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브리엘레 무치노 감독전, 사랑보다 오래 남는 ‘관계의 책임’ 25년
‘라스트 키스’의 청춘에서 ‘키스 미 어게인’의 중년까지…9월 신작 ‘말하지 않은 것들’로 이어지는 관계의 시간 외국영화 관객 줄고 감독전·재상영 늘어난 극장가, 신작 한 편보다 ‘작가의 세계’를 묶어 보는 관람으로 이동 사랑·가족·자유를 낭만보다 선택과 책임의 문제로 다뤄온 무치노, 25년 뒤에는 ‘말하지 못한 진실’까지
[KtN 김동희기자]서른 살의 남자는 아이가 태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여자에게 흔들린다. 사랑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앞으로 살아갈 한 가지 삶이 갑자기 너무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2001년 가브리엘레 무치노(Gabriele Muccino)의 ‘라스트 키스’(L'ultimo bacio)는 결혼과 출산을 앞둔 청춘의 불안을 사랑 이야기 안에 밀어 넣었다. 2010년 ‘키스 미 어게인’(Baciami ancora)은 같은 사람들을 10년 뒤 다시 불러 결혼과 별거, 아이와 생계, 오래된 후회의 무게를 얹었다. 2026년 ‘말하지 않은 것들’(Le cose non dette)에 이르면 인물들은 더 이상 성인이 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지켜온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진실을 말하는 일이 두려워진다. 무치노의 영화에서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은 감정보다 책임에 가까워졌다.
CGV아트하우스가 8월 19일부터 2주 동안 ‘라스트 키스’, ‘리멤버 미’(Ricordati di me·2003), ‘키스 미 어게인’을 다시 상영한다. 용산아이파크몰·압구정·강변·여의도·오리·서면·대구 등 7개 상영관에서 진행하고, 9월 2일 국내 개봉을 앞둔 ‘말하지 않은 것들’로 일정을 잇는다. ‘키스 미 어게인’은 ‘라스트 키스’의 인물들을 10년 뒤 다시 만나는 직접적인 후속작이고, ‘리멤버 미’는 별도의 가족을 다룬다. 세 작품을 묶는 것은 하나의 줄거리가 아니라 무치노가 반복해서 파고든 인간의 상태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삶을 꿈꾸고, 자유를 원하면서도 혼자가 되기는 두려워하며, 자신이 선택한 관계에서 벗어나려다가 결국 선택의 결과와 다시 마주하는 사람들이다.
‘라스트 키스’의 카를로에게 임신은 행복한 사건인 동시에 시간의 경계선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가능했던 여러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변 친구들의 결혼과 연애, 부모 세대의 위기까지 겹치면서 영화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안정의 시기로 그리지 않는다. 젊음의 끝을 인식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흔들리는 시기로 바라본다. 사랑은 여기에서 자유의 반대말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자유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의 삶과 충돌하는 순간부터 관계의 윤리가 시작된다. 무치노 영화가 연애의 감정보다 선택 이후의 행동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대목도 여기에 놓인다.
2003년 ‘리멤버 미’는 같은 갈등을 가족 전체로 옮겼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와 배우를 꿈꿨던 어머니, 사회의 관심과 인정을 원하는 자녀들은 한집에 살면서도 저마다 다른 결핍을 품는다.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개인의 욕망을 없애지 않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끝내지 못한다. 2000년대 초반 만들어진 작품을 지금 다시 보면 한층 익숙한 부분도 생긴다. 직업과 외모, 성공, 타인의 평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인물들의 불안은 개인의 일상을 끊임없이 공개하고 평가받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과도 겹쳐진다. 가족이라는 사적 공간마저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과 자기 연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감각은 20여 년의 시차를 지나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키스 미 어게인’에서는 10년이라는 시간이 인물들의 몸과 생활에 직접 들어온다. ‘라스트 키스’에서 떠나고 싶어 했던 청춘들은 이제 자신이 떠났던 자리와 돌아가야 할 사람, 자녀와 경제적 책임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젊을 때의 자유가 아직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을 뜻했다면 중년의 자유에는 이미 내려놓아야 할 것이 붙어 있다. 과거의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도 없고 처음 사랑했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무치노가 여기에서 붙잡는 것은 화해의 낭만보다 시간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책임이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지만 같은 자리로 돌아갈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과 타인의 삶에 남겨놓은 결과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무치노가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2006)와 ‘세븐 파운즈’(Seven Pounds·2008)에서도 선택과 책임은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전자에서는 가난 속에서 아들을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가, 후자에서는 과거의 선택이 만든 죄책감을 감당하려는 남자가 중심에 놓였다. 이탈리아의 연애와 가족에서 미국 사회의 생존과 속죄로 무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이 타인의 삶에 지는 책임이라는 축은 남았다. 무치노의 필모그래피를 사랑 이야기로만 분류하면 놓치기 쉬운 대목이다. 관계를 지속하는 인간, 관계를 망가뜨리는 인간, 다시 책임지려는 인간이 장르와 장소를 바꿔가며 반복된다.
