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동차의 미래, 무엇을 차라고 부를 것인가
[KtN 김상기기자]사프란색 포르쉐 911 한 대가 질문을 남겼다. 차대번호와 강철 차체는 199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외판은 탄소섬유로 바뀌었다.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과 브레이크도 다시 구성됐다. 실내에는 루이비통의 가죽과 문양이 들어갔고 대시보드에는 떼어낼 수 있는 기계식 시계가 놓였다.
옆에 선 흰색 카브리올레는 510마력 트윈터보 엔진과 현대식 전자제어 장치를 품었다. 964형 포르쉐 911에서 시작했지만 외형은 초기 911 터보를 따르고, 좌석 뒤 수납공간과 범퍼에는 클래식 모터보트에서 가져온 목재를 사용했다.
포르쉐가 처음 만든 차인가. 싱어가 다시 만든 차인가. 루이비통이 디자인한 상품인가. 셋 가운데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 두 개가 빠진다.
자동차는 오랫동안 공장에서 완성되는 물건이었다. 제조사가 차체와 엔진을 설계하고 이름과 차대번호를 붙이면 소비자는 완제품을 샀다. 수리는 고장 나기 전 상태로 돌리는 일이었고 복원은 출고 당시 모습을 되찾는 작업이었다. 자동차의 정체성은 처음 만들어진 순간에 고정돼 있었다.
해당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
오래된 자동차는 원형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엔진과 소재, 제어 기술을 받아 다시 도로로 나온다. 새 자동차도 출고 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거치며 성능과 기능이 달라진다. 전기차는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고, 내연기관 클래식카는 전기 구동계로 바뀔 수 있다. 차량의 기능이 하드웨어 한 벌에 묶여 있던 시대가 지나고 있다.
앞으로 자동차는 공장에서 한 번 완성되는 제품보다 계속 수정되는 체계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차를 차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차대번호라는 답은 간명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차대번호는 출처를 알려줄 뿐 현재의 자동차를 설명하지 못한다. 30년 된 번호 아래 새 엔진과 탄소섬유 외판, 현대식 제동장치가 들어가면 등록 연식과 실제 성능 사이에는 수십 년의 간격이 생긴다.
엔진도 답이 되기 어렵다. 한때 엔진은 자동차의 심장으로 불렸다. 전기차에서는 모터와 배터리, 전력제어 장치가 기능을 나눠 맡는다. 배터리를 교체했다고 다른 차가 되지는 않는다. 오래된 엔진을 복원하거나 더 강한 엔진으로 바꾼 자동차도 같은 차대번호로 도로를 달린다.
외형 역시 확실한 기준이 아니다. 1960년대 911의 윤곽을 하고도 차체 아래에는 1990년대 모노코크와 2020년대 기술이 공존할 수 있다. 반대로 같은 차체를 유지하면서 소프트웨어만 바꿔 출력과 주행 감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
제조사의 상표는 차의 이름을 정하지만 생애 전체를 소유하지는 못한다. 자동차가 공장을 떠난 뒤에는 소유자가 타고 고치며 바꾼 시간이 더해진다. 제조사의 원본과 소유자의 변경 권리는 한 대의 차에서 계속 부딪힌다.
순정성을 중시하는 클래식카 시장은 처음의 상태를 가치의 중심에 둔다. 원래 엔진과 색상, 실내 부품이 많이 남을수록 좋은 차로 평가한다. 레스토모드는 반대편에 선다. 오래된 차체를 남기되 성능과 안전, 취향을 현재에 맞춰 다시 설계한다.
어느 쪽만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모든 클래식카를 출고 상태로 봉인하면 자동차는 움직이는 기계에서 전시물이 된다. 원형을 거리낌 없이 지우면 한 시대의 기술과 디자인을 간직한 물건이 최신 부품의 받침대로 전락한다.
