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미국·남미 순방①] 샌프란시스코 AI와 남미 핵심광물 잇는 경제안보 외교
9,500억달러 반도체 협력·5GW 데이터센터 구상 발표…기술·자본·전력·자원을 한 산업정책에 배치
[KtN 박준식기자]이재명 대통령은 7월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혹 탄(Hock Tan) 브로드컴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Sam Altman) 오픈AI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앤트로픽 최고경영자를 잇달아 만났다. 삼성전자·SK·현대자동차그룹·네이버 최고경영진을 비롯해 국내외 기업인과 연구자, 스타트업 관계자 등 230여 명도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 참석했다. 정상회담이 아닌 기업·기술·자본 일정으로 7박 11일 순방의 첫날을 채웠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표된 수치는 향후 5년간 9,500억달러, 청와대 환산으로 약 1,375조원에 이르는 반도체 공급·생산 협력과 약 5GW 규모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협력이다. 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에서는 희토류·구리·리튬을 다루는 정부 간 공동성명과 양해각서가 뒤따랐다. 미국의 AI 기술과 투자자금,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업, 남미의 핵심광물과 에너지를 한 번의 순방 동선에 배치한 구성이다.
6월 29일 발표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를 AI의 두뇌, 피지컬 AI를 신체, AI 데이터센터를 심장으로 규정했다. 한 달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빅테크의 GPU·AI 모델·자본을 결합했고, 남미 3국에서 전력망·배터리·첨단 제조에 필요한 자원 협력 통로를 넓혔다. 이재명 정부의 성장정책이 국내 공장과 데이터센터 건설에서 국외 기술·자본·자원 확보로 확장된 일정이었다.
1,375조원은 투자액 아닌 공급·생산 협력의 합계
삼성전자와 브로드컴은 향후 5년간 2,000억달러 규모의 첨단 메모리 공급과 AI 칩 생산을 위한 파운드리 업무협약을 맺었다. SK는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와 같은 기간 7,500억달러 규모의 첨단 메모리 장기 공급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두 금액을 합산한 수치가 9,500억달러다.
9,500억달러 전부가 국내 공장에 새로 들어오는 투자금은 아니다. 메모리 공급, 파운드리 생산, 향후 협력 예상액이 함께 들어 있다. 삼성전자와 브로드컴이 체결한 문서도 업무협약이다. 최소 구매량과 공급가격, 계약 해지 조건, 매출 인식 시점, 생산설비 증설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공급계약과 생산협력, 설비투자를 구분하지 않은 채 1,375조원을 투자 유치액으로 읽으면 경제효과가 실제보다 커진다.
9,500억달러라는 숫자는 한국 반도체가 세계 AI 설비투자 확대의 주요 공급처라는 산업적 위치를 확인해 준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주문이 확정계약으로 전환되면 수출과 설비투자, 소재·부품·장비 수요로 이어질 수 있다. 공급 약정의 구속력과 신규 물량, 기존 거래와의 중복 여부가 공개돼야 확정 매출을 계산할 수 있다.
7월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AMD가 체결한 업무협약은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와 AMD의 CPU·GPU를 연결한 컴퓨팅 인프라 공동 구축·실증을 담았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엔비디아는 대학과 스타트업이 AI 로봇을 개발·검증할 수 있는 로봇 레퍼런스 플랫폼을 공동 구축하기로 했다. 삼성SDS와 앤트로픽은 AI 시장 발굴과 엔지니어 양성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다. 반도체 판매에서 설계·실증·로봇·인재로 협력 범위를 넓힌 대목이다.
5GW 데이터센터, 전력망과 금융조달이 사업 속도 결정
약 5GW 데이터센터 계획은 엔비디아 B200 기준 GPU 약 200만 장에 해당하는 규모로 제시됐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와 최대 2GW 데이터센터 구축·확장 지원과 차세대 GPU 우선 할당에 합의했고, 앤트로픽과 국내 GW급 데이터센터 투자를 추진하기로 했다. 아마존웹서비스와는 울산 데이터센터 협력을 국내 주요 거점으로 넓히는 방안을 발표했다.
네이버·엔비디아·브룩필드는 세종 데이터센터의 초기 55MW 계획을 2028년까지 200MW로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1GW급 AI 팩토리로 확장하는 구상을 내놨다. 엔비디아의 10억달러 투자는 네이버의 별도 확정 금융조달을 전제로 하며, 브룩필드의 최대 90억달러 지원은 비구속적 조건합의서에 담겼다. 총 100억달러라는 발표액과 실제 자금 집행액을 같은 수치로 처리하기 어려운 구조다.
