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경제④] 친환경 소재 너머 ‘오래 쓰는 조명’…Numbra의 분해 설계

FSC 인증 목재·수성 래커에 분해 가능한 구조 적용…포터블 조명은 배터리까지 제품 수명에 포함, 디자인의 값도 ‘구입 이후’로 이동

2026-08-17     정석헌 기자

[KtN 정석헌기자]조명의 수명은 겉으로 보이는 목재와 금속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LED와 전자부품이 들어가고, 충전식 제품에는 배터리까지 더해진다. 외관이 멀쩡해도 광원이나 전원부가 먼저 수명을 다하면 제품 전체의 사용기간이 짧아질 수 있다. &Tradition과 일본 디자이너 테루히로 야나기하라(Teruhiro Yanagihara)가 선보인 Numbra 컬렉션은 단순한 외형 뒤에 분해와 수리, 재활용을 고려한 구조를 넣었다.

길이 122cm의 TY1 Pendant에는 FSC 인증 목재와 수성 래커가 사용됐다. 솔리드 오크와 텀블드 알루미늄, 아크릴 디퓨저, 스테인리스 스틸 코어가 하나의 긴 조명 안에 들어간다. 제작 단계에서는 서로 다른 재료를 결합하지만 제품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다시 분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는 설명보다 눈여겨볼 부분은 ‘분해를 전제로 한 설계’다. 재활용은 제품을 버린 뒤의 문제지만 분해는 사용 중 수리와 부품 접근에도 관계한다. 하나의 부품이 고장 났을 때 전체 제품을 폐기하는 구조와 필요한 부분까지 접근할 수 있는 구조는 사용기간부터 달라질 수 있다.

Teruhiro Yanagihara’s First Lighting Range for &Tradition Balances Light and Shadow With Elemental Simplicity. 사진=&Traditi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TY1을 가까이 보면 목재와 금속이 연결되는 지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멀리에서는 122cm의 한 줄처럼 읽히지만 실제 제품은 여러 소재와 광원, 디퓨저가 결합된 전기제품이다. 단순한 실루엣과 단순한 제품 구조가 같은 말은 아니라는 사실도 여기에서 드러난다.

조명 산업에서 지속가능성은 오랫동안 전력 효율과 광원의 수명으로 설명됐다. 백열전구에서 LED로 이동하면서 소비전력과 광원 수명이 중요한 기준이 됐고, 최근에는 소재의 출처와 재활용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여기에 제품을 얼마나 쉽게 분해하고 수리할 수 있는지까지 들어오면서 디자인 단계에서 고려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Numbra TY1의 15W LED와 700루멘, 2400K라는 수치는 사용하는 동안의 성능을 설명한다. FSC 인증 목재와 수성 래커는 제작에 투입된 재료를 설명한다. 분해 설계는 사용이 끝난 뒤까지 범위를 확장한다. 하나의 조명에서 생산과 사용, 수리와 폐기까지 서로 다른 시간이 맞물리는 구조다.

다만 분해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긴 수명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조명을 실제로 오래 사용하는 데에는 교체 가능한 부품이 얼마나 오랫동안 공급되는지, 수리 과정이 제품 가격에 비해 현실적인지, 제조사가 시간이 지난 뒤에도 서비스를 이어가는지가 함께 작용한다.

지속가능성을 소재 설명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FSC 인증 목재를 쓴 제품도 전자부품 하나 때문에 일찍 버려질 수 있고, 재활용 소재의 비율이 높더라도 수리가 어려우면 제품의 실사용 기간은 짧아질 수 있다. 반대로 처음부터 분해와 수리를 고려한 제품은 작은 고장을 제품 전체의 폐기로 연결하지 않을 여지가 커진다.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도 여기에서 달라진다. 구입 가격을 사용기간으로 나누면 처음에는 비싸게 느껴지는 제품도 오래 사용할수록 연간 비용은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구입가는 낮아도 몇 년마다 교체해야 한다면 소비자가 실제로 부담한 비용과 폐기량은 커진다.

