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럭셔리④] 생로랑 베이징, 매장 안 전시·작품 판매…럭셔리 공간 경쟁
5월 류커·황황, 6월 황루이, 8월 No.223…세 달간 중국 작가 전시 이어져 루이비통 ‘The Louis’·프라다 Rong Zhai도 전시·식음 결합…중국 소비 둔화 속 오프라인 거점의 역할 확대
[KtN 신명준기자]지난 5월 8일 베이징 싼리툰의 Saint Laurent Rive Droite에 중국 작가 류커(Liu Ke·刘珂)와 황황(Huang Huang·晃晃)의 사진이 걸렸다. 베이징 Rive Droite가 문을 연 뒤 처음 진행한 공식 전시였다. 5월 29일 전시가 끝난 뒤에는 중국 현대미술가 황루이(Huang Rui·黄锐)가 이어졌고, 8월 6일부터는 No.223로 활동하는 린즈펑(Lin Zhipeng·林志鹏)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석 달여 동안 중국 작가 세 팀이 한 럭셔리 브랜드의 베이징 매장을 연속해서 채웠다.
세 전시에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류커·황황의 사진, 황루이의 회화와 조각, 린즈펑의 사진 모두 매장에서 판매된다. 패션 상품과 미술 작품이 같은 주소 안에서 각각 상품으로 존재하는 구조다. Saint Laurent Rive Droite Beijing은 베이징 차오양구 싼리툰로 19번지 Taikoo Li Sanlitun에 자리한 3개 층 규모의 매장이다.
첫 전시였던 류커와 황황의 'Mirror'는 관계와 시간을 다뤘다. 청두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두 작가는 실제 삶의 동반자이자 예술적 파트너다. 2017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매일 서로를 촬영했고, 730개의 작업에 모두 1460장의 이미지를 남겼다. 하루 단위로 반복된 촬영을 통해 친밀성과 자아, 타인 사이의 경계 변화를 기록한 작업이었다.
첫 프로그램부터 유명 해외 작가의 작품을 베이징으로 옮겨오는 방식이 아니라 중국에서 활동해온 작가를 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류커·황황은 Three Shadows Photography Art Centre와 Chengdu Contemporary Image Museum 등 중국 사진기관에서 활동했고, 'Mirror'는 2019년 제11회 Three Shadows Photography Award를 받았다. 작품 판매에는 Three Shadows +3 Gallery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6월 11일부터 7월 31일까지 이어진 'Unusual'에서는 세대와 매체가 크게 달라졌다. 1952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황루이는 중국 현대미술사 초기에 등장한 ‘싱싱(The Stars·星星画会)’의 창립 멤버 가운데 한 명이다. 회화와 조각,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어온 작가의 작업 가운데 회화와 조각이 베이징 Rive Droite에 들어왔다.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가 큐레이션했으며 전시 작품 역시 판매됐다.
류커·황황에서 황루이로 넘어간 구성은 사진이라는 한 장르에 공간을 묶지 않았다. 젊은 두 작가가 기록한 사적인 관계에서 중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추상, 공간과 물질의 문제로 범위를 바꿨다. 8월에는 다시 사진으로 돌아왔다. 1979년생 린즈펑의 전시는 청춘과 친밀성, 개인의 자유를 20여 년 기록해온 아카이브에서 작품을 골라 칠석과 연결했다. 세 전시의 세대와 작업 방식, 주제가 각각 다르다.
베이징 Rive Droite에서 중국 작가를 연속 배치한 선택은 럭셔리 브랜드의 현지화 방식에서도 구별된다. 중국 전용 색상이나 캡슐 컬렉션, 현지 배우를 앞세운 캠페인은 이미 익숙하다. 올해 이 공간에서는 중국 작가의 기존 작업과 중국 미술사의 서로 다른 층위를 실제 프로그램으로 편성하고 작품 거래까지 연결했다. 적어도 5월부터 9월까지 이어지는 첫 공식 전시 일정에서는 ‘중국을 위한 제품’보다 ‘중국에서 형성된 문화 콘텐츠’를 공간 안으로 가져오는 비중이 높다.
Saint Laurent Rive Droite 자체가 전통적인 패션 부티크와 다른 출발점을 갖고 있다. 파리 Rive Droite는 패션뿐 아니라 예술과 디자인, 출판, 음악, 한정 협업과 전시를 함께 다루는 공간으로 운영돼 왔다. Kering은 파리 매장을 문화 플랫폼과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결합한 개념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전시와 문화 프로그램, 아트북 등을 패션 상품과 함께 배치한다.
베이징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생로랑만의 움직임도 아니다. 중국의 고가 소비가 둔화된 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매장 수를 늘리는 방식과 별개로 주요 도시에 더 큰 문화·체험 거점을 만드는 투자를 이어왔다. 지난해 중국 럭셔리 시장에서는 일부 브랜드가 점포를 줄이는 동시에 대형 플래그십과 전시, 레스토랑, VIP 공간에 자금을 투입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거래가 일어나는 매장 수를 무조건 늘리기보다 대표 공간 한 곳에서 체류 시간과 브랜드 경험을 늘리는 방향이다.
