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웨어를 다시 입다④] 코펜하겐 SS27, 수트에 스니커즈·레이스…출근복의 새 조합
mfpen은 티셔츠·와이드 팬츠·비대칭 하의로 격식 낮춰 테일러링과 레이스·스포츠웨어 섞인 코펜하겐…서울도 수트와 이질적 소재 결합 확산
[KtN 박인경기자]회색 수트 안에 흰 셔츠만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몸에 붙는 티셔츠에는 검은 와이드 팬츠가 붙었고, 재킷 아래에는 비대칭 하의와 슬림한 검은 팬츠가 들어왔다. 셔츠의 단추를 느슨하게 풀고 가방을 어깨에 걸친 차림도 수트와 같은 런웨이를 걸었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mfpen의 2027 봄·여름(SS27) ‘Deadlines’가 꺼낸 직장복은 사무실 안에서만 성립하는 한 벌보다 출근과 일상 사이를 오가는 옷에 가까웠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코펜하겐 패션위크에는 34개 쇼와 프레젠테이션이 공식 일정에 이름을 올렸다. 8월 3일부터 7일까지 이어진 SS27에서는 수트와 테일러링이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레이스와 시스루, 스포츠웨어와 스니커즈처럼 성격이 다른 요소를 한 차림에 섞는 스타일링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한동안 코펜하겐을 대표했던 절제된 미니멀리즘도 색과 질감, 레이어링을 받아들이며 한층 느슨해졌다.
옅은 색의 몸에 붙는 상의 아래 검은 팬츠가 낮은 허리선에서 시작한다. 재킷도 셔츠도 없지만 바지는 길고 어두우며, 단순한 상의와 함께 입어 업무복에서 완전히 멀어지지 않는다. 출근용 수트를 티셔츠와 팬츠 단위로 풀어놓은 듯한 조합이다.
바지의 허리선은 내려갔고 상의 길이도 짧아졌다. 반면 팬츠는 발등까지 충분히 떨어진다. 몸에 붙는 상체와 여유 있는 하체가 나뉘면서 전통적인 재킷과 슬랙스의 비율과 다른 형태가 만들어졌다. 정장을 캐주얼웨어로 바꾼다기보다 직장복에서 필요한 품목만 남겨 일상적인 옷과 연결했다.
코펜하겐 SS27에서 나타난 변화도 비슷한 방향을 향했다. The Garment는 여유 있는 테일러드 팬츠 위에 레이스 장식 슬립을 겹쳤고, OpéraSPORT는 레이스를 넣은 상의와 드레스, 구조적인 테일러링과 부드럽게 흐르는 소재를 함께 사용했다. 레이스와 시스루, 크로셰는 여러 컬렉션에 걸쳐 등장했다. 정제된 재킷과 팬츠를 여성적인 소재와 나란히 놓으면서 테일러링을 한 가지 격식으로 묶지 않았다.
mfpen 역시 같은 흐름 안에서 수트를 일상복 가까이 끌어왔다. 레이스와 쇼츠, 얇은 니트가 재킷과 함께 등장했고, 수트 팬츠가 있던 자리에는 데님과 짧은 하의도 들어갔다. 다만 색은 검정과 회색, 네이비 주변에 머물렀다. 코펜하겐의 다른 컬렉션에서 색과 장식이 넓게 퍼진 것과 달리 mfpen은 길이와 맞음새를 바꾸는 쪽에 무게를 뒀다.
회색 상의와 검은 하의를 맞춘 차림에서는 정장의 흔적이 더 희미해진다. 상의는 몸을 따라 간결하게 떨어지고, 검은 하의에는 길이 차이가 생긴다. 검은 슈즈와 작은 가방을 더해 색의 범위는 좁게 유지했다.
단순한 상의와 어두운 하의만으로 구성했지만 운동복이나 휴일 복장으로 기울지 않는다. 검정과 회색, 가방과 신발을 한 방향으로 정리하면서 도시의 일상복에 가까운 차림을 만든다. 1편에서 등장했던 롱코트와 플리츠 팬츠가 전통적인 직장복에서 출발했다면 컬렉션이 진행될수록 재킷 없이도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옷이 늘어난다.
수트가 다시 주목받는다고 해서 과거의 출근복이 그대로 돌아온 것도 아니다. SS27 코펜하겐에서는 풍성한 드레스에 스포츠 아우터와 스니커즈를 맞추거나, 가벼운 셔츠와 드레스에 질감이 강한 스카프를 더하는 식의 하이로(high-low) 조합이 폭넓게 나타났다. 격식 있는 옷과 편한 옷을 분리하기보다 한 차림 안에서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다.
신발 협업도 이런 흐름과 맞물렸다. Paolina Russo는 Ecco, Nicklas Skovgaard는 Hoff와 작업했고 Anne Sofie Madsen은 Nike와 협업했다. O.Files 역시 Adidas 신발을 컬렉션에 결합했다. mfpen이 10주년 런웨이에서 New Balance Made in USA 992 협업 모델을 공개한 것도 스포츠 신발과 디자이너 컬렉션의 결합이 활발했던 이번 코펜하겐 시즌과 나란히 놓인다.
