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는 예술인가 낙서인가…15만파운드 쓰고도 답 못 낸 영국

왕립재판소 작품은 8만5300파운드 들여 제거, 워털루 조각은 수만파운드 투입해 보호 경찰 초소 작품은 박물관으로…같은 ‘무단 작품’ 두고 보존·철거·수장 엇갈린 공공성

2026-08-11     임민정 기자
banksy. 사진=banksy 인스타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뱅크시는 예술인가, 낙서인가. 수십 년간 미술계와 거리에서 이어진 논쟁이 영국에서는 세금의 문제가 됐다. 런던 왕립재판소 외벽에 남긴 작품은 8만5300파운드를 들여 지우고 있다. 워털루 플레이스에 설치한 조각에는 지방정부가 약 6만파운드를 들여 안전시설과 경비를 붙였다. 경찰 초소에 그린 피라냐 떼는 구조물째 철거됐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박물관 전시를 앞두고 있다. 최근 세 작품 때문에 발생한 공공 비용은 15만파운드에 육박한다. 같은 작가의 허가받지 않은 작업을 놓고 영국 공공기관의 판단은 제거와 보호, 박물관 보존으로 갈렸다.

돈의 크기만 놓고 보면 국가재정에서 차지하는 몫은 작다. 영국 국세청은 2026~2027년 소득세 납세자를 4080만명으로 추산한다. 15만파운드를 단순히 4080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약 0.37펜스다. 1페니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실제 세금 부담이 이렇게 균등하게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지만, 뱅크시를 둘러싼 이번 논쟁의 규모를 가늠하는 숫자다. 논쟁이 커진 이유는 0.37펜스가 비싸서가 아니다. 허가받지 않은 작품에 공공이 어디까지 비용을 부담할 것인지,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에 하나의 답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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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런던 왕립재판소(Royal Courts of Justice) 외벽에는 법복과 가발을 쓴 판사가 바닥에 쓰러진 시위자를 의사봉으로 내리치는 그림이 등장했다. 시위자는 붉은 흔적이 묻은 팻말을 들고 있었다. 뱅크시는 온라인을 통해 작품이 자신의 작업임을 확인했다. 작품이 놓인 곳은 일반 건물이 아니었다. 왕립재판소는 Grade II 등재 건축물이고, 법원·재판소청은 건물의 원래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제거에 들어갔다.

법무부가 벽의 페인트를 제거하는 데 투입한 금액은 5만파운드다. 초과근무와 경비에는 3만5300파운드가 들어갔다. 모두 8만5300파운드다. 초기 제거 작업이 충분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서 레이저 기술까지 사용됐고, 상태에 따라 다른 세척 방식이나 훼손된 석재 교체가 필요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작품이 있던 벽 앞에 난간을 설치하는 절차도 진행돼 최종 비용은 지금보다 늘어날 수 있다.

왕립재판소가 선택한 공공의 가치는 작품 보존이 아니라 건축물 보존이었다. 작가의 유명세나 미술시장 가격보다 문화재 건축물 관리 의무가 먼저 적용됐다. 뱅크시 작품이라는 이유로 외벽의 변경을 그대로 둘 경우, 역사적 건축물을 원형에 가깝게 관리한다는 다른 공적 기준과 충돌한다. 8만5300파운드는 작품을 구입한 비용도, 전시한 비용도 아니다. 공공건물에 예고 없이 들어온 미술을 다시 밖으로 밀어내는 데 들어간 돈이다.

런던 중심부의 워털루 플레이스(Waterloo Place)에서는 판단이 정반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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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말, 정장을 입은 남성이 커다란 깃발을 들고 걷는 조각이 높은 받침대 위에 나타났다. 바람에 날린 깃발이 얼굴을 가리고 있고 한 발은 받침대 밖으로 나와 있다. 주변에는 에드워드 7세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시드니 허버트 등의 기념상이 자리한다. 뱅크시는 설치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며 자신의 작품임을 확인했다.

웨스트민스터 시의회는 철거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두면서 보호 조치를 시작했다. 안전 펜스와 행정 업무, 경비 등에 지금까지 약 6만파운드가 들어갔다. 시의회는 토지 소유자로서 조각의 소유권이 시의회에 있다고 밝혔고, 단기·중기·장기 처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구 존치 여부에 대한 결정도 남아 있다.

왕립재판소에서는 뱅크시를 제거하기 위해 세금을 썼고, 불과 몇 달 뒤 같은 런던에서는 뱅크시를 지키기 위해 세금을 썼다. 두 결정 사이에 작가가 바뀐 것도 아니다. 허가 없이 공공영역에 들어왔다는 출발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것은 장소와 대상이었다. 역사적 건축물의 외벽에 직접 그려진 그림과 공공장소에 별도 구조물로 설치된 조각이라는 차이가 행정 처리의 방향을 갈랐다.

