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이경욱, 무대에 마음을 싣고 오늘을 건너는 사람
‘응큼세포’ 너머, 마음이 닿는 곳마다 무대를 만드는 배우 좋아하는 일을 사랑하고, 함께한 사람들을 오래 기억하는 이경욱의 이야기
[KtN 김동희 기자] 무대 위에서 마음껏 웃기고 장난치는 응큼세포와 달리, 배우 이경욱이 무대를 대하는 방식에는 느긋하면서도 단단한 태도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이어가는 것,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쌓는 것, 그리고 관객에게 받은 마음을 다시 무대에 돌려주는 것을 배우 생활의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빠르게 더 많은 것을 이루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작품과 사람을 충실히 만나며 자신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는 것.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은 그런 이경욱의 현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원캐스트로 오랜만에 공연하는 거라 체력적으로나 여러모로 부담되는 부분도 있지만, 원캐스트라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지금 ‘유미의 세포들’에 푹 빠져 있고, 배우들과 공연하고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너무 좋아요. 끝나는 게 너무 아쉬울 만큼 정말 좋습니다.”
공연을 시작한 지 한 달여... 이경욱에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지만, 그만큼 작품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배우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고, 동료들과 관계를 쌓고, 관객의 반응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오늘’은 단순히 한 번의 공연을 의미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 함께 다음 장면으로 나아가는, 배우 이경욱의 현재를 뜻하고 있었다.
이경욱은 작품을 선택하고 무대에 서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방식에 대한 기준을 놓지 않는다. 연출이 만든 방향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동료 배우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장면을 완성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보다 작품 전체가 잘 굴러가는 방법을 먼저 고민하고, 한 번의 성취보다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여러 작품에서 꾸준히 다시 불려온 이유를 스스로 ‘성실함과 인성’이라고 짚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이경욱에게 배우라는 일은 잘하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직업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은 채 사람들과 함께 오래 걸어가는 일에 가까웠다.
이경욱이 여러 작품에서 꾸준히 다시 불려온 이유를 스스로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성실함과 인성’이었다. ‘난쟁이들’, ‘쿠로이 저택엔 누가 있을까’,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 한 작품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경우가 많은 것도 결국 현장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해내는 것만큼이나 동료와 스태프가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 한 작품을 끝냈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도전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성실함과 인성이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절대 자만하지 않고 또 다른 무언가를 도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불러주시는 것 같아요. ‘이 역할은 나만 못하니까’라는 마음으로 연락을 주시는 경우도 있고요. 경쟁력 있는 몸값도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하는 ‘성실함’은 단순히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태도와는 조금 달랐다. 연출의 의도를 배우가 최대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동시에 배우로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다면 혼자 밀어붙이기보다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 안에서 가능한 지점을 찾는다. 만들어진 장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기준이다.
완성된 답을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기보다 작품이 향하는 방향을 먼저 이해하고, 필요한 순간 자신의 상상과 아이디어를 더했다. 그렇게 배우와 연출, 동료 배우 사이의 대화를 거치며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이경욱에게 자신이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지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경욱의 작업 방식에는 평소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스스로 상상을 많이 하고 장난기도 많은 편이라고 했다. 뻔한 답에 머무르기보다 ‘여기까지도 간다고?’ 싶을 정도로 한 번 더 상상해보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장난을 발전시키는 것이 익숙한 방식이다. 무대 위에서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이나 순간적인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도 결국 평소 끊임없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습관에서 비롯됐다.
“평소에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생각도 많은 편이고요. 뻔한 상상보다는 ‘여기까지도 간다고?’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아요. 스스로 끊임없이 상상하고 장난도 많이 치는 편이에요. 서로 기분 나쁘지 않은 선에서 만들고 있어요.”
이경욱의 삶을 움직이는 ‘프라임 세포’를 묻자 가장 먼저 나온 답은 사랑이었다. 지난 3월 결혼한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큰 자신감을 심어주는 존재로 아내와 가족을 꼽았다. 이전에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래도 한번 해보자’고 움직이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뒤에서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새로운 힘이 됐다. 무대에 오르고 공연을 이어가는 과정에서도 가족의 응원과 관심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자신감을 얻는다고 했다.
