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진짜 문화시대⑤] 그래미 트로피, 미국 음악산업이 쥔 승인권
출품·미국 유통 요건·장르 배정·회원 투표·FYC 캠페인으로 완성되는 권위…BTS 불출품이 드러낸 시상식의 입구
[KtN 신미희 · 박준식기자]2026년 8월 1일, 제69회 그래미 어워드의 온라인 출품 창구가 열려 있다. 접수는 7월 7일 시작해 8월 21일 미국 서부시간 오후 6시에 끝난다. 한 해 2만건이 넘는 작품이 들어올 수 있지만, 정해진 기간에 공식 출품되지 않은 음악은 후보 투표용지에 오르지 않는다. 대중이 많이 듣고 세계 음원시장을 움직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래미의 심사가 자동으로 시작되는 구조가 아니다.
방탄소년단(BTS)은 정규 5집 ‘ARIRANG’을 이번 출품 명단에 넣지 않기로 했다. 일곱 멤버는 7월 29일 지역과 언어로 음악을 나누기보다 음악 자체로 듣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공동 입장을 냈다. 그래미가 후보에서 BTS를 제외한 것이 아니라 BTS가 그래미의 심사 절차에 들어가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다.
후보 지명과 수상 결과에 집중됐던 BTS와 그래미의 관계도 달라졌다. 2021년 ‘Dynamite’부터 후보 발표를 기다렸던 아티스트가 2026년에는 심사에 참여할지부터 판단했다. 트로피를 받느냐의 문제가 그래미가 제시한 분류와 평가 체계를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로 이동했다.
그래미는 음원 판매량이나 스트리밍 횟수로 수상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시청자 문자투표나 팬 투표도 없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그래미를 음악 창작자들이 같은 업계 동료의 작품을 평가하는 ‘동료투표상’으로 규정한다. 출품과 자격 심사, 장르 배정, 1차 투표, 후보 발표, 최종 투표를 거쳐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품이 수상한다.
그래미의 권위는 대중의 선택과 거리를 두는 데서 출발했다. 판매량과 인기, 팬덤 규모에 휩쓸리지 않고 가수·송라이터·프로듀서·엔지니어가 예술성과 기술적 성취를 평가한다는 원칙이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투표자가 판매량이나 인기, 소속 회사에 대한 충성, 개인적 친분, 지역적 선호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금품을 주고받거나 특정 후보를 함께 밀기로 합의하는 집단투표와 표 교환도 금지한다.
대중적 성공과 동료평가를 분리하는 원칙 자체는 그래미의 약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가장 많이 팔린 음악이 언제나 가장 높은 음악적 성취를 담았다고 볼 수 없으며, 규모가 작은 장르와 창작자의 작업을 시장 성적만으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그래미가 대중 인기상과 다른 위치를 확보한 배경에는 음악 제작 현장을 아는 사람들이 작품을 판단한다는 명분이 있다.
동료평가라는 이름만으로 결과의 보편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투표권을 가진 동료가 누구인지, 투표용지에 어떤 작품이 들어가는지, 어떤 장르명 아래 경쟁하는지가 먼저 결정된다. 투표 이전에 설치된 여러 단계가 후보와 수상자의 범위를 좁힌다.
그래미의 첫 관문은 출품이다. 레코딩 아카데미의 투표회원과 전문회원, 등록된 음반사·유통사·매니지먼트사 등 미디어 기업이 작품을 제출할 수 있다. 가수가 유명하거나 차트 순위가 높아도 회원이나 등록 기업이 출품하지 않으면 심사는 시작되지 않는다. 전문회원과 미디어 기업은 작품을 제출할 수 있지만 후보와 수상자를 뽑는 투표권은 갖지 않는다. 투표는 창작·기술 분야의 투표회원에게만 허용된다.
