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진짜 문화시대⑧] BTS와 아미, 그래미 밖에서 만든 세계 문화권
광화문 1840만명·뉴욕 도심 확장·2027 그래미 불출품…미국 승인 없이 움직이는 참여형 문화, 팬과 창작자의 권리가 가를 지속성
[KtN 신미희 · 박준식기자]2026년 8월 1일 오후 8시,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뉴저지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무대에 오른다. 이튿날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공연한다. 맨해튼에서는 공연 전부터 BTS의 음악과 팬덤을 연결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뉴욕한국문화원과 그랜드센트럴터미널, 록펠러센터, 호텔과 식음료 매장 등이 참여하는 ‘BTS THE CITY ARIRANG’은 공연장을 넘어 뉴욕 도심 전체를 팬의 이동 경로로 넓혔다.
BTS 공연을 보기 위해 뉴욕을 찾은 팬은 티켓만 구매하지 않는다. 팬들은 숙박과 교통, 음식, 전시, 쇼핑을 함께 소비하고 현지 문화기관과 기업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BTS의 음악이 음원과 공연장 안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의 시간표와 상권, 관광 동선까지 바꾸는 구조다.
뉴욕 공연보다 넉 달 앞선 3월 21일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완전체 복귀 무대가 열렸다. ‘BTS THE COMEBACK LIVE | ARIRANG’은 생방송과 이후 하루 동안 1840만명의 세계 시청자를 모았다. 넷플릭스 주간 상위 10위에 들어간 국가는 80곳, 1위를 기록한 국가는 24곳이었다. 서울 중심부에서 진행된 한국어 공연이 미국 방송사의 편성이나 시상식 무대를 거치지 않고 세계 여러 지역에 동시에 도착했다.
광화문과 뉴욕 사이에는 하나의 문화 이동 경로가 놓여 있다. 서울에서 제작한 음악과 공연이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세계로 전달되고, 음악을 접한 팬이 다시 공연 도시로 이동한다. 온라인 시청자가 티켓 구매자와 여행자, 도시 프로그램 참여자로 이어지면서 BTS의 문화적 영향력은 화면의 조회 수를 넘어 실제 공간과 경제활동으로 옮겨간다.
BTS는 같은 해 7월 29일 정규 5집 ‘ARIRANG’과 수록곡을 2027년 그래미 어워드에 출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RM·진·슈가·제이홉·지민·뷔·정국은 지역이나 언어로 나뉘기보다 음악 자체로 듣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공동 입장을 냈다. 그래미 후보 발표 뒤 탈락에 반발한 것이 아니라 출품 접수가 진행되는 단계에서 심사 참여를 거부한 결정이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2027년 시상식부터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를 신설한다. 아시아 시장에서 시작됐거나 널리 인정받는 팝 음악 가운데 한국어·일본어·중국어를 비롯한 아시아 언어가 의미 있게 사용된 곡을 대상으로 한다. K팝과 J팝, C팝 등 서로 다른 음악시장과 제작 체계를 하나의 지역 부문에 넣는 방식이다.
하비 메이슨 주니어(Harvey Mason jr.) 레코딩 아카데미 최고경영자는 BTS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아시안 팝 부문은 아시아 음악을 분리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더 많은 창작자에게 수상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아시안 팝 부문에 출품해도 올해의 앨범·레코드·노래 등 주요 부문에 함께 출품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래미의 설명과 BTS의 선택은 모두 확인된 사실이다. 아시안 팝 부문이 실제로 아시아 음악의 진입 통로가 될지, 기존 팝과 주요 부문에서 분리하는 울타리로 작동할지는 첫 후보 명단과 수상 결과가 나온 뒤 평가할 수 있다.
BTS의 결정이 남긴 변화는 수상 가능성을 포기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과거에는 그래미 후보 지명 자체가 한국 대중음악의 세계 진출을 증명하는 기록으로 받아들여졌다. 2026년에는 세계적인 앨범과 투어를 확보한 아티스트가 그래미가 제시한 분류에 들어갈지부터 판단했다.
