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XTANT①] 마요르카에서 시작된 장기 문화협력

벨베르성 퍼포먼스에서 여성 장학·양모 연구까지…공예를 전시에서 전승으로

2026-08-03     임우경 기자
LOV. Foundation and XTANT Reframe Craft as Living Culture. 사진=LOV. Foundati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2026년 5월 9일, 스페인 마요르카 팔마의 벨베르성. 원형 중정에 청록색과 흰색의 조형 의상을 입은 공연자들이 섰다. LOV. Foundation과 콜롬비아계 이스라엘 작가 오를리 아난(Orly Anan)이 함께 만든 ‘We Grow in Circles’였다. 중세 성곽의 돌벽과 직물, 사람의 움직임이 만난 공연은 LOV. Foundation과 XTANT가 장기 문화협력을 공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We Grow in Circles’는 진주와 달빛을 닮은 흰색, 나선, 청록, 사다리, 생명의 나무를 여섯 막의 상징으로 삼는다. 단색 의상과 움직임, 음악을 결합해 기억과 순환, 공존을 풀어낸다. 2025년 10월 영국 런던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은 이듬해 마요르카의 중세 성곽으로 자리를 옮겼다. LOV. Foundation은 공연을 예술을 통한 공존의 가능성을 다루는 ‘평화 활성화(peace activation)’로 소개했다.

벨베르성에는 마요르카 양모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설치작업 ‘Sueños de Lana’도 마련됐다. 섬에서 이어져 온 양모 생산과 가공, 산업 쇠퇴, 최근의 재생 움직임을 한 공간에 담았다. 오를리 아난의 공연이 몸과 상징을 앞세웠다면 ‘Sueños de Lana’는 토지와 목축, 재료와 제작 기술을 전면에 놓았다.

LOV. Foundation and XTANT Reframe Craft as Living Culture. 사진=LOV. Foundati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5월 8일부터 12일까지 열린 ‘XTANT NOMAD 2026’에는 38개국 작가 87명이 참여했다. 행사팀을 합치면 90명이다. 7회째를 맞은 행사는 유목·목축 공동체의 생활과 제작 기술을 주제로 직조와 염색, 자수, 매듭, 양모 작업을 한자리에 모았다.

팔마 도심의 14세기 고택 Can Vivot에서는 작품 전시와 제작자 시장, 토론, 영화 상영이 이어졌다. 전시장을 채운 섬유에는 서로 다른 지역의 재료와 기술, 생활방식이 함께 담겼다. 본전시와 토론은 5월 9일부터 나흘 동안 무료로 개방됐다. 관람객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데서 더 나아가 제작자로부터 재료의 산지와 작업 과정, 기술의 계보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카비타 파르마르(Kavita Parmar)가 설립한 XTANT는 2020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섬유 행사 ‘TEXTO’를 토대로 성장했다. 산업화 이후 섬유가 생산지와 제작자, 지역문화에서 멀어진 현실을 짚고 원료의 산지와 제작 기술,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기록해 왔다.

알렉산드라 시먼(Alexandra Seaman)이 설립한 LOV. Foundation은 예술과 문화 활동을 평화와 공존, 여성 리더십, 자연 보전에 접목해 왔다. XTANT가 장인·작가·연구자 네트워크와 전시 기반을 제공하고, LOV. Foundation은 공연과 문화여행, 장학 지원, 연구 사업을 더했다. 서로 다른 활동 영역은 공예를 사람과 장소, 지식의 관계 속에서 다룬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만났다.

두 기관은 공동창작과 인간의 존엄, 세대 간 지식, 재료의 온전성, 제작 공동체에 대한 존중을 협력 원칙으로 내세웠다. 공예품의 희소성이나 장식적 가치보다 재료를 생산하고 기술을 이어온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는 내용이다.

첫 공동 문화여행에는 ‘lov.YATRA’라는 이름이 붙었다. ‘야트라(yatra)’는 목적을 지닌 여행이나 순례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다. 작가와 문화기획자, 문화계 인사들은 미술관과 작업실, 종교건축, 고택, 농장을 따라 이동하며 마요르카에 축적된 예술과 생활기술을 살폈다.

