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콘텐츠③] 아랍어 AI, 3만8,000권과 학습권의 거리
UAE 자이스 70B·팔콘 아랍어와 한국 K-컬처 AI…방언 검수·저작권·반복계약으로 갈리는 상용화
[KtN 최기형기자]아부다비 아랍어 센터와 아마존은 2026년 1월 15일 ‘디지털 아랍어 도서관(Digital Arabic Library)’을 열었다. 아랍어 도서 3만8,000종 이상을 한곳에 모았고, 구성은 킨들(Kindle) 전자책 3만3,000종과 오더블(Audible) 오디오북 5,000종이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도 1,000종을 넘는다. 4억 명이 넘는 아랍어 이용자를 겨냥한 디지털 유통망이 마련된 셈이다.
전자책·오디오북의 판매·열람 권리와 인공지능 학습 권리는 같은 계약이 아니다. 디지털 도서관에 작품과 저자·주제·이용자 평가가 축적되면 검색과 자동 분류, 추천 서비스의 기반은 넓어진다. 공개된 사업 내용에는 수록 도서를 생성형 AI 학습에 제공한다는 조건이 포함돼 있지 않다. 3만8,000종의 유통 규모는 아랍어 학습데이터 규모와 구분해야 한다.
자이스 70B와 팔콘 아랍어, 모델보다 달라진 데이터
아부다비의 인셉션(Inception)은 2024년 자이스 70B(Jais 70B)와 관련 모델 20종을 공개했다. 모델 크기는 5억9,000만 개부터 700억 개 매개변수까지 나뉜다. 자이스 70B의 추가 학습에는 3,700억 개 토큰이 사용됐고, 아랍어 토큰이 3,300억 개를 차지한다. 고객 상담과 콘텐츠 생성, 데이터 분석 등 아랍어 자연어 처리 서비스의 기반 모델을 겨냥했다.
아부다비 첨단기술연구소(Technology Innovation Institute, TII)는 2025년 5월 70억 개 매개변수의 팔콘 아랍어(Falcon Arabic)를 내놨다. 번역된 아랍어 문서보다 현대표준아랍어와 지역 방언으로 작성된 원어 데이터를 중심으로 학습한 모델이다. TII는 같은 등급의 아랍어 모델 가운데 성능이 가장 높다고 발표했지만, 평가는 공개 벤치마크 기준이다. 실제 번역·더빙·추천 서비스의 품질은 플랫폼과 장르, 이용 국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두 모델의 차이는 매개변수 수에만 있지 않다. 자이스는 아랍어 토큰 비중을 높였고, 팔콘 아랍어는 원어 데이터와 방언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랍어 AI 경쟁이 영어 모델을 번역해 적용하는 단계에서 현지 언어자료의 수집·정제와 국가별 표현을 반영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69억5,000만 달러 광고시장, 현지화 수요의 가격표
중동·북아프리카(MENA)의 디지털 광고비는 2024년 69억5,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9.8% 증가했다. 검색광고는 24.7%, 리테일미디어 등을 포함한 기타 디스플레이 부문은 30.4% 늘었다. UAE 단독 시장이나 AI 광고비를 집계한 수치는 아니지만, 국가·언어·플랫폼별 광고 문구와 영상·음성을 빠르게 바꿔야 하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시장 지표다.
한국 드라마·예능·게임을 걸프 지역과 이집트, 레반트 지역에 동시에 유통하려면 자막과 더빙만 바꿔서는 부족하다. 제목과 줄거리, 등장인물, 장르, 검색어, 광고 문구까지 시장별로 조정해야 한다. 같은 아랍어 표현도 국가와 세대, 사회적 관계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현지화 대상 국가가 늘수록 변환할 콘텐츠와 검수 인력, 플랫폼 운영비도 함께 증가한다.
캠브에이아이(CAMB.AI)와 UAE 클라우드 기업 하이퍼퓨전(Hyperfusion)은 2025년 9월 UAE GPU에서 작동하는 다국어 음성·실시간 번역 서비스를 발표했다. 100개가 넘는 언어를 지원하고 아랍어는 현대표준아랍어와 걸프·레반트·이집트 방언을 별도 언어팩으로 제공한다. 뉴스와 스포츠 중계, 공공서비스처럼 지연시간이 짧아야 하는 음성 서비스까지 적용 범위를 넓힌 구조다. 2026년 2월 공개된 지원 목록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시리아·모로코 아랍어가 음성합성 항목에 따로 올라 있다.