시민들의 반응은 워털루 작품의 위치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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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Gov가 5월 6~7일 실시한 조사에서 영국인의 56%는 새 뱅크시 조각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싫어한다는 응답은 13%였다. 29%는 ‘매우 좋아한다’고 답했고, 27%는 좋지도 싫지도 않다고 했다. 작품이 등장한 지 일주일여 만에 응답자의 66%가 새 조각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어봤다고 답했다. 18~24세에서는 호감도가 69%에 달했다.

뱅크시 작품 전반에 대한 호감도도 59%였다. 비호감은 8%였다. 워털루 작품의 경우 정치 성향과 연령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YouGov가 분류한 모든 사회·투표 집단에서 좋아한다는 응답이 싫어한다는 응답보다 많았다. 허가 여부와 별개로 상당수 시민에게 작품은 이미 보고 싶은 도시의 미술이 된 셈이다.

공공성의 판단이 여론조사로 결정될 수는 없다. 56%가 좋아한다고 해서 무단 설치가 허가받은 공공미술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대중이 부여한 문화적 가치를 행정이 무시하기도 어렵다. 워털루 조각 앞에서 지방정부가 맞닥뜨린 선택은 그래서 왕립재판소보다 복잡하다. 철거하면 이미 많은 시민이 호감을 표시한 작품을 없애게 되고, 남겨두면 경비와 안전, 관리에 세금이 계속 들어간다.

세 번째 작품은 또 다른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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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런던 시경의 경비 초소에는 유리 수조를 연상시키는 푸른색 바탕과 피라냐 떼가 그려졌다. 초소는 1990년대 아일랜드공화국군(IRA) 관련 위협에 대응한 보안시설의 하나로 설치됐던 구조물이다. 작품이 등장한 뒤 초소 전체가 철거됐고 비용은 2200파운드였다. 같은 자리에 다시 설치되지는 않았다.

철거가 작품의 소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피라냐가 그려진 초소는 런던 뮤지엄(London Museum)이 재개관할 때 전시될 예정이다. 런던 뮤지엄의 스미스필드 새 건물은 오는 11월 28일 문을 연다. 거리에서 제거된 보안시설이 박물관의 전시 대상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세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영국이 아직 뱅크시에게 하나의 행정적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왕립재판소에서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 건축물이었고, 워털루에서는 작품 자체가 보호 대상이 됐다. 경찰 초소에서는 현장에서 떼어내는 결정과 문화적 대상으로 보존하는 결정이 동시에 이뤄졌다. ‘예술’과 ‘낙서’라는 두 단어만으로는 세 가지 처리를 설명하기 어렵다.

비용 부담을 둘러싼 반발도 있다. 보수당의 그림자 법무장관 닉 티머시(Nick Timothy)는 왕립재판소 작품을 훼손 행위로 규정하고 납세자가 아니라 뱅크시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대편에서는 뱅크시 작품이 입장료 없이 미술을 접하게 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공예산을 바라보는 두 시선도 작품에 대한 두 정의와 맞물린다. 하나는 타인의 재산에 발생시킨 복구비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찾는 문화적 자산을 관리하는 비용이다.

15만파운드라는 숫자는 그래서 뱅크시 작품의 가격으로 읽기 어렵다. 영국 공공기관이 세 작품을 어떻게 다룰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행정비용에 가깝다. 왕립재판소에서는 원상복구 비용이 됐고, 워털루에서는 안전과 경비 비용이 됐으며, 경찰 초소에서는 철거와 보존으로 이어졌다. 같은 작가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못해서라기보다, 공공건축물과 거리, 문화재, 시민 향유, 재산권과 안전이라는 서로 다른 공적 이해가 장소마다 다른 순서로 충돌하고 있다.

왕립재판소의 벽은 추가 복구 가능성이 남아 있고 비용도 더 늘어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시의회는 워털루 조각의 장기 존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경찰 초소의 피라냐는 거리 대신 박물관에서 관객을 만나게 된다.

뱅크시는 예술인가, 낙서인가. 영국이 지금까지 내놓은 답은 한 단어가 아니다. 한 작품에는 8만5300파운드를 써서 지웠고, 다른 작품에는 수만파운드를 써서 남겨두고 있으며, 또 다른 작품은 떼어내 박물관으로 보냈다. 15만파운드에 가까운 세금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은 세 작품에 붙은 서로 다른 행정적 운명이다. 공공은 아직 뱅크시를 하나의 이름으로 결정하지 않았다. 대신 장소와 법적 지위, 시민의 호응, 관리 책임에 따라 예술과 훼손의 경계를 매번 다시 긋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