검은 재킷과 팬츠를 입은 차림은 수트가 여전히 mfpen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남긴다. 어깨와 몸통에는 여유가 있고 팬츠는 길게 떨어진다. 밝은 안쪽 상의가 검은 수트 사이로 드러나지만 장식은 많지 않다.
달라진 것은 수트를 입는 상황이다. 같은 컬렉션 안에서 재킷은 셔츠뿐 아니라 티셔츠와 얇은 상의 위에 놓이고, 팬츠는 완벽하게 맞춘 셋업에서 떨어져 나온다. 쇼츠와 스커트, 데님도 재킷의 짝이 된다. 한 벌을 갖춰 입어야 완성되는 수트보다 옷장에 있는 다른 품목과 계속 조합할 수 있는 재킷과 팬츠가 많아졌다.
코펜하겐의 변화가 미니멀리즘의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단색과 기능적인 실루엣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달라진 부분은 절제된 옷을 입는 방법이다. 레이스와 투명한 소재를 겹치고, 드레스에 스포츠 아우터를 입거나 테일러링 아래 스니커즈를 신으면서 단순했던 한 벌에 서로 다른 질감을 더했다. 올해 코펜하겐 거리에서도 레이스와 시스루, 크로셰가 두드러졌다.
검은 상의와 검은 하의를 맞춘 차림에서는 상체의 목선이 깊어지고 하의 길이가 비대칭적으로 움직인다. 검은 신발까지 색을 통일했지만 재킷과 셔츠를 갖춘 전통적인 올블랙 수트와는 다른 형태다.
검은색 하나만으로도 업무복과 이브닝웨어, 일상복 사이를 오갈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mfpen은 같은 검정을 사용하면서 어떤 차림에는 수트 재킷을 두고, 다른 차림에는 얇은 상의와 짧은 하의를 배치했다. 색으로 용도를 나누기보다 소재와 길이로 차이를 냈다.
서울에서도 2026년 들어 정제된 옷과 성격이 다른 품목을 함께 사용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2026 FW 서울패션위크에서는 테일러드 수트에 부피가 큰 퍼를 더하거나 드레스에 후드 티셔츠와 가죽 재킷을 겹치는 조합이 등장했다. 차분한 회색과 갈색 니트, 넉넉한 셔츠와 슬랙스를 연결한 스타일도 함께 나타났다. 코펜하겐과 서울의 옷이 같아진 것은 아니지만, 수트 한 벌의 형식을 유지하기보다 서로 다른 소재와 용도의 옷을 섞는 움직임은 두 도시에서 함께 포착됐다.
서울에서는 오버사이즈 테일러링과 가죽 재킷을 수트·셔츠 위에 겹쳐 입는 작업도 이어졌다. 데일리미러의 2026 FW 컬렉션에는 남성 테일러링을 바탕으로 한 큰 재킷과 롱코트, 레이어링이 사용됐다. 남성적인 테일러링과 여성적인 실루엣을 한 컬렉션 안에서 함께 다룬 점도 mfpen SS27과 비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밝은 스트라이프 셔츠에는 어두운 팬츠를 맞췄다. 셔츠의 앞부분은 느슨하게 정리했고 한쪽에는 어두운 아우터를 걸쳐 들었다. 작은 가방도 함께 들었다. 회의실에 들어가기 위해 완성한 셔츠와 팬츠보다 이동 중이거나 하루 일정을 마친 뒤의 옷차림과 가깝다.
셔츠와 검은 바지는 여전히 직장복의 기본에 속한다. mfpen은 가장 익숙한 조합을 남겨두면서 셔츠를 반듯하게 잠그고 재킷까지 갖춰야 한다는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재킷을 입었다 벗을 수 있고, 셔츠는 느슨하게 정리하며, 가방과 신발도 한 벌의 수트에 맞춰 고정하지 않는다.
코펜하겐 SS27에서 수트와 테일러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MKDT Studio는 더블브레스티드 수팅과 부드러운 울, 리넨 헴프를 사용하면서 실크와 오간자, 드레이프를 함께 배치했고, OpéraSPORT 역시 구조적인 테일러링과 몸을 따라 흐르는 소재를 대비시켰다. 수트의 재단은 남았지만 수트 주변의 소재와 스타일링이 훨씬 넓어졌다.
mfpen의 ‘Deadlines’도 같은 변화 속에 놓여 있다. 회색 롱코트와 플리츠 팬츠로 시작한 직장복은 티셔츠와 낮은 허리선의 바지, 비대칭 하의와 느슨한 셔츠까지 이어진다. 재킷과 셔츠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출근복이라는 한 가지 용도에 묶어두지 않았다.
20주년을 맞은 코펜하겐 패션위크와 25주년을 맞은 서울패션위크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것도 한 벌의 정장을 그대로 되살리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코펜하겐에서는 레이스와 스니커즈, 스포츠 아우터가 테일러링 옆으로 들어왔고 서울에서는 수트에 퍼와 후디, 가죽을 겹쳤다.
mfpen은 회색과 검정이라는 익숙한 직장복의 색을 붙든 채 재킷과 팬츠의 짝부터 바꿨다. 몸에 붙는 티셔츠와 와이드 팬츠, 검은 재킷과 일상적인 상의, 느슨하게 입은 셔츠가 같은 컬렉션에 놓였다. 2027년 봄·여름을 앞둔 코펜하겐에서 수트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기보다 사무실 밖에서도 계속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