한국은 문화예술 온톨로지와 이용조건 표시부터
이재명정부의 2026년 문화체육관광 연구개발 예산은 1,499억 원이다. 신규 연구개발 예산 약 692억 원 가운데 문화예술·콘텐츠 분야 신규 지원은 약 543억 원이다. ‘K-컬처 AI 산소공급 프로젝트’에는 산업 인공지능 전환과 소버린 AI, 공공 인공지능 전환, 전문인력 양성이 포함됐다. 문화예술 온톨로지 기반 대규모언어모델 연계 기술개발도 새 사업으로 들어갔다.
문화예술 온톨로지는 작품·인물·시대·장르·권리자 사이의 관계를 기계가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작업이다. 작품 파일을 많이 모으는 것만으로는 검색·추천·현지화 정확도를 확보하기 어렵다. 제목과 줄거리, 등장인물 관계, 배경 시대, 이용 가능한 권리 범위가 연결돼야 콘텐츠 특화 AI가 작품 맥락을 다룰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6년 1월 공공저작물의 AI 학습 활용 여부를 표시하는 공공누리 제0유형과 AI유형을 신설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2월 26일 생성형 AI 학습과 공정이용을 다룬 안내서를 발간했고, 3월에는 AI·저작권 법제정비단이 출범했다. 한국 정책은 문화 데이터를 모으는 단계와 함께 이용조건을 기계가 식별하도록 만드는 단계에 들어섰다.
디지털 유통권과 AI 학습권 사이의 계약
디지털 아랍어 도서관은 향후 3년 동안 중동·북아프리카 출판사와 협력해 도서 수를 늘릴 계획이다. 도서 접수와 디지털화, 글로벌 유통은 아라북버스(Arabookverse)가 담당한다. 판매 가능한 전자책과 오디오북이 늘면 아랍어 검색·추천 시장도 커질 수 있다. AI 학습에 사용할 작품과 이용범위, 보상조건은 별도의 권리표시와 계약이 필요하다.
한국의 공공누리 AI유형은 공공저작물부터 이용 가능 여부를 표시한다는 점에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민간 영화·드라마·음악·웹툰은 권리 구조가 더 복잡하다. 원작자와 제작사, 배우·성우, 음원·영상 권리자가 나뉘고 해외 현지화 권리와 AI 학습·음성복제 권리가 별도로 움직인다. 정부 지원사업이 학습데이터 수량만 평가하면 계약 범위와 창작자 보상이 뒤로 밀릴 수 있다.
자이스 70B도 완전히 독립된 기술망에서 처음부터 학습한 모델은 아니다. 지42는 700억 개 매개변수 모델을 처음부터 훈련할 때 필요한 연산량과 환경 부담을 고려해 메타의 라마2(Llama 2)를 기반으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국가 특화 AI는 외국 기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모델보다 언어 데이터와 운영 인프라, 접근권한, 서비스 통제권을 어느 수준까지 확보했는지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방언 수정률·현지화 원가·반복계약
자이스와 팔콘 아랍어의 공개만으로 UAE 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출판·게임 플랫폼이 상용 추천·번역 시스템에 모델을 도입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캠브에이아이의 현지 GPU 운영도 실제 방송사·플랫폼 계약액과 반복 발주, 제작비 절감률은 공개되지 않았다. 모델 성능표와 기업 발표를 콘텐츠 시장 매출로 환산할 근거가 아직 제한적이다.
한국의 K-컬처 특화 AI와 UAE의 아랍어 AI를 비교할 때 필요한 수치는 학습 이용권을 확보한 콘텐츠 수, 방언별 인간 검수 수정률, 영상 1분·언어 1개당 현지화 원가, 서비스 종료 뒤 이어진 반복 유료계약이다. 3만8,000종의 디지털 도서와 3,300억 개의 아랍어 토큰은 인프라 규모를 나타낸다. 콘텐츠 산업의 상용화 수준은 권리자가 허용한 데이터와 현지 이용자가 받아들인 결과물, 플랫폼이 다시 구매한 계약에서 확인된다.
UAE는 디지털 아랍어 도서관의 3년 확대 일정과 아랍어 모델의 서비스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2026년 문화예술 온톨로지 연계 기술개발과 공공저작물 AI 이용표시를 시작했다. 양국 정책이 2027년 이후 공개해야 할 실적은 모델 수가 아니라 권리 처리가 끝난 콘텐츠 수와 방언별 품질, 현지화 원가, 반복 매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