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회의록이 드러낸 윤석열 정부의 인간론

‘국민 생명 책임’ 담화 뒤 ‘유흥·축제 사고’ 발언 진술…대통령·총리·장관, 희생자보다 국가 책임부터 살핀 첫 중대본 회의

2026-07-29     박준식 기자
윤석열, 언론사 단전·단수 이상민에 직접 지시… ‘비상계엄 지시 문건’ 드러나 사진=2025 02.03  MBC 영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2022년 10월 30일 오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이태원에서 벌어진 일을 “비극과 참사”라고 불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슬픔을 가누기 어렵다”며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를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약속했다.

대국민 담화가 끝난 뒤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첫 회의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은 윤 대통령이 “유흥이나 축제를 즐기러 이태원에 갔던 사람들이 몰려서 난 사고인데 참사 등 표현이 적절한가”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10·29이태원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진술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회의록에 남지 않았다. 회의록에 직접 기록된 내용이 아니라 참고인 진술로 확인된 만큼 정확한 표현과 발언 경위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공개 담화에서 시민은 국가가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민이었다. 정부 내부 회의에서는 유흥과 축제를 즐기러 갔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들로 다시 호명됐다. 짧은 시간 사이에 달라진 언어에는 당시 권력이 국민을 바라본 두 개의 시선이 담겼다.

국민이 추상적인 집단으로 호명될 때는 위로와 애도의 대상이었다. 국가가 구체적인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에는 행선지와 방문 목적을 설명해야 하는 개인이 됐다. 국가가 시민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보다 시민이 왜 이태원에 갔는지가 먼저 언급됐다.

축제를 즐기거나 번화가를 찾았다는 사실은 국가의 안전관리 의무를 줄이지 않는다. 출근길과 여가 공간, 일터와 공연장에 있는 시민의 생명은 같은 무게를 갖는다. 시민의 생활방식과 행선지를 기준으로 국가 보호의 범위를 달리하는 순간 생명과 안전은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조건부 보호로 바뀐다.

윤 대통령의 인식은 개인적인 말실수로 끝나지 않았다.

특조위가 확보한 회의록에는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가해자가 없는 이번 사고의 특성을 고려해 피해자·희생자 등을 사고 사망자·사상자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내용이 담겼다. 김의승 당시 서울시 행정1부시장도 사고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명칭을 ‘이태원 사고’로 변경하자고 건의했다.

이태원 참사, 대통령실 용산 이전 영향...정부, 참사 책임자 62명 징계 추진  사진=2025 10.23 유튜브 영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회의 참석자들의 진술에는 용어 변경의 배경이 더 직접적으로 담겼다. 이상민 장관은 ‘참사’와 ‘희생자’, ‘피해자’라는 말을 사용하면 국가 책임이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사고’와 ‘사망자·사상자’로 통일하는 편이 좋다는 취지로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에게 제안했다. 한 총리는 “좋은 의견”이라고 호응했고, 윤 대통령도 용어 변경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특조위 설명이다. 해당 발언들은 회의록에서 빠졌다.

대통령은 시민들이 이태원에 간 목적을 거론했다. 행안부 장관은 국가 책임 가능성을 살폈다. 국무총리는 장관의 제안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서울시 고위 간부도 같은 방향의 명칭 변경을 건의했다.

재난 대응의 최고 책임자들이 서로를 견제한 흔적보다 같은 인식을 확인하고 행정 방침으로 정리한 과정이 남았다. 대통령의 말과 장관의 제안, 총리의 동의가 한 방향으로 모였다. 권력 내부에 공감과 책임을 요구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첫 중대본 회의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각 기관의 대응 상황에 대한 보고는 있었지만 참석자들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논의한 안건은 용어 변경이 유일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참사 발생 12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구조 지휘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반복된 위험 신고가 왜 현장 통제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부상자와 유가족을 어떻게 지원할지를 놓고 토론한 기록보다 국가 책임과 연결될 수 있는 단어를 바꾸는 논의가 먼저 남았다.