5GW급 시설은 발전원과 송전망, 냉각용수, 부지, 장기 이용고객, 프로젝트금융이 동시에 마련돼야 가동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 전력망 접속 용량과 계통 보강비의 부담 주체, 재생에너지 조달비용, 지역별 용수 공급안은 기업 간 합의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정부가 7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전력·용수 대책을 별도 안건으로 다룬 배경도 대규모 AI 인프라에 필요한 기반시설 부담과 맞닿아 있다.
6월 29일 3대 메가프로젝트에는 SK·GS·네이버가 2029년까지 8.4GW 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투자 유치를 포함해 약 550조원을 투입하는 계획이 담겼다. SK가 담당하는 5GW를 2035년까지 15GW로 늘리는 2단계 구상까지 합치면 정부가 제시한 총규모는 18.4GW다. 샌프란시스코의 5GW가 국내 계획에 추가된 물량인지, 기존 구상을 구성하는 해외 협력분인지 사업별로 구분한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국가가 설계하고 대기업이 집행하는 성장정책
반도체 민간 팹 투자는 정부 집계로 957조원에 이른다. 8.4GW 데이터센터에는 550조원, 서남권 반도체 팹 4기에는 800조원 규모의 민간투자가 제시됐다. 정부는 인허가·전력·용수·세제·연구개발을 조정하고, 삼성전자·SK·현대자동차그룹·네이버·GS가 대규모 자본을 집행하며, 미국 빅테크와 금융회사가 GPU·모델·투자자금을 보태는 구조다.
국가가 산업 방향과 기반시설을 설계하고 기업이 생산설비를 짓는 방식은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의 성격을 드러낸다. 개별 수출계약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대통령실이 대기업과 해외 빅테크를 한자리에 모으고, 재정과 규제·전력망을 대형 프로젝트 중심으로 조정한다. 반도체·데이터센터·피지컬 AI를 지역 산업거점과 묶어 잠재성장률과 수출을 끌어올리려는 정부 주도형 민관 산업정책이다.
대규모 프로젝트에는 재정의 직접 지출 외에도 전력망 건설, 산업용수 공급, 세액공제, 정책금융과 인허가 지원이 들어간다. 민간 투자계획이 지연될 경우 기반시설의 선투자 비용과 지역 간 전력 배분 부담이 남을 수 있다. 기업별 투자 확약, 정부 지원액, 전력망 접속 일정, 프로젝트금융 종결 여부를 함께 공개해야 민관 부담의 경계를 확인할 수 있다.
삼성전자·SK·현대자동차그룹·네이버가 순방 발표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중소 팹리스와 AI 스타트업의 참여 조건도 정책 성과를 가르는 지표가 됐다. 중소기업이 대형 데이터센터의 연산자원을 이용하는 가격, 국산 NPU와 냉각·전력 솔루션의 조달 비중,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의 참여 규모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반도체 공급액과 데이터센터 용량이 늘어도 이용권과 조달시장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되면 산업 생태계 확장 효과는 제한된다.
국민연금과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6곳이 체결한 투자협력 MOU도 같은 기준으로 읽어야 한다. 발표된 3,130억달러는 참여 벤처캐피털 6곳의 전체 운용자산이다. 한국 스타트업에 배정된 투자 약정액이 아니다. 공동펀드 결성액과 투자기업 수, 후속 투자 규모가 나와야 국내 벤처 생태계로 유입된 자본을 계산할 수 있다.
메모리 공급국에서 AI 생산기지로 넓힌 국가 목표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은 한국을 글로벌 AI 생산기지이자 혁신 기반으로 만들고, AI 공급망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메모리 반도체 강점을 GPU 확보, 데이터센터, 로봇과 자율주행, 자체 AI 모델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남미 3국의 핵심광물 협력은 전력망과 에너지저장장치, 전동기와 첨단 제조까지 포함한 물적 기반을 보강한다.
반도체 협력액과 데이터센터 용량은 하드웨어 경쟁력을 측정하는 지표다. 자체 AI 모델의 성능, 소프트웨어·서비스 수출, 데이터 확보, 해외 연구인력 유입, 국산 AI 반도체의 실제 사용량은 별도의 성적표가 필요하다. 미국 GPU와 모델에 대한 의존을 낮추면서 해외 기술을 활용하는 균형도 산업정책 안에서 정리돼야 한다.
2028년 상반기 데이터센터 착공, 2028년 네이버 세종 200MW 확장, 2029년 8.4GW의 단계적 운영이 정부 계획에 잡혀 있다. 삼성전자·SK의 공급협력이 구속력 있는 계약과 매출로 전환되는 시점, 5GW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접속과 금융종결, 국산 NPU·전력·냉각 설비의 조달 실적은 발표 규모를 실제 산업성과로 바꿀 후속 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