자동차에는 보존과 사용이라는 두 운명이 함께 있다. 역사적 물건인 동시에 계속 달려야 하는 이동수단이다. 박물관의 기준만 적용하면 사용할 수 없고, 성능만 좇으면 보존할 이유가 사라진다.
루이비통·싱어 911은 해당 충돌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964형의 출고 상태를 되살린 차는 아니다. 포르쉐 911의 형태와 차체를 출발점으로 싱어의 기술과 주문자의 취향, 루이비통의 제품 체계를 올렸다. 자동차를 복원했다기보다 911의 역사를 재료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었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 수 있다.
높은 가격은 정체성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싱어 차량은 공개 경매에서 일반 964형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됐고, 고성능 DLS는 300만달러 안팎의 낙찰가를 기록했다. 반면 추정가를 밑돌거나 100만달러에도 팔리지 않은 차량도 있었다. 제작비와 희소성은 가격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차가 무엇인지를 정의하지는 못한다.
명품 브랜드의 참여도 마찬가지다. 루이비통의 시계와 가방이 붙었다고 자동차의 역사가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이름은 관심을 모으고 희소한 상품을 만들지만 기계의 출처와 변화 과정을 대신할 수 없다.
자동차의 미래를 기술의 방향으로만 묻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내연기관이 전기모터로 바뀌는지, 사람이 운전대를 놓는지가 전부가 아니다. 자동차가 오랫동안 살아남으며 여러 차례 기능과 소유자를 바꾸는 시대에는 정체성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미래의 차는 하나의 원본보다 연속된 생애로 정의될 가능성이 크다.
처음 어떤 차로 태어났는지, 어느 부분을 유지하고 교체했는지, 왜 바꿨으며 누가 작업했는지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 변화 자체가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출처를 잃는 순간 자동차의 역사가 끊긴다.
해당 관점에서는 순정차와 레스토모드도 적대적인 개념일 필요가 없다. 원형을 보존한 차는 변화를 최소화한 생애를 갖는다. 레스토모드는 큰 변화를 선택한 생애를 갖는다. 두 차량의 차이는 진짜와 가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을 통과했다는 데 있다.
다만 변화에는 책임이 따른다. 새 엔진을 넣었다면 원래 엔진에서 무엇을 남겼는지 밝혀야 한다. 탄소섬유 외판을 달았다면 강철 차체를 어디까지 유지했는지 기록해야 한다. 소프트웨어가 출력을 바꾼다면 어느 버전에서 어떤 기능이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기록은 서류 작업이 아니라 자동차의 일부가 된다. 미래의 자동차에서 정비 이력과 소프트웨어 변경 내역, 배터리 교체와 복원 기록은 엔진 번호나 차대번호만큼 중요해질 수 있다. 물리적 부품이 계속 바뀌어도 생애가 연결돼 있다면 한 대의 차로 설명할 근거가 남는다.
자동차를 인간에 비유할 필요는 없다. 몸의 세포가 바뀌어도 같은 사람이라는 낡은 비유로는 기계의 소유와 제작 책임을 설명할 수 없다. 자동차는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물건이다. 어느 회사가 무엇을 만들었고 누가 어떤 변경을 승인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닮았다. 정체성은 처음 모습에 멈춰 있지 않다. 지나온 시간과 변화가 쌓여 현재를 이룬다.
미래의 자동차는 가장 많은 원래 부품을 가진 차가 아닐 수 있다. 가장 최신 기술을 많이 넣은 차도 아닐 것이다. 여러 번 심장과 기능을 바꾸고도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차일 가능성이 크다.
무엇을 차라고 부를 것인가.
차대번호와 차체, 엔진과 소프트웨어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질문이 아니다. 처음 만들어진 순간과 이후의 변화가 끊어지지 않은 물건, 원형과 개조의 경계를 숨기지 않고 자신의 생애를 증명할 수 있는 기계를 우리는 같은 차라고 부를 수 있다.
자동차의 미래는 얼마나 새로워질 수 있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다. 아무리 달라져도 자신이 어떤 차였는지를 잃지 않는 데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