정부의 공감 능력은 대국민 담화에서 얼마나 슬픈 표현을 사용했는지로 판단할 수 없다. 재난 직후 무엇을 먼저 논의하고 누구의 처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는지가 공감의 실체를 가른다.

국가 운영에서 공감은 감정의 표현보다 책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국가가 시민을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을 열어 놓고 원인을 조사하는 일, 피해자의 언어를 존중하는 일, 유가족에게 기록을 공개하는 일로 확인된다. 첫 중대본 회의에서 정부가 먼저 보호하려 한 대상은 시민보다 국가 자신에 가까웠다.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와 ‘피해자’를 ‘사망자’와 ‘사상자’로 바꾼 결정도 단순한 어휘 정리가 아니었다.

‘참사’는 다수의 죽음이 발생한 사회적 조건과 공적 책임을 함께 불러낸다. ‘사고’는 우발적으로 발생한 개별 사건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희생자’와 ‘피해자’는 침해된 생명과 권리, 책임을 부담할 주체를 전제로 한다. ‘사망자’와 ‘사상자’는 발생한 결과를 집계하는 행정 용어에 가깝다.

윤석열 정부가 선택한 언어에서는 국가의 행위가 빠지고 시민의 죽음만 남았다. 국가가 보호하지 못한 희생자는 사망자가 됐고, 안전관리 실패를 규명해야 할 참사는 주최자와 가해자가 뚜렷하지 않은 사고로 축소됐다. 피해자의 지위를 지우면 책임을 부담할 국가의 자리도 함께 흐려진다.

용어 변경 결정은 회의실 밖으로 즉시 전파됐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같은 날 변경된 명칭을 전달받았다. 대통령과 총리, 장관이 공유한 인식이 정부 공문과 브리핑, 지방행정기관의 업무 언어로 바뀌었다.

이태원 참사, 국가의 부재에서 국가의 책임으로 — 이재명 대통령의 두 번 숙인 사과 사진=2025 10.29  ktv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정 최고책임자의 인간관과 공감 능력을 개인적인 성품의 문제로만 다룰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의 언어는 행정부가 사건을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장관의 판단은 지시가 되고 공무원의 문서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으로 집행된다. 권력자의 시선은 행정조직을 통과하면서 국민의 지위와 국가 책임의 범위를 바꾸는 힘을 갖는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당시 국민에게 내놓은 약속은 달랐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사에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자유와 인권, 공정과 연대를 국정의 기반으로 내세웠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도 강조했다.

취임사의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었다. 이태원 참사 직후 중대본 회의의 국민은 국가에 책임을 발생시킬 수 있는 존재로 취급됐다.

윤석열 시대의 ‘국민을 위한 정치’는 추상적인 국민과 구체적인 국민을 갈라놓았다. 국정 성과와 정치적 지지를 말할 때 국민은 위대하고 숭고한 존재로 불렸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죽음 앞에서는 유흥과 축제를 즐기러 간 개인으로 축소됐다.

추상적인 국민을 찬양하는 일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이름과 가족, 직업과 일상을 가진 국민의 죽음 앞에서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정치적·행정적 책임이 발생한다. 첫 중대본 회의는 윤석열 정부가 어느 쪽을 먼저 선택했는지를 남겼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권력이 국민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기록과 조사, 책임의 과정에서 인정하는 정치다. 대통령과 장관이 어떤 말을 했는지, 누가 용어 변경을 제안하고 승인했는지, 결정이 어떤 경로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전달됐는지를 국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특조위가 확보한 중대본 회의록은 공문서 형태로 작성됐지만 기안과 결재를 거치지 않았고 행안부의 정식 문서로 등록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한 총리의 발언, 이상민 장관이 국가 책임을 언급했다는 진술 내용도 회의록에 담기지 않았다. 특조위가 2025년 10월 행안부에 회의 현황과 회의록을 요구했을 때 행안부는 회의 계획을 제외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윤석열, 언론사 단전·단수 이상민에 직접 지시… ‘비상계엄 지시 문건’ 드러나 사진=2025 02.03  MBC 영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에게 발표한 담화에는 책임과 철저한 조사가 있었다. 정부 내부의 문서에서는 대통령과 총리의 발언, 국가 책임을 우려한 논의가 빠졌다.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어를 지운 회의가 국가의 공식 기록 체계에서도 온전하게 남지 않은 셈이다.

