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진짜 문화시대③] 아미, 25시간 만에 100만 달러…기부·연대로 넓어진 팬덤
‘#MatchAMillion’·유니세프 ‘LOVE MYSELF’·지역별 소액 모금…중앙 조직 없이 움직인 초국적 참여망과 책임의 조건
[KtN 신미희 · 박준식기자]2020년 6월 방탄소년단(BTS)과 당시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운동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기부 사실이 알려진 직후 세계 각지의 아미는 ‘#MatchAMillion’ 모금을 시작했다. 목표액 100만 달러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5시간이었다. 팬들은 한 사람의 거액 후원보다 여러 국가에서 들어온 소액 기부를 모아 BTS의 기부액과 같은 규모를 만들었다.
100만 달러는 팬덤의 크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숫자다. 모금 주소를 만들고 지원단체를 검토하며 실시간 집계를 공유할 조직과, 게시물을 여러 언어로 옮겨 각 지역에 전달할 계정이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음원 발매와 시상식 투표에서 활용해온 정보 공유와 역할 분담이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지원하는 모금망으로 전환됐다.
‘#MatchAMillion’ 모금을 주도한 원 인 언 아미(One In An ARMY)는 2018년 3월 한 아미가 유니세프의 폭력 근절 활동과 시리아 구호를 지원할 팬 프로젝트 참여자를 모집하면서 출발했다. 여러 국가의 자원봉사자가 몇 시간 만에 모였고, 같은 해 4월 국제 의료구호단체를 지원하는 첫 공식 캠페인을 진행했다. 단체명에는 각자가 거대한 아미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소액이 모이면 현실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
원 인 언 아미는 BTS나 소속사가 설립한 공식 조직이 아니다. 세계 각지의 자원봉사자가 운영하는 독립 팬 집단이며, 별도의 은행 계좌나 페이팔 계좌를 두지 않는다. 후원금은 운영자에게 전달되지 않고 선정된 비영리단체에 직접 들어간다. 운영진은 기부 영수증을 자발적으로 제출받거나 비영리단체의 전용 페이지를 통해 모금액을 확인한다.
2021년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학술대회(CHI)에 발표된 ‘Armed in ARMY’ 연구는 ‘#MatchAMillion’ 참가자를 조사해 대규모 협업이 가능했던 조건을 분석했다. 참여자들은 아미를 엄격한 위계 조직보다 여러 연결 거점 계정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구성된 공동체로 인식했다. 연구진은 공유된 가치, 팬들 사이의 신뢰, 역할 분담, 기존에 축적된 온라인 기반이 모금 성공을 뒷받침했다고 설명했다.
회장과 지부장이 지시를 내리는 전통적인 조직과는 작동 방식이 다르다. 모금 취지에 동의하는 팬이 게시물을 공유하고, 번역 계정이 지역 언어로 내용을 옮기며, 데이터 계정이 진행 상황을 정리한다. 참여자는 정식 가입이나 회비 납부 없이 자신의 시간과 경제적 여건에 맞춰 기부·번역·홍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2025년 국제지역학 분야에 발표된 연구는 ‘#MatchAMillion’을 ‘연결행동(connective action)’의 논리로 분석했다. 연결행동은 중앙 조직이 통일된 구호와 행동을 내려보내는 대신,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판단을 유지하면서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공동 행동에 합류하는 방식이다. 연구는 아미를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집단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정치적 행위자로 함께 살펴야 한다고 분석했다.
BTS의 행동이 팬들의 참여를 촉발했지만, 팬들이 아티스트의 지시만 따라 움직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2025년 사전 공개된 계산사회과학 연구는 2020년 K팝 팬과 BLM 참여자의 소셜미디어 게시물 약 2900만 건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유명인의 발언이 행동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가치와 규범의 결합이 초국적 참여를 형성한 주요 동력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아미의 사회참여가 2020년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도 아니다. BTS와 빅히트는 2017년 11월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손잡고 아동·청소년 폭력 근절을 위한 ‘LOVE MYSELF’ 캠페인을 시작했다. 빅히트가 5억 원을 우선 출연하고 ‘LOVE YOURSELF’ 시리즈 음반 판매 순익의 3%, 공식 캠페인 상품 판매 순익과 일반 후원금을 유니세프 활동에 지원하는 구조였다.