출품 자격에도 미국 음악시장의 기준이 들어간다. 디지털 음원은 미국에서 일정 기간 운영된 공인 스트리밍 서비스나 일반 유통망을 통해 상업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투표회원 자격을 신청하는 창작자도 하나의 전문 분야에서 상업적으로 유통된 확인 가능한 크레디트 12건을 제시해야 하며, 최소 5건은 최근 5년 안에 만들어진 작업이어야 한다. 인정받는 음원은 미국의 온라인 음원 판매처·스트리밍 서비스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투표회원의 국적을 미국으로 제한한다고 명시한 제도는 아니다. 해외 창작자도 미국 유통 요건과 경력 요건을 충족하면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음악 경력을 증명하는 기준과 출품작의 상업적 이용 가능성을 미국시장에 맞춰 놓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 음악을 평가하는 상의 입구가 미국 유통망을 통과한 음악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뜻이다.
작품이 접수되면 레코딩 아카데미의 시상 부서가 발매일과 크레디트, 음원 형식 등 기본 자격을 확인한다. 자격을 통과한 작품은 300명이 넘는 장르별 전문가의 심사를 거쳐 부문이 배정된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장르 심사가 작품의 예술성과 기술 수준을 평가하는 절차가 아니라 적절한 부문에 배치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장르 배정은 단순한 행정 처리가 아니다. 팝으로 들어갈지, 글로벌 음악이나 아시안 팝으로 들어갈지에 따라 경쟁 작품과 투표자가 달라진다. 같은 곡도 어느 부문에 놓이느냐에 따라 음악을 해석하는 기준과 수상 가능성이 바뀔 수 있다. 장르 심사위원이 예술적 우열을 가리지 않더라도 장르명과 경쟁 범위를 결정하는 순간 평가의 지형은 이미 만들어진다.
2027년 그래미에는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가 신설됐다. K팝·J팝·C팝 등을 포함해 아시아 시장에서 출발했거나 널리 인정받는 팝 음악 가운데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한 곡이 대상이다. 아시아 대중음악의 성장과 예술성을 별도로 조명한다는 취지다.
하비 메이슨 주니어(Harvey Mason jr.) 레코딩 아카데미 최고경영자는 아시안 팝 부문에 출품한다고 해서 올해의 레코드·앨범·노래 등 제너럴 필드 출품이 제한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장르 부문과 주요 부문에서 동시에 심사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시아 음악을 주요상에서 밀어내는 제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출품 자격이 열려 있다는 설명과 분류의 적절성은 별도의 문제다. 영어권에서 제작된 팝은 출발 지역을 제목에 붙이지 않은 채 팝으로 경쟁하지만, 아시아에서 출발하고 아시아 언어를 쓰는 음악에는 지역명이 붙는다. 별도 부문은 그동안 수상 기회를 얻지 못했던 아시아 창작자를 무대에 세울 수 있다. 같은 부문이 아시아 음악을 지역 범주로 고정해 기존 팝과 분리하는 경계가 될 수도 있다.
BTS의 불출품은 아시안 팝 부문의 후보 자격이 부족해서 나온 결정이 아니다. ‘ARIRANG’은 한국어를 중심으로 제작됐으며 아시아 시장에서 출발한 세계적인 팝 앨범이라는 점에서 신설 부문의 취지와 맞닿아 있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될 수 있는 작품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BTS는 트로피의 가능성보다 음악에 붙는 분류의 의미를 앞세웠다.
그래미 후보는 투표회원의 1차 투표로 결정된다. 현재의 기본 투표 방식에서는 회원 한 명이 제너럴 필드 6개 부문과 전문성을 가진 최대 3개 장르 분야의 10개 부문에 투표할 수 있다. 제너럴 필드에는 올해의 레코드·앨범·노래·신인과 비클래식 부문의 올해의 프로듀서·송라이터가 포함된다.
2027년부터는 ‘밸럿 플러스(Ballot Plus)’도 도입된다. 여러 장르에서 실제 작업한 경력을 제출하고 검증받은 투표회원은 분야 구분 없이 자신의 전문성과 연결된 최대 15개 부문에 투표할 수 있다. 신청하지 않거나 경력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회원에게는 기존의 ‘10개 부문·3개 분야’ 투표지가 주어진다.
밸럿 플러스는 여러 장르를 오가는 현대 음악인의 경력을 반영하려는 개편이다. 힙합과 팝, 라틴과 댄스, 재즈와 R&B를 함께 작업한 창작자가 한정된 장르 칸 때문에 익숙한 부문에서 투표하지 못하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투표 범위를 실제 크레디트와 연결해 전문성도 확인한다.
