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2 경매⑤] 기자 129명 숨진 현실과 패션펀드, 한 경매에 묶인 두 명분
CPJ·CFDA 공동 수혜처로 내세웠지만 배분 비율·비용 공제·실제 전달액 비공개…기부와 영화 홍보가 함께 움직이는 9월 자선 세일
[KtN 김동희기자]2025년 세계에서 취재 활동과 관련해 숨진 언론인과 미디어 종사자는 129명으로 집계됐다. 언론인보호위원회(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CPJ)가 1992년 관련 기록을 시작한 뒤 가장 많은 인원이다. 지난해 12월 1일 기준 수감된 언론인도 330명에 달했다. 9월 열리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경매는 전쟁과 구금, 탄압에 놓인 언론인을 지원하는 CPJ를 수혜처로 내세웠다.
같은 경매에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CFDA)도 수혜처로 들어갔다. 9월 10일 초청 행사에서 모인 수익 일부는 CFDA재단을 거쳐 CFDA·보그 패션펀드로 향한다. 패션펀드는 올해 결선 진출자 10명을 선정했으며, 우승자에게 30만달러, 준우승자 2명에게 각각 10만달러를 지급한다. 언론인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긴급지원과 신진 디자이너의 사업 기반을 돕는 산업 육성이 하나의 자선 행사 안에 놓였다.
수혜처 선정은 영화의 소재를 그대로 옮겼다. 앤디 삭스의 직업은 저널리스트이고, 미란다 프리스틀리가 지배하는 ‘런웨이’는 패션잡지다. CPJ는 저널리즘을, CFDA는 패션을 대표한다. 영화의 두 축을 자선단체로 연결하면서 경매는 작품 홍보와 기부 명분을 한꺼번에 확보했다.
두 단체가 수행하는 일의 성격과 긴급도는 크게 다르다. CPJ는 구금되거나 석방된 언론인에게 법률·의료·트라우마 치료 등을 직접 지원한다. 2025년 말 수감 언론인의 26%는 5년 이상 재판이나 석방을 기다리고 있었고, 수감자 가운데 약 3분의 1은 학대나 생명을 위협하는 수감 환경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CFDA·보그 패션펀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신진 디자이너의 사업을 돕기 위해 출범했다. 지금까지 약 200명의 디자이너에게 멘토링을 제공했고, 누적 지원금은 800만달러를 넘었다. 디자이너의 브랜드 운영과 시장 진입을 돕는 장기적인 산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언론인 구조 활동과 패션기업 육성 모두 기부 목적이 될 수 있다. 다만 서로 다른 필요를 하나의 영화 서사로 묶은 이상, 어느 단체에 얼마가 돌아가는지는 경매의 성격을 판단하는 기본 숫자가 된다. 8월 7일 현재 공개된 안내에는 CPJ와 CFDA의 배분 비율이 없다.
온라인 경매와 초청 경매, 달라지는 수혜 구조
크리스티 온라인 경매는 9월 1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공식 안내에는 판매 수익이 CPJ와 CFDA에 돌아간다고 적혀 있다. 9월 10일 뉴욕패션위크 기간에 열리는 초청 행사와 현장 경매는 수혜 구조가 더 구체적이다. CPJ와 함께 CFDA재단을 통한 CFDA·보그 패션펀드가 지원 대상으로 명시됐다.
온라인 경매에서 CFDA가 받는 돈이 협회 일반 사업에 쓰이는지, CFDA재단이나 특정 프로그램으로 들어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현장 경매는 패션펀드를 지목했지만 CPJ와 패션펀드 사이의 배분율은 제시하지 않았다. 온라인 판매와 초청 행사에서 걷힌 금액을 합산하는지, 각각 정산하는지도 공식 발표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9월 10일 행사는 초청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 패션 물품 외에 영화에서 착안한 고급 체험 상품도 판매한다. 레드카펫과 패션위크, 스타와 브랜드가 결합한 행사인 만큼 일반 온라인 입찰과 다른 가격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자선 목적의 추가 지출과 현장 분위기가 낙찰가에 함께 들어가기 때문이다.
현장 경매의 높은 가격을 의상이나 체험 상품의 일반 시장가치로 옮겨 적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매자는 물품만 사는 것이 아니라 초청 행사 참여와 기부, 스타가 만든 이야기까지 함께 산다.
출품 디자이너와 수혜 프로그램이 겹친 구조
레이디 가가(Lady Gaga)가 ‘Runway’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검은 깃털 드레스는 이번 경매의 주요 출품작으로 예고됐다. 제작자는 배드 빈치 통통(Bad Binch TONGTONG)의 테런스 저우(Terrence Zhou)다. 저우는 2026년 CFDA·보그 패션펀드 결선 진출자 10명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허리를 둘러싼 검은 깃털이 착용자의 몸보다 훨씬 넓게 퍼지는 드레스는 경매 홍보에서 가장 강한 시각적 효과를 낸다. 영화 본편 의상이 아니라 레이디 가가와 도이치(Doechii)의 뮤직비디오 착장이다. 저우의 작품이 입찰자를 끌어모으고, 현장 경매 수익은 저우가 결선에 오른 패션펀드에도 돌아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경매 수익이 저우에게 직접 지급된다는 뜻은 아니다. 올해 패션펀드 우승자는 10월 20일 발표되며, 결선 진출만으로 상금 수령이 결정되지 않는다. 경매와 심사 사이의 직접적인 대가 관계도 공개된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출품작과 수혜 프로그램의 인적 관계는 행사 전체가 패션산업 내부의 홍보망으로도 작동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저우는 레이디 가가의 착용 이력과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브랜드 노출을 얻고, 패션펀드는 경매 수익과 영화 홍보 효과를 얻는다. 크리스티는 젊은 디자이너와 스타 의상을 판매 목록에 추가한다.
