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Insight]18년 만에 배심원실로 돌아온 박수무당…배우 노시홍이 몸을 움직이는 법

배우 노시홍이 대학로를 지키는 방식 오는 25일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 출연 박수무당·멀티맨·산티아고 거치며 넓혀온 캐릭터 연기 공연 공급 확대와 OTT 경쟁 속 다시 부각되는 앙상블의 힘

2026-08-05     박준식 기자
노시홍 배우. 사진=노시홍 페이스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배우 노시홍이 오는 25일 서울 대학로 스카이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에 출연한다. 레지날드 로즈 원작을 박정학 연출로 선보이는 집단극이다. 2008년 ‘옹녀 이야기’에서 박수무당을 맡았던 배우가 18년 뒤 열두 배심원의 논쟁을 다루는 작품으로 대학로 관객과 만난다.

노시홍의 경력은 주연과 조연의 구분보다 배역을 식별하게 하는 캐릭터 연기의 축으로 읽힌다. 무속 의례를 수행하는 박수에서 한 작품의 여러 인물을 오가는 멀티맨, 대과 시험관과 성당 신부, 노승, 바다와 싸우는 노인 산티아고까지 역할의 시대와 직업, 나이를 넓게 이동했다. 배역마다 말의 속도와 호흡, 몸의 중심을 새로 세워야 하는 이력이다.

‘색깔 있는 배우’, ‘맛깔진 배우’라는 표현도 같은 지점에서 구체성을 얻는다. 같은 억양이나 표정을 반복하는 개성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과 장면의 기능에 맞춰 연기의 농도를 바꾸는 능력이다. 강한 캐릭터를 만들면서도 작품의 흐름을 밀어내지 않는 조절력이 노시홍의 연기 스타일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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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무당에서 멀티맨까지

2008년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공연한 ‘옹녀 이야기’에서 노시홍은 황해도 무굿을 하는 40대 박수무당을 맡았다. 파계승·풍각쟁이·각설이·뎁뜩이와 함께 옹녀를 찾아가는 유랑인으로, 굿판을 벌여 옹녀에게 덧씌워진 청상살을 풀어내는 인물이다. 무속인의 의례적 몸짓과 굿의 장단, 극의 해학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배역이었다.

노시홍은 2012년과 2013년 ‘미운남자’에서 멀티맨을 맡았다. 2015년 ‘고민상담소’에서는 필교·남편·재영을 연기했고, 2018년 ‘그의 망원경’에서는 나감초 역으로 출연했다. 멀티맨과 다역은 의상 교체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관객이 별도의 설명 없이 인물의 변화를 알아차리도록 목소리와 걸음, 상대와의 거리, 반응의 속도를 짧은 시간 안에 바꿔야 한다.

영화에서는 압축의 정도가 더 높아졌다. ‘자산어보’의 대과 시험관, ‘봉오동 전투’의 정동성당신부, ‘검객’의 노승, ‘테우리’의 윤배를 맡았다. 시험관과 신부, 노승은 등장만으로 시대와 장소, 제도의 분위기를 전달해야 하는 배역이다. 무대의 멀티맨이 전환의 선명함을 요구한다면 영화의 짧은 배역은 프레임 안에서 불필요한 동작을 덜어내는 정밀함을 요구한다.

역할의 크기보다 장면 안에서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가 앞서는 경력이다. 박수무당은 굿판의 리듬을, 멀티맨은 인물 간 차이를, 시험관과 신부는 시대의 질서를 담당한다. 노시홍의 ‘맛깔’은 장면을 많이 차지하는 힘보다 필요한 순간에 인물의 성격을 빠르게 세우는 능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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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연기적 감각과 스타니슬랍스키의 내적 행동

노시홍의 배역 변화를 동물연기적 관점으로 읽으면 캐릭터를 만드는 신체의 원리가 선명해진다. 동물연기는 동물의 겉모습을 흉내 내는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 무게중심과 시선, 경계와 이완, 공격과 후퇴의 속도를 관찰한 뒤 인간 인물의 신체에 옮기는 훈련이다. 배우가 몸의 중심을 낮추면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와 반응 속도가 달라지고, 목과 어깨를 세우면 상대와 맺는 거리도 달라진다.

박수무당과 멀티맨, 노승, 산티아고는 서로 다른 신체의 중심을 요구한다. 박수무당에게는 의례와 유희를 오가는 탄력이 필요하고, 멀티맨에게는 인물마다 몸의 리듬을 즉시 바꾸는 전환력이 필요하다. 노승은 움직임을 덜어낸 무게를, 산티아고는 고통과 피로를 견디는 지속성을 요구한다. 먼저 몸의 조건을 바꾸고 그 위에 감정과 말의 속도를 얹는 방식이다.

