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산업, 권력의 이동④] OTT·커머스·공연을 잇는 팬 플랫폼

팬 40%, 좋아하는 IP 콘텐츠 한곳에서 이용 희망…회원 관계·결제 정보와 수익 배분 둘러싼 플랫폼 경쟁

2026-08-01     최기형 기자
미디어 산업, 권력의 이동.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드라마를 본 이용자가 출연자 인터뷰와 비하인드 영상을 찾고, 팬 커뮤니티에서 감상을 나눈 뒤 관련 상품을 구매한다. 공연과 팝업스토어가 열리면 다시 예매 플랫폼으로 이동한다. 하나의 지식재산(IP)에서 출발한 소비지만 영상 시청과 대화, 상품 구매, 현장 참여는 서로 다른 서비스에서 이뤄진다.

콘텐츠를 만든 기업이 팬의 이동 경로를 모두 파악하는 것도 아니다. OTT는 본편 시청 기록을 갖고, 소셜 플랫폼은 댓글과 공유를 확인하며, 커머스 사업자는 상품 구매 내역을 보유한다. 공연기획사와 예매 업체에는 티켓 구매 정보가 남는다. 팬덤이 여러 산업의 매출을 만들지만 팬과 장기적인 회원 관계를 확보하는 기업은 따로 존재할 수 있다.

딜로이트 인사이트의 ‘글로벌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 동향 및 트렌드’에 인용된 조사에서 팬의 40%는 선호하는 IP와 관련된 콘텐츠를 한 공간에서 이용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각각 49%로 높아졌다. X세대는 38%, 베이비붐 세대는 25%, 노년층은 14%였다. 팬 플랫폼에 대한 수요가 젊은 이용자층에서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결과다.

팬 플랫폼은 영상과 상품을 한 애플리케이션에 진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본편 시청과 크리에이터 콘텐츠, 팟캐스트, 커뮤니티, 게임, 상품 구매, 공연 참여를 하나의 IP를 중심으로 연결하는 구조에 가깝다. 팬이 여러 서비스에 다시 로그인하고 작품명과 출연자를 반복해서 검색해야 했던 불편을 줄이면서 콘텐츠 공개가 끝난 뒤에도 소비를 이어가게 한다.

모든 기능을 한 기업이 직접 운영할 필요는 없다. OTT가 영상을 제공하고 외부 사업자가 커머스와 티켓 예매를 맡더라도 회원 인증과 이동 경로, 구매 전환을 연결할 수 있다. 서비스 소유권보다 팬이 어느 콘텐츠에서 출발해 무엇을 소비했는지 확인하고 각 사업자의 역할을 조정하는 역량이 중요해진다. 보고서도 소셜피드와 팟캐스트, 커머스, 크리에이터 영상, 인터랙티브 게임을 핵심 IP와 결합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통합된 팬 경험은 작품 공개 이후의 공백을 줄인다. 새 회차나 후속 영화가 없더라도 과거 영상과 제작 자료, 출연자 콘텐츠, 팬 토론, 상품과 행사가 남는다. 공개일에 집중됐던 이용자 방문을 연중 소비로 분산하고, 다음 작품이 나올 때까지 구독 관계를 유지할 여지도 생긴다.

수익화 경로도 넓어진다. 조사 대상 팬의 30%는 최근 6개월 동안 팬덤 관련 상품을 구매했다고 답했다. 선호하는 IP의 콘텐츠를 한 공간에서 이용하기 원하는 팬 가운데 상품 구매 경험이 있는 비율은 37%였다. 콘텐츠 통합을 선호하는 집단에서 상품 소비도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셈이다.

영상 구독료만으로 팬의 전체 지출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업자에게 상품과 공연은 추가 매출원이 된다. 스트리밍 서비스 안에서 작품을 본 직후 관련 음원과 상품, 티켓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검색과 재로그인 과정에서 발생하던 이탈을 줄일 수 있다. 작품과 상품 사이의 거리가 짧아질수록 충동구매뿐 아니라 계획된 소비도 플랫폼 안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독점 영상과 상품, 공연 선예매, 커뮤니티 혜택을 묶은 ‘팬 번들’도 가능하다. 하나의 월정액 상품에 본편과 부가 영상, 디지털 멤버십, 할인권을 넣거나 작품별 패키지를 별도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영상만 제공하는 구독 서비스보다 가격을 높일 수 있고, 여러 사업자가 참여하는 제휴 상품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가격을 높이는 것만으로 번들의 가치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팬이 이미 가입한 OTT와 음악 서비스, 커뮤니티에 다시 비용을 내야 한다면 중복 구독 부담이 커진다. 상품 할인과 독점 영상의 가치가 월 이용료에 미치지 못하면 팬 번들은 콘텐츠를 여러 묶음으로 재판매하는 구조에 머물 수 있다.

