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경제②] Numbra TY3, 25.5cm 조명이 생활 동선을 따라간다

최대 10시간 쓰는 충전식 포터블 램프…침대·책장·식탁 오가며 고정됐던 집 안의 빛을 개인의 시간으로 이동

2026-08-15     정석헌 기자

[KtN 정석헌기자]천장에 달린 조명은 움직이지 않는다. 방의 용도를 정하고 가구를 배치한 뒤 그 자리에 필요한 빛을 설치하는 방식이 오랫동안 집 안 조명의 기본이었다. &Tradition과 일본 디자이너 테루히로 야나기하라(Teruhiro Yanagihara)가 선보인 Numbra 컬렉션의 TY3 Portable Lamp는 반대쪽에서 출발한다. 높이 25.5cm의 조명을 충전해 침대 옆과 책장, 식탁 사이로 옮긴다. 한 번 충전하면 최대 10시간 사용할 수 있고 밝기는 3단계로 조절한다.

Numbra는 길이 122cm의 TY1 Pendant와 TY3 Portable Lamp 두 제품으로 구성됐다. TY1이 테이블 위의 위치를 고정한다면 TY3는 사람이 머무는 자리로 이동한다. 같은 오크와 알루미늄, 원통형 구조를 사용하면서도 하나는 건축에 가까운 조명, 다른 하나는 생활도구에 가까운 조명으로 갈라졌다.

Teruhiro Yanagihara’s First Lighting Range for &Tradition Balances Light and Shadow With Elemental Simplicity. 사진=&Traditi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TY3는 작은 테이블 한쪽에 놓여 있다. 주변에는 책과 그릇, 오브제가 있고 조명이 만들어내는 빛은 방 전체가 아니라 가까운 벽과 테이블 일부에 머문다. 높이 25.5cm라는 크기는 공간을 지배하기보다 이미 놓여 있는 물건 사이에 들어가는 데 유리하다.

포터블 조명의 확대를 단순히 무선 기술의 편리함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집 안에서 하나의 장소가 하나의 기능만 담당하는 시간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식탁은 식사 뒤 노트북을 펴는 책상이 되기도 하고, 거실 한쪽은 낮에는 업무 공간이었다가 밤에는 휴식 공간으로 바뀐다. 조명이 공간의 이름을 따라가기보다 그 시간에 필요한 행동을 따라가는 방식이 자연스러워진 배경이다.

2026년 소비 흐름에서 거론되는 ‘1.5가구’도 이런 생활 변화와 맞닿아 있다. 독립적인 개인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필요에 따라 관계와 자원을 연결하는 생활 단위가 늘어나면서 집의 역할도 전통적인 가족 구성에 맞춰 고정되기보다 거주자의 시간표에 따라 세분화된다. 조명과 가구 역시 거실·침실·식당이라는 방 이름보다 한 사람이 실제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Numbra가 특정 가구 형태를 겨냥해 개발됐다고 볼 근거는 없다. 다만 TY3처럼 위치를 옮길 수 있는 조명이 커지는 생활환경은 한 공간을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변화와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

천장등은 방 전체를 해결한다. 포터블 램프는 필요한 지점을 하나 더 만든다. 두 방식의 차이는 조명의 크기보다 공간을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서 더 선명하다. 고정 조명은 건물이나 방의 계획에 따라 위치가 결정되지만 포터블 램프는 사용자가 매일 위치를 다시 정한다.

Teruhiro Yanagihara’s First Lighting Range for &Tradition Balances Light and Shadow With Elemental Simplicity. 사진=&Traditi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어두운 벽 앞에 놓인 TY3에서는 세로로 반복되는 오크와 빛의 구조가 또렷하다. 작은 램프 하나가 벽에 좁은 빛의 면을 만들고 주변은 어둡게 남는다. 침대 옆이나 낮은 테이블에서 사용하는 조명이라면 방 전체를 밝힐 이유가 없다. 책 한 권을 펼치거나 잠들기 전 짧은 시간을 보내는 데 필요한 영역만 남긴다.

TY3는 밝기를 세 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휴대성만 확보하고 같은 밝기를 계속 사용하는 조명보다 시간과 위치에 따라 광량을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이 실제 사용에서는 중요하다. 저녁 식탁에서 사용할 때와 침대 옆에서 사용할 때 필요한 빛의 양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충전 방식에는 마그네틱 USB 시스템을 적용했다. 전원 케이블을 연결해 사용하는 스탠드와 달리 충전 이후에는 콘센트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테이블 중앙이나 선반, 전원이 닿기 어려운 자리까지 조명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 포터블 조명이 공간에서 만들어낸 가장 직접적인 변화다.

콘센트에서 자유로워진 대신 배터리는 새로운 조건이 됐다. TY3의 최대 사용시간은 10시간이다. 하루 저녁 몇 시간씩 사용하는 방식이라면 충전 주기가 길어질 수 있지만 밝기 단계와 사용 습관에 따라 실제 사용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

배터리를 품은 순간 조명의 수명을 보는 방법도 달라진다. 유선 조명에서는 광원과 스위치, 전기 부품이 중요했다면 포터블 제품에서는 충전 성능과 배터리 상태가 사용기간에 직접 영향을 준다. 몇 년 뒤에도 처음과 같은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지, 배터리 수명이 줄었을 때 제품 전체를 바꿔야 하는지는 디자인의 외형과 별개의 문제다.