필라르 이 호안 미로 재단(Fundació Pilar i Joan Miró)에서는 호안 미로(Joan Miró)의 작업실과 기록물, 조각 정원을 둘러봤다. 마요르카 대성당 라 세우(La Seu)에서는 일반 관람 동선 밖의 공간까지 방문했다. Can Vivot에서는 14세기부터 이어진 건축과 가문의 기록을 접했다.

LOV. Foundation and XTANT Reframe Craft as Living Culture. 사진=LOV. Foundati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세라 데 트라문타나의 Son Moragues에서는 오래된 올리브밭과 농업, 토지 관리가 지역 생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세라 데 트라문타나는 석축과 수로, 올리브 재배, 산간 마을의 생활이 오랜 시간 쌓여 형성된 문화경관이다.

브루트 레스토랑(Brut Restaurant)의 계절 식재료와 발효 중심 조리, 바 라상(Bar LaSang)의 자연 와인과 독립 생산자도 일정에 포함됐다. 양모에서 출발한 이동 경로가 농업과 음식까지 이어지면서 재료를 기르고 가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문화여행 안으로 들어왔다.

미로의 작업실에는 작품을 낳은 도구와 기록이 남아 있다. Son Moragues의 농지는 지금도 올리브와 농산물을 생산한다. Can Vivot와 라 세우 역시 전시와 관람, 종교 활동이 이어지는 공간이다. lov.YATRA는 마요르카의 문화유산을 과거에 머문 유적으로 다루지 않고 현재의 창작과 생산이 계속되는 장소로 묶었다.

XTANT 본전시와 토론은 일반 관람객에게 열렸고 lov.YATRA는 소규모 방문 일정으로 운영됐다. 공개 행사는 지역 주민과 국제 제작자가 만날 수 있는 범위를 넓혔다. 소규모 일정은 작업실과 문화기관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제작자와 직접 대화하는 데 비중을 뒀다.

마요르카 일정 이후에는 장학과 연구가 협력의 중심에 놓였다. LOV. Foundation은 XTANT 안에 별도의 전시 공간인 lov.gallery를 마련하고 이리니 고누(Irini Gonou), 야라 셰하디(Yara Shehady), 아리엘라 벤 모셰(Ariela Ben Moshe)의 작업을 소개했다. 셴카르 칼리지(Shenkar College) 섬유디자인학과 학생과 졸업생도 국제 제작자들과 작업을 공유했다.

XTANT 리더십 프로그램은 해마다 25명을 선발해 직조와 수선, 천연염색 실습과 문화유산 보존, 재생 디자인에 관한 토론을 진행한다. LOV. Foundation은 현재까지 여성 4명의 참가를 지원했다.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행사에서 공예를 이어갈 사람에게 투자하는 장기 사업으로 협력 범위가 넓어졌다.

공동연구 사업인 ‘울 리서치 인덱스(The Wool Research Index)’는 양모와 토지, 생산 공동체의 관계를 기록한다. 농민과 장인, 연구자가 가진 정보를 모아 양모의 생산지와 가공 과정, 지역경제를 함께 살피는 작업이다. 벨베르성의 ‘Sueños de Lana’가 마요르카 양모의 현실을 예술로 풀었다면 울 리서치 인덱스는 조사와 기록으로 생산망을 남긴다.

양측은 협력 기간과 연차별 사업 규모, 울 리서치 인덱스의 첫 공개 일정을 아직 밝히지 않았다. 여성 참가자 지원과 양모 연구가 해마다 이어지고 마요르카 제작자와의 관계가 상시 사업으로 자리 잡을수록 장기 문화협력의 내용도 구체화될 전망이다.

XTANT는 2027년 4월 30일부터 5월 5일까지 차기 리더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LOV. Foundation의 추가 장학 지원과 다음 lov.YATRA 일정, 울 리서치 인덱스의 조사 범위가 마요르카에서 시작된 협력의 후속 일정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