검증된 전문가의 투표가 늘어나더라도 서로 다른 문화권의 음악을 이해하는 능력까지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작업 경력이 있다는 사실과 낯선 언어의 가사, 지역의 음악사, 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파악한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투표자가 규정상 투표할 수 있는 부문과 실제로 깊이 이해하는 음악의 범위 사이에는 간격이 남을 수 있다.
후보와 수상자를 뽑는 과정에서는 ‘포 유어 컨시더레이션(For Your Consideration·FYC)’ 캠페인도 허용된다. 회원이나 지정 홍보 담당자는 자신의 출품작을 이메일과 소셜미디어, 우편물 등을 통해 알릴 수 있다. 그래미가 마련한 회원용 FYC 공간에도 정해진 범위 안에서 출품작을 게시할 수 있다. 다른 회원의 작품을 대신 홍보하거나 표를 맞바꾸고 투표 집단을 만드는 행위는 금지된다.
FYC는 투표를 매수하는 절차가 아니라 수많은 출품작 가운데 작품을 알리는 공식적인 홍보 활동이다. 한 시즌에 2만건이 넘는 출품작이 들어올 수 있는 상황에서 투표회원에게 음악을 들을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능도 있다.
모든 출품자가 같은 수준의 캠페인 자원을 갖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음반사와 전문 홍보조직을 보유한 아티스트는 회원들에게 작품을 지속적으로 노출할 수 있지만, 소규모 레이블과 독립 음악인은 제한된 인력과 비용 안에서 움직인다. 동일한 홍보 규정을 적용하더라도 작품이 투표자의 귀에 도달하는 횟수까지 같아지지는 않는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판매량과 인기가 투표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현실의 투표자는 음악산업과 대중문화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름, 함께 작업한 사람, 언론과 업계 행사에서 반복해 접한 작품은 처음 듣는 음악보다 쉽게 기억된다. 금품이나 표 거래가 없어도 인지도와 업계 연결망이 판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남는다.
1차 투표가 끝나면 대부분의 부문에서 5개 후보가 결정된다. 올해의 레코드·앨범·노래·신인 등 주요 제너럴 필드에는 8개 후보가 오른다. 일부 제작·기술 부문은 전문 투표회원으로 구성된 별도 위원회가 후보를 정한다. 최종 투표에서도 회원은 자신의 전문 분야 안에서 후보를 고르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품이 수상한다. 동률이 나오면 공동 수상이 가능하다.
투표 결과는 독립 회계법인 딜로이트가 집계한다. 최종 결과는 시상식 당일까지 공개되지 않으며 밀봉된 수상자 명단이 전달된다. 그래미는 후보별 득표수와 2위 이하의 순위를 발표하지 않는다. 수상자가 바뀌어도 ‘몇 표 차이’였는지, 어느 작품이 두 번째로 많은 표를 받았는지는 외부에서 확인할 수 없다.
비밀투표와 독립 집계는 외부 압력과 결과 조작을 막기 위한 장치다. 득표수가 공개되지 않는 방식은 시상식의 경쟁 서열을 수상자 한 명으로 압축한다. 후보에 오른 작품 사이의 평가 차이가 한 표였는지 압도적이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트로피는 복잡한 투표 결과보다 명확한 승자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미 공식 기록에는 BTS가 5차례 후보에 올라 수상하지 못한 아티스트로 정리돼 있다. ‘Dynamite’와 ‘Butter’, 콜드플레이(Coldplay)와 함께한 ‘My Universe’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고, ‘Yet To Come’은 베스트 뮤직비디오 후보가 됐다. 콜드플레이의 ‘Music of the Spheres’ 참여 크레디트로 올해의 앨범 후보 기록에도 이름이 포함됐다.
‘후보 5회·수상 0회’라는 기록만 보면 다섯 번의 동일한 패배처럼 읽힌다. 세 차례는 그룹 퍼포먼스, 한 차례는 영상, 한 차례는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 참여에 따른 후보였다. BTS의 정규앨범이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른 기록이나 BTS의 곡이 올해의 레코드·노래 후보에 오른 기록은 없다. 그래미의 숫자는 후보 횟수뿐 아니라 BTS를 어떤 부문에서 인정했는지도 함께 읽어야 한다.
