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HISTORY②] 온나가타 300년, 여성의 흔적 다시 꺼낸 후지마 란쇼

‘무스메 도조지’에서 오오쿠 여성 가부키까지…남성이 연기한 여성성과 기록 밖 공연사를 한 무대에

2026-08-15     김성은 기자

[KtN 김성은기자]남성 배우가 여성 역할을 맡아온 온나가타(onnagata)의 약 300년 역사를 여성 무용가가 다시 펼쳐 놓는다. 도쿄 국립극장에서 9월 12~13일 열리는 ‘FUTURE HISTORY: Lineage and Form of Onnagata’의 두 번째 축은 가부키에서 만들어진 여성의 형상과 실제 여성 공연자의 역사를 함께 살피는 데 놓인다. 전시를 기획한 후지마 란쇼(Ranshou Fujima)는 전통적인 가부키 세습 계보 밖에서 고전 기법을 익힌 여성 무용가이자 안무가다.

전시의 중심에는 ‘교가노코 무스메 도조지(Kyōkanoko Musume Dōjōji·The Maiden at Dojoji Temple)’가 있다. 노(能)를 바탕으로 한 가부키 무용극 가운데 오래 이어져온 작품으로, 온나가타의 기량을 보여주는 주요 레퍼토리로 다뤄진다. 여성 인물을 남성 배우가 춤과 몸짓, 의상으로 구현해온 가부키의 형식을 살피기에 적합한 출발점이다.

후지마 란쇼가 ‘무스메 도조지’를 가져온 이유는 한 작품의 명성을 다시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온나가타가 오랜 시간 축적한 여성 표현과 실제 여성 공연자의 역사가 같은 궤적 안에서 어떻게 갈라졌는지를 함께 들여다본다.

RANSHOU Reopens Tokyo’s Closed National Theatre for ‘FUTURE HISTORY’ Exhibition. 사진=RANSHOU,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강한 붉은색과 녹색, 청색이 뒤섞인 우키요에에는 여러 배우가 서로 다른 자세와 표정으로 등장한다. 화려한 의상과 얼굴 표현이 인물을 구분하고, 몸짓과 의복의 형태가 역할의 성격을 나눈다. 가부키의 여성성이 실제 여성의 외형을 그대로 복제하는 방식보다 무대 위에서 축적된 자세와 의상, 표정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읽을 수 있는 자료다.

온나가타의 역사는 단순히 남성이 여성 옷을 입은 기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성 인물을 어떻게 걷게 하고, 손을 어떻게 두며, 몸의 방향과 시선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가 공연 기술로 이어졌다. 옷과 분장, 몸짓이 결합하면서 하나의 역할 유형이 만들어졌고, 같은 형식은 세대를 거치며 반복되고 변형됐다.

후지마 란쇼는 여성으로서 이 전통을 배웠다. 세습 가부키 집안의 계보 안에서 훈련받은 배우가 아니라 외부에서 고전 가부키 기법을 익혔다는 경력은 이번 전시의 시선을 결정한다. 전통의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계승이라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형식을 바깥에서 다시 배우고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는 위치다.

여기서 ‘여성의 시선’이라는 말만 앞세우면 공연사의 복잡성이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남성이 여성 역할을 담당해온 온나가타의 형식과 실제 여성 공연자의 존재는 서로 다른 역사적 층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FUTURE HISTORY’는 두 흐름을 같은 것으로 묶기보다 그 사이에 생긴 간격을 전시의 주제로 끌어낸다.

RANSHOU Reopens Tokyo’s Closed National Theatre for ‘FUTURE HISTORY’ Exhibition. 사진=RANSHOU,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여러 인물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판화에서는 공연과 관람, 놀이가 한데 얽힌 분위기가 드러난다. 개별 배우의 초상에 집중한 작품과 달리 인물들의 관계와 주변 행위가 함께 들어온다. 가부키를 극장 안의 공연만으로 떼어놓기보다 당시의 대중문화와 사회생활 속에서 바라보려는 이번 전시의 방향과 맞닿는 자료다.