상호 노출이 기부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자선 경매는 유명 인물과 브랜드의 관심을 기부금으로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다. 다만 순환하는 홍보 효과까지 감춘 채 경매를 일방적인 기부 행위로만 설명하면 참여자들이 얻는 경제적·평판적 이익이 빠진다.
‘수익이 돌아간다’와 ‘전액 기부’ 사이
크리스티와 CPJ는 이번 경매를 소개하며 판매가 두 단체에 도움을 준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총낙찰액 전부가 기부된다는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판매대금 가운데 어느 범위를 ‘수익’으로 잡는지, 행사 운영비와 경매 비용을 먼저 빼는지, 크리스티가 수수료를 받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크리스티의 일반 경매에는 낙찰자가 망치가격에 더해 내는 구매자 수수료와 판매자가 부담하는 판매 수수료가 있다. 2025년 9월부터 적용된 일반 기준에서는 150만달러 이하 물품에 망치가격의 27%가 구매자 수수료로 붙는다. 세금과 운송비도 별도다. 이번 자선 경매에 일반 수수료율이 그대로 적용되는지, 일부 또는 전부를 면제하는지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1만달러에 낙찰된 물품에 일반 수수료율이 적용되면 구매자가 내는 금액은 세금과 운송비를 빼고도 1만2700달러가 된다. 두 단체가 받는 금액이 망치가격 1만달러인지, 수수료를 포함한 1만2700달러인지, 각종 비용을 뺀 금액인지는 전혀 다른 계산이다.
판매자가 누구인지도 기부금의 출발점을 바꾼다. 영화사 소유품과 브랜드 기증품, 배우가 제공한 물품은 소유권과 비용 부담 방식이 다를 수 있다. 보험과 운송, 보관, 전시 설치비를 영화사·브랜드·경매사 가운데 누가 부담하느냐에 따라 단체에 돌아갈 순수익도 달라진다.
공식 발표에는 총 출품 수와 전체 추정가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출품작이 추가될 수 있다는 안내만 있다. 경매 전 모금 목표액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사의 규모는 화려한 브랜드 명단과 스타 착용 이력으로 먼저 전달되고 있다.
자선이 만든 도덕적 구매 이유
일반 경매의 구매자는 물품의 희소성과 상태, 재판매 가능성을 따진다. 자선 경매에서는 한 가지 이유가 더 붙는다. 높은 가격을 내더라도 사회적 목적에 돈이 쓰인다는 만족이다.
CPJ가 기록한 129명의 사망자와 330명의 수감 언론인은 입찰자에게 강한 기부 동기를 제공한다. 신진 디자이너를 돕는 CFDA의 프로그램도 패션업계 종사자와 수집가를 끌어들인다. 영화 의상에 대한 팬심과 기부 의지가 같은 입찰가에 들어가면서 낙찰가는 일반 중고 의류나 영화 기념품 시장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영화사와 브랜드, 배우, 경매사도 별도의 효과를 얻는다. 스트리밍 공개를 마친 영화는 다시 국제 뉴스에 오르고, 출품 브랜드는 크리스티 전시와 보도를 통해 제품명을 노출한다. 배우는 영화 홍보와 공익 활동을 함께 보여주며, 크리스티는 뉴욕패션위크 기간의 관람객과 신규 입찰자를 확보한다.
기부금과 홍보 효과가 함께 발생한다고 해서 자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매가 모은 돈이 CPJ의 법률·의료 지원과 패션펀드의 상금·멘토링에 투입되면 구체적인 수혜가 생긴다. 행사 참여자들이 얻는 홍보 효과까지 포함한 전체 거래 구조를 함께 써야 자선이라는 이름이 실제보다 넓게 소비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9월 15일 경매가 끝나면 총낙찰액과 최고가 물품이 먼저 발표될 가능성이 크다. CPJ와 CFDA가 각각 받은 금액, 수수료와 비용을 뺀 과정, 온라인·현장 경매의 별도 정산 여부가 뒤따르지 않으면 자선의 규모는 완성되지 않는다.
2025년 언론인과 미디어 종사자 129명이 숨진 현실은 영화의 홍보 문구로 끝날 수 없는 숫자다. 패션펀드도 10명의 디자이너와 실제 상금이 걸린 사업이다. 9월 경매의 성격을 남길 숫자는 스타 의상의 최고 낙찰가보다 CPJ와 CFDA에 실제로 전달된 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