트로피를 기다리는 위치와 심사 체계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위치는 다르다. BTS가 그래미보다 우월한 기관이 됐다는 뜻도, 그래미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뜻도 아니다. 그래미의 승인이 세계 활동을 시작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게 됐다는 변화다.
BTS는 그래미 공식 기록상 다섯 차례 후보에 올라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세 차례는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한 차례는 베스트 뮤직비디오, 한 차례는 콜드플레이(Coldplay) 앨범 참여에 따른 올해의 앨범 후보 기록이었다. BTS의 정규앨범이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른 기록은 없다.
그래미 트로피가 없는 기간에도 BTS의 세계시장은 축소되지 않았다. 정규 5집 ‘ARIRANG’은 일곱 멤버가 3년 9개월 만에 내놓은 단체 앨범이며 14곡이 수록됐다. 앨범 발매 뒤 월드투어가 시작됐고, 광화문 공연과 뉴욕 도심 프로그램은 음악이 플랫폼과 공연, 관광과 상품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구체화했다.
미국 문화산업과의 연결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광화문 공연은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의 유통망을 이용했고, 세계 음원시장에서는 미국계 스트리밍 서비스의 영향력이 크다. 북미 공연도 현지 공연장과 예매 플랫폼, 유통회사의 협력 없이는 진행할 수 없다.
BTS가 확보한 힘은 미국을 완전히 벗어난 힘이 아니다. 미국을 반드시 거쳐야만 세계에 도달하는 구조에서 벗어난 힘이다. 미국 시장과 협력하면서도 미국 시상식의 승인 여부를 활동의 최종 기준으로 삼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아미는 변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한국어 가사를 여러 언어로 옮기고, 멤버들의 발언과 콘텐츠를 정리했으며, 공연과 예매 정보를 지역별로 다시 전달했다. 공식 콘텐츠가 해외에 공개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각 지역의 언어와 시간, 문화적 맥락 안에서 이해되도록 연결했다.
음악산업의 전통적인 유통 구조에서는 기획사와 음반사, 방송사와 언론이 콘텐츠의 이동 경로를 결정했다. 아미는 공식 유통망 바깥에서 번역과 기록, 해설과 공유를 맡으며 관객을 문화 이동의 마지막 단계가 아닌 중간 생산자로 바꿨다.
팬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대신 만든 것은 아니다. 공연과 앨범의 소유권도 팬에게 있지 않다. 팬은 이미 제작된 음악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고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의미와 정보를 연결했다.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를 명확히 나누던 경계가 유통과 해석 단계에서 흐려진 셈이다.
아미의 번역과 기록은 BTS의 세계 활동에 필요한 공식 산업망의 공백을 메웠다. 팬들이 제공한 시간과 지식에는 대부분 보수가 지급되지 않았다. 애정과 공동체 의식에서 시작한 활동이 음원 재생과 공연 수요, 플랫폼 방문과 상품 판매로 이어지면서 팬의 자발성과 기업의 수익이 같은 구조 안에서 움직였다.
BTS와 아미가 만든 참여형 문화는 다른 K콘텐츠가 세계로 이동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줬다. 해외 관객은 방송사의 편성표보다 소셜미디어의 짧은 영상과 팬의 추천, 번역 게시물을 통해 한국 음악과 드라마, 영화와 예능을 접한다. 작품을 처음 발견한 경로와 전체 콘텐츠를 소비하는 플랫폼이 분리되고, 한 작품에 대한 관심이 한국어와 음식, 패션, 관광으로 이어진다.
