족이 함께 소비하고 캐릭터 상품과 공연, 교육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어 단일 영상보다 사업 범위가 넓다.
‘외모지상주의(Lookism)’, ‘신의 탑(Tower of God)’, ‘나 혼자만 레벨업(Solo Leveling)’ 등 한국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은 넷플릭스와 크런치롤(Crunchyroll)을 통해 유통됐다. 키즈 콘텐츠 중심이던 한국 애니메이션의 소비층이 청소년과 성인 장르 이용자로 넓어질 수 있는 경로다. 웹툰을 먼저 읽지 않은 이용자도 애니메이션을 통해 작품을 접하고, 이후 원작과 게임, 상품으로 이동할 수 있다.
사우디에서 게임과 웹툰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도 소비 이동에 있다. 드라마와 K-팝은 한국 콘텐츠에 대한 첫 관심을 만드는 장르다. 게임과 웹툰은 이용자가 작품 세계 안에 더 오래 머물고, 아이템과 회차, 캐릭터, 애니메이션, 상품으로 소비를 넓힐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인기 드라마의 원작 웹툰을 제공하거나 K-팝 아티스트를 게임 안에 배치하면 장르별 이용자를 서로 이동시킬 수 있다.
지식재산권 확장은 작품을 여러 형태로 반복 판매한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드라마 시청자는 원작 웹툰과 OST를 찾고, 웹툰 독자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이용하며, K-팝 팬은 협업 아이템과 가상 공연을 소비한다. 같은 작품이나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서로 다른 플랫폼의 이용 시간을 늘리는 방식이다.
한국 게임의 성과는 다운로드 수보다 월간 이용자와 복귀율, 아랍어 서비스 유지, 인게임 결제, 리그 참여에서 확인된다. 웹툰은 앱 순위보다 한국 작품의 유료 전환율과 완독률, 후속 작품 선택, 현지 라이선스 계약이 중요하다. 애니메이션은 극장 상영과 스트리밍 이후 캐릭터 상품, 공연, 원작 소비로 이동한 규모가 사업성을 가른다.
2025년 사우디 e스포츠리그에 편입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망가아라비아가 시작한 한국 웹툰 아랍어 서비스는 게임과 웹툰이 현지 유통망 안으로 들어간 출발선이다. 추가 작품 계약과 아랍어 업데이트, 공동 제작, 프로리그 운영, 웹툰 원작 영상화가 이어지는 속도에 따라 드라마와 K-팝 이후의 소비가 장기적인 지식재산권 사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