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HISTORY③] 1689년 목판본 옆 아크릴 게타…가부키 300년을 한 무대에 놓다
5개 주제에 100여 점 집결…우키요에·나가우타 대본·무대 의상과 사진·영상·건축 협업 교차
[KtN 김성은기자]1689년 목판본과 2026년 제작된 아크릴 게타가 같은 전시에 들어온다. 1753년 나가우타(nagauta) 대본 옆에는 현대 사진과 영상이 놓이고, 우키요에와 실제 무대 의상도 한 공간을 채운다. RANSHOU가 9월 12~13일 도쿄 국립극장에서 여는 ‘FUTURE HISTORY: Lineage and Form of Onnagata’는 약 300년에 걸친 온나가타(onnagata)의 역사를 100점이 넘는 작품과 문헌으로 펼친다.
전시는 모두 5개 주제로 구성된다. RANSHOU Archives & Collection이 소장한 역사 자료를 중심에 두고 쇼치쿠 코스튬의 무대 의상, 건축가 반 시게루(Shigeru Ban) 사무소와 만든 아크릴 게타, 사진가 RK의 와시 사진, 후지마 란쇼(Ranshou Fujima)의 영상 ‘de(i)fied’를 함께 배치한다.
17세기 문헌부터 현재의 사진과 영상까지 시간 차이는 300년에 가깝다. 전시가 택한 방식은 시대별 자료를 따로 떼어놓기보다 하나의 공연문화가 문헌과 판화, 의상, 무대, 몸을 거치며 어떻게 형태를 달리해왔는지 나란히 놓는 데 있다.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큰 유리창 앞에 서 있다. 바깥의 밝은 풍경과 실내의 어두운 인물이 강하게 갈린다. 역사 판화와 문헌이 중심인 전시 안에서 현대 사진은 과거의 형식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현재의 몸을 다시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는다.
사진을 오래된 판화의 현대판으로 단순하게 대응시키기는 어렵다. 우키요에는 배우와 의상, 공연 상황을 인쇄물로 남겼고, 현대 사진은 카메라와 인화 재료를 통해 현재의 인물을 기록한다. 매체와 제작 방식은 달라졌지만 몸을 어떻게 남기고 다시 바라보게 하는가는 두 작업을 이어주는 요소다.
‘FUTURE HISTORY’가 100점 이상의 자료를 다루면서도 한 가지 매체에 집중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온나가타는 공연자의 몸만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춤과 노래, 의상과 분장, 공연을 기록한 판화와 대본, 공연이 이뤄진 건축이 서로 얽혀 전통을 만들었다.
1689년 목판본 ‘오조요슈(Ōjōyōshū)’와 ‘헤이케 모노가타리(Heike Monogatari)’가 포함된 것도 공연의 배경을 무대 안으로만 좁히지 않기 위해서다. 가부키와 온나가타가 형성된 시대의 문학과 종교, 사회문화까지 함께 살피면서 공연사가 다른 문화 영역과 떨어져 존재하지 않았음을 짚는다.
1753년 나가우타 대본은 또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나가우타는 가부키 무용과 연결된 음악 형식이다. 배우의 몸과 의상만 남아서는 당시 공연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고, 노래와 연주를 담은 기록이 함께 있어야 무대의 구조가 드러난다.
도리이, 가쓰카와, 우타가와 계열의 우키요에는 공연과 배우가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다. 배우의 얼굴과 자세, 의상은 인쇄물을 통해 극장 밖으로 나갔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배우와 역할의 이미지는 판화에 남아 소비됐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판화에는 무대와 공연만 분리돼 있지 않다. 인물과 주변 풍경, 행동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가부키가 극장 안의 독립된 예술이라기보다 당대의 생활과 오락, 시각문화가 서로 맞물렸던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점을 살피기에 적합한 자료다.
메이지 이후 일본에서 예술을 근대적 제도로 분류하는 과정도 전시가 다루는 범위에 들어간다. 가부키와 우키요에가 대중 오락의 영역으로 분류되면서 문학과 종교, 사회생활과 맺었던 관계가 각각 다른 분야로 나뉘었다는 것이 전시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이다.
