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럭셔리②] No.223, 블로그·ZINE에서 미술관·생로랑까지

2003년 ‘North Latitude 23’에서 일상 사진과 짧은 글 공개…친구·몸·도시의 사적 기록 20여 년 2025년 Three Shadows, 2026년 Fotografiska Shanghai 거쳐 Saint Laurent Rive Droite Beijing으로

2026-08-11     신명준 기자
No. 223 Wants You to Surrender to Sensuality at Saint Laurent Rive Droite. Photographer No. 223 (Lin Zhipeng)

[KtN 신명준기자]2026년 3월 13일 상하이 Fotografiska에는 중국 사진가 No.223, 린즈펑(Lin Zhipeng·林志鹏)이 지난 20여 년간 촬영한 작품 100여 점이 걸렸다. 전시는 6월 14일까지 이어졌다. 두 달도 지나지 않은 8월 6일, 린즈펑의 사진은 다시 베이징 Saint Laurent Rive Droite에 등장했다.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가 기존 아카이브에서 친밀감과 욕망, 로맨스를 다룬 작품을 골랐다. 2003년 개인 블로그에서 시작한 사진이 2026년 국제 사진기관과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의 전시 공간을 잇달아 통과하고 있다.

린즈펑은 1979년 중국 광둥성에서 태어나 현재 베이징에서 활동한다. 사진가이면서 글을 쓰고 직접 출판물을 만들어왔다. 활동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것은 2003년 만든 블로그 ‘North Latitude 23’이다. 일상에서 찍은 사진에 짧은 글을 붙여 공개했고 온라인에서 많은 독자를 확보했다. Saint Laurent도 린즈펑을 디지털 플랫폼과 셀프 퍼블리싱을 통해 등장한 중국 이미지 메이커 세대의 주요 인물로 소개한다.

No.223라는 이름은 왕자웨이(Wong Kar-wai)의 1994년 영화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 속 경찰 223에서 가져왔다. 영화 속 외로움과 사랑, 도시의 속도에 매료된 선택이었다. 이름을 가져온 뒤에는 자신의 친구와 지인, 연인과 도시 생활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젊은 사람들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순간, 벌거벗은 몸과 꽃, 과일, 침대와 방, 거리에서 스쳐가는 일상의 물건들이 사진에 반복됐다.

침구 위에 놓인 팔과 손, 손끝에 잡힌 작은 붉은 열매와 초록색 줄기가 한 컷에 들어온다. 인물의 얼굴과 장소 전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정돈되지 않은 침구와 피부, 작은 식물이 가까운 거리에서 맞붙는다. 린즈펑이 20여 년 동안 기록해온 일상은 거대한 사건보다 이런 생활의 조각에 가까웠다.

중국 사진문화에서도 2000년대 초는 중요한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제도 밖의 실험적 사진 활동이 늘어난 데 이어 2000년대에는 인터넷과 잡지, 개인 출판물이 새로운 유통 통로가 됐다. 린즈펑은 당시 비교적 열린 인터넷 환경을 이용해 사진과 텍스트를 함께 올리고, 직접 편집한 ZINE을 제작했다. 전시기관이나 기존 출판 시스템을 먼저 거치지 않고 사진가 스스로 촬영·편집·발표를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친구와 지인을 반복해서 촬영한 점도 당시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사진 속 인물은 전문 모델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촬영자와 이미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몸, 시선, 작은 행동과 물건을 오랫동안 기록하면서 사람 사이의 거리와 감정 변화를 축적했다. 2025년 베이징 Three Shadows에서 열린 'Vision Infra-mince'는 린즈펑의 작업을 2000년대 이후 중국 사진과 개인적 사진 표현의 변화 속에서 다뤘다.

사진을 사적인 일기로만 묶기도 어렵다. 처음부터 공개를 전제로 온라인에 사진을 올렸고 ZINE으로 다시 편집했다. 개인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다른 동세대의 경험과 만나는 구조였다. 사진가의 공식 약력에서도 ‘North Latitude 23’은 수많은 온라인 이용자가 접한 프로젝트로 설명되며, 이후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 셀프 퍼블리싱을 통해 작업을 확장한 과정이 강조된다.