디자인 가격의 문제도 결국 수명으로 이어진다. 오크와 알루미늄, 디자이너의 이름, 브랜드의 유통망만으로 가격의 근거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높은 가격을 받는 생활제품이라면 구입 이후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까지 제품 가치에 포함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2026년 소비 담론에서 ‘근본이즘’이 등장한 배경도 빠르게 바뀌는 상품과 기술 사이에서 오래 남는 기본을 다시 보는 움직임과 맞닿는다. 새로움을 계속 추가하는 대신 물건의 본래 기능과 재료, 사용기간을 다시 따지는 소비다.

조명에서 ‘근본’은 장식을 줄인 외관과 같은 말이 아니다. 조명은 결국 빛을 안정적으로 제공해야 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고장이 났을 때 제품 전체를 버리지 않을 방법이 있어야 한다. 형태를 최소화한 미니멀 디자인보다 사용기간을 늘리는 구조가 훨씬 직접적인 기준이 된다.

Teruhiro Yanagihara’s First Lighting Range for &Tradition Balances Light and Shadow With Elemental Simplicity. 사진=&Traditi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Numbra TY3 Portable Lamp에서는 수명의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된다. 높이 25.5cm의 몸체에는 오크와 알루미늄, 샌드블라스트 아크릴뿐 아니라 충전식 배터리가 들어간다. 한 번 충전해 최대 10시간 사용할 수 있고 3단계로 밝기를 조절하며 마그네틱 USB 방식으로 충전한다.

전선을 없앤 대신 배터리가 제품 내부로 들어왔다. 포터블 조명이 식탁과 침대, 책장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된 배경이면서 장기간 사용에서는 또 하나의 관리 대상이 된다.

배터리는 사용과 충전을 반복하면서 성능이 달라지는 부품이다. 포터블 조명의 수명을 외관의 내구성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목재와 알루미늄이 오랫동안 형태를 유지하더라도 배터리가 짧은 시간만 버티게 되면 ‘이동하는 조명’이라는 제품의 가장 중요한 기능부터 영향을 받는다.

무선화가 생활제품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비슷한 문제가 커지고 있다. 스피커와 소형가전, 무선 조명은 전선을 없애면서 공간의 제약을 줄였지만 동시에 충전 시스템과 배터리를 제품 수명 안으로 끌어들였다. 기계적으로 오래 버티는 가구와 전자부품의 교체주기가 하나의 제품 안에서 충돌하는 경우도 생긴다.

TY3도 가구와 전자제품 사이에 놓인다. 오크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외형은 가구처럼 오래 둘 수 있지만 내부에는 충전을 반복하는 전자부품이 있다. 포터블 디자인을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려면 두 시간의 차이를 얼마나 잘 조정하느냐가 중요하다.

Teruhiro Yanagihara’s First Lighting Range for &Tradition Balances Light and Shadow With Elemental Simplicity. 사진=&Traditi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낮은 테이블 위에 놓인 TY3는 책과 오브제 사이에서 작은 생활용품처럼 자리한다. 무선이라는 특성 덕분에 콘센트가 없는 위치에서도 사용할 수 있지만, 자주 이동하는 물건일수록 충전과 사용을 반복하는 횟수도 많아진다.

소비자가 지속가능성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재활용 소재를 썼다는 문구나 친환경 인증 하나보다 실제로 얼마나 자주 교체해야 하는지가 생활비와 연결된다. 제품을 버리는 빈도를 줄이는 일이 환경 문제와 가계의 지출을 동시에 건드리는 이유다.

2026년 문화 흐름에서 거론되는 ‘절제와 실용의 소비 윤리’도 같은 방향에서 읽을 수 있다. 필요 이상의 물건을 늘리기보다 하나를 선택한 뒤 더 오래 사용하는 방식, 겉으로 드러나는 브랜드보다 실제 효용을 계산하는 태도가 생활제품 선택까지 넓어지고 있다.

