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경제③] 2400유로대 Numbra TY1…미니멀 조명에 붙은 가격의 근거
유럽 리테일 기준 TY1 2433~2518유로·TY3 296~306유로…프라이스 디코딩 시대, 형태 넘어 소재·광원·사용기간까지 넓어진 소비 계산
[KtN 정석헌기자]길이 122cm의 가느다란 조명에 유럽 판매가 2400유로대가 붙었다. &Tradition과 일본 디자이너 테루히로 야나기하라(Teruhiro Yanagihara)가 선보인 Numbra TY1 Pendant는 8월 중순 유럽 주요 디자인 리테일러에서 2433~2518유로 수준에 판매되고 있다. 높이 25.5cm의 충전식 TY3 Portable Lamp는 296~306유로 선이다. 판매처와 세금, 할인 여부에 따라 실제 가격은 달라지지만 두 제품이 놓인 가격대는 이미 확인된다.
Numbra는 화려한 장식이나 복잡한 형태를 앞세운 조명이 아니다. TY1은 오크와 알루미늄을 길게 연결한 직선에 가깝고, TY3는 같은 구조를 작은 원통으로 줄였다. 형태가 단순할수록 가격표는 오히려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한다. 눈에 보이는 구조가 적은 제품에서 소비자는 디자인의 이름만이 아니라 소재와 광원, 사용 방식, 부품과 수명까지 함께 계산하게 된다.
2026년 소비 키워드 가운데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이 등장한 배경도 비슷하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은 소비자가 표시가격만 보는 데서 벗어나 가격의 구조와 숨은 비용, 실제 효용을 함께 따지는 흐름을 별도의 키워드로 제시했다. 가격이 싸거나 비싼지를 먼저 판정하기보다 비용 안에 들어 있는 가치를 분해해서 보는 소비다.
Numbra TY1을 그 기준에 놓으면 2400유로대라는 숫자보다 가격을 구성하는 항목이 먼저 들어온다. 길이는 122cm, 광원은 15W LED, 광량은 700루멘, 색온도는 2400K다. 솔리드 오크와 알루미늄, 아크릴 디퓨저, 스테인리스 스틸 코어를 조합했다. 광원 모듈 역시 교체할 수 있는 구조로 판매되고 있다.
사무공간에 설치된 TY1은 가격과 실제 사용 범위를 함께 살피게 한다. 긴 책상 위를 조명 하나가 가로지르고 있지만 크기는 공간 전체보다 가구의 폭에 맞춰져 있다. 122cm의 길이가 확보돼 있어 회의 테이블이나 긴 업무용 책상에는 사용할 수 있지만 작은 식탁이나 제한된 천장에서는 같은 비례가 나오지 않는다.
2400유로대의 가격을 지불하고도 조명 하나로 방 전체를 해결하는 제품은 아니다. TY1의 700루멘과 2400K는 강한 주광원보다 테이블 주변의 따뜻한 빛에 무게를 둔다. 사용자는 제품 자체뿐 아니라 설치되는 공간과 보조조명까지 함께 구성해야 한다. 디자인 비용 뒤에 별도의 공간 설계가 붙는 구조다.
가격 비교에서는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Numbra의 위치가 드러난다. 유럽 리테일러 Mohd에서 Numbra TY1은 2494유로에 올라와 있으며, &Tradition의 Gio Pendant 역시 정가 기준 2494유로부터 시작한다. 소재와 조형은 서로 다르지만 Numbra TY1이 &Tradition의 저가형 펜던트가 아니라 높은 가격대의 조명군에 놓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Tradition의 다른 펜던트까지 범위를 넓히면 가격차는 더 커진다. 독일 리테일러의 &Tradition 제품군에는 Flowerpot VP1이 161유로, VP7이 263유로대부터 판매되는 반면 Numbra TY1은 2433유로에 올라와 있다. 같은 브랜드의 펜던트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크기와 재료, 광원 구조는 크게 다르다. 단순히 브랜드 이름 하나로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도 이 차이에서 확인된다.