포터블 조명의 편리함과 수명 문제는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이동성이 높은 제품일수록 손에 들고 이동하는 횟수가 많고 충전도 반복된다. 가구처럼 한 자리에 놓고 십수 년을 쓰던 생활제품에 전자제품의 수명 구조가 들어온 셈이다.

Teruhiro Yanagihara’s First Lighting Range for &Tradition Balances Light and Shadow With Elemental Simplicity. 사진=&Traditi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책이 쌓인 낮은 가구 위에서도 TY3는 많은 면적을 차지하지 않는다. 주변 가구의 짙은 목재와 조명의 따뜻한 빛이 겹치면서 작은 조명 하나가 별도의 영역을 만든다. 같은 램프를 다른 방으로 가져가면 빛의 영역도 함께 이동한다.

개인화된 생활은 꼭 더 많은 물건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물건이 여러 장소에서 기능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포터블 조명은 침실용·거실용·테라스용을 각각 마련하는 대신 한 제품을 이동해 사용하는 선택지를 만든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이 다룬 초개인화와 새로운 생활단위의 흐름에서도 중요한 변화는 사람이 정해진 생활양식에 맞추는 것보다 생활제품과 서비스가 개인의 시간에 맞춰 잘게 나뉘는 데 있다. 문화 영역에서도 ‘나다움’과 개인의 생활 리듬,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웰니스가 주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집 안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거창하지 않다. 저녁 7시에는 식탁에 있던 조명이 밤 10시에는 소파 옆으로 이동할 수 있다. 잠들기 전에는 침실로 가져갈 수도 있다. 하나의 방마다 하나의 조명을 배정하던 방식에서 사람의 행동을 중심으로 빛을 옮기는 생활이 가능해진다.

TY3의 형태도 이런 이동성을 방해하지 않는 쪽으로 정리됐다. 원통형 몸체를 세로로 세웠고 바닥 면적을 크게 잡지 않았다. 오크와 알루미늄, 샌드블라스트 아크릴을 사용해 TY1과 소재의 연속성은 유지했지만 긴 펜던트의 수평 구조는 짧은 수직 구조로 바뀌었다.

형태가 단순하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포터블 조명은 손으로 자주 옮기는 제품인 만큼 무게와 그립, 충전 빈도, 조작 방식이 실제 만족도에 영향을 준다. 공개된 이미지에서 확인되는 작은 크기와 전원선이 없는 배치는 장점을 보여주지만 장기간 사용성은 반복적인 충전과 이동 속에서 결정된다.

Teruhiro Yanagihara’s First Lighting Range for &Tradition Balances Light and Shadow With Elemental Simplicity. 사진=&Traditi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공용 테이블 위에 놓인 TY3는 포터블 조명의 또 다른 사용법을 보여준다. 주변에는 여러 개의 의자가 있고 조명은 테이블 한쪽에 자리한다. 집 안의 개인용 조명뿐 아니라 식당이나 라운지처럼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테이블에서도 전원 공사를 추가하지 않고 빛을 놓을 수 있다.

이동하는 조명은 주거뿐 아니라 상업공간에서도 의미가 있다. 테이블 배치가 바뀔 때마다 전기 공사를 할 필요가 없고 낮과 밤, 좌석 구성에 따라 조명 위치를 옮길 수 있다. 반대로 여러 대를 사용하는 공간이라면 충전과 배터리 관리라는 새로운 운영 부담이 생긴다.

디자인경제의 관점에서 포터블 조명이 흥미로운 부분도 여기에 있다. 전선 하나를 없앤 제품이 아니라 조명의 구매와 사용, 관리 방식을 함께 바꾼다. 소비자는 하나의 램프를 여러 장소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충전과 배터리 수명까지 제품 가치에 포함해 판단해야 한다.

TY3의 높이 25.5cm와 최대 10시간이라는 두 숫자는 122cm 길이의 TY1과 전혀 다른 생활을 전제로 한다. TY1이 테이블을 중심으로 공간의 축을 만든다면 TY3는 그 축에서 빠져나와 사람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간다.

집도 하나의 고정된 기능으로 읽기 어려워지고 있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일하고 대화를 나누며, 같은 거실에서 혼자 쉬다가 사람을 맞는다. 1인 가구와 느슨하게 연결된 생활단위, 개인별로 달라진 시간표가 늘어날수록 방의 이름보다 사용자의 동선이 공간을 결정하는 비중도 커진다.

Numbra TY3는 거대한 기술 변화보다 이런 작은 생활 변화에 놓인 제품이다. 최대 10시간의 배터리와 3단계 밝기, 25.5cm의 크기는 조명을 천장과 콘센트에서 떼어냈다. 대신 충전과 배터리라는 관리 조건을 함께 가져왔다.

포터블 조명이 늘어난다는 것은 집 안에 조명이 하나 더 생긴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빛이 건물의 위치에서 개인의 위치로 옮겨가고 있다는 변화에 가깝다. 그 이동성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는 디자인보다 배터리와 부품, 수리 체계에서 다시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