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와 FP&A①] AI 재무계획, 6주 예측과 1000개 엑셀의 한계
포춘 글로벌 500대 통신기업, FP&A 업무시간 70%를 데이터 정리·보고에 투입…정기 예측에서 상시 의사결정으로
[KtN 최기형기자]재무 예측을 한 차례 끝내는 데 6주 이상이 걸렸다. 조직 전반에서 사용하는 엑셀 모델은 1000개를 넘었다. 포춘 글로벌 500대에 속한 한 통신기업의 재무계획·분석(FP&A) 인력은 업무시간의 약 70%를 데이터 정리와 입력값 대사, 보고서 제작에 투입했다. 가격과 재고, 채용, 자본 배분을 판단해야 할 재무조직이 숫자를 모으고 맞추는 작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했다.
예측은 행동할 시간이 남아 있을 때 가치가 생긴다. 가격과 재고, 자본 배분, 영업 전략은 계획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시장 조건은 밤사이에도 달라질 수 있지만 많은 기업의 전략계획과 예산, 예측, 보고, 실행은 서로 다른 일정과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인다. 정보는 부서와 승인 단계를 차례로 통과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숫자를 다시 확인하고 조정한다.
통신기업의 6주 예측 주기는 느린 재무계획 체계가 남긴 결과였다. 조직에 흩어진 1000개 이상의 엑셀 모델을 취합하고 입력값을 맞춘 뒤 수정된 목표를 다시 반영해야 했다. 계획 기간 중 목표가 바뀌면 전망을 고치고 검토하는 작업도 반복됐다. 정적인 예측 모델로는 시장 조건이 달라질 때 여러 대응안을 신속하게 비교하기 어려웠다.
수요 변화는 판매 데이터에 빠르게 나타난다. 생산과 재고, 가격, 지출 결정은 월간·분기별 계획 주기에 묶여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못한다. 수정 예측이 검토와 승인을 거치는 동안 사업 조건이 다시 달라지면 새 전망도 뒤늦은 설명에 머물 수 있다.
자동차부품 제조기업에서도 운영정보와 재무계획 사이의 간격이 확인됐다. 원재료비와 운송비, 생산수율, 판매구성은 수익성과 현금흐름을 움직이는 변수였지만 예산 과정과 충분히 연결되지 않았다. 운송비 상승과 생산수율 하락은 현장에서 먼저 나타났고, 마진에 미칠 영향은 재무조직이 관련 정보를 취합한 뒤에야 구체화됐다.
재무조직의 기존 체계는 정확성과 대사, 정기 보고에 맞춰 설계됐다. 결산과 재무통제를 위해 필요한 기능이지만 사업 대응까지 같은 흐름에 묶이면 중요도가 낮은 예측 차이를 조정하는 데 시간이 집중된다. 어떤 변수가 움직였는지, 손익에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조치를 먼저 실행할지를 판단하는 업무는 뒤로 밀린다.
한 재무책임자는 필요한 변화를 ‘정확성 문화’에서 ‘의사결정 문화’로의 이동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나온 실적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격과 지출, 생산, 영업 실행이 결정되는 과정에 FP&A가 더 일찍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상시 재무계획은 예측의 용도부터 바꾼다. 일정한 시점마다 예상 실적을 작성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가정을 검증하고 대안을 비교하며 가격·생산·재고·지출 결정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예측을 활용한다. 실적 차이가 확정된 뒤 대응하는 대신 차이가 커지기 전에 움직일 수 있는 구조다.
운영정보와 재무정보를 계속 연결하는 기술 여건도 갖춰지고 있다. 고객 반응과 공급업체 소통, 시장 보고서처럼 정형화되지 않은 정보까지 지속적으로 살피고 재무 변수와 연결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이 사업 변화를 발견해 재무팀에 전달하던 방식에서 AI가 일부 감지 기능을 맡는 흐름이다. 위험을 먼저 포착하면 가정을 일찍 수정하고 대응안을 검토할 시간도 늘어난다.
포춘 글로벌 500대 통신기업은 AI 에이전트를 적용해 예측 업무를 다시 설계했다. 에이전트는 데이터를 수집·정제하고 형식을 맞춘 뒤 분석 모델을 바탕으로 1차 예측을 작성했다. FP&A 인력이 결과를 검증했고, 별도의 에이전트가 재무계획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조치를 찾아냈다. 예측 주기는 종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1000개가 넘는 스프레드시트 모델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졌다.
회의 내용도 달라졌다. 숫자를 취합하고 서로 다른 입력값을 맞추는 작업 대신 가격 가정과 시장별 자원 배분, 영업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논의가 늘었다. 재무와 영업, 운영 책임자는 같은 가정과 같은 시간대의 정보를 놓고 대응안을 검토할 수 있었다.
AI 에이전트 도입을 보고서 자동화로만 설명하면 FP&A 변화의 범위를 좁게 보게 된다. 자동화가 줄이는 것은 파일을 다루는 시간이고, 기업이 얻는 것은 판단할 시간이다. 위험과 기회를 먼저 확인한 기업은 여러 대안을 비교하고 실적 격차가 커지기 전에 자원을 움직일 수 있다.
FP&A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예측 오차율과 보고서 제출일에 머물 수 없다. 사업에 의미 있는 변화가 발생한 시점부터 재무조직이 변화를 인지하고 대응을 결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 조기 결정의 가치가 큰 가격, 재고, 생산, 자본 배분부터 재무계획 체계를 바꾸는 기업이 더 많은 선택지를 확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