외형의 변화만으로 캐릭터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수업’에서 “무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걸음을 늦추고 어깨를 굽히는 선택도 인물이 무엇을 얻으려 하고 무엇을 피하려 하는지와 연결돼야 한다. 몸의 형태가 목적과 만날 때 독특한 자세는 장식이 아니라 행동이 된다.

“외적 정지는 수동성을 뜻하지 않는다”는 설명은 노시홍의 또 다른 연기 자산과 연결된다. 크게 움직이지 않는 순간에도 의심하고 버티고 기다리는 내적 행동은 계속될 수 있다. 박수무당의 의례적 에너지와 산티아고의 정지는 외형적으로 정반대에 놓이지만, 장면 안에서 수행해야 할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강한 캐릭터가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면 호흡은 관객이 인물의 감정에 머무는 시간을 조절한다. 인물의 윤곽을 또렷하게 세우면서 상대 배우의 말이 들어올 자리를 남기는 것, 장면을 차지하면서 전체의 리듬을 깨지 않는 것이 앙상블 배우에게 필요한 정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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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은 늘고 관객 증가는 더딘 연극시장

2025년 연극시장은 공급과 수요의 증가 폭에서 차이를 보였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시장 분석에서 연극 공연 건수는 전년보다 19.0%, 공연 회차는 10.1% 늘었다. 티켓 예매 수 증가율은 4.6%, 판매액 증가율은 5.7%였다. 작품과 회차가 늘어난 속도를 관객 증가세가 따라가지 못했다.

공급 확대가 모든 배우의 참여 확대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정된 연습 기간과 제작비 안에서 배역을 빠르게 세우고 전체 장면의 균형을 맞출 배우가 필요하다. 다역 경험과 짧은 등장에 인물의 성격을 압축하는 능력은 집단극에서 특히 중요하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처럼 여러 배우가 한 공간을 공유하는 작품에서는 한 사람의 과도한 연기보다 상대의 말을 받아 장면의 온도를 조절하는 힘이 앞선다.

대학로 무대는 앙상블로 완성되지만 배우의 경력은 작품 단위로 끊어진다. 공연이 끝난 뒤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 생계와 훈련을 함께 이어가야 하는 시간은 각자의 몫이다. 무대 위에서는 상대와 호흡하고 무대 밖에서는 다음 배역을 혼자 준비한다. 대학로를 지키는 배우들의 고립은 혼자 연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불확실한 공백을 각자 견뎌야 한다는 데서 생긴다.

노시홍에게 대학로는 영상 출연을 기다리는 대기실이 아니다. 박수무당과 멀티맨, 다역을 거치며 캐릭터를 만들고 수정해온 작업장이다. 소극장에서 축적한 전환과 앙상블의 감각은 영화의 짧은 배역을 밀도 있게 세우는 기반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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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가 넓힌 기회와 좁힌 참여의 문

OTT는 배우가 발견될 수 있는 범위를 넓혔지만 국내 제작환경의 위축을 막지는 못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따르면 방송사가 공급한 드라마는 2019년 109편에서 2023년 77편으로 29.4% 줄었다. 글로벌 OTT가 공급한 드라마는 같은 기간 3편에서 22편으로 늘었다. 2023년 방송사와 OTT를 합친 드라마 공급량은 112편으로 전년보다 17.6% 감소했다.

캐스팅된 배우가 세계 시청자에게 닿을 가능성은 커졌지만 실제로 배역을 얻는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유통의 범위가 제작 참여의 폭을 보장하지 않는 구조다. 한 작품의 성과보다 서로 다른 매체에서 계속 배역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배우의 지속성이 중요해진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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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넓힌 무대, 배우가 지탱하는 인물

2024년 연극 ‘노인과 바다’는 노시홍의 활동 범위를 소극장과 영상기술이 결합한 무대로 넓혔다. 노시홍은 남경읍·이황의·이석우와 함께 산티아고 역을 맡았다. 공연에는 입체 LED 배경과 모션 시뮬레이터, 360도로 회전하고 상하로 움직이는 조각배가 사용됐다.

기계장치가 정해진 박자로 움직이는 무대에서는 배우의 균형과 발화 시점, 시선의 방향도 장치의 시간과 맞물린다. 동시에 산티아고의 피로와 집념은 기술이 아니라 배우의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소극장에서 다듬은 신체 감각, 영화에서 요구받은 절제, 움직이는 무대와 호흡을 맞추는 정확성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났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노시홍의 캐릭터 연기가 다시 앙상블 안에 놓이는 작품이다. 밀폐된 배심원실에서 이어지는 논쟁은 독주보다 듣는 연기를 요구한다. 시선과 침묵, 반응의 속도가 열두 인물 사이의 균형을 바꾼다. 박수무당의 의례, 멀티맨의 전환, 영화 단역의 압축, 산티아고의 버팀을 거친 노시홍에게 남은 과제는 강한 색깔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집단의 호흡 안에 정확히 배치하는 일이다.

사진=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