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조직혁명②] 사람 한 명의 일이 사람과 AI로 갈라진다

리더 25%만 “AI 에이전트가 자율적 동료로 활동” 직무보다 세부 업무 단위 재편…판단·승인·책임 경계 다시 정해야

2026-08-19     최기형 기자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인공지능이 사람의 직업을 통째로 대신하기에 앞서 하나의 직무를 여러 업무로 쪼개고 있다. 자료 수집과 분류, 초안 작성은 AI가 맡고 사람은 판단과 승인, 이해관계 조정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기존 직무명은 남더라도 직원이 실제로 수행하는 일과 필요한 역량은 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맥킨지의 ‘조직의 현주소 2026’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리더의 53%는 향후 1∼2년 동안 AI가 반복 업무와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보조 도구로 주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인간의 역량을 보완할 것이라는 응답은 27%, 자율적인 동료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응답은 25%였다. 복수응답 문항이어서 응답률을 합산할 수는 없다.

기업의 기대는 생산성에 집중됐다. 리더의 55%는 직원이 AI 활용 역량을 성공적으로 갖추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보 접근성 개선은 48%, 행정 업무 감소는 47%, 의사결정 효과 개선은 46%가 기대했다. 반면 리더 10명 중 1명은 직원들이 AI 활용에 따른 생산성 향상 기회를 놓쳐 산출량이 실질적으로 늘지 않을 것으로 봤다.

AI 에이전트는 이용자의 지시에 한 번 답하는 생성형 AI 도구와 작동 방식이 다르다. 여러 단계의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운 뒤 실행 결과에 따라 다음 행동을 조정한다. 제한된 인간의 감독 아래 과거에는 사람의 판단과 조정이 필요했던 업무까지 수행할 수 있다.

적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직무 전체를 사람이나 AI 한쪽에 넘기는 방식은 한계가 커진다. 업무 절차를 세부 활동으로 나누고 비용, 기술 수준, 윤리, 위험에 따라 담당 주체를 정해야 한다. 자료 취합과 정형화된 검증은 AI가 맡을 수 있지만 예외 상황의 판단, 책임이 따르는 승인, 직원과 고객에 대한 설명은 사람에게 남길 수 있다.

모든 업무의 중심에 AI 에이전트를 배치하는 방식도 적절하지 않다. AI는 맥락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정보를 생성할 수 있다. 모호한 목표나 충돌하는 지시를 잘못 해석할 위험도 있다. 차별이나 개인정보 침해, 지식재산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결정에는 사람의 감독과 개입 절차가 필요하다.

업무 분담이 달라지면 같은 직무에 요구되는 역량도 바뀐다. 맥킨지가 인용한 별도 연구에 따르면 현재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의 70% 이상은 자동화 가능한 업무와 자동화하기 어려운 업무에서 함께 사용된다. 기존 역량이 한꺼번에 사라지기보다 활용 방식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AI가 업무 절차에 깊숙이 들어가면 현재 직무의 약 75%를 새로운 역량 조합에 맞게 재설계해야 할 것으로 전망한 기존 연구도 인용했다. 기술을 이해하고 AI에 지시하는 능력뿐 아니라 사회·정서적 역량과 고차원적 사고 능력의 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자연어 처리와 데이터과학, 파이토치 등 응용 AI 인력에 대한 세계 수요는 2018년부터 2025년 사이 세 배 이상 증가했다.

관리자의 역할 변화가 먼저 나타날 수 있다. 일정 조정, 자료 정리, 보고서 작성 등 행정 업무를 AI가 맡으면 관리자는 구성원 육성과 갈등 조정, 판단, 성과관리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관리자의 업무량이 자동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AI가 생산한 결과를 검토하고 오류를 통제하는 새로운 관리 업무가 추가될 수 있다.

신입 직원에게는 다른 부담이 생긴다. 자료 검색과 초안 작성, 기초 분석처럼 업무의 맥락을 익히던 단계가 자동화되면 경험을 축적할 통로가 좁아진다. 숙련 직원의 결과물만 학습한 AI에 의존하면서 정작 다음 세대 숙련자를 양성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기업은 자동화 대상 업무와 교육에 남겨둘 업무를 구분해야 한다.

전문가 직무도 예외가 아니다. 법률 검토나 재무 분석, 의료·제약 연구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AI가 자료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최종 판단의 책임까지 넘기기 어렵다. AI가 작성한 결과를 승인한 사람, AI 시스템을 운영한 부서, 데이터를 제공한 조직 가운데 누가 오류를 책임지는지 미리 정하지 않으면 업무 속도가 빨라져도 위험은 커진다.

AI와 사람이 함께 일하는 조직에서는 새로운 역할도 등장한다. AI 제품 책임자는 업무 목표와 기술 개발을 연결하고, 신뢰·안전 담당자는 시스템의 편향과 위험을 통제한다. 기술과 데이터, 인사, 현업 인력이 함께 참여하는 교차기능 조직도 필요하다. 기술 부서가 모델을 만든 뒤 현업에 전달하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실제 업무와 책임 구조를 반영하기 어렵다.

인력계획 주기도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조사 응답자의 39%는 전략적 인력계획을 2∼3년에 한 번 수립했고, 다른 39%는 매년 수립했다. 기술과 사업 환경에 따라 수시로 조정하는 유연한 계획을 운영하는 조직은 14%였다. AI가 수개월 단위로 업무를 바꾸는 상황에서 연간 또는 다년 단위 인력계획은 필요한 역량과 실제 인력 사이의 격차를 키울 수 있다.

직원의 참여도 생산성 향상을 가른다. 경영진이 인력 감축 수단으로 AI를 제시하면 직원은 자신의 업무 지식과 실패 사례를 시스템 설계 과정에서 공유하기 어렵다. 현업의 참여 없이 만든 AI는 예외 업무와 비공식 절차를 반영하지 못한다. 도입 뒤 직원에게 검증 책임만 추가되는 경우에는 업무 부담이 오히려 늘어난다.

성과평가 기준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AI를 활용해 같은 업무를 빠르게 마친 직원에게 더 많은 업무만 배정하면 활용 유인이 약해진다. 처리량뿐 아니라 오류 감소, 고객 만족, 새로운 아이디어, 동료 지원 등으로 평가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AI가 만든 결과와 직원의 기여를 구분하는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조사에는 한국 기업이 포함되지 않았다. 직무의 75%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수치와 AI 인력 수요 증가율도 ‘조직의 현주소 2026’ 조사에서 직접 측정한 결과가 아니라 맥킨지의 기존 연구를 인용한 것이다. 국내 고용 감소나 직무 변화의 규모로 해석할 수 없는 수치다.

AI와 사람의 협업은 자동화할 업무를 고르는 단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판단과 승인, 오류 대응, 성과 배분의 책임을 조직 안에 새로 배치해야 한다. 직무명과 인사제도는 그대로 둔 채 일부 업무만 AI에 넘기면 줄어든 작업시간보다 검토와 책임의 공백이 더 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