2026년 해외한류실태조사에서 K팝은 한국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로 9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BTS는 최선호 한국 가수·그룹 부문에서 8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조사는 세계 인구 전체가 아니라 30개 국가·지역의 한국 문화콘텐츠 경험자 2만74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BTS의 세계적 인지도를 설명하는 자료이지만 모든 국가와 인구를 대표하는 통계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같은 조사에서 한류 경험자의 이용률은 음식 78.0%, 영화 77.9%, 드라마 72.9%, 음악 71.9%로 나타났다. K팝이 한국을 인식하는 첫 입구로 작동하고 있지만 실제 소비는 여러 분야로 분산됐다. 음악을 통해 형성된 관심이 다른 한국 콘텐츠와 생활문화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K팝의 성과를 한국 콘텐츠 전체의 자동적인 성공으로 연결할 수는 없다. BTS의 팬이 한국 영화와 드라마, 패션 상품을 반드시 소비하는 것도 아니다. 스타 한 팀의 영향력이 신인과 독립 창작자, 중소 제작사의 해외 진출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BTS가 연 세계시장과 다음 창작자가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유통 기반 사이에는 차이가 남아 있다. 번역과 현지 홍보, 공연 인프라, 계약과 저작권, 플랫폼 노출을 감당할 자본이 없는 창작자는 세계 관객과 접촉하기 어렵다. BTS의 기록이 한국 문화산업 전체의 구조적인 경쟁력으로 남으려면 스타의 인기를 반복해서 활용하는 방식보다 다양한 창작자가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세계 음반시장도 한 국가의 승인만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고 있다. 2025년 세계 음반산업 매출은 317억달러로 전년보다 6.4% 늘었다. 유료 스트리밍 이용자는 8억3700만명으로 증가했고 세계 모든 지역에서 매출이 성장했다. 스트리밍은 전체 음반매출의 69.6%를 차지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여전히 세계 최대 음반시장이다. 미국 시장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스트리밍과 팬 네트워크가 확대되면서 미국에서 먼저 성공한 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단일 경로 외에, 여러 국가의 팬이 동시에 음악을 선택하고 각 지역에서 공연 수요와 소비를 만드는 경로가 함께 형성됐다.
한국어 음악이 미국 라디오와 시상식의 선택을 받기 전에도 남미와 유럽, 아시아와 중동에서 청취될 수 있다. 지역별 팬은 같은 노래를 듣지만 서로 다른 언어로 의미를 해석하고 각자의 시장에서 소비를 만든다.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이 한곳에서 여러 지역으로 완전히 이동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중심이 모든 가치를 결정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래미의 아시안 팝 부문 신설도 다극화된 음악시장에 대한 대응이다. 아시아 음악의 규모와 영향력을 더 이상 기존 부문 밖에 둘 수 없다는 판단이 제도 변화로 이어졌다. 동시에 아시아 음악을 별도 지역명으로 묶는 방식은 미국 음악산업이 세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남긴 오래된 분류 관성을 드러냈다.
BTS의 불출품은 그래미 개혁 전체를 부정하는 선언으로 확대할 수 없다. 신설 부문을 통해 처음 그래미 후보와 수상 기회를 얻는 아시아 음악인도 나올 수 있다. BTS가 선택한 방식이 모든 아시아 창작자의 이해관계와 같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BTS는 세계적인 시장과 팬덤을 이미 확보한 위치에서 출품을 거부했다. 아직 미국 음반시장과 언론, 시상식 노출이 절실한 신인에게 그래미 후보는 활동 범위를 바꿀 수 있는 기회다. 같은 제도도 아티스트의 위치에 따라 다른 가치와 부담을 갖는다.
그래미가 첫 아시안 팝 후보를 어느 범위에서 선정하는지, 후보들이 제너럴 필드와 기존 팝 부문에서도 함께 평가받는지는 신설 부문의 실제 성격을 가를 자료가 된다. 아시아 음악을 주요 부문으로 연결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고, 본상 진입을 늦추는 별도 구역으로 남을 수도 있다.
아미의 참여형 문화도 이상적인 공동체로만 남아 있지 않다. 번역과 홍보, 스트리밍과 데이터 관리에 들어간 시간은 팬 개인의 생활과 노동에서 나온다. 구매와 재생 기록이 충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굳어지면 경제적 여유와 시간이 부족한 팬은 주변으로 밀릴 수 있다.
플랫폼은 세계 팬을 연결하면서 팬의 게시물과 체류시간, 구매 기록을 사업 자산으로 축적한다. 팬은 아티스트와 가까워졌지만 플랫폼이 정한 계정과 결제, 노출 규칙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됐다. 참여 권력이 커진 만큼 기업이 팬의 노동과 데이터를 이용하는 범위도 넓어졌다.