‘FUTURE HISTORY’는 메이지 이후 일본에서 예술이 근대적인 제도로 분류되는 과정도 다룬다. 전시는 가부키와 우키요에가 문학과 종교, 사회생활과 맺어온 관계가 분리되고 대중 오락의 영역으로 정리됐다는 문제의식을 제시한다. 가부키를 공연, 우키요에를 미술처럼 별도의 분야로 나누기 전 두 문화가 실제 생활에서 얼마나 가까이 얽혀 있었는지를 다시 살피려는 구성이다.

1689년 목판본 ‘오조요슈(Ōjōyōshū)’와 ‘헤이케 모노가타리(Heike Monogatari)’, 1753년 나가우타(nagauta) 대본을 우키요에와 무대 의상 옆에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연만 따로 떼어내지 않고 문헌과 종교, 음악과 시각문화가 한 시대 안에서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RANSHOU Reopens Tokyo’s Closed National Theatre for ‘FUTURE HISTORY’ Exhibition. 사진=RANSHOU,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여성 인물의 의상과 몸이 중심을 이루는 판화에서는 옷의 선과 자세가 인물의 성격을 만든다. 긴 소매와 겹쳐진 옷, 머리 장식, 손의 위치가 얼굴과 함께 역할을 구성한다. 온나가타가 계승해온 여성 표현을 논할 때 분장이나 의상 한 요소만 떼어내기 어려운 이유도 이런 자료에서 드러난다.

이번 전시는 에도성 오오쿠(Ōoku), 여성들의 생활공간에서 행해졌다는 여성 가부키 전통도 함께 다룬다. 남성 온나가타의 계보를 중심으로 정리된 가부키 역사 옆에 실제 여성들이 공연했던 흔적을 다시 놓는 방식이다.

오오쿠의 여성 가부키를 현대적 의미의 여성 참여와 곧바로 연결하는 해석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시대의 제도와 공연 조건, 참여자의 지위가 오늘날과 달랐기 때문이다. 전시가 제기하는 의미는 오히려 가부키의 여성사를 남성 온나가타의 계보 하나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데 가깝다.

후지마 란쇼가 다루는 ‘역사적 지워짐’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여성 공연자가 실제로 어떤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활동했고, 이후 기록 과정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는 사료에 따라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전시는 기존 공연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다뤄진 여성의 흔적을 다시 조사하고 온나가타의 역사와 나란히 배치한다.

RANSHOU Reopens Tokyo’s Closed National Theatre for ‘FUTURE HISTORY’ Exhibition. 사진=RANSHOU,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세로로 긴 판화에는 한 인물이 단독으로 서 있다. 화려한 군중이나 무대 장치 없이 몸의 방향과 옷의 형태에 시선이 집중된다. 넓은 소매와 길게 이어지는 의복, 고개와 손의 위치가 인물의 인상을 만든다. 공연에서 역할을 만드는 요소가 얼굴만이 아니라 몸 전체의 규칙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로 읽을 수 있다.

‘무스메 도조지’ 역시 이런 몸의 계보 위에 있다. 특정 배우의 개성을 넘어 오랫동안 반복되고 다듬어진 동작과 의상, 역할의 형식이 작품을 이어왔다. 후지마 란쇼가 고전을 ‘과거의 유물’보다 현재에 남아 있는 존재로 다루는 이유도 몸을 통해 전승되는 공연의 성격과 연결된다.

동시에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곧 하나의 고정된 역사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어느 기록을 중심에 놓느냐에 따라 보이는 인물과 보이지 않는 인물이 달라지고, 공연을 국가적 전통예술로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일부 문화의 연결 관계는 약해질 수 있다.

‘FUTURE HISTORY’라는 전시명은 이 지점에서 의미를 얻는다. 과거를 새롭게 꾸미겠다는 선언보다 이미 남아 있는 자료의 배열을 바꾸는 쪽에 가깝다. 온나가타를 남성 배우의 여성 표현이라는 익숙한 설명에만 두지 않고 우키요에와 문헌, 여성 공연의 기록, 현재의 여성 창작자가 같은 무대에 들어오도록 했다.

9월 12~13일 국립극장 대극장에 놓이는 100여 점의 자료 가운데 온나가타의 화려한 계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 역할을 연기한 남성 배우의 역사와 실제 여성 공연자의 흔적, 근대 이후 분리된 공연·문학·종교·시각문화의 관계가 함께 배치된다. 후지마 란쇼가 다시 꺼낸 것은 300년 전의 형식만이 아니라 그 형식을 설명해온 역사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