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산업, 권력의 이동②] 흥행 뒤에도 남는 팬덤 매출

팬은 비팬보다 하루 51분 더 소비, SVOD 월 71달러…공개일 중심 마케팅에서 연중 관계형 수익으로

2026-07-30     최기형 기자
미디어 산업, 권력의 이동.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팬은 비팬보다 하루 평균 51분을 더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에 쓴다. 구독형 주문형 비디오(SVOD) 이용률은 팬이 92%, 비팬이 77%였다. SVOD를 이용하는 팬은 평균 4개 서비스에 매달 71달러를 지출했지만 비팬은 평균 3개 서비스에 56달러를 사용했다. 작품 한 편의 관객 수를 넘어 팬이 머무는 시간과 반복 지출을 따로 봐야 하는 이유가 수치로 드러난다.

딜로이트 인사이트가 2026년 발간한 ‘글로벌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 동향 및 트렌드’에 인용된 조사는 미국 소비자 357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응답자의 약 80%는 TV 프로그램과 영화, 게임, 스포츠, 음악 가운데 하나 이상의 분야에서 스스로를 팬이라고 인식했다. 관객이 특정 작품을 시청한 소비자라면 팬은 IP와 아티스트, 팀, 프랜차이즈를 오랜 기간 따라가는 소비자다.

영화 산업은 개봉일, 방송과 스트리밍은 시즌 시작과 신작 공개일, 게임은 출시일, 스포츠는 주요 경기 일정에 맞춰 마케팅과 수익화를 집중해 왔다. 팬의 소비는 공식 일정과 일치하지 않는다. 신작이 없는 기간에도 과거 콘텐츠를 다시 보고, 출연자와 선수의 소식을 찾고, 팟캐스트와 크리에이터 영상을 소비하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른 팬과 관계를 이어간다.

작품 공개 직후의 조회수와 관객 수는 흥행의 크기를 나타내지만 관계의 길이까지 설명하지 못한다. 팬덤 매출은 첫 시청 이후 발생한다. 추가 구독과 재시청, 음악 이용, 게임 결제, 상품 구매, 공연과 행사 참여가 서로 다른 시간과 플랫폼에 걸쳐 이어진다. 미디어 기업이 작품 공개 기간의 성과만 집계하면 팬이 만들어내는 장기 수익의 상당 부분은 평가에서 빠질 수 있다.

팬과 비팬의 소비 차이는 영상에만 머물지 않았다. 팬 가운데 게이머 비율은 75%로 비팬의 52%보다 높았다. 유료 게임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도 팬 39%, 비팬 11%로 차이가 컸다. 유료 음악 스트리밍 구독률은 팬이 67%, 비팬이 40%였다. 하나의 팬덤이 영상과 음악, 게임, 상품으로 넓어질 수 있는 소비 기반을 갖췄다는 의미다.

팬은 상대적으로 젊고 관심 분야도 넓었다. 조사에서 팬의 평균 연령은 44세, 비팬은 58세였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팬은 조사 대상 9개 분야 가운데 평균 4개 팬덤에 속한다고 응답했다. 고연령층은 평균 3개였다. 젊은 팬을 하나의 작품이나 장르에만 묶인 소비자로 가정하기 어려운 결과다. 음악 팬이 영화와 게임을 함께 소비하고, 스포츠 팬이 선수 개인과 크리에이터 콘텐츠까지 따라가는 중첩 구조가 형성된다.

팬의 55%는 특정 프로그램이나 아티스트, 프랜차이즈의 팬이 되는 경험이 스트리밍과 TV, 소셜미디어, 상품, 라이브 행사 등 여러 영역의 참여로 이어진다고 답했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비율이 약 70%까지 높아졌다. 팬덤을 하나의 작품에 대한 선호가 아니라 여러 채널을 이동하는 소비 여정으로 봐야 하는 근거다.

크리에이터와 온라인 커뮤니티도 팬의 소비를 이어주는 역할을 맡는다. 팬의 46%는 크리에이터를 통해 팬덤 관련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찾았고, 같은 비율이 팬 커뮤니티에서 추천된 콘텐츠에 더 높은 참여 의향을 나타냈다. 팬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는 평균 6개로 비팬의 평균 4개보다 많았다. 팬 활동이 공식 플랫폼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규 시즌과 영화 개봉이 끝나면 공식 콘텐츠 제공자의 영향력은 약해질 수 있다. 팬은 연결과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외부 플랫폼으로 이동한다. 전체 팬의 약 절반은 소셜미디어를 연중 팬 활동의 주요 수단으로 이용했고, 36%는 신작이 없는 기간에 팬 제작물이나 관련 팟캐스트를 찾는다고 응답했다. 공식 IP가 쉬는 동안 팬의 관심까지 멈추는 것은 아니다. 관심과 활동을 담는 공간만 달라진다.