디자인 브랜드에는 더 까다로운 조건이다.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외관이 유행을 덜 타는 것과 실제 제품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조형적으로는 수십 년을 견딜 수 있어도 내부 전자부품을 고칠 수 없다면 물리적인 수명은 훨씬 먼저 끝난다.

반대로 수리하기 쉬워도 몇 년 뒤 부품을 구할 수 없다면 분해 설계의 효과는 제한된다. 제품을 오래 쓰는 구조는 디자이너가 도면을 완성하는 순간 끝나지 않고 제조와 유통, 사후 서비스까지 이어져야 한다.

여기에 디자인경제의 또 다른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기업이 제품을 판매하는 순간 거래가 사실상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수리와 부품 공급이 상품 가치에 포함되면 제조사는 판매 이후의 시간까지 책임져야 한다. 소비자는 브랜드의 현재 디자인뿐 아니라 몇 년 뒤에도 제품을 관리할 수 있는지를 가격과 함께 보게 된다.

Numbra가 사용한 FSC 인증 목재와 수성 래커도 같은 맥락 안에서 볼 필요가 있다. 소재의 출처와 가공 과정에서 환경 부담을 줄이는 선택은 중요하지만, 완성된 제품이 짧은 기간 사용되고 폐기된다면 소재 단계에서 얻은 효과만으로 전체 수명을 설명하기 어렵다.

분해 설계 역시 출발점에 가깝다. 서로 다른 소재를 다시 나눌 수 있어야 재활용도 수월해지고 부품 단위의 접근도 가능해진다. 이어지는 시간에는 실제 수리와 부품 공급이 붙는다. 디자인이 제품의 탄생만 설계하던 단계에서 제품이 늙어가는 방식까지 설계하는 단계로 범위가 넓어지는 셈이다.

Teruhiro Yanagihara’s First Lighting Range for &Tradition Balances Light and Shadow With Elemental Simplicity. 사진=&Traditi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공용 테이블 위에 놓인 TY3는 작은 조명 하나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생활을 보여준다. 식사 시간에는 테이블 위에 있다가 다른 시간에는 선반이나 침실로 이동할 수 있다. 한 제품을 여러 공간에서 사용하는 방식은 물건의 수를 줄일 수 있지만 사용 빈도는 오히려 높인다. 반복적인 사용을 버틸 수 있는 구조가 더 중요해진다.

Numbra의 미니멀한 외형이 시간이 지나도 오래 남을지는 지금 판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디자인 제품을 평가하는 시간이 출시 시점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목재가 어떻게 변하는지, 표면 마감이 얼마나 버티는지, 광원과 전자부품을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 충전식 제품의 기능이 시간이 지나도 유지되는지가 제품의 실제 수명을 만든다.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흐름 역시 복고나 단순한 형태를 뜻하지 않는다. 생활제품에서는 본래 기능을 오래 유지하고 필요할 때 고쳐 다시 사용하는 능력이 더 직접적인 근본에 가깝다. 신제품을 계속 내놓는 속도보다 이미 판매한 제품을 얼마나 오래 책임질 수 있는지가 브랜드의 디자인 철학을 드러내는 시대가 오고 있다.

Numbra가 제시한 분해 설계는 시작점이다. FSC 인증 목재와 수성 래커는 소재의 선택을 보여주고, 분해 가능한 구조는 제품의 마지막까지 고려하려는 방향을 드러낸다. 충전식 TY3까지 포함하면 앞으로 확인해야 할 시간은 더 길어진다.

디자인경제의 경쟁도 새것을 만드는 능력에서 오래 남게 만드는 능력으로 조금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제품의 진짜 지속가능성은 쇼룸에서 가장 깨끗할 때보다 몇 년을 사용한 뒤 고장이 생겼을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때도 고쳐 다시 켤 수 있는 조명이라면 디자인의 값은 구입한 날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