2024년 3월까지 BTS와 빅히트 뮤직, 세계 각지 팬이 ‘LOVE MYSELF’를 통해 조성한 기금은 89억 원을 넘어섰다. 유니세프는 같은 해 협력 범위를 어린이와 청소년의 마음건강을 지원하는 ‘#OnMyMind’로 확대했다. 2017년 폭력 예방에서 시작한 협업이 우울과 불안, 심리적 안전을 포함하는 마음건강 활동으로 이어졌다.
89억 원을 아미의 단독 모금액으로 기록해서는 안 된다. BTS와 빅히트 뮤직의 기부, 음반과 캠페인 상품에서 나온 수익, 팬과 일반 후원자의 참여를 합산한 수치다. 공식 캠페인과 독립 팬 모금의 경계를 구분해야 아티스트와 기업, 팬덤이 각각 맡은 역할도 정확하게 드러난다.
BTS는 음악과 연설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자’는 언어를 제시했고, 유니세프와 소속사는 메시지를 공식 캠페인과 기금 구조로 만들었다. 아미는 후원과 공유, 지역 활동을 통해 캠페인의 참여 범위를 넓혔다. 아티스트의 발언이 팬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메시지와 제도, 참여가 서로 연결된 구조다.
원 인 언 아미의 모금 활동은 BTS의 군 복무와 단체 활동 공백기에도 이어졌다. 2025년 6월에는 해외입양인의 뿌리 찾기와 가족 재연결을 지원하는 한국 단체 코루트를 위해 677명이 2만1309달러를 모았다고 공개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중남미 커피 재배 지역의 식량 불안을 지원하는 단체에 396명이 1만2536달러를 기부했다고 집계했다. 2026년 3월에는 한국계 디아스포라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GYOPO를 위해 192명이 5728달러를 모았다고 밝혔다.
2026년 6월에는 BTS 데뷔 기념기간인 페스타(FESTA)에 맞춰 취약지역 어린이에게 수영교육과 익사 예방교육을 제공하는 영국 자선단체 스윔타이카(SwimTayka)를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다. 아동 안전, 해외입양, 식량 불안, 디아스포라 문화처럼 서로 다른 분야가 한 팬덤의 모금망을 거쳐 연결되고 있다.
공개된 모금액은 원 인 언 아미가 자체 집계한 숫자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후원자가 비영리단체에 직접 기부하기 때문에 운영진이 모든 거래를 확인할 수 없다. 기부 영수증 제출은 자율이며, 협력단체가 별도 집계를 제공하지 못할 때는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추산한다. 실제 모금액이 공개 수치보다 많을 수 있지만, 외부 회계감사를 거친 총액과 같은 성격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운영 절차는 단순한 해시태그 확산보다 복잡하다. 원 인 언 아미는 캠페인 한 건을 준비하는 데 약 2∼3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한다. 지원 분야를 정하고 후보 단체를 조사한 뒤 운영진 투표를 거쳐 협력 대상을 선정한다. 비영리단체가 소액 해외기부를 받을 수 있는지, 모금액과 사용처를 공개할 수 있는지, 후속 보고서를 제공할 수 있는지도 확인한다.
후보 단체의 재정자료와 언론 보도, 외부 평가, 차별·비리 논란도 검토 대상에 포함된다. 대형 단체보다 팬들의 소액 기부가 실제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쉬운 소규모 비영리단체를 우선하며, 연구나 홍보보다 수혜자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을 주로 선택한다. 팬 운영 집단이 비영리단체 선정과 모금, 사후 보고를 잇는 절차를 자체적으로 구축한 셈이다.
아미의 참여를 ‘선한 영향력’이라는 표현만으로 묶으면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은 가려진다. 후보 단체 조사, 번역, 디자인, 기부 페이지 점검, 홍보물 제작, 문의 대응, 모금액 확인은 모두 자원봉사자의 시간으로 이뤄진다. 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두 개의 후속 캠페인을 함께 준비하기도 한다는 운영진 설명에는 팬 활동과 무급 노동의 경계가 겹쳐 있다.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재난과 인권 문제에 대응할 수도 없다. 원 인 언 아미는 자원봉사 인력과 전문성의 한계를 이유로 긴급 캠페인을 무제한 운영하지 않으며, 사실관계를 검증하기 어려운 청원이나 개인 계좌로 들어가는 모금은 원칙적으로 홍보하지 않는다. 정치적 선전과 허위정보가 확산될 위험도 운영 기준에 명시했다.
