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록의 문을 여는 방식, 아카이브의 권력과 시대성

2026-08-14     김성은 기자
RANSHOU Reopens Tokyo’s Closed National Theatre for ‘FUTURE HISTORY’ Exhibition. 사진=RANSHOU,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성은기자]재건축으로 닫힌 도쿄 국립극장의 대극장이 오는 9월 이틀 동안 다시 열린다. RANSHOU의 ‘FUTURE HISTORY: Lineage and Form of Onnagata’가 들어서는 동안 관람객은 객석을 벗어나 무대 위를 걷는다. 1689년 목판본과 1753년 나가우타 대본, 우키요에와 무대 의상, 현대 사진과 영상이 같은 공간에 놓인다.

100점이 넘는 자료보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공개 방식이다. 기록은 대개 ‘무엇이 남았는가’로 평가된다. 오래된 문헌이 발견됐고, 희귀한 판화가 보존됐고, 의상이 수장고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가치가 부여된다. 그러나 역사를 결정하는 것은 남아 있는 기록만이 아니다. 누가 꺼내는지, 어디에 놓는지, 어떤 이름을 붙이는지에 따라 같은 기록도 다른 역사가 된다.

아카이브에는 오래된 편견이 하나 있다. 보존은 객관적이고 공개는 중립적이라는 믿음이다. 어떤 자료를 수집할지 결정하는 순간 선택이 시작되고, 분류하는 순간 서열이 생긴다. 전시장에 올리는 순간 다시 선택이 이뤄지고, 제목과 설명을 붙이는 순간 해석이 더해진다.

디지털 아카이브 역시 다르지 않다. 검색어에 잡히는 기록과 잡히지 않는 기록, 대표 이미지로 선택된 자료와 목록 아래로 밀린 자료 사이에는 또 다른 위계가 생긴다. 기록은 문이 열린다고 권력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문을 여는 사람이 새로운 권력을 갖는다.

RANSHOU Reopens Tokyo’s Closed National Theatre for ‘FUTURE HISTORY’ Exhibition. 사진=RANSHOU,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FUTURE HISTORY’가 온나가타(onnagata)의 약 300년을 다시 펼치는 방식도 같은 문제를 품고 있다. 전시는 남성 배우가 여성 역할을 연기해온 온나가타의 계보와 함께 여성 공연자의 흔적, 에도성 오오쿠(Ōoku)의 여성 가부키 전통을 다시 살핀다. 후지마 란쇼(Ranshou Fujima)는 전통적인 세습 가부키 계보 밖에서 고전 기법을 익힌 여성 무용가다.

여기서 곧바로 ‘지워진 여성사를 복원한다’고 쓰는 순간 또 하나의 함정이 생긴다. 과거의 기록에서 여성의 위치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과 오늘의 가치로 과거를 다시 재단하는 일은 같지 않다. 지금의 기준으로 300년 전 공연문화를 한 방향으로 정리하면 새로운 해석이 과거의 복잡성을 다시 덮을 수 있다.

기록을 다시 여는 작업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랫동안 중심에 있던 역사를 밀어내고 새로운 중심을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온나가타의 계보와 여성 공연자의 기록, 문헌과 판화, 종교와 공연, 극장과 대중문화가 서로 다른 시간과 위치에서 어떻게 만났는지를 함께 남겨야 한다.

근대 이후 문화제도는 방대한 기록을 보존하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서로 얽혀 있던 문화를 장르별로 나누기도 했다. 공연은 공연사로, 판화는 미술사로, 문헌은 문학사로 들어갔다. 분류는 연구를 가능하게 했지만 경계 밖의 관계를 희미하게 만들기도 했다.