트로피는 투표가 끝난 뒤에도 작동한다. 아티스트 소개와 음반 홍보, 공연 포스터, 언론 기사, 박물관 전시와 음악사 기록에는 ‘그래미 수상자’라는 이름이 붙는다. 수상작은 한 해의 미국 음악산업이 선택한 작품을 넘어 세계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기록처럼 유통돼 왔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미국 음악산업의 창작자 단체다. 회원의 경력은 미국 유통망을 기준으로 확인되고, 지역 조직도 뉴욕·로스앤젤레스·내슈빌·애틀랜타·시카고 등 미국의 주요 음악시장을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미국 산업 내부의 동료평가가 방송과 언론, 음반 유통의 영향력을 타고 세계적인 문화 권위로 확대된 구조다.
미국 음악인이 미국 음악산업의 상을 결정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일은 아니다. 그래미를 미국 국내 음악상으로 본다면 회원과 유통 요건, 산업 네트워크가 미국 중심인 것은 자연스럽다. 갈등은 그래미가 ‘음악계 최고의 밤’을 내세우고 수상 결과가 세계 음악의 최고 권위로 받아들여지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세계 음악시장은 미국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어와 스페인어, 일본어, 아랍어로 제작된 음악이 미국 라디오와 방송의 관문을 거치지 않고 스트리밍과 팬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대륙으로 이동한다. 음악의 생산과 소비는 다극화됐지만 그래미의 출품·회원·분류 체계는 미국 음악산업을 중심으로 세계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아시안 팝 부문 신설은 그래미가 시장 변화를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의 제안과 심사를 거쳐 새 부문이 만들어졌으며, 2027년에는 아시안 팝을 포함해 5개 부문이 추가됐다. 앨범의 신곡 비율과 신인상 출품 횟수, 송라이터 수상 범위, 투표 방식도 함께 바뀌었다. 그래미는 매년 규정을 수정하는 고정되지 않은 제도다.
변화의 방향은 부문을 늘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아시아 음악이 별도 부문에서 몇 차례 수상하는지보다 제너럴 필드에서 어떤 작품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는지가 그래미의 세계 대표성을 결정한다. 아시안 팝 수상자가 생겨도 아시아 음악이 주요 부문에서는 계속 주변에 머문다면 포용은 분류의 확대에 그칠 수 있다.
BTS의 선택은 그래미 제도의 허점을 모두 입증하지 않는다. 불출품만으로 투표회원의 편견이나 수상 결과의 부당성을 확인할 수도 없다. 그래미는 전문성 투표, 장르별 심사, 투표 거래 금지, 독립 회계법인 집계와 같은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엄격한 절차와 세계 대표성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규칙을 위반하지 않고 모든 표를 정확하게 집계해도 투표회원의 구성과 출품 요건, 장르 분류가 특정 산업과 문화권에 집중돼 있다면 결과의 범위도 좁아질 수 있다. 그래미를 둘러싼 논쟁은 부정 투표의 유무보다 미국 음악산업의 동료평가를 세계 음악의 최종 판정처럼 받아들여도 되는지로 이동하고 있다.
8월 21일 출품이 끝나면 10월 12일부터 22일까지 1차 투표가 진행된다. 후보 명단은 11월 16일 공개되고 최종 투표는 12월 10일부터 2027년 1월 7일까지 이어진다. 제69회 그래미 어워드는 2027년 2월 7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다.
2027년 후보 명단에 BTS의 이름은 없다. 후보에 들지 못한 결과가 아니라 심사 체계에 들어가지 않은 기록이다. 그래미는 BTS 없이 첫 아시안 팝 수상자를 선정하고, BTS는 그래미 트로피 없이 ‘ARIRANG’의 세계시장과 월드투어를 이어간다. 미국 음악산업의 투표가 세계적인 권위를 유지해온 질서와 미국의 승인 없이 세계시장을 형성한 아티스트가 처음부터 서로 다른 기록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