선정되지 않은 사안을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받아들이는 팬이 나타날 수 있고, 특정 이슈에 침묵했다는 비판이 운영 계정으로 향할 가능성도 있다. 공식 대표를 선출하지 않은 느슨한 공동체에서 팔로어가 많은 계정은 사실상 의제 설정 능력을 갖지만, 전체 아미의 의견을 대표할 민주적 권한까지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지역마다 역사와 정치적 조건도 다르다. 미국의 인종차별, 팔레스타인 문제, 동남아시아의 민주화 운동, 한국의 사회 갈등을 하나의 도덕적 구호로 압축할 경우 현지 당사자의 목소리가 팬덤의 언어 뒤로 밀릴 수 있다. 번역과 확산에 능한 팬덤일수록 지역단체의 설명을 먼저 확인하고, 아티스트의 이름을 사회운동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표지로 사용하지 않는 기준이 필요하다.
팬덤 내부의 인종·성별·국가·세대 차이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미가 행동했다’는 문장은 수많은 개인과 지역 조직의 선택을 하나의 집단 의지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기부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연대하는 팬, 정치적 견해가 다른 팬까지 같은 입장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
기부액과 해시태그 순위가 팬덤의 경쟁 지표로 바뀌는 흐름도 경계할 부분이다. 음원 판매와 스트리밍 기록을 높이는 방식이 모금으로 옮겨오면 사회문제의 당사자보다 팬덤의 동원력을 증명하는 숫자가 앞설 수 있다. 작은 금액의 참여를 독려하는 취지가 기부 인증과 목표 달성 압박으로 바뀔 경우 경제적 여건이 다른 팬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MatchAMillion’이 남긴 변화는 100만 달러라는 결과에만 있지 않다. 팬들은 BTS의 기부 소식을 공유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원단체를 나누고, 기부 경로를 만들고, 진행 상황을 공개했다. 아티스트의 행동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팬덤이 보유한 기술과 인력을 사회참여에 맞게 재배치했다.
뉴제너레이션 아미는 연령으로 구분되는 세대가 아니다. 문화 소비와 사회참여를 분리하지 않고, 온라인에서 형성한 관계를 기부와 교육, 번역과 지역 활동으로 옮기는 참여 방식에 가깝다. 스타를 좋아한다는 개인의 감정이 초국적 공동체의 공동 행동으로 이어지지만, 모든 참여자가 같은 정치적 정체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
BTS와 아미의 관계도 일방향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BTS의 음악과 ‘LOVE MYSELF’ 메시지가 팬들의 행동에 언어를 제공했고, 팬들의 기부와 연대는 BTS의 문화적 영향력이 음원과 공연 밖에서도 작동하도록 만들었다. 아티스트와 팬이 각자의 위치에서 의미를 만들고 다시 상대의 활동에 영향을 주는 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아미를 사회운동 조직이나 국제구호단체와 동일하게 부를 수는 없다. 전문 활동가가 아닌 자원봉사자가 운영하며 법적 책임과 회계 구조, 의사결정 절차도 공식 비영리기관과 다르다. 팬덤의 기동성과 확산력은 강하지만 장기간 사업을 수행하고 수혜 결과를 검증하는 일은 현지 전문기관이 맡아야 한다.
2026년에도 원 인 언 아미의 모금 목록에는 아동 안전과 문화, 식량, 인권을 지원하는 단체가 이어지고 있다. 팬덤의 문화적 힘은 얼마나 빠르게 돈을 모았는지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모금액이 지원단체에 직접 전달됐는지, 사용처와 후속 결과가 공개되는지, 현지 당사자의 설명이 존중되는지가 함께 확인돼야 한다.
아미가 만든 참여망은 스타의 인기를 사회적 자원으로 바꾸는 새로운 경로를 열었다. 지속성은 BTS의 이름이나 팬들의 선의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공개된 집계의 정확성, 지원단체 검증, 자원봉사자의 소진 방지, 정치적 갈등 속 운영 기준이 팬덤의 규모와 함께 정교해질 때 기부와 연대는 일시적인 이벤트를 넘어 축적된 사회참여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