외부 플랫폼으로 이동한 팬을 신작 공개 때마다 다시 불러들이려면 마케팅 비용이 반복해서 발생한다. 이미 작품과 프랜차이즈를 알고 있는 소비자에게 새 예고편과 광고를 노출하고, 관심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 예산을 투입하는 구조다. 작품 공개가 끝난 뒤 팬과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콘텐츠 제공자는 다음 공개 때마다 흥행의 출발선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팬덤 중심 사업은 공개일 사이의 공백을 수익 기간으로 전환한다. 작품 제작이 멈춘 기간에도 인터뷰와 비하인드 콘텐츠, 팟캐스트, 뉴스레터, 커뮤니티 프로그램, 멤버십을 운영할 수 있다. 영상·음악·게임·공연을 연결한 콘텐츠는 팬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다음 작품이 나올 때까지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

모든 팬 활동이 곧바로 기업 매출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팬이 소셜미디어에서 콘텐츠를 보고 광고 수익은 플랫폼이 가져가며, 상품은 별도 판매자가 유통하고, 공연 티켓은 다른 사업자가 판매할 수 있다. 콘텐츠 제작사는 팬덤을 만들었더라도 실제 소비 경로와 결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팬덤의 경제적 가치를 계산하려면 작품별 관객 수와 조회수 외에 반복 소비를 측정해야 한다. 신작이 없는 기간의 서비스 방문률, 과거 콘텐츠 재생량, 유료 구독 유지기간, 관련 상품 구매, 공연과 행사 참여, 다른 작품으로의 이동이 포함된다. 공개 첫 주의 폭발적인 수치보다 6개월과 1년에 걸쳐 남은 소비를 집계해야 팬의 고객 생애가치를 구분할 수 있다.

상품 소비도 팬덤의 장기 수익을 뒷받침한다. 조사 대상 팬의 30%는 최근 6개월 동안 자신이 속한 팬덤과 관련된 상품을 구입했다. 선호하는 IP의 콘텐츠와 경험을 한 공간에서 이용하기 원하는 팬 가운데 상품 구매 비율은 37%로 높아졌다. 독점 콘텐츠와 제품, 서비스, 체험을 결합한 멤버십이나 구독 상품이 등장할 수 있는 소비 기반이다.

팬을 높은 지출 능력을 가진 집단으로만 취급하면 관계형 사업은 오래가기 어렵다. 팬 활동을 지속시키는 동력은 할인과 상품 판매뿐 아니라 새로운 정보와 창작물, 다른 팬과의 교류, IP에 대한 접근성에서 나온다. 유료 상품만 늘리고 콘텐츠 제공을 줄이면 충성도 높은 소비자에게 비용을 반복해서 요구하는 구조로 변할 수 있다.

팬 커뮤니티의 자발성도 기업이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자산은 아니다. 기업이 팬의 대화와 2차 창작을 지나치게 통제하면 활동이 다른 공간으로 옮겨갈 수 있다. 반대로 권리와 수익 배분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팬과 크리에이터의 제작물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면 IP 보유자와 참여자 사이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국내 시장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서비스 가격과 구독 구조, 팬 플랫폼 이용 방식, 상품과 공연 소비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팬과 비팬의 구독 수, 월평균 지출, 공개 공백기의 이용률, IP별 재구매율을 분리해 집계해야 팬덤 사업의 실제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작품 공개일에 집중된 흥행 경쟁은 계속된다. 첫 주 성적은 후속 투자와 편성, 유통 범위를 정하는 중요한 근거다. 다만 공개 기간이 끝난 뒤에도 팬이 남아 과거 콘텐츠를 다시 보고,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며, 구독과 상품·공연 소비를 이어간다면 작품의 경제적 수명은 최초 흥행 기간보다 길어진다.

콘텐츠 제공자가 공개 공백기의 팬 활동을 얼마나 유지하고 실제 매출과 다음 작품의 흥행으로 연결하는지가 투자수익률을 가를 가능성이 커졌다. 관객 수를 모으는 사업에서 팬과 연중 관계를 유지하는 사업으로의 이동은 작품 한 편의 성공보다 IP가 소비되는 전체 기간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