9월 개봉하는 ‘말하지 않은 것들’에서는 관계의 시간이 다시 중년으로 이동한다. 델리아 에프런(Delia Ephron)의 소설 ‘시러큐스’(Siracusa)를 바탕으로 무치노와 에프런이 각본을 썼고, 로마에서 살아가는 부부와 오랜 친구들이 모로코 탕헤르로 떠나면서 감춰온 균열이 드러난다. 무치노는 연출 노트에서 가까운 관계에서 끝내 발화하지 못한 진실과 도덕적 모호성, 무너지고 있는 관계를 붙들려는 인간의 취약성을 작품의 중심에 놓았다. 엘리사는 주변의 균열을 알아차리지만 모두 고칠 수는 없으며, 결국 사랑만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순간에 도착한다. ‘라스트 키스’가 아직 선택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였다면 25년 뒤에는 이미 선택해 살아온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무치노의 25년을 다시 극장에 배열하는 방식은 최근 영화 소비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2026년 상반기 국내 극장 매출은 5790억원, 관객은 5705만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41.9%, 34.2% 증가했다. 한국영화 관객은 74.9% 급증한 반면 외국영화 관객은 1968만명으로 6.9% 감소했다. 외국영화 매출은 특수상영 비중이 높은 작품의 영향으로 2.3% 늘었고, IMAX·4DX 등을 포함한 특수상영 매출은 56.3% 증가했다. 전체 극장시장이 회복되는 동안 관객은 모든 영화를 고르게 다시 보기보다 대형 흥행작과 극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에 더 선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아트하우스 영화에는 거대한 화면이나 특수상영 대신 다른 방식의 차별화가 필요해졌다. 올해 CGV에서는 1월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전이 열렸고, 3월부터는 빔 벤더스(Wim Wenders)의 영화 13편을 세 개의 주제로 나눈 연간 감독전이 시작됐다. 아카데미 기획전에서도 미개봉작과 이미 개봉했던 작품을 함께 묶었다. 8월에는 차이밍량(Tsai Ming-liang)의 ‘애정만세’가 31년 만에 4K로 다시 극장에 걸렸다. 작품 한 편을 신작처럼 소비하는 방식과 함께 감독·시대·주제를 단위로 과거 영화를 다시 배열하는 편성이 이어지고 있다.
OTT가 오래된 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만들면서 극장이 가진 희소성은 ‘작품을 보유하고 있느냐’에서만 나오기 어려워졌다. 감독전은 흩어진 작품에 순서를 부여한다. 한 편씩 따로 보면 연애영화와 가족영화로 지나갈 작품들이 2001년, 2003년, 2010년의 순서로 놓이면 한 감독이 인간을 바라보는 나이와 시선의 변화가 드러난다. 신작 직전에 과거작을 다시 묶는 편성에는 감독의 인지도를 높이고 새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려는 마케팅 기능도 분명히 들어 있다. 작품별 포스터를 증정하는 방식 역시 상영을 관람과 수집이 결합된 이벤트로 바꾸는 현재 극장 마케팅의 일부다. 감독전의 문화적 가치는 그런 판매 장치를 넘어 과거의 영화를 현재의 시간 속에서 다시 읽을 근거를 만들어낼 때 생긴다. 올해 이어진 감독전과 재상영 편성은 극장이 상영작 자체뿐 아니라 작품 사이의 ‘맥락’을 하나의 관람 단위로 만들고 있다는 흐름으로 읽을 수 있다.
