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월드컵 경기장, 천막을 기념비로 만들 때

11만5000석 그랑 스타드 하산 2세…지역의 집회 문화를 빌린 설계가 폐막 이후 도시의 일상까지 품어야 할 이유

2026-07-31     임민정 기자
Populous Unveils the World's Largest Football Stadium for the 2030 World Cup. 사진=Populou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천막은 본래 가벼운 건축이다. 필요할 때 세우고, 사람들이 흩어지면 걷는다. 벽보다 그늘이 먼저이고, 건물의 권위보다 천막 아래 모인 사람들의 관계가 앞선다. 모로코 벤슬리마네에 계획된 ‘그랑 스타드 하산 2세(Grand Stade Hassan II)’는 가볍고 일시적인 천막의 기억을 11만5000석 규모의 영구 건축물로 바꾼다.

포퓰러스(Populous)와 우알랄루+최(Oualalou + Choi)가 설계한 경기장은 모로코의 전통적인 사회·문화 집회인 무셈(moussem)에서 형태를 가져왔다. 여러 봉우리가 이어진 알루미늄 격자 지붕은 관중석뿐 아니라 광장과 보행 공간까지 덮는다. 모로코가 스페인·포르투갈과 공동 개최하는 2030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을 앞두고 추진하는 국가적 상징 건축이다.

계획대로 완공되면 수용 규모에서 세계 최대 축구 경기장을 목표로 하게 된다. 그러나 11만5000이라는 숫자보다 설계가 풀어야 할 질문은 천막과 기념비 사이에 놓여 있다. 사람을 모으기 위해 존재했던 지역의 천막이 국가적 위상을 과시하는 초대형 경기장으로 확대될 때, 전통은 생활문화로 남을 수도 있고 국제 중계를 위한 외관으로 굳을 수도 있다.

그랑 스타드 하산 2세의 성패는 천막과 닮은 정도가 아니라 천막이 해왔던 일을 경기장이 이어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전통 건축을 현대적으로 옮길 때 문양과 색채는 편리한 수단이다. 지역을 상징하는 패턴을 외벽에 반복하면 정체성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 사진과 영상에서도 설명이 쉽다. 건축을 사용하는 방식과 관계없이 어느 도시에나 적용할 수 있다는 한계도 뒤따른다. 지역성은 표면에 남고, 건물 내부에서는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공간이 반복된다.

그랑 스타드 하산 2세는 문양 대신 모임의 구조를 선택했다. 넓게 펼쳐진 지붕은 관중을 닫힌 외벽 안으로 밀어 넣기보다 하나의 그늘 아래 받아들인다.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광장과 보행로, 휴식 공간이 건축의 일부가 된다. 여러 방향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기념비적인 정면보다 넓게 열린 가장자리를 만난다.

천막의 문화적 기억을 장식이 아닌 동선과 체류 방식으로 옮기려는 설계다. 지역의 전통을 과거 형태의 복원으로 다루지 않고, 사람이 모이고 머물던 질서를 현대적인 스포츠 시설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Populous Unveils the World's Largest Football Stadium for the 2030 World Cup. 사진=Populou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다만 거대한 알루미늄 지붕은 전통 천막과 다른 무게를 갖는다. 천막은 적은 재료로 필요한 면적을 덮지만, 11만5000석의 경기장을 감싸는 구조는 막대한 재료와 시공 기술, 유지관리 비용을 요구한다. 가벼워 보이는 실루엣과 실제 건축의 무게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월드컵 경기장의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형태와 보이지 않는 부담을 함께 다뤄야 한다. 알루미늄 격자가 북아프리카의 강한 햇빛을 얼마나 줄이는지, 지붕 아래 더운 공기가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광장에서 장시간 기다리는 관중에게 충분한 그늘을 제공하는지가 외관보다 중요하다. 지붕의 재료 사용량과 수리 방식, 고온과 강풍에 대한 내구성도 수십 년의 운영비와 직결된다.

‘전통 천막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명만으로 지역의 기후에 대응하는 건축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천막이 가진 통풍과 차양, 개방성과 최소한의 재료라는 원리가 실제 구조에서도 작동해야 한다. 형태만 천막이고 운영은 거대한 밀폐 시설에 가깝다면 지역성은 경기장 외관을 설명하는 서사로 축소된다.

설계 이미지에서 지붕 아래로 들어온 녹지와 광장은 초대형 경기장의 위압감을 낮춘다. 경기장 외부를 주차장과 보안 검색대, 콘크리트 포장으로 채우던 방식에서 벗어나 보행과 휴식, 운동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바꾸려는 방향도 읽힌다.

