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라보 ‘SHIU 25’, 베이징 사합원 서사 앞세운 파우더 우디 향수
시우·아이리스·올리바넘·웜 우드 조합…향조보다 헤위안 랩의 공간 이미지와 한정 유통 구조 부각
[KtN 박채빈기자]르 라보(Le Labo)가 베이징 시티 익스클루시브 향수 ‘SHIU 25’를 선보인다. 시우(Shiu)와 파우더리 아이리스, 올리바넘(olibanum), 따뜻한 목재를 조합한 오 드 퍼퓸이다. 베이징에서는 연중 판매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2026년 9월 한 달 동안만 유통한다.
‘SHIU 25’는 꽃과 과일을 여러 층으로 쌓기보다 아이리스의 분말감과 올리바넘의 수지 향, 목재 계열의 온기를 한데 묶었다. 르 라보가 호 트리(Ho tree)의 잔잔한 면을 표현했다고 밝힌 시우가 제품명과 향의 중심을 차지한다.
파우더리 아이리스는 분가루와 마른 직물을 연상시키는 건조한 질감을 만든다. 유향 계열의 올리바넘은 수지 특유의 쌉싸래함과 묵직함을 보태고, 따뜻한 목재 향은 전체 구성을 낮고 차분하게 잡는다. 밝은 시트러스나 짙은 과일 향, 구르망 계열의 단맛과는 거리를 둔 파우더 우디 계열이다.
향조의 수는 많지 않다. 아이리스와 올리바넘, 목재를 중심으로 범위를 좁히면서 향의 화려한 변화보다 비슷한 온도와 질감을 이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첫 향과 잔향을 구분하는 구체적인 노트 배열은 제시하지 않았다. 어느 향조가 앞에 나오고 얼마나 오래 남는지 판단할 정보도 제한적이다.
베이징 왕푸 센트럴(Wang Fu Central) 하우스 19의 헤위안 랩(He Yuan Lab)이 제품 기획의 배경이 됐다. 헤위안 랩은 안뜰을 가운데 두고 건물을 둘러 배치한 중국 전통 주거 양식 사합원(Siheyuan)을 복원한 매장이다.
르 라보는 베이징의 거리와 고층 건물, 대도시의 속도보다 사합원 내부의 정적인 분위기를 선택했다. 향수의 도시적 성격도 베이징 전체보다 헤위안 랩 한 곳에 집중됐다. 오래된 목재와 안뜰, 낮은 조도, 절제된 실내를 ‘고요’와 ‘내면의 균형’이라는 말로 묶었다.
글로벌 브랜드 사장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데버라 로이어(Deborah Royer)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이번 향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발언의 중심도 조향 기법이나 원료의 특성보다 휴식과 명상에 놓였다.
베이징 전용 향수라는 이름과 달리 지역의 식물, 음식, 기후, 거리의 냄새를 직접 끌어온 구성은 아니다. 사합원과 헤위안 랩의 분위기를 향의 배경으로 삼고, 아이리스와 수지, 목재를 배치했다. 도시를 향으로 옮겼다기보다 특정 매장의 공간 이미지를 향수로 확장한 접근에 가깝다.
르 라보의 시티 익스클루시브는 도시별 제품을 해당 지역에서 상시 판매하고, 일정 기간에만 세계 시장에 내놓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SHIU 25’도 베이징에서는 연중 판매하지만 다른 지역의 판매 기간은 9월로 제한된다.
판매 방식은 향의 구성과 별개로 희소성을 만든다. 특정 도시에서만 상시 구매할 수 있다는 조건이 제품명과 매장 서사에 결합된다. 향수 자체의 차별성뿐 아니라 구매 지역과 시기를 제한하는 유통 구조까지 상품 가치에 포함하는 방식이다.
용기는 르 라보가 기존 향수에 사용해 온 투명 유리병과 금속 캡, 흰색 라벨을 그대로 적용했다. 라벨에는 향수명과 제조일, 구매자 이름이 들어간다. 베이징 전용 제품을 위해 병의 형태나 색상을 새로 설계하지는 않았다.
원목 프레임과 골판지를 조합한 전시 구조물은 운송 상자를 닮았다. 목재 안쪽에 향수병을 고정하고 ‘FRAGILE’과 ‘CITY EXCLUSIVES’ 문구를 찍었다. 거칠게 남긴 재료의 결은 와비사비(wabi-sabi) 미감을 내세운 헤위안 랩의 실내와 연결된다. 향수병보다 주변 구조물에 베이징 매장의 공간 정체성을 더 많이 실은 구성이다.
‘SHIU 25’는 아이리스와 올리바넘, 목재로 향조를 제한했지만 제품 설명의 상당 부분을 사합원과 고요, 명상에 할애했다. 정규 제품의 용량과 가격, 지속력과 확산력에 관한 설명은 빠졌다. 향수 자체보다 헤위안 랩의 건축과 베이징 한정 판매라는 조건이 먼저 드러나는 신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