RANSHOU Reopens Tokyo’s Closed National Theatre for ‘FUTURE HISTORY’ Exhibition. 사진=RANSHOU,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한 시대의 질서는 다음 시대에서 편견으로 발견된다. 가부키와 우키요에를 따로 떼어 연구하는 방식이 한때는 합리적인 분류였을 수 있다. 오늘은 공연과 출판, 배우와 대중문화가 실제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는지를 다시 살필 필요가 생겼다. 여성 공연자의 기록 역시 과거의 역사 서술에서 주변에 놓였던 자료가 지금 다른 위치에서 읽힐 수 있다.

현재의 분류 역시 언젠가는 낡는다. 지금 우리는 과거보다 기록을 훨씬 많이 공개한다고 믿는다. 박물관 홈페이지에 소장품을 올리고, 고해상도 이미지를 제공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할 수 있게 만든다. SNS에서는 수백 년 된 판화가 몇 초 만에 세계로 퍼진다.

접근성은 크게 늘었지만 공개가 곧 개방을 뜻하지는 않는다. 온라인에 올려놓았지만 검색되지 않는 자료가 있고, 설명 없이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기록이 있다. 긴 문헌보다 한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더 빠르게 확산되고, 복잡한 역사보다 강한 서사를 가진 자료가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수장고의 문을 열었더니 알고리즘의 문이 생긴 셈이다. 과거에는 기관이 무엇을 보여줄지 결정했다면 지금은 기관과 플랫폼, 검색 시스템, 이용자의 관심이 함께 가시성을 결정한다. 기록을 통제하는 방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형태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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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록 공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편견은 ‘많이 보여주면 더 민주적이다’라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100점을 공개한다고 10점을 공개할 때보다 반드시 역사가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다. 설명 없이 쏟아진 기록은 배경이 제거된 이미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친절한 해설은 관람객이 다른 해석을 할 가능성을 닫는다.

공개의 양보다 공개의 구조가 중요하다. 원본의 연대와 출처, 사용 맥락을 남겨야 하고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한 지점도 함께 열어둘 필요가 있다. 어느 자료가 빠져 있는지까지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아카이브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도 기록을 읽는 데 필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도쿄 국립극장의 무대를 이틀 동안 여는 방식도 같은 기준에서 볼 수 있다. 관객이 배우가 서던 무대를 직접 걷는 경험은 강렬할 수 있다. 그러나 무대 위에 올라섰다는 사실이 300년의 공연사를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다. 공간의 힘이 커질수록 기록의 역사적 맥락은 오히려 더 정교해야 한다.

폐관한 극장이라는 장소가 전시의 매력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아카이브는 배경 소품으로 밀릴 수 있다. 오래된 문헌과 판화의 희소성이 강조될수록 자료가 태어난 사회와 공연문화는 흐릿해질 수도 있다. 과거와 현대 작품을 함께 놓는 구성 역시 둘 사이의 차이를 지워버리면 역사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평평하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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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카이브는 과거를 완성해 보여주는 곳이라기보다 빈 곳까지 남겨두는 곳에 가깝다. 남아 있는 기록과 사라진 기록, 중심에 있던 사람과 밖에 있던 사람, 확인할 수 있는 사실과 아직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함께 두어야 한다. 역사를 하나의 결론으로 닫는 대신 다음 사람이 다시 읽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한다.

기록의 시대성도 바로 거기에 있다. 1689년의 문헌을 2026년에 읽는 사람은 1689년의 사람이 될 수 없다. 오늘의 언어와 가치, 사회적 감각을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눈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데 있다.

아카이브는 과거가 저장된 장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매 시대가 과거와 다시 관계를 맺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떤 기록을 꺼내고, 어떤 이름을 되찾고, 서로 떨어져 있던 자료를 어떻게 연결할지는 현재가 결정한다. 다음 시대는 다시 지금의 선택에서 편견을 찾아낼 것이다.

기록을 공개한다는 말은 그래서 생각보다 무겁다. 닫힌 문을 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문 앞에 누가 서 있는지, 누구에게 길을 내주고 있는지, 문을 연 뒤 무엇을 먼저 보여주는지까지 역사에 들어간다.

기록은 공개되는 순간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온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다시 시대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