상하이 난징시루에 자리한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The Louis'가 가장 규모가 큰 비교 대상이다. 거대한 선박 형태의 건물 안에 'Visionary Journeys' 전시, 매장과 기프트스토어, Le Café Louis Vuitton을 함께 배치했다. 공식 소개에서도 여행과 문화, 장인정신을 하나의 경험 안에서 연결하고, 관람을 마친 뒤 상품과 식음 공간으로 이동하도록 구성했다.
프라다(Prada)는 상하이의 역사적 저택 Rong Zhai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 2025년에는 왕자웨이(Wong Kar-wai)와 함께 Mi Shang Prada Rong Zhai를 열어 카페와 파인다이닝, 미술품과 중국 골동품, 브랜드 제품과 맞춤 서비스를 한 건물 안에 넣었다. Rong Zhai는 연간 두 차례의 미술 전시와 문화 행사도 운영한다. 판매 공간에 전시를 더하는 수준보다 식문화와 미술, 건축, 패션을 하나의 방문 목적지로 묶는 방식이다.
생로랑 베이징은 루이비통의 대형 선박이나 프라다의 레스토랑과 규모와 방식이 다르다. 비교되는 대목은 공간을 사용하는 논리다. 소비자가 매장에 들어온 뒤 제품 진열대를 보고 결제하는 단선적인 동선보다 전시를 보고, 책과 이미지를 접하고, 특정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며 브랜드와 접촉하는 시간을 늘린다. 브랜드가 제품을 만드는 기업인 동시에 무엇을 전시하고 누구를 소개할지를 결정하는 편집자의 위치까지 가져간다.
중국 럭셔리 시장의 숫자는 이런 투자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중국 본토 개인 럭셔리 시장은 2024년 17~19% 감소한 뒤 2025년에도 3~5% 줄었다. 2025년 하반기부터 회복 신호가 나타났고 2026년에도 점진적인 회복이 예상되지만, 소비자는 가격과 브랜드 이름만으로 구매하기보다 품질과 희소성, 실용성을 함께 따지는 쪽으로 더 선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행과 웰니스 같은 경험 소비 선호도 이어졌다.
8월 들어서도 중국의 고가 소비가 과거와 같은 형태로 돌아왔다는 신호는 뚜렷하지 않다. 중산층 소비자 가운데 고가 가죽제품 구매를 미루고 프레스티지 스킨케어와 향수, 메이크업으로 지출을 옮기는 움직임이 나타났으며, 조사 대상 중국 부유층 가운데 프레스티지 뷰티 지출을 늘리겠다는 응답은 37%였지만 가죽제품은 4%에 그쳤다. 한 번의 구매 금액이 큰 가방을 선택하는 데 이전보다 강한 이유가 필요한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매장의 역할도 함께 달라지고 있다. McKinsey가 올해 미국과 중국의 럭셔리 고객 2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지위를 과시하는 기능보다 브랜드와의 정서적 연결이 구매 욕구에서 커지고, 여행을 비롯한 경험이 럭셔리 상품과 같은 지출을 놓고 경쟁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실제 매장이 여전히 상품 발견의 주요 경로이면서 브랜드와 관련한 기억과 감정을 만드는 장소로 조사됐다. McKinsey는 중국 매장을 스토리텔링과 개인화, 관계 형성이 함께 이루어지는 ‘몰입형 브랜드 공간’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문화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상업성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생로랑 베이징의 세 전시는 모두 작품 판매를 명시했다. 매장이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없앴다기보다 판매 가능한 범주를 패션에서 미술까지 확장한 쪽에 가깝다. 작품의 선정과 전시 공간, 브랜드 고객의 방문 동선이 하나로 묶이면서 문화 프로그램 자체도 럭셔리 리테일의 일부가 된다.
동시에 브랜드가 문화의 중개자 역할을 넓힐수록 어떤 작가를 선택하고 어떤 중국 문화를 전면에 놓는지도 중요해진다. 베이징의 첫 세 전시만 놓고 보면 류커·황황의 관계 사진, 황루이의 중국 현대미술, 린즈펑의 청춘과 친밀성으로 프로그램을 달리했다. 모두 이미 중국 미술·사진계에서 활동 기반과 전시 이력을 쌓은 작가들이다. 신진작가를 발굴했다는 서사보다 중국에서 축적된 작업을 글로벌 럭셔리 공간이 다시 선별해 자신의 고객에게 제시하는 구조가 정확하다.
No.223의 사진전은 9월 11일까지 이어진다. 5월 8일 첫 공식 전시가 시작된 뒤 네 달 사이 베이징 Rive Droite는 사진에서 회화와 조각, 다시 사진으로 프로그램을 바꾸면서 중국 작가의 작품을 계속 판매하고 있다. 같은 시기 상하이에서는 루이비통이 전시와 카페를 결합하고 프라다가 미술과 파인다이닝을 한 건물에 넣었다. 중국의 럭셔리 소비가 빠르게 팽창하던 시기에는 새 매장 자체가 성장의 결과였다면, 소비가 느려진 2026년에는 매장 안에서 보내는 시간과 경험, 문화적 접점을 얼마나 만들어낼지가 브랜드 경쟁의 또 다른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