무치노의 초기작은 바로 그 시간차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라스트 키스’가 만들어진 2001년과 2026년의 서른 살은 같은 조건에서 살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의 시기는 늦어졌고 가족의 형태도 달라졌으며 개인의 정체성을 직업과 관계 하나로 고정하지 않는 삶이 넓어졌다. 그럼에도 하나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가능성을 잃는다는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지가 많아졌다는 믿음 속에서 선택을 미루고 관계를 유동적으로 유지하려는 시대에는 카를로의 두려움이 다른 모습으로 반복될 여지도 있다. 25년 전 영화의 가치도 당시의 가족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지 않다. 당대의 인물들이 무엇을 자유라고 생각했고 무엇을 책임이라고 두려워했는지를 현재의 관객이 다시 비교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리멤버 미’가 묘사한 인정 욕망도 현재에는 다른 층위가 붙는다. 2003년의 인물들이 방송과 직업, 사회적 성공을 통해 자신이 보이기를 원했다면 지금은 개인이 직접 자신을 촬영하고 편집해 세상에 내놓는다. 타인의 시선은 특정한 직업이나 미디어의 바깥에 있지 않고 일상 전체에 들어와 있다. 가족 안에서조차 개인이 하나의 독립된 이미지와 성취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력은 더 커졌다. 무치노가 가족을 안정된 공동체보다 서로 다른 욕망이 함께 사는 불안정한 구조로 바라본 시선이 지금 다시 읽히는 지점이다.
‘말하지 않은 것들’에 이르면 자유와 책임 사이에 진실이라는 문제가 들어온다. 가까운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윤리적인지,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침묵하는 행위가 언제부터 기만으로 바뀌는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선택이 결국 자신의 비겁함을 보호하는 일이 될 수 있는지가 겹친다. 무치노의 연출 노트에 등장하는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도 낭만의 부정이라기보다 관계에 대한 기준의 이동에 가깝다. 사랑한다는 감정과 상대를 책임 있게 대한다는 행동은 같은 것이 아니며, 오래된 관계일수록 둘 사이의 거리가 더 선명해질 수 있다.
25년에 걸친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무치노의 영화에서 성장은 욕망이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다. 젊은 사람은 자유를 잃을까 두려워하고, 중년은 이미 선택한 삶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어느 나이에도 인간은 완전히 안정되지 않는다. 달라지는 것은 자신의 선택 때문에 영향을 받는 사람과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연인에게 지던 책임은 배우자와 자녀, 친구와 과거의 자신에게까지 넓어진다. 무치노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인간이 되는 일이 아니라 흔들린 뒤 남겨진 결과까지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는 데 더 가깝다.
8월 감독전과 9월 신작의 연결은 극장 입장에서는 신작을 알리는 마케팅이고, 관객에게는 25년의 영화를 한꺼번에 다시 비교할 수 있는 기회다. 두 성격은 동시에 존재한다. 감독전의 의미를 포스터나 ‘거장’이라는 이름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2001년의 청춘과 2010년의 중년, 2026년의 오래된 부부를 이어보면서 사랑과 자유, 가족과 책임을 바라보는 사회와 개인의 위치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읽는 데 더 긴 가치가 있다.
무치노의 인물들은 사랑을 얻은 뒤에도 행복하게 멈춰 있지 않는다. 사랑한 다음에는 선택해야 하고, 선택한 다음에는 책임져야 하며, 시간이 지나면 말하지 않았던 것까지 돌아온다. 극장이 과거 영화를 다시 불러들이는 가치도 비슷하다. 오래된 작품을 추억으로 복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 관객의 삶과 다시 충돌하게 할 때 재상영은 새로운 관람이 된다. 19일부터 다시 걸리는 세 편과 9월 2일 ‘말하지 않은 것들’ 사이에 놓인 25년은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인 동시에 사랑을 바라보는 한 세대의 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