“전에는 원래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스스로 ‘그래도 한번 해보자’고 움직였어요. 지금은 아내가 자신감을 많이 심어줘요. 가족이 뒤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것도 느끼고요. 지금 저의 존재는 아내,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사랑 다음으로 꼽은 세포는 패션세포였다. 평소에도 전날부터 입을 옷을 고를 만큼 옷에 관심이 많지만, 결혼 후에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새 옷을 무작정 사기보다 집에 있는 옷으로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입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 무대 위에서 의상과 외형을 캐릭터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로 활용했던 것처럼, 일상에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꽤나 진부할 수 있어도 사랑세포라고 생각해요. 일을 하든 누군가를 만나서 어떤 걸 하든 애정과 사랑이 있어야 제가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랑세포 다음으로는 패션세포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한다. 잠시 멈추고 싶거나 무언가를 덜어내고 싶었던 순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모습을 누군가가 좋아해주고 박수를 보내준다는 사실이 다시 무대로 향할 이유가 됐다. 더 빠르게 올라가야 한다는 욕심보다는 지금 자신에게 오는 작품과 사람을 만나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신의 속도로 계속 가고 싶다는 것이 이경욱이 말하는 현재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크게 욕심도 없을뿐더러 오는 것들 잘 싣고 이렇게 잘만 가고 싶어요. 원동력은 일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이경욱에게 ‘유미의 세포들’이 남긴 가장 큰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작품을 통해 만난 배우와 스태프를 단순히 한 작품을 함께한 동료로 기억하기보다, 앞으로도 오래 보고 싶은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때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한 장면씩 함께 완성해온 시간이 공연이 끝난 뒤에도 자신에게 남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정말 소중해요. 사람이 정말 저의 재산일 것 같아요. 사람이 남는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오래 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모두가 이미 자발적으로 뭔가를 할 정도로 다들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이경욱은 ‘유미의 세포들’이 끝난 뒤에도 응큼세포를 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세포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없지는 않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만든 응큼세포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어울릴까 고민했던 배역이 어느새 가장 오래 붙잡고 싶은 캐릭터가 된 것이다.
“응큼세포를 계속 나만 하고 싶어요. 이번 작품은 무조건 응큼세포만 하고 싶어요. 마지막에 마음을 울리는 장면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세포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응큼세포는 제가 계속 해보고 싶어요. 원캐스트로 쭉 하고 싶어요.”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크게 웃음을 만들어내는 배우지만, 이경욱이 결국 남기고 싶은 것은 웃음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고, 그 시간을 관객과 나누며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에게 무대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장소라기보다 좋아하는 마음을 싣고 다음 장면으로 건너가기 위한 시간에 가까웠다.
“관객분들이 극장을 나서면서 개운했으면 좋겠어요. 돈도 시간도 아깝지 않은 재밌는 공연이었다고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모두의 노고와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오롯이 전달돼서 ‘너무 잘 봤다’는 반응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공연을 마주한 관객에게도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이경욱. 무대 위 세포들이 유미를 바라보며 응원하듯, 객석에 앉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자신을 응원하는 마음속 세포가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고 했다. 결국 그가 무대에서 건네고 싶은 것도 거창한 메시지보다 지금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며 살아가도 된다는 작은 응원에 가까웠다.
“무대에 있는 세포들조차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세포라고 생각했으면 해요.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을 안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경욱 자신도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걸어가고 있다. ‘유미의 세포들’을 통해 웃음과 에너지를 건네는 동시에, 동료 배우들과 함께 하나의 장면을 만들고 관객과 마음을 나누는 뮤지컬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 더 빠르게,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사랑하고, 마음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과 오래 함께하고 싶다는 것. 무대 위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응큼세포부터 무대 밖에서 한 사람의 배우로 살아가는 이경욱까지, 그를 움직이는 힘은 결국 사람과 일에 대한 애정이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신에게 오는 작품과 사람을 잘 만나며 지금의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이경욱은 그렇게 마음을 싣고 자신의 오늘을 건너며, 또 다음 무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