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승희 “오후 5~6시가 되면 마음이 급했어요”…노란 머리에 남은 육아와 작업

성공을 향하던 ‘파랑새’에서 가족·바람·물 한 잔으로…작은 꽃과 큰 눈, 장지 위에 쌓아온 가까운 행복

2026-08-09     임우경 기자
구승희 작가, 성공을 향하던 ‘파랑새’에서 가족·바람·물 한 잔으로…작은 꽃과 큰 눈, 장지 위에 쌓아온 가까운 행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 · 박준식기자]오후 5~6시가 되면 구승희의 마음은 급해졌다. 아이들이 어렸던 시절 작업은 오전 9시부터 시작했지만 저녁이 가까워지면 어린이집에 맡겨둔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조금만 더 그리고 싶은 마음과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겹쳤다. 지금 구승희 작품에 반복되는 노란 곱슬머리는 밝고 즐거운 순간보다 바로 그 복잡했던 시간에서 시작됐다.

구승희는 대학원 졸업 이후 약 25년 동안 작업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붙들어온 주제는 ‘행복’이지만 행복을 바라보는 기준은 달라졌다. 젊은 시절에는 성공해야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행복을 찾아서’, ‘파랑새를 찾아서’라는 흐름으로 작업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행복이 이미 생활 안에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구승희 작가, 성공을 향하던 ‘파랑새’에서 가족·바람·물 한 잔으로…작은 꽃과 큰 눈, 장지 위에 쌓아온 가까운 행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시간, 이웃과 지내는 일, 시원한 물을 마시고 바람을 느끼는 감각이 뒤늦게 다른 의미로 들어왔다. 구승희가 말하는 ‘파랑새’도 특별한 곳에 있는 대상이 아니다. 가족과 이웃이 될 수도 있고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작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작가노트에서 이어온 ‘보물찾기’라는 말도 주변에 이미 존재하지만 쉽게 지나쳤던 행복을 다시 찾는다는 뜻에 가깝다.

노란 머리는 그런 행복관의 변화를 설명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20대에는 생머리의 여성을 그렸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작업할 수 있는 시간과 생활 반경이 달라졌다. 작업을 멈춰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조급하고 복잡했던 마음을 머리카락의 반복에 풀어냈다. 밝은 색 때문에 처음부터 행복을 나타내기 위해 만든 상징처럼 읽히기 쉽지만 구승희에게 출발점은 오히려 생활의 압박이었다.

구승희 작가, 성공을 향하던 ‘파랑새’에서 가족·바람·물 한 잔으로…작은 꽃과 큰 눈, 장지 위에 쌓아온 가까운 행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작품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작가가 처음 품었던 감정과 달랐다. 복잡한 마음을 담은 노란 곱슬머리에서 밝고 화사한 인상을 읽었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반응이 이어졌다. 구승희도 노란 머리를 계속 그리기 시작했다. 한 줄씩 반복해 머리를 채우는 작업을 두고는 “돌을 쌓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노란 머리의 여성은 작가 자신에게서 출발했다. 여러 현대 여성을 그리던 시기에서 한 인물에 집중하게 된 배경에도 육아가 있었다.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생활 속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을 모델로 삼았고, 이후 한 인물이 반복해서 작품에 등장했다. 실제 얼굴을 옮긴 자화상이라기보다 자신의 생활과 감정을 출발점으로 만든 인물에 가깝다.

구승희 작가, 성공을 향하던 ‘파랑새’에서 가족·바람·물 한 잔으로…작은 꽃과 큰 눈, 장지 위에 쌓아온 가까운 행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가족과 아이, 강아지도 같은 방식으로 작품에 들어왔다. 소재를 멀리서 찾기보다 주변에서 찾았고, 작품에 등장하는 강아지 가운데는 실제 함께 살았던 반려견에서 가져온 모습도 있다. 혼자였던 여성 주변에 생활 가까이에 있던 존재가 하나씩 더해지면서 작품 속 관계도 넓어졌다. 행복의 기준이 성공에서 일상으로 이동한 과정과 소재의 변화가 겹치는 부분이다.

작품 가까이에서 보이는 작은 꽃 역시 평범한 생활에서 출발한다. 멀리서는 점처럼 보이지만 하나씩 들여다보면 작은 꽃이다. 바람을 느끼거나 물을 마시는 일, 강아지를 안고 아이와 책을 읽는 시간처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행복을 작은 꽃에 담았다. 큰 꽃에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행복의 색을 표현했다.