TY1에는 122cm의 몸체와 솔리드 오크, 알루미늄 구조, LED 광원이 한 제품으로 결합된다. 반면 작은 금속 셰이드와 교체형 전구를 사용하는 펜던트는 제작 구조와 부품 수부터 다르다. 소비자가 가격을 해독하려면 완성된 실루엣보다 안쪽의 구조까지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소재를 많이 사용했다고 높은 가격이 자동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오크와 알루미늄은 희귀 재료가 아니며, 15W LED와 디밍 기능 역시 조명 시장에서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Numbra의 가격에는 물질적인 부품 외에 테루히로 야나기하라의 디자인, &Tradition의 제품 개발과 유통, 조명기구로서의 설계가 함께 들어간다.
여기서 디자인의 값은 모호해지기 쉽다. 형태가 복잡하면 제작 난도를 눈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Numbra처럼 선을 줄인 제품에서는 가격과 외형의 관계가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재료를 덜어낸 절제가 디자인의 가치가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단순한 형태에 왜 이 가격을 지불하는가’라는 소비자의 계산이 시작된다.
2026년 사회문화 흐름에 ‘절제와 실용의 소비 윤리’가 포함된 것도 같은 소비환경과 겹친다. 뉴스와 SNS, 커뮤니티, 영상 플랫폼 등에서 수집한 5억3800만 건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 과시적 소비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효용과 지속 가능한 선택을 중시하는 흐름이 주요 축으로 제시됐다.
디자인 제품에서도 ‘절제’는 두 방향으로 갈린다. 소비자는 장식이 적고 오래 볼 수 있는 형태에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동시에 형태가 단순하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가격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소재의 질과 사용시간, 수리 가능성, 실제 공간에서의 효용이 함께 따라와야 가격에 대한 납득도 오래간다.
가까이 들어간 TY1에서는 오크와 알루미늄의 접합부가 드러난다. 멀리서 하나의 선처럼 읽히던 펜던트가 실제로는 목재 패널과 금속 부품, 디퓨저와 내부 구조가 결합된 제품이라는 사실이 보인다. 미니멀 디자인에서 가격을 가르는 부분도 외곽선보다 이런 연결과 마감에 있다.
TY3는 다른 계산을 만든다. 유럽 리테일 가격은 300유로 안팎으로 형성돼 있다. 같은 판매처에서 Vibia의 충전식 포터블 램프 Alba가 정가 296.45유로, Numbra TY3가 301.29유로에 올라와 있어 소형 디자이너 포터블 조명 가운데 비슷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TY3에는 3.5W LED와 3단계 디밍, 최대 10시간의 배터리 사용시간이 적용됐다. 오크와 알루미늄, 아크릴을 사용하며 배터리와 LED 모듈도 교체할 수 있는 구조다. 고정형 TY1과 달리 가격 안에 휴대성과 충전 시스템, 배터리가 추가된다.
포터블 램프에서는 구매가격 이후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충전식 제품은 몇 년을 사용하면서 배터리 성능이 떨어질 수 있고, LED 광원에도 수명이 있다. 배터리와 LED를 교체할 수 있다면 제품 전체를 버리는 시점을 늦출 여지가 생긴다. TY3의 약 300유로를 단순히 25.5cm 크기의 조명 가격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소비자의 계산도 여기까지 내려왔다. 구입 당시의 형태와 브랜드뿐 아니라 몇 년 뒤 고장이 났을 때 어떤 부품을 바꿀 수 있는지, 한 번 충전으로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 이동하면서 계속 쓸 수 있는지가 가격의 일부가 된다. ‘프라이스 디코딩’이 디자인 시장에서 작동한다면 가격표 뒤에 숨어 있던 항목이 앞으로 더 자주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Numbra의 2400유로대 TY1과 300유로 안팎 TY3는 같은 디자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구매의 논리는 다르다. TY1은 긴 공간과 설치 조건, 재료와 구조에 비용이 붙고, TY3는 휴대성과 배터리, 작은 크기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시간이 중요해진다.
디자인의 단순함도 더 이상 가격 설명을 대신하지 못한다. 122cm의 직선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소재와 광원, 조립 구조와 설치 조건이 가격 안에서 읽혀야 하고, 25.5cm의 포터블 조명은 배터리와 부품 교체까지 사용기간으로 이어져야 한다. 2026년 소비자가 가격을 해독하기 시작하면서 디자인 제품의 값도 ‘예쁜 물건’이라는 한 문장보다 훨씬 많은 근거를 요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