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70년①] 홍콩 소더비, 경매장 밖에 펼친 70년

1950년대 초기작부터 2010년대 판화까지 한자리에…센트럴 상설 전시로 넓힌 경매회사의 사업 영역

2026-08-01     임민정 기자
Sotheby's Maison Presents Major Yayoi Kusama Career Retrospective Exhibition. 사진=Sotheby's Hong Ko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홍콩 센트럴 랜드마크 채터의 소더비 메종에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의 70년이 펼쳐졌다. 1950년대 종이 작업부터 2010년대 회화와 실크스크린 판화까지 제작 시기와 매체가 다른 작품들이 1층 살롱을 채웠다. 전시는 2026년 8월 20일까지 이어진다.

작품은 ‘Nature and Nurture’, ‘Fauna and Flora’, ‘The Urban and Pop’ 등 세 주제로 나뉜다. 일본에서 보낸 초기 활동기와 미국 뉴욕 시기, 일본으로 돌아온 뒤의 작업을 자연과 동식물, 도시와 소비문화라는 흐름으로 묶었다. 호박과 물방울무늬로 널리 알려진 쿠사마를 꽃과 포도, 산, 동물, 핸드백까지 확장해 살피는 구성이다.

전시 장소는 미술관이 아닌 경매회사 소더비의 상설 공간이다. 경매 출품작을 며칠 동안 공개하는 프리뷰와 달리 두 달 넘게 운영된다. 작가의 생애를 돌아보는 전시 형식 안에는 경매 일정 밖에서도 관람객과 컬렉터를 만나려는 소더비의 홍콩 사업 구상이 담겼다.

소더비 메종은 2024년 7월 홍콩 금융·명품 소비의 중심지인 센트럴에 문을 열었다. 랜드마크 채터의 지상층과 1층에 걸친 전체 면적은 약 2만4000제곱피트다. 경매와 프라이빗 세일, 기획전, 즉시 구매 상품을 한 건물에 배치한 아시아 거점이다.

랜드마크 채터 주변에는 금융회사와 업무시설, 명품 매장이 밀집해 있다. 건물을 잇는 보행 연결로를 통해 직장인과 쇼핑객, 관광객이 오간다. 소더비가 밝힌 랜드마크 단지의 월 방문객은 130만명이다. 작품을 사려는 컬렉터가 찾아가던 경매장과 달리 센트럴을 지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전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입지다.

관람과 거래의 거리도 가까워졌다. 공개 전시를 둘러본 관람객은 같은 건물에서 작품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가격이 정해진 미술품과 명품 수집품을 바로 구매하는 공간도 마련됐다. 전시와 상담, 경매, 프라이빗 세일이 나뉘지 않고 한곳에서 이어진다.

쿠사마는 소더비 메종의 운영 방식을 알리는 데 유리한 작가다. 1929년 일본 나가노에서 태어나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뉴욕에서 반복되는 그물과 점, 유기적 형상을 발전시켰다. 호박과 물방울무늬는 현대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회화와 조각, 설치를 넘어 패션과 상품 협업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면서 미술관 관객과 명품 소비자 사이의 경계도 일찍 넘어섰다.

Sotheby's Maison Presents Major Yayoi Kusama Career Retrospective Exhibition. 사진=Sotheby's Hong Ko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소더비 살롱은 호박과 인피니티 네트만 앞세우지 않았다. 초기 종이 작업과 꽃, 포도, 산, 동물, 핸드백을 함께 걸었다. 쿠사마의 대표 도상을 보러 온 관람객이 서로 다른 시기와 매체의 작업을 차례로 만나도록 전시 범위를 넓혔다.

크기가 다른 작품을 함께 배치한 전시 방식도 눈에 띈다. 대형 회화 주변으로 종이 작업과 판화가 이어진다. 재료와 제작 시기,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작품을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다. 대형 회화를 찾는 기존 컬렉터부터 판화와 소형 작품으로 수집을 시작하려는 관람객까지 폭넓게 끌어들일 수 있는 구성이다.

1959년작 ‘The Pacific Ocean No. A.B.X.’는 쿠사마의 뉴욕 초기 작업을 보여준다. 미국으로 건너간 직후 잉크와 파스텔, 과슈로 제작했다. 작은 형상이 반복되며 작품 전체로 번지는 구성에는 이후 인피니티 네트로 이어지는 조형 방식이 담겼다. 호박의 작가로 굳어진 쿠사마를 1950년대 뉴욕 미술계에서 활동한 전후미술 작가로 되돌려 놓는다.