구승희 작가, 성공을 향하던 ‘파랑새’에서 가족·바람·물 한 잔으로…작은 꽃과 큰 눈, 장지 위에 쌓아온 가까운 행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작은 꽃이 수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메시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꽃 하나, 곱슬머리의 선 하나, 옷의 문양 하나를 계속 더하는 과정이 작품의 밀도를 만든다. 구승희에게 행복을 찾는 방식과 그림을 채우는 방식은 모두 작은 것을 하나씩 발견하고 축적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래서 작품에서 반복은 의미이면서 동시에 실제로 투입된 시간의 흔적이 된다.

큰 눈은 인물의 안쪽을 향한다. 코와 눈썹의 표현을 줄이고 눈을 크게 강조한 데에는 겉모습은 꾸밀 수 있어도 눈에는 내면의 진심이 드러난다는 작가의 생각이 있다. 눈동자 안에서 꽃이나 별처럼 보이는 결정 형태는 과거 접했던 물의 결정 이미지를 가져온 조형적 모티프다. 긍정적인 생각과 내면의 진심을 시각적으로 담기 위해 선택한 형태로 보는 편이 작품의 맥락에 가깝다.

구승희 작가, 성공을 향하던 ‘파랑새’에서 가족·바람·물 한 잔으로…작은 꽃과 큰 눈, 장지 위에 쌓아온 가까운 행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작업의 바탕은 오랫동안 장지채색이었다. 장지에 밑작업을 하고 분채를 사용해 얇은 색을 여러 차례 쌓으며 원하는 발색을 찾아간다. 종이의 성질 때문에 한 번에 두껍게 색을 올리기보다 건조와 채색을 반복하고, 머리와 피부, 옷과 꽃에서도 같은 시간이 이어진다. 강한 노랑과 빨강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실제 제작에서는 반복해서 쌓은 색층이 작품의 표면을 만든다.

작업시간이 길다고 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늘 즐거운 것도 아니다. 구승희는 작업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성장한 뒤에는 오전에 작업실에 들어가 밤늦게까지 머물기도 하지만 완성하는 과정에서 다시 ‘돌을 쌓는 느낌’을 얻는다. 밝은 색과 행복이라는 제목 뒤에 반복적인 노동과 생활의 시간이 함께 놓여 있는 이유다.

구승희 작가, 성공을 향하던 ‘파랑새’에서 가족·바람·물 한 잔으로…작은 꽃과 큰 눈, 장지 위에 쌓아온 가까운 행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행복에 대한 생각도 무조건적인 낙관과는 거리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는 갈등과 힘든 시간이 있었고, 당시에는 버겁게 느껴졌던 경험도 시간이 지난 뒤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됐다. 구승희는 기쁨만을 행복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행복하지 않은 날까지 포함한 생활 속에서 다시 작은 것을 발견하는 쪽에 가깝다.

최근에는 장지 밖의 재료에도 조금씩 손을 뻗고 있다. 이번 전시의 ‘행복으로’와 ‘기쁨가득’은 캔버스를 바탕으로 한 혼합매체 작업이며, 전통 채색을 가장 익숙한 기반으로 두면서 아크릴 등 다른 수성 재료를 함께 사용하는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재료를 바꿨다는 사실보다 오랫동안 반복해온 인물과 꽃, 색과 공간이 다른 바탕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이후 작업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부분이다.

구승희 작가, 성공을 향하던 ‘파랑새’에서 가족·바람·물 한 잔으로…작은 꽃과 큰 눈, 장지 위에 쌓아온 가까운 행복.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의 작업을 처음 보면 노란 머리와 큰 눈, 꽃이 먼저 남는다. 인터뷰를 따라가면 그 형태 뒤에는 오후 5~6시가 되면 작업을 멈춰야 했던 젊은 엄마의 시간과 성공을 좇던 시절, 가족과 함께 먹는 한 끼를 다시 바라보게 된 변화가 있다. 행복은 작품에 붙인 밝은 단어보다 생활 속에서 무엇을 다시 발견했는가에 가까웠다.

노란 머리는 복잡했던 마음에서 시작됐고, 작은 꽃은 지나치기 쉬운 일상에서 나왔다. 선과 꽃을 하나씩 더하는 제작 방식에는 오랜 작업시간이 쌓였다. 구승희가 계속 말해온 ‘보물찾기’도 결국 멀리 있는 것을 향하기보다 이미 곁에 있는 것을 다시 바라보는 작업과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