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이웃들 ②] E-8·E-9·H-2, 외국인 노동자를 가르는 비자 세 글자의 차이
[KtN 임우경기자] 경기도 사계주방에서 보쌈을 함께 만든 라오스 계절근로자들은 정확히 말하면 'E-8' 비자 소지자다. 반면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E-9', 중국동포가 다수인 방문취업자는 'H-2' 비자를 쓴다. 같은 '외국인 근로자'라는 말로 뭉뚱그려지지만, 세 비자는 체류 기간, 사업장 변경 가능 여부, 고용 절차가 모두 다르다. 이 차이를 모르면 정책 기사도, 현장 문제도 정확히 읽어낼 수 없다.
E-8, 계절근로: 농번기에만 허용되는 단기 체류
E-8은 파종기·수확기처럼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농·어업 분야를 위해 만든 비자다. 최대 8개월까지 체류하며 일할 수 있어, 고용허가제(E-9)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단기 인력난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법무부는 농·어업 분야 계절적 인력 수요에 맞춰 지자체 중심으로 계절근로자를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moj.go
초청은 농가나 어가가 직접 해외 친척이나 외국인을 부르는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가 사증발급인정서를 신청하는 구조로 이뤄진다. 대상은 지자체와 계절근로 MOU를 체결한 외국 지자체 주민, 결혼이민자의 해외 거주 가족 등으로 제한된다. 2026년 계절근로자 총 배정 규모는 117,113명으로 확대됐다.
E-9, 고용허가제: 가장 규모가 큰 '비전문취업' 비자
E-9은 내국인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로부터 고용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고용하는 비전문취업 외국인력이다. 제조업·건설업·농축산업·어업·서비스업 등 다양한 업종에서 활용되며, 2026년 E-9 쿼터는 8만 명으로 확정됐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5만 명, 농축산업 1만 명, 어업 7천 명, 건설업 2천 명, 서비스업 1천 명이 배분됐다.
체류 기간은 원칙적으로 3년이며, 요건을 충족하면 재고용이나 재입국 특례를 통해 더 일할 수 있다. 사업장 이동은 원칙적으로 제한되지만, 휴·폐업이나 임금체불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변경이 가능하다. 이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최초 취업활동 기간 중 사업장 변경은 3회를 초과할 수 없고, 재고용으로 연장된 기간 중에는 2회를 초과할 수 없다.
정부가 2022년 말 발표한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에는 체류기간 우대와 직업훈련 제공 등을 통해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E-9 특례 신설, 서비스업 고용 가능 업종 확대 방안이 포함됐다. 핵심은 비전문 인력을 보다 숙련된 인력으로 성장시켜 장기근속·장기체류를 허용하겠다는 방향이다.
H-2, 방문취업: 외국국적동포를 위한 예외적 유연성
H-2는 중국동포(조선족)를 비롯한 외국국적동포에게 발급되는 방문취업 비자다. 사용자는 내국인 구인 노력을 거친 뒤 고용센터에서 특례고용가능확인서를 발급받아 동포 근로자를 알선받거나 자율적으로 채용할 수 있다.
E-9과 가장 큰 차이는 사업장 변경의 자유도다. E-9 근로자는 사업장 변경 횟수와 사유가 엄격히 제한되지만, H-2 소지자는 횟수 제한 없이 비교적 자유롭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이는 동포라는 신분적 특수성과 국내 정착 가능성을 고려한 제도적 배려로 해석된다.
세 비자, 무엇이 갈림길인가
E-8은 '짧고 계절적으로', E-9은 '길지만 사업장에 묶여서', H-2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라는 세 갈래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차이는 곧 근로자가 겪는 위험의 종류도 갈라놓는다. E-8 계절근로자는 짧은 체류 기간 탓에 숙련도를 쌓기 어렵고, E-9 근로자는 사업장 변경 제한으로 인해 부당 처우에도 이직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가 추진하는 장기근속 특례(E-9)나 (가칭) 농어업숙련비자 신설 논의는 바로 이 지점—숙련과 안정성 부족—을 보완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경기도의 보쌈 식탁에 앉은 라오스 근로자들이 E-8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이 처한 체류 조건—짧은 기간, 지자체 중심의 관리 구조—을 짐작할 수 있다. 비자 유형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행정 지식이 아니라, 각 정책이 왜 지금의 형태로 설계됐는지를 읽는 열쇠다. 다음 편에서는 경기도 외 다른 지자체들이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비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