회의록 미등록과 발언 누락, 자료 미제출이 고의로 이뤄졌는지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특조위도 실제 회의 내용과 회의록의 차이, 용어 변경의 지시·전파 경로, 자료 은폐와 청문회 위증 가능성을 조사할 방침이다. 확인되지 않은 의도를 미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 주재 재난 회의의 실제 논의와 공식 기록 사이에 차이가 있고, 존재하던 자료가 조사기관에 제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규명돼야 한다.

현행 특별법은 정부가 밀어냈던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피해자’라는 명칭을 법률에 명시하고 있다. 2026년 5월 시행된 개정법은 희생자와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모욕을 2차 가해로 규정하고, 국가기관에 특조위 조사 협조 의무도 부과했다.

법률이 되살린 단어마다 국가가 피하려 했던 책임이 들어 있다. 참사에는 발생 원인과 공적 책임을 밝힐 의무가, 희생자와 피해자에는 명예 회복과 지원, 진상규명에 참여할 권리가 따른다.

공감 능력의 결핍이나 왜곡된 인간관 자체가 형사처벌의 대상은 아니다. 법적 책임은 용어 변경의 지시와 승인, 기록 작성과 관리, 자료 제출 과정에서 확인되는 구체적인 행위를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정치적·행정적 책임은 별개의 문제다. 대통령은 재난 대응의 최종 책임자였고 행안부 장관은 재난안전 주무부처의 수장이었다. 두 사람의 인식이 정부의 공식 용어로 정해지고 전국 행정기관의 지침으로 집행됐다면 책임은 공감 없는 발언 한마디에 머물지 않는다.

특조위는 용어 변경을 처음 제안한 사람과 최종 승인자,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정확한 발언,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로 이어진 지시 체계, 주요 발언의 누락 경위, 회의록 미등록과 자료 미제출 과정을 밝혀야 한다. 조사 결과 위법 행위가 확인되면 수사기관이 법적 책임을 판단해야 한다.

‘반클리프 목걸이·이우환 그림’ 의혹…김건희·윤석열 동시 소환 예고  사진=2025 11.03   김건희 씨의 ‘매관매직’ 의혹을 수사 중인 김건희 국정농단 특검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이달 중 소환 조사하기로 하면서, 수사의 초점이 ‘권력 핵심부 직접 조사’ 단계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 법원 관련 자료 영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2년 10월 30일 오전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어진 중대본 회의에서는 “유흥이나 축제를 즐기러 갔다가 난 사고”라는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앞의 말은 국민에게 들려준 약속이었다. 뒤의 말은 국가의 대응 방향을 정하는 자리에서 나온 인식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말한 국민을 위한 정치와 실제로 작동한 정치 사이의 거리가 첫 중대본 회의에 남아 있다. 국민을 국가의 주인으로 대하는 정치는 국민의 죽음 앞에서 국가부터 보호하지 않는다. 시민의 행선지를 평가하기 전에 국가가 시민을 지키지 못한 원인을 기록하고, 책임을 피할 단어를 고르기 전에 책임져야 할 권력자를 가린다.

2026년 10월 29일 참사 4주기까지 밝혀야 할 대상은 부적절한 발언 몇 마디가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 고위층이 공유한 국민관이 어떤 행정 결정으로 이어졌고, 피해자의 지위를 어떻게 지웠으며, 기록과 조사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국가의 공식 조사 결과로 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