Populous Unveils the World's Largest Football Stadium for the 2030 World Cup. 사진=Populou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월드컵 경기장에서 관중석 밖의 공간은 부수적인 영역이 아니다. 수만 명의 관람객은 경기 시작 전부터 이동하고 기다린다. 경기 종료 뒤에는 짧은 시간 안에 출입구와 광장, 교통시설로 몰린다. 좌석에서 축구를 보는 시간보다 경기장에 도착하고 빠져나가는 과정이 건축의 안전성과 편의성을 더 엄격하게 드러낼 때도 많다.

그랑 스타드 하산 2세의 넓은 지붕과 열린 외곽 공간은 관중을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키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광장과 녹지가 비경기일에도 개방된다면 경기장은 축구가 열리는 날에만 작동하는 거대한 용기에서 일상적인 도시 공간으로 바뀐다.

공원과 상업·여가시설을 함께 배치하는 복합 개발도 같은 목표를 향한다. 훈련시설과 수영시설, 호텔, 소매·여가 공간을 경기장 주변에 넣어 월드컵 이후에도 방문 수요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시설의 종류를 늘린다고 도시의 일상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경기장이 없는 날에도 주민이 접근할 수 있는지, 공원과 운동시설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지, 대중교통으로 편리하게 도착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호텔과 상업시설만 활성화되고 공공 공간의 접근성이 낮다면 월드컵 단지는 도시 속 섬으로 남는다.

11만5000석은 설계도를 압도하는 기록이지만, 운영 단계에서는 반복해서 비용을 발생시키는 규모다. 관중석과 화장실, 조명과 급배수, 보안과 교통 체계는 결승전 하루가 아니라 시설을 사용하는 매일 관리해야 한다. 지역 리그 경기와 공연, 각종 행사에서 어느 정도의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지도 경기장 규모와 함께 검토돼야 한다.

세계 최대라는 목표는 국가의 건설 역량을 드러내지만 좋은 디자인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좌석 수가 많다는 사실과 관중이 편안하다는 평가는 다르다. 지붕이 크다는 사실과 기후에 잘 대응한다는 평가도 같지 않다. 녹지가 풍부한 조감도와 물·에너지 사용량이 적은 운영 역시 별개의 문제다.

Populous Unveils the World's Largest Football Stadium for the 2030 World Cup. 사진=Populou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월드컵 경기장을 둘러싼 건축 경쟁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실루엣을 요구해 왔다. 중계 화면에 즉시 식별되는 외관, 개최국을 상징하는 지붕, 관광 이미지로 활용할 수 있는 야경이 설계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상징적인 형태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수십억 명이 지켜보는 대회를 치르는 경기장은 도시와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기도 하다.

다만 월드컵 경기장의 디자인은 카메라가 떠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평가받는다. 폐막 다음 날에도 광장에 사람이 머무는지, 경기 없는 평일에도 운동시설과 공원이 열리는지, 거대한 지붕과 조경을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지가 건축의 수명을 결정한다.

그랑 스타드 하산 2세의 알루미늄 천막은 강한 이미지를 이미 확보했다. 모로코의 전통적인 집회 문화를 가져와 세계 최대 규모를 목표로 하는 경기장 위에 펼쳤다. 지역의 천막과 국가 기념비가 한 구조 안에서 만난 셈이다.

천막은 사람을 가두지 않는다. 햇빛을 피할 곳을 만들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잠시 같은 지붕 아래 머물게 한다. 그랑 스타드 하산 2세가 받아들여야 할 전통도 천막의 윤곽보다 개방성과 환대, 적절한 그늘과 공동 이용의 질서다.

2030년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주민들이 지붕 아래를 걷고, 광장과 체육시설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면 거대한 천막은 도시의 일부가 된다. 월드컵 기간에만 사람을 모으고 이후에는 관리비만 남긴다면 천막은 국가적 이미지를 덮은 값비싼 외피에 머문다.

월드컵 경기장을 향한 설계는 개막식의 완성도를 넘어 폐막 이후의 시간을 그려야 한다. 가장 좋은 경기장은 세계가 바라보는 한 달과 지역 주민이 살아갈 수십 년을 같은 도면 안에 담는다. 세계 최대 기록은 다른 경기장에 넘어갈 수 있지만, 도시의 일상 속에서 계속 쓰이는 공간은 기록이 바뀐 뒤에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