한국 스타의 글로벌 파워가 오래 유지되려면 팬의 규모보다 관계의 조건이 중요하다. 티켓 가격과 수수료를 미리 알 수 있는 판매 구조, 창작자와 공연 스태프에 대한 정당한 보상, 팬 번역과 창작물의 출처·동의 기준, 플랫폼의 개인정보와 데이터 관리가 문화적 신뢰를 결정한다.
BTS를 국가 홍보의 상징으로만 사용하는 방식도 같은 한계를 갖는다. 음악과 팬덤이 먼저 만든 세계적 관계를 정부와 기업의 성과로 흡수하면 문화가 형성된 과정은 사라지고 숫자와 행사만 남는다. 정책과 산업은 BTS의 이름을 반복하는 것보다 다음 창작자가 번역과 유통, 공연과 저작권 보호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넓혀야 한다.
‘진짜 문화시대’는 한국 문화가 미국 문화를 이겼다는 뜻이 아니다. BTS는 미국 플랫폼과 음원시장, 공연산업을 활용했고 미국의 팬과 창작자, 언론과 계속 관계를 맺고 있다. 문화적 승패나 국가 간 경쟁으로 압축하면 BTS와 아미가 만들어온 초국적 관계가 국가주의의 언어 안에 다시 갇힌다.
변화는 문화의 가치를 승인하는 권한이 한 기관에 집중되지 않는 데 있다. 그래미는 여전히 강한 음악상이고 수상 기록은 아티스트의 경력과 시장에 영향을 준다. 그래미가 선택하지 않은 음악도 세계적인 공연과 팬덤, 언어와 도시를 연결하는 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게 됐다.
BTS의 음악이 세계로 이동한 과정에서 팬은 단순한 관객으로 머물지 않았다. 번역자와 기록자, 기부자와 여행자, 공연 참여자와 문화 해설자로 움직였다. 문화는 아티스트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완성품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와 생활 안에서 이어가는 관계로 확장됐다.
관객의 참여가 커졌다고 아티스트와 팬이 대등한 권한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음악과 영상의 소유권, 공연 일정과 상품 가격, 플랫폼의 운영 조건은 기업과 제작자가 결정한다. 팬이 강한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됐지만 계약과 수익 배분, 데이터 이용을 결정할 권리까지 얻은 것은 아니다.
BTS와 아미가 만든 문화권의 지속성은 동원 규모보다 권리의 배분에서 갈리게 된다. 팬의 시간과 창작이 존중되고, 아티스트와 스태프가 공정한 보상을 받으며,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유지돼야 참여형 문화도 오래 남을 수 있다.
제69회 그래미의 출품은 8월 21일 마감된다. 후보 명단은 11월 16일 발표되고 시상식은 2027년 2월 7일 열린다. BTS는 후보 명단에 들어가지 않지만 첫 아시안 팝 후보들이 주요 부문에도 함께 이름을 올리는지는 그래미가 세계 음악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범위를 기록하게 된다.
뉴욕의 ‘BTS THE CITY ARIRANG’은 8월 3일까지 이어진다.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공연이 끝난 뒤에도 팬들이 만든 영상과 기록, 번역과 후기는 다시 세계 여러 지역으로 이동한다. 공연을 보기 위해 뉴욕으로 모인 팬은 각자의 도시로 돌아가 BTS의 음악과 경험을 다른 언어로 이어가게 된다.
그래미 트로피는 한 해의 수상자를 기록한다. BTS와 아미가 구축한 문화권은 음악이 발표되고 번역되며 공연과 도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동하는 전 과정을 남긴다. 미국이 문을 열어야 세계로 나갈 수 있었던 질서에서 미국의 시상식도 세계가 이미 선택한 음악을 설명해야 하는 질서로 이동했다.
BTS가 만드는 진짜 문화시대는 트로피가 사라진 시대가 아니다. 트로피만으로 문화의 중심을 정할 수 없게 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