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E167②] 마시 팔머, 임신중지에 쓰인 약초의 역사와 독성
IPE167 대상작 ‘Seeds of Strength and Resilience’…‘로 대 웨이드’ 폐기 전 시작해 판결 뒤 범위 확장
[KtN 신명준기자]미국 사진가 마시 팔머(Marcy Palmer)가 연작 ‘Seeds of Strength and Resilience’로 영국왕립사진협회(Royal Photographic Society·RPS) 제167회 국제사진전(International Photography Exhibition 167·IPE167) 대상을 받았다. 피임과 임신중지에 사용돼 온 식물을 조사하고, 약효와 독성이 공존했던 역사를 사진과 금박으로 옮긴 작업이다.
연작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2022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기 전 시작됐다. 1973년 로 판결은 미국 헌법이 여성의 임신중지 선택을 보호한다는 근거가 됐다. 연방대법원은 2022년 ‘도브스 대 잭슨 여성보건기구(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 판결을 통해 로 판결과 1992년 케이시 판결을 폐기했다. 연방헌법 차원의 보호가 사라지면서 임신중지 허용 범위와 의료 접근 조건은 주별로 달라졌다.
팔머는 판결 이후 연작의 범위를 넓혔다. 과거 여성들이 피임과 임신중지를 위해 이용했던 식물의 종류와 사용법을 조사하는 데서 출발해, 의료 접근이 법과 거주 지역에 따라 달라진 미국의 현실까지 작업에 담았다. 임신·출산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식물의 사용사와 연결한 구성이다.
검은 바탕에는 말린 잎과 줄기가 타원형으로 얽혀 있다. 회백색 식물 사이로 금박이 이어지고, 좌우에는 노란 꽃이 놓였다. 작품 제목은 ‘페니로열은 수세기 동안 사용됐지만 잘못 복용하면 치명적이다’라는 경고문에 가깝다.
페니로열은 민간요법에서 생리 촉진과 임신중지를 목적으로 사용된 적이 있는 식물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페니로열 오일이 심각한 간 손상과 다발성 장기부전, 사망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약초라는 이름이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작품 제목에 그대로 드러난다.
팔머도 약초를 이용한 임신중지를 권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식물의 성분과 복용량을 통제하기 어렵고 안전성과 효과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작이 다루는 대상은 대체의학의 가능성이 아니라, 의료 제도 밖에서 여성들이 감수했던 위험에 가깝다.
식물은 표본처럼 놓이지만 뿌리와 줄기는 인체의 윤곽과 겹친다. 가슴과 어깨를 닮은 형태 위로 잎이 솟고, 아래쪽에는 가느다란 뿌리가 길게 이어진다. 식물이 지닌 생명력과 여성의 신체가 한 작품 안에서 맞물리는 구성이다.
팔머는 식물 자체가 남기는 흔적을 이용하는 피토그램과 사이아노타입, 아카이벌 잉크 출력, 금박 작업을 함께 사용했다. 바탕이 된 고조지는 얇지만 긴 섬유로 만들어져 쉽게 찢어지지 않는다. 팔머는 연약함과 질김이 함께 있는 종이의 성질을 여성의 생존력과 연결하고, 금박에는 희망의 의미를 담았다.
‘Mentha’에는 잎과 꽃이 검은 얼룩처럼 번진 식물이 세로로 놓였다. 금박은 줄기와 잎의 외곽을 따라 이어지다가 중간에서 끊어진다. 식물도감에 가까운 구도를 취하면서도 온전한 표본보다 손상되고 사라지는 형태에 무게를 뒀다.
검은 바탕과 금박의 대비는 작품의 장식성을 먼저 부각한다. 작품명과 연작 설명을 읽지 않으면 식물의 형태만으로 임신중지의 역사와 2022년 미국의 법률 변화를 파악하기 어렵다. 정치적 구호를 직접 사용하지 않은 대신 전시장 설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작품의 사회적 배경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을 경우 여성의 의료 접근권보다 식물 이미지와 금박 기법만 남을 수 있다.
IPE167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000파운드와 RPS 1년 회원권이 주어진다. 팔머의 수상작은 8월 7일부터 9월 11일까지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전시된다. IPE167은 런던 전시를 마친 뒤 2026년 10월 24일부터 2027년 1월 9일까지 톤턴 뮤지엄, 2027년 4월 5일부터 28일까지 런던 왕립지리학회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