팬 플랫폼 경쟁에서 더 중요한 자산은 결제가 발생한 순간보다 회원 관계가 유지되는 기간이다. 팬이 어떤 작품을 보고, 어느 인물을 따라가며, 어떤 상품과 행사에 비용을 쓰는지 파악한 사업자는 다음 콘텐츠와 상품을 직접 제안할 수 있다. IP 보유자보다 플랫폼이 팬의 로그인과 결제 정보를 독점하면 콘텐츠를 만든 기업이 이용자에게 다시 접근할 때 플랫폼에 의존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

제작사와 연예기획사, 스포츠 구단이 자체 팬 서비스를 만들려는 유인도 같은 지점에서 발생한다. 외부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원과 직접 관계를 맺으면 구독료와 상품 매출뿐 아니라 다음 작품과 공연의 수요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반대로 팬 기반이 충분하지 않은 IP가 독립 서비스를 운영하면 개발비와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대형 플랫폼은 여러 IP를 한곳에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용자는 작품마다 다른 앱을 설치할 필요가 없고, 플랫폼은 한 작품에서 확보한 회원을 다른 콘텐츠로 이동시킬 수 있다. 다만 플랫폼 안에서 개별 IP의 정체성이 약해지거나, 추천 알고리즘이 소수 인기 작품에 노출을 집중할 경우 중소 제작사와 신인 창작자의 접근성은 낮아질 수 있다.

커뮤니티 기능은 체류시간을 늘리는 동시에 관리 부담을 키운다. 팬의 대화와 2차 창작이 활발하면 공개 공백기에도 서비스 이용이 이어진다. 악성 게시물과 팬 집단 간 충돌, 출연자와 창작자에 대한 사생활 침해가 발생하면 운영 기준과 인력도 필요하다. 게시물 삭제와 계정 제한 기준이 불투명할 경우 팬의 자발적인 활동이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 있다.

팬이 만든 영상과 이미지, 해설을 상업 서비스 안에 포함할 때는 권리와 보상 기준도 뒤따른다. IP 보유자는 캐릭터와 음악, 영상의 이용 범위를 정해야 하고, 크리에이터가 만든 콘텐츠가 신규 회원과 상품 구매를 불러왔을 때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도 결정해야 한다. 팬 활동을 무료 마케팅 자원으로만 활용하면 플랫폼 성장과 참여자 보상 사이의 간극이 커진다.

상품과 공연까지 연결하면 정산 구조는 더 복잡해진다. 제작사와 플랫폼, 상품 제조사, 유통사, 공연기획사, 예매 업체가 한 번의 결제에 참여할 수 있다. 환불과 배송, 공연 취소, 멤버십 해지에 대한 책임 주체도 명확해야 한다. 하나의 화면에서 판매하더라도 계약과 소비자 보호 책임까지 자동으로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IP 사용 권리의 이동을 추적할 수 있는 체계도 필요하다. 영상에서 사용한 음악과 캐릭터가 상품과 게임, 광고로 확장될 때 권리자별 사용 범위와 정산 비율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팬이 플랫폼을 이동해도 구매한 디지털 상품과 멤버십 혜택을 유지할 수 있는지도 서비스 경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통합 기능에 대한 선호를 전체 팬의 요구로 일반화해서도 안 된다. 조사에서 통합 공간을 원한 팬은 40%였다. 다수에 가까운 규모지만 과반은 아니다. 작품 시청과 커뮤니티 활동, 상품 구매를 각각 다른 서비스에서 이용하려는 팬도 남아 있다. 모든 기능을 기본 화면에 배치하면 영상만 보려는 이용자에게 커머스와 소셜 기능이 불필요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세대별 차이도 크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절반가량이 통합 경험을 원했지만 고연령층으로 갈수록 비율이 낮아졌다. 하나의 플랫폼 전략을 모든 연령과 장르에 동일하게 적용하기보다 커뮤니티와 쇼핑 기능을 선택적으로 켜고 끌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팬 플랫폼이 확보하는 행동 정보가 늘수록 개인정보 활용 범위도 넓어진다. 시청 기록과 댓글, 상품 구매, 공연 방문을 한 계정에 연결하면 팬의 취향과 소비 여력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맞춤 추천과 광고에는 도움이 되지만, 이용자가 예상한 범위를 넘어 정보가 결합되거나 제휴사에 전달될 가능성도 생긴다.

통합 플랫폼은 팬의 편의를 높이는 서비스이면서 IP와 소비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는 사업이다. 팬이 원하는 콘텐츠를 쉽게 찾고 여러 혜택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과 플랫폼이 이용자 관계를 독점할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 데이터 결합 동의와 제휴사 제공 범위, 회원 탈퇴 뒤 정보 처리 기준이 서비스 설계 단계부터 제시돼야 한다.

국내 팬 플랫폼의 경제성을 확인하려면 회원 수보다 유료 전환과 유지기간을 봐야 한다. 영상 시청자가 상품 구매자와 공연 관객으로 얼마나 이동했는지, 번들 가입자가 단일 서비스 이용자보다 오래 남았는지, 통합 이후 IP 보유자에게 돌아간 수익이 늘었는지가 직접적인 판단 기준이다.

공개된 자료만으로 국내 플랫폼별 전환율과 정산 비율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가입자 수와 거래액이 발표되더라도 작품별 매출, 반복 구매, 해지율, 제작사 배분액이 함께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팬 경험의 통합이 플랫폼 매출을 늘렸는지, IP 보유자의 수익까지 높였는지는 별도의 확인이 필요하다.

팬 플랫폼의 성패는 기능 수보다 관계와 권리의 배치에서 갈린다. 영상과 커뮤니티, 상품, 공연을 한곳에 모으더라도 팬에게 돌아가는 편의와 혜택이 약하면 또 하나의 판매 채널에 머문다. 회원 정보와 결제 권한을 가진 플랫폼, 콘텐츠를 만든 IP 보유자, 참여를 확장한 크리에이터 사이의 정산 기준이 마련돼야 연중 팬 소비가 장기적인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