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중위소득 6.7% 인상, 빈곤층보다 재정 여건 앞세운 복지 기준선
‘역대 최대’ 내세웠지만 실제 소득과의 격차 해소 방안 빠져…생계급여 32% 유지하고 수급당사자는 결정 과정에서 배제
[KtN 김 규운기자]2027년 1인 가구의 생계급여 선정기준은 월 87만5533원이다. 소득인정액이 기준을 넘으면 원칙적으로 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다. 4인 가구 기준은 월 221만7563원이다. 정부는 기준중위소득을 6.7% 올려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을 적용했다고 발표했지만,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는 소득선은 기준중위소득의 32%에 그대로 묶었다. 빈곤층의 생활을 어디까지 국가가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미뤄둔 채 전년도보다 얼마나 올렸는지만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7월 28일 2027년도 4인 가구 기준중위소득을 월 692만9885원으로 결정했다. 2026년 649만4738원보다 43만5147원 오른 금액이다. 1인 가구 기준중위소득은 월 256만4238원에서 273만6042원으로 올라간다. 정부는 빈곤 심화와 소득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기준중위소득 인상으로 기존 수급자가 받는 급여액은 늘어난다. 1인 가구 생계급여 최대액은 약 5만5000원, 4인 가구는 약 14만원 인상된다. 기준중위소득을 활용하는 긴급복지와 아이돌봄서비스, 국민취업지원제도, 청년월세 지원 등 15개 중앙부처 80개 복지사업의 지원 범위도 일부 확대될 수 있다. 인상 자체가 저소득층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조치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6.7%라는 숫자만으로 이번 결정을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준중위소득의 출발점이 실제 가구소득 수준보다 낮기 때문이다. 기준중위소득은 국민 가구소득의 중간값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통계청이 조사한 소득 중간값을 그대로 사용하는 수치는 아니다. 전년도에 행정적으로 결정한 기준중위소득에 소득증가율과 보정률을 적용해 다음 연도 금액을 정한다. 전년도 금액이 현실보다 낮게 정해지면 낮은 기준이 이듬해 산정에도 이어진다.
참여연대가 제시한 수치로는 기준중위소득과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의 격차가 2018년 12.49%에서 2023년 29.62%로 커졌다. 금액으로는 약 56만원이던 차이가 약 160만원으로 벌어졌다. 기준중위소득을 매년 올렸지만 사회 전체의 소득 변화보다 뒤처지면서 행정상 복지 기준선의 상대적 수준은 오히려 낮아졌다는 의미다.
소득이 없거나 최저생활비에 미치지 못하는 시민에게 기준중위소득은 추상적인 통계가 아니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월세와 교육비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지를 가르는 문턱이다. 실제 소득 중간값보다 낮은 기준을 유지하면 지원이 필요한데도 기준을 조금 넘었다는 이유로 제도 밖에 남는 가구가 늘어난다. 기준중위소득을 낮게 정할수록 정부가 부담해야 할 복지 지출은 줄지만, 줄어든 지출만큼 빈곤의 위험은 개인과 가족에게 넘어간다.
정부도 기준중위소득과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 사이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2021년부터 2026년까지는 통계 변경 과정에서 드러난 격차를 줄이기 위해 ‘추가증가율’을 적용했다. 전년도 기준중위소득에 최근 3년간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 증가율을 반영한 뒤 별도의 증가율을 더하는 방식이었다. 정부는 추가증가율을 6년 동안 한시적으로 적용하면 통계 간 격차를 일정 부분 보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정기간이 끝난 2026년에도 격차는 해소되지 않았다. 참여연대는 6년 동안 기본증가율이 원칙대로 적용된 해가 2023년뿐이며, 나머지 연도에는 매번 다른 기준으로 증가율이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2021년에는 1%, 2022년에는 최근 3년 소득증가율의 70%, 2024년에는 80%만 반영했고, 2025년과 2026년에는 소득증가율 대신 최근 3년 물가상승률 평균을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격차 해소를 위해 추가증가율을 적용하면서 기본증가율을 낮추는 결정이 반복돼 보정 효과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2027년부터 적용할 새 산정방식에는 격차를 줄일 별도 증가율이 없다. 정부는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의 최근 3년 평균증가율을 기본으로 적용하되 소비자물가지수와 실질경제성장률 등 최근 경제지표를 반영해 증가율을 보정할 수 있도록 했다. 상대빈곤 수준과 기초생활보장급여의 적정성, 국가 재정 여건을 고려해 최종 증가율을 다시 조정하는 절차도 넣었다. 새 방식은 3년 동안 적용한 뒤 평가한다.
물가와 성장률을 활용하면 과거 소득통계가 현재 생활비 변화를 뒤늦게 반영하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소득조사 결과가 낮더라도 물가가 크게 올랐다면 기준중위소득을 더 높일 근거가 생긴다. 정부가 새 산정방식의 장점으로 내세운 부분이다.
산정방식의 다른 한쪽에는 정부의 재량이 넓어질 위험이 놓여 있다. 소비자물가와 경제성장률을 각각 어느 비율로 반영할지, 지표가 엇갈릴 때 어떤 수치를 우선할지, 증가율을 어느 범위까지 조정할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상대빈곤 완화와 급여 적정성뿐 아니라 국가 재정 여건까지 조정 요인에 포함됐지만, 요인별 적용 순서와 비중도 정해지지 않았다.