No. 223 Wants You to Surrender to Sensuality at Saint Laurent Rive Droite. Photographer No. 223 (Lin Zhipeng)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사진에서도 사적 생활의 흔적은 남는다. 짙은 청록색 벽 아래 꽃무늬 침구가 구겨진 채 쌓여 있다. 침대가 반듯하게 정돈되지 않았다는 사실 외에 누가 머물렀는지, 무엇이 있었는지를 설명할 단서는 없다. 사람의 몸을 직접 보여주는 사진과 사람이 빠져나간 생활공간을 찍은 사진 사이에서 린즈펑은 같은 종류의 시간을 기록해왔다.

20년이 지나면서 발표 장소는 크게 달라졌다. 린즈펑의 작품은 ICP New York, MEP Paris를 비롯해 국제 사진기관과 미술관, Paris Photo, Photo Basel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사진집도 중국뿐 아니라 프랑스, 캐나다, 일본,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에서 출간됐다.

2025년에는 Three Shadows Xiamen에서 'Under the Sunlight, There is No True Intimacy'가 열렸다. 20년에 걸친 사진 100여 점을 통해 몸과 자연, 일상의 사물이 맺는 관계를 다뤘다. 같은 전시는 2026년 3월 Fotografiska Shanghai로 이어졌다. 상하이 전시는 도시와 자연, 사적 공간을 오가며 축적한 20년의 작업을 100여 점 규모로 다시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사진집 역시 주변적인 결과물에 머물지 않았다. 린즈펑은 이미지와 글을 함께 다뤄왔고 셀프 퍼블리싱과 독립출판을 작업 방식의 일부로 유지했다. 2012년 사진집 'No.223', 2018년 'Sour Strawberries'를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출판을 이어갔고, 2025년에는 파리에서 촬영한 75장의 컬러사진을 담은 'Amour Défendu'도 출간했다.

Saint Laurent와의 관계도 2026년 칠석 전시에서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린즈펑은 2022년 파리와 로스앤젤레스 Saint Laurent Rive Droite에서 열린 그룹전 'Pink Matter'에 참여했고, 2023년에는 같은 공간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Saint Laurent는 별도의 팬진에도 린즈펑의 작업을 실었다. 2026년 베이징 전시는 이미 수년에 걸쳐 이어진 협업의 다음 단계다.

달라진 것은 장소만이 아니다. 2003년에는 사진가 개인이 인터넷과 ZINE을 이용해 독자를 찾아갔다. 2025년과 2026년에는 중국의 전문 사진기관이 20년의 작업을 회고했고, 이어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가 같은 아카이브를 직접 큐레이션해 베이징의 상업공간에 걸었다. Saint Laurent Rive Droite Beijing에 전시된 작품은 관람뿐 아니라 구매도 가능하다.

2000년대 초 린즈펑에게 블로그와 ZINE은 기존 제도 밖에서 사진을 공개할 수 있는 통로였다. 20여 년 뒤 같은 사진 언어는 미술관의 회고 대상이 되고 럭셔리 하우스의 문화 프로그램에도 들어왔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중국의 개인적 이미지 문화가 제도권에 편입됐다는 한 방향의 변화만으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사진집과 독립출판을 계속하면서 미술기관, 갤러리, 패션 브랜드를 동시에 오가는 경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베이징 Saint Laurent Rive Droite의 No.223 전시는 9월 11일까지 이어진다. 블로그에 올린 일상 사진에서 출발한 지 23년, 친구와 침대, 꽃과 몸을 기록해온 사진은 이제 중국에서 럭셔리 브랜드가 구축하는 문화공간 안에서도 거래된다. 사진가 한 명의 활동 범위가 넓어진 데 그치지 않고, 2000년대 인터넷과 독립출판에서 성장한 중국 이미지 문화가 2026년 글로벌 럭셔리 산업과 만나는 위치까지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