1988년작 ‘Sunset Grapes’에서는 포도가 선명한 색과 반복 무늬로 바뀐다. 1984년작 ‘Handbag’에는 도시의 일상용품과 소비문화가 들어왔다. 자연과 생물, 소비재를 오간 쿠사마는 대상을 되풀이하고 증식시키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바꿨다. 세 개의 전시 주제는 서로 달라 보이는 소재들이 70년 동안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보여준다.

Sotheby's Maison Presents Major Yayoi Kusama Career Retrospective Exhibition. 사진=Sotheby's Hong Ko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콩은 쿠사마 작품의 주요 거래처 가운데 하나다. 2023년 4월 소더비 홍콩 경매에 나온 대형 청동 조각 ‘Pumpkin (L)’은 수수료를 포함해 6263만8000홍콩달러에 팔렸다. 당시 쿠사마 조각의 경매 최고가였다. 같은 경매에 출품된 2011년 회화 ‘A-Pumpkin (BAGN8)’은 5517만홍콩달러에 거래됐다.

뉴욕 초기 작품도 수천만홍콩달러대에 진입했다. 1959년작 ‘Interminable Net #4’는 2019년 소더비 홍콩에서 6254만홍콩달러에 낙찰됐다. 2023년 홍콩 경매에서는 1953년과 1955년에 제작된 작품들이 추정가 상단을 넘어섰다. 2024년 홍콩 경매에 출품된 쿠사마 작품 세 점도 모두 낙찰됐다.

이번 전시는 이미 높은 가격을 형성한 호박과 인피니티 네트 주변에 초기작과 종이 작업, 비대표 도상을 배치했다. 특정 이미지에 몰렸던 관심을 쿠사마의 다른 제작 시기와 작품군으로 넓힐 수 있는 방식이다. 미술사적 연대기를 따라가는 관람 동선이 서로 다른 매체와 가격대의 작품을 소개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홍콩 관객에게 쿠사마는 낯선 작가가 아니다. M+가 2022년 11월부터 2023년 5월까지 개최한 ‘Yayoi Kusama: 1945 to Now’에는 28만명 이상이 다녀갔다. 회화와 조각, 대형 설치, 기록물을 아우른 전시는 쿠사마를 물방울무늬와 호박에 머물지 않는 전후 현대미술 작가로 소개했다.

M+가 넓힌 관객층은 3년 뒤 센트럴의 소더비 메종과 만났다. 미술관에서 쿠사마의 작품 세계를 접한 관람객과 경매에서 작품을 거래해 온 컬렉터가 같은 도시에 존재한다. 소더비는 별도의 작가 설명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초기작과 판화, 소형 작품으로 관심을 넓힐 수 있다.

Sotheby's Maison Presents Major Yayoi Kusama Career Retrospective Exhibition. 사진=Sotheby's Hong Ko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소더비 살롱의 전시를 미술관급 대규모 회고전과 같은 성격으로 보기는 어렵다. 공개된 전시장에는 회화와 종이 작업, 판화가 주로 걸렸다. 쿠사마의 활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형 조각과 퍼포먼스 기록, 패션, 인피니티 미러룸까지 망라한 구성은 아니다. 70년의 주요 시기와 소재를 골라 보여주는 회고전 형식의 기획전에 가깝다.

미술관 회고전과 규모는 다르지만 소더비가 전시를 운영하는 방식은 이전 경매 프리뷰보다 길고 넓다. 작품을 판매 직전에만 공개하지 않고 생애와 제작 흐름을 설명하는 전시로 장기간 선보인다. 관람객은 경매 번호와 추정가보다 작품을 먼저 접하고, 소더비는 경매가 없는 기간에도 새로운 관람객을 맞는다.

쿠사마의 높은 인지도는 경매회사의 문턱을 낮췄다. 초기작과 비대표 도상은 호박에 집중됐던 관심을 다른 작품군으로 옮긴다. 센트럴의 유동인구와 상설 전시, 컬렉터 상담을 한 공간에 결합하면서 소더비의 사업 영역도 특정 경매일의 낙찰 중개에서 연중 운영되는 미술·명품 플랫폼으로 넓어졌다.

전시는 8월 20일까지 계속된다. 소더비 메종이 한자리에 모은 초기작과 종이 작업, 대표 도상은 쿠사마의 70년을 홍콩 관객에게 다시 펼쳐 보인다. 전시가 끝난 뒤 열릴 홍콩 하반기 경매에서는 초기작과 비대표 도상의 출품 비중, 작품별 추정가와 낙찰 결과가 소더비의 다음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