기준중위소득은 국가가 빈곤층에게 어느 정도의 생활을 보장할 것인지 정하는 기준이다. 정부가 확보한 예산에 맞춰 복지 대상과 급여 수준을 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 먼저 최저생활에 필요한 기준을 정하고 그 수준을 보장할 재정을 마련하는 것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순서다. 재정 여건을 기준선 결정 단계에 넣으면 복지 대상자의 생활보다 정부의 지출 관리가 앞설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는 ‘제도의 보장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지속가능성이 재정 통제를 뜻하고 보장성이 수급자의 생존을 뜻한다면 두 가치는 같은 무게로 다룰 수 없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민에게 최소한의 생계와 의료, 주거와 교육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최저생활 보장을 정부 재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조정하면 제도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다. 정부는 최종 결정에 앞선 제79차 회의에서도 보장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담보하는 산정방식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생계급여 선정기준을 기준중위소득의 32%로 유지한 결정에서도 같은 문제가 드러난다. 정부는 빈곤 심화와 ‘K자형 양극화’를 6.7% 인상의 근거로 들었지만 생계급여 32%, 의료급여 40%, 주거급여 48%, 교육급여 50%라는 선정 비율은 모두 2026년과 같게 정했다. 기준중위소득 상승에 따른 자연 증가분만 반영했을 뿐, 빈곤층을 제도 안으로 더 넓게 끌어들이는 구조적인 조정은 하지 않았다.
생계급여 선정기준을 32%에서 35%로 높이면 현재 수급 기준을 조금 넘는 비수급 빈곤층이 제도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는 2030년까지 생계급여 선정기준을 35%로 단계적으로 상향한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2027년 기준은 32%에 머물렀다. 빈곤 심화를 강조하면서 지원 대상 확대는 뒤로 미룬 결정이다.
부양의무자 기준도 남아 있다. 교육급여와 주거급여에서는 폐지됐지만 생계급여에는 고소득·고재산 부양의무자에 대한 기준이 적용되고, 의료급여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이 유지된다. 가족관계가 단절됐거나 실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시민도 가족의 소득과 재산 때문에 지원에서 제외될 수 있다. 정부는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과 의료급여 기준 간소화를 국정과제로 제시했지만, 완전 폐지의 구체적인 일정은 내놓지 않았다.
정부가 정책 대상으로 내세운 빈곤층은 결정 과정에서도 자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기준중위소득과 소득인정액 산정방식, 급여별 선정기준과 최저보장수준을 심의·의결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으며 전문가와 공익대표, 관계부처 공무원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법률에는 기초생활보장 수급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별도 조항이 없다. 급여를 받는 시민의 생활을 결정하는 회의에 당사자 몫은 없는 구조다.
회의자료와 회의록, 속기록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 운영 방식도 결정의 책임성을 약화시킨다. 주요 발언을 정리한 자료만으로는 누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격차 해소 방안을 두고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정부위원과 위촉위원의 의견이 어떻게 갈렸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기준중위소득이 80개 복지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결정 근거와 계산 과정은 행정 내부의 검토자료가 아니라 시민이 검증할 수 있는 공적 정보로 다뤄져야 한다.
참여연대는 최종 결정 전에 산정안과 근거자료를 공개하고 시민 의견을 받는 ‘결정예고제’를 요구했다. 현재 기준중위소득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매년 8월 1일까지 공표된다. 정부안이 공개된 뒤 수급당사자와 시민사회가 의견을 제출하고 산식의 적정성을 검토할 공식 절차는 마련돼 있지 않다.
정책의 수혜자가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면 기준은 행정과 재정의 언어로 기울기 쉽다. 회의에 수급당사자가 참여하고 산정 근거와 회의록을 공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활비와 의료비, 주거비를 감당해야 하는 당사자의 경험이 들어오지 않는 회의에서 ‘급여의 적정성’은 숫자상 증가액으로만 평가될 수 있다.
2027년도 기준중위소득 인상은 기존 수급자의 급여를 높이고 일부 복지사업의 지원 범위를 넓힌다는 점에서 필요한 조치다. 6.7% 인상이 실제 소득과 벌어진 격차를 줄였는지, 생계급여에서 탈락한 비수급 빈곤층을 얼마나 제도 안으로 끌어들였는지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 정부 발표에는 격차 해소 목표연도와 연도별 보정 규모, 생계급여 35% 상향 일정,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시점이 빠져 있다.
기준중위소득은 정부 예산에 맞춰 빈곤층의 범위를 정하는 숫자가 아니다. 빈곤층의 생활을 기준으로 정부가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적 기준선이다. 6.7%라는 ‘역대 최대’ 기록보다 중요한 수치는 복지급여를 필요로 하는 시민 가운데 몇 명이 여전히 제도 밖에 남는가에 있다. 정부가 올해 하반기 내놓을 제4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는 실제 소득과 기준중위소득의 격차를 줄일 연도별 계획과 생계급여 선정기준 상향 일정,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방안이 구체적인 수치와 시한으로 담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