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조직혁명⑨] 지정학 충격에도 분기별 대응 훈련 기업은 26%뿐

글로벌 리더 72% “사업에 뚜렷한 영향” 경직된 조직 38%·현지 규제 32%가 대응 막아…생산·조달·권한 분산 확산

2026-08-25     최기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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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최기형기자]글로벌 리더의 72%는 무역 갈등과 관세, 규제 분절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기업 운영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정학 동향이 재무와 사업에 미칠 영향을 분기마다 점검하는 기업은 26%에 그쳤다.

맥킨지가 2026년 발간한 ‘조직의 현주소 2026’에 따르면 지정학 위험의 영향을 평가할 방법론조차 마련하지 않은 조직은 17%였다. 공급망과 생산거점은 여러 국가에 걸쳐 있지만 대응 체계는 연간 사업계획과 경영진의 개별 판단에 의존하는 기업이 적지 않았다.

지정학 충격은 상품을 생산하고 이동시키는 기업에 더 크게 나타났다. 서비스 기업보다 제조와 유통 등 상품 중심 기업이 관세와 수출통제, 물류 차질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사업 지역이 넓은 조직에서는 74%가 지정학적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지역 범위가 좁은 조직은 63%였다. 여러 국가에 진출하면 특정 시장의 충격을 다른 지역에서 상쇄할 수 있지만 규제와 공급망, 환율 위험에 동시에 노출된다.

지정학적 영향을 적게 받았다고 답한 리더 가운데 32%는 여러 지역에 분산된 사업 구조를 이유로 들었다. 복수 공급처 확보는 29%였다. 생산과 조달을 한 국가나 업체에 집중하지 않은 기업에서 충격을 흡수할 여지가 컸다.

국가별 차이도 나타났다. 지정학 변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응답은 사우디아라비아 40%, 일본 39%, 호주 35%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 영국은 21%, 독일은 22%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의 응답자 가운데 지정학 영향을 적게 받았다는 비율이 높은 배경으로 내수와 서비스 중심의 사업구조가 제시됐다. 같은 국가에서도 수출과 수입 의존도, 생산거점, 고객 분포에 따라 노출 수준은 달라졌다.

기업의 대응을 막는 가장 큰 요인은 경직된 조직과 업무 절차였다. 응답자의 38%가 의사결정과 지배구조, 자원 배분의 경직성을 지목했다. 현지 규제는 32%, 조직문화의 저항은 29%, 취약한 기술·데이터 기반은 26%였다.

지역 전문인력 부족은 24%, 필요한 역량을 갖춘 조직 거점의 한계는 22%, 리더십 역량 부족은 20%였다. 대규모 설비투자에 묶인 자본은 19%, 특정 공급처나 생산지역에 대한 의존은 17%였다.

직원 3만명이 넘는 조직에서는 경직된 구조를 가장 큰 장벽으로 꼽은 비율이 46%였다. 직원 1000∼5000명인 조직은 34%였다. 사업 지역과 조직이 커질수록 의사결정 단계와 규제 검토 절차가 늘어났다.

현지 규제 부담은 호주에서 41%로 가장 높았다. 브라질은 39%,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각각 38%였다. 사업 지역이 넓은 대기업은 국가별 고용과 데이터, 환경, 세금 규정을 동시에 적용받았다.

조직문화의 저항은 북미 32%, 유럽 29%, 아시아·태평양 23%였다. 직원의 피로도가 높은 조직에서는 45%가 문화적 저항을 장벽으로 꼽았다. 활력이 높은 조직은 28%였다.

시나리오 점검의 격차는 기업 규모에서도 나타났다. 직원 5000명 미만 기업은 대기업보다 분기별 지정학 시나리오 분석을 시행할 가능성이 50% 낮았다. 정보 수집과 전담인력, 분석 체계를 갖추는 데 필요한 비용이 중소 규모 조직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시나리오 분석은 특정 사건을 예측하는 작업보다 여러 충격에 따라 사업계획을 바꿀 준비에 가깝다. 관세율과 환율, 물류비, 수출통제, 현지 규제가 달라질 때 제품 가격과 생산량, 투자계획이 받는 영향을 미리 계산한다.