‘FUTURE HISTORY’는 다시 합쳐 놓는 방법을 택한다. 문헌은 문헌대로, 판화는 미술대로, 가부키는 공연대로 분리하기보다 서로 다른 자료를 한 무대에 배치한다. 국립극장 대극장이 전시장으로 사용되는 것도 이런 구성과 맞물린다. 공연을 기록한 물건들이 실제 공연이 이뤄졌던 공간 안으로 다시 들어오기 때문이다.
투명한 아크릴로 제작한 게타는 역사 자료 사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현재를 드러내는 물건 가운데 하나다. 형태는 일본의 전통 신발에서 가져왔지만 재료는 투명한 아크릴이다. 반 시게루 사무소와의 협업으로 제작됐다.
전통적인 형태에 현대 재료를 입혔다고 해서 곧바로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크릴 게타는 과거의 형태를 오늘 어떤 방식으로 다시 사용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제안에 가깝다. 역사 유물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형태는 남기되 재료와 제작 환경을 바꿨다.
이 선택은 전시 전체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과도 겹친다. 오래된 자료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과 현재의 창작자가 고전을 다시 사용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FUTURE HISTORY’는 두 방식을 한쪽으로 정리하지 않고 같은 무대에 함께 놓는다.
쇼치쿠 코스튬이 제공하는 실제 무대 의상은 그 사이에 자리한다. 판화에 그려진 의복과 공연자의 몸을 연결하는 실물 자료인 동시에, 공연이 기록을 넘어 실제 움직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의상은 전시장에서 정지하지만 무대에서는 움직이는 물건이다. 소매의 길이와 천의 무게, 몸을 돌렸을 때 생기는 선은 배우의 동작과 함께 의미를 갖는다. 우키요에 속 의상과 실물 무대 의상을 함께 보는 일은 이미지와 공연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어두운 공간에 앉은 인물은 바깥 풍경보다 실루엣으로 먼저 드러난다. 현대의 사진과 영상이 이번 전시에 들어오는 이유도 과거의 자료를 장식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온나가타를 현재의 몸으로 다시 다루는 작업이 17~18세기의 기록과 어떤 간격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후지마 란쇼의 싱글채널 영상 ‘de(i)fied’는 무용과 안무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기획자의 현재 작업을 전시장 안으로 가져온다. 고전 가부키를 연구하는 사람과 현대 작업을 만드는 사람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전시 구성에도 반영됐다.
후지마 란쇼는 전통적인 세습 가부키 계보 밖에서 고전 기법을 배운 여성 창작자다. 앞선 역사 자료를 그대로 해설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의 몸과 영상 작업까지 같은 구조 안에 넣었다. 300년의 전통을 이미 끝난 역사로 바라보기보다 현재의 창작과 함께 놓는 방식이다.
다만 역사 자료와 현대 작업을 나란히 배치한다고 두 시대 사이의 간격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689년 문헌이 만들어진 사회와 2026년 예술가의 환경은 다르고, 에도시대의 공연자가 사용했던 의상과 현대의 아크릴 게타도 쓰임이 같지 않다. 시간 차이를 지우는 대신 각각의 물건이 무엇을 남겼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전시의 밀도를 결정한다.
숫자로 보면 전시의 범위는 선명하다. 5개 주제, 100점 이상의 작품과 기록, 1689년 목판본, 1753년 나가우타 대본, 1966년 완공된 국립극장, 그리고 2026년의 사진·영상·건축 협업이 이틀 동안 한 공간에 모인다.
9월 12일과 13일 대극장 무대에 들어서는 관람객은 300년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는 대신 서로 다른 시대의 물건을 오가게 된다. 오래된 문헌과 판화, 무대 의상, 투명한 아크릴 게타와 현대 사진이 한 무대에서 만난다. ‘FUTURE HISTORY’가 제시하는 역사는 직선으로 이어진 연표보다 여러 시대의 기록과 현재의 작업을 동시에 펼쳐 놓는 형태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