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기업을 찾아서②] 정답대로 움직였지만 장사는 달랐다
직장인에서 문구점 경영자로…김병영 대표가 배운 ‘현장의 문법’
[KtN 박준식기자]김병영 알파문구 대구혁신센터점 대표의 출발점은 문구가 아니었다.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부친의 별세를 계기로 예상하지 않았던 자영업의 길에 들어섰다. 가족은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기보다 자신의 일을 해보는 편이 낫다고 권했다. 그렇게 선택한 업종이 문구 유통이었다.
공무원과 교사가 많은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김 대표에게 성실함과 원칙은 익숙한 가치였다. 직장에서는 정해진 절차와 근거에 따라 일을 처리했다. 맡은 업무를 정확하게 끝내면 결과도 따라왔다.
문구점에서는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주문받은 상품을 빠르게 준비해 전달해도 고객의 사정이 달라지면 거래가 되돌아왔다. 절차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주문이 바뀐 이유를 듣고, 이미 확보한 상품을 회수하고, 다음 거래까지 이어질 관계를 남겨야 했다.
김 대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든 일을 타당한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데 익숙했다”며 “자영업에서는 물건을 빠르게 배송하고 필요한 조치까지 마쳐도 필요 없어졌으니 가져가 달라는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직장인의 업무 방식이 자영업자의 대응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한 지점이다.
절차에서 관계로…달라진 거래의 기준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문구 유통은 상품만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기관마다 필요한 품목과 수량, 일정, 결제 방식이 다르다. 담당자의 요청이 달라지거나 추가 주문이 들어오면 공급 계획도 다시 짜야 한다.
김 대표는 이런 변수를 거래 실패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업무 흐름을 이해하고 다음 요구에 더 빠르게 대응하는 학습 과정으로 삼았다. 정확한 공급에 유연한 대응을 더하면서 매장 운영의 기준도 달라졌다.
과거의 기준이 ‘주문받은 일을 정확하게 끝내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기준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순간까지 책임지는 것’에 가깝다.
“문구 사용량이 과거보다 줄어도 반드시 필요한 곳은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빠르고 정확하게 물품을 전달하고, 소통을 통해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가격과 물량에서는 대형 유통업체가 앞설 수 있다. 지역 점포가 확보할 수 있는 경쟁력은 고객과의 거리, 대응 속도, 거래 과정에서 축적한 이해에 있다. 김 대표가 공공기관과의 관계를 ‘납품’보다 ‘상생’으로 표현하는 이유다.
코로나19가 가른 두 갈래
코로나19는 대구 혁신도시 상권의 취약성을 드러낸 변곡점이었다. 유동 인구가 줄고 비대면 소비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오프라인 점포가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다.
대구시의회가 2022년 발간한 ‘대구지역 골목상권 활성화 방안 연구’는 혁신도시 상권에서 코로나19 기간 유동 인구 감소와 폐업 증가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온라인·비대면 쇼핑의 확산과 원재료 가격 상승도 상권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같은 시기 알파문구 대구혁신센터점의 흐름은 달랐다. 김 대표는 코로나19 확산기에도 매출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과 지역 고객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공급하면서 기존 거래를 지킨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 경험은 입지보다 관계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공공기관이 가까이 있다는 조건만으로 매출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쌓아온 대응 경험이 위기 상황에서도 주문을 이어가는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남긴 변화는 매출에 그치지 않았다. 소비자는 매장을 방문하기 전에 검색했고, 가격과 후기를 비교했다. 익숙한 단골은 전화로 상품을 확인할 수 있지만 신규 고객에게는 매장이 있는지, 어떤 물건을 취급하는지 알리는 일부터 필요해졌다.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 무대가 진열대에서 검색 화면까지 넓어진 셈이다.
‘많이 갖춘 매장’에서 ‘찾을 수 있는 매장’으로
문구점은 대표적인 소량·다품종 업종이다. 판매량이 높은 필기구부터 특정 업무에만 쓰이는 사무용품까지 수요의 폭이 넓다. 모든 상품의 재고를 넉넉하게 유지하면 고객 대응력은 높아지지만 자금과 공간이 묶인다. 잘 팔리는 상품에 집중하면 운영 효율은 높아지는 대신 필요한 물건을 한 번에 찾는 문구점의 기능은 약해진다.
과거에는 상품을 많이 갖추는 자체가 경쟁력이었다. 온라인 유통이 확산된 지금은 상품 수보다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얼마나 정확하게 찾아주느냐가 중요해졌다.
김 대표는 디지털 기기 확산으로 전체 문구 소비가 줄어도 특정 수요는 남는다고 봤다. 필요한 품목을 파악하고 제때 공급하는 능력이 매장의 역할을 결정한다는 판단이다.
관공서 직원이 문구 항목으로 비용을 결제하더라도 실제 구매 품목은 문구류에만 머물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공공기관 가까이에 있는 문구점은 필기구 판매점보다 업무에 필요한 여러 물품을 조달하는 공급 거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업종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중요한 것은 물건의 종류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김 대표가 내세운 ‘빠르고 정확한 대응’도 이 변화에서 나왔다.
진열대 밖으로 나온 문구점
김 대표는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영상을 만들고 인스타그램에 게시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 수많은 상품을 한꺼번에 올리기보다 매장의 존재와 운영 방식을 지역 고객에게 알리는 쪽을 먼저 택했다.
초기에는 어떤 콘텐츠를 올려야 할지 방향을 잡기 어려웠다. 상품 소개만 이어가면 광고 계정과 다르지 않고, 개인적인 일상만 올리면 문구점의 정체성이 흐려졌다. 김 대표는 매장에서 겪은 일과 하루의 생각을 기록하면서 상품과 공간, 운영자의 철학을 연결하는 방식을 찾고 있다.
“인스타그램으로 매출이 얼마나 늘어날 수 있을지는 아직 모호합니다. 그래도 계속 다듬고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목표는 온라인 매출을 단기간에 키우는 데 있지 않다. 대구 혁신도시에서 문구점을 검색한 사람이 매장을 발견하고, 취급 상품과 운영 방식을 확인한 뒤 방문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포털 검색 노출과 고객 후기를 먼저 쌓고 온라인 주문과 배송은 이후 단계로 넓혀가겠다는 구상이다.
변하지 않은 것은 대응의 속도
김 대표의 운영 방식은 직장인 시절과 비교해 크게 달라졌다. 절차에 맞춰 일을 끝내는 데서 고객의 사정이 바뀐 뒤까지 대응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주문을 기다리던 방식도 검색과 SNS를 통해 먼저 존재를 알리는 방향으로 넓어졌다.
변하지 않은 기준도 있다. 필요한 사람에게 정확한 물건을 제때 전달한다는 원칙이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형성된 초기 기대는 상권 침체와 코로나19를 거치며 약해졌다. 문구 소비는 감소했고 구매 경로는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알파문구 대구혁신센터점은 변화할 때마다 업의 경계를 넓혔다. 문구 판매점에서 기관의 공급 파트너로, 진열대 중심의 매장에서 온라인으로 발견되는 지역 점포로 역할을 바꿨다.
김 대표는 현재의 매출을 안정을 보장하는 지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 큰 업체가 가격과 공급 능력을 앞세우면 거래 구도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항상 준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잘 모르더라도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시장에서 김 대표가 쌓은 경쟁력은 정답을 미리 아는 능력이 아니다. 주문이 바뀌면 다시 움직이고, 소비 방식이 달라지면 고객을 만나는 통로를 새로 만드는 대응력이다. 직장에서 배운 성실함은 자영업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변화에 맞춰 움직이는 힘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