매출과 비용의 변화뿐 아니라 생산을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과 필요한 인력, 계약 해지 비용도 포함된다. 공급업체를 바꾸거나 사업을 철수할 수 있는 조건을 사전에 정하지 않으면 충격이 발생한 뒤에도 결정을 미루게 된다.

리더의 43%는 처분해야 할 자산을 너무 늦게 매각했거나 필요한 매각을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시장 철수와 사업 매각이 늦어지면서 자본과 인력이 수익성이 낮아진 지역과 사업에 남았다.

조직 개편 수단으로 업무 절차 재설계를 꼽은 비율은 34%였다. 인력 전략 조정은 32%였다. 직원 5만명이 넘는 대기업에서는 업무 절차 재설계가 37%, 공급망 다변화가 31%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글로벌 조직을 한곳에서 통제하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기능은 본사나 공통 조직에 남기고 규제 대응과 고객 판단은 지역 조직에 넘기는 방식이다. 지정학적으로 거리가 먼 시장에는 독립된 법인과 시스템을 두고 핵심 기능을 일부 중복하기도 한다.

지역별 조직을 분리하면 충격이 다른 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비용은 늘어난다. 법인과 정보시스템, 인력을 중복해서 운영해야 하고 전사 데이터와 기준을 통일하기 어려워진다. 세계 단일 체제의 효율성과 지역별 자율성 사이에서 조정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은 분산된 조직을 연결하는 기반으로 사용됐다. 지역별 재고와 수요, 규제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자본과 인력을 옮기는 데 데이터 분석과 AI가 활용됐다. 기술·데이터 기반이 약한 조직은 지역 정보를 본사에 전달하고 결정을 실행하는 속도가 늦었다.

사이버보안을 지정학 대응의 우선과제로 꼽은 리더는 25%였다. 국가별로 시스템과 데이터를 분리할수록 접속 지점과 관리 대상이 늘어난다. 공급망과 생산거점을 나누면서 디지털 보안체계를 함께 바꾸지 않으면 운영의 유연성이 새로운 취약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독일 완구기업 토니스는 중국에 집중됐던 생산을 베트남으로 분산했다. 토비아스 반 토니스 최고경영자는 맥킨지와의 인터뷰에서 2025년 4월 1일 베트남 생산시설을 가동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 등에 추가 관세를 발표하기 하루 전이었다. 토니스는 미국 시장에 판매할 오디오 기기 ‘토니박스’를 베트남에서 공급하면서 중국 생산 제품보다 낮은 관세를 적용받았다. 가격을 크게 올리지 않고 관세 충격을 상쇄했다.

생산 이전은 관세 발표 뒤 시작된 긴급 대응이 아니었다. 공급망 위험을 줄이기 위해 미리 생산지역을 나눈 결과였다. 부품 주문부터 완제품 배송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공급업체도 다변화했다.

토니스의 북미 매출은 2025년 전체의 약 50%를 차지했다. 미국 시장에서 목표 고객 가구의 제품 보급률은 약 10%로, 독일의 50%보다 낮았다. 생산지역 분산은 관세 방어와 북미 성장 기반 확보를 함께 겨냥했다.

지역 확대는 조직의 복잡성도 높였다. 제품의 하드웨어는 세계 시장에서 같지만 어린이용 콘텐츠는 언어와 문화에 따라 달라졌다. 판매 경로도 국가별로 차이가 났다. 토니스는 현지 인력과 시장별 콘텐츠를 확대하고, 전사 AI 도입을 맡을 최고정보책임자 직책도 신설했다.

삼성전자는 미국과 베트남으로 공급 기반을 넓혀 아시아 지역의 지정학 위험을 줄인 사례로 제시됐다. 공급망 분산 이후 파운드리 매출이 증가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다만 공급 기반 확대와 매출 증가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공개된 자료만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지정학 대응력은 충격이 발생한 뒤 생산지를 옮기는 속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관세와 규제가 바뀌기 전에 대체 공급처와 생산거점, 철수 기준을 마련한 기업이 선택지를 확보한다. 분기별 시나리오와 자원 이동 권한이 없는 조직은 위험을 인식하고도 기존 사업 구조에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