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①] ‘공식’ 명칭은 얻지만 전시비는 각자…무료 전시 뒤 수억원 청구서
공식 병행전시 31곳, 공간·제작·운영은 주최 기관 몫 비영리기관만 신청 가능하지만 베니스 입성에는 후원금 필수
[KtN 임민정기자]관람객에게 무료인 전시도 주최 기관에는 수억원짜리 사업이 될 수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전시는 재단의 심사를 거쳐 이름을 올리지만,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밖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전시장과 제작비, 작품 운송, 설치·철거, 보험, 현지 운영인력도 주최 기관이 마련해야 한다.
비엔날레 재단이 공개한 2026년 병행전시 절차에는 참가 자격과 운영 책임이 구분돼 있다. 신청할 수 있는 곳은 미술 분야에서 직접 활동하는 공공 또는 민간 비영리기관이다. 전시는 비엔날레 재단의 제도권 전시장 밖에서 독립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공식 행사로 인정받더라도 공간이나 제작비가 따라오는 구조는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이탈리아 비즈니스센터는 공식 병행전시 참가비를 약 2만 유로로 파악했다. 부가가치세와 전시장 대관료, 작품 제작·운송비, 설치비, 현지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참가비 액수는 비엔날레 재단이 현재 홈페이지에 공개한 절차 안내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계약서나 참가 승인 문서를 통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전시장 비용은 위치와 규모, 임대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베네치아에서 입지가 좋은 팔라초나 창고를 약 6개월 동안 빌리는 비용을 수억원으로 추산했다. 현지 기술인력의 하루 인건비는 1200유로를 넘고 개막 주간에는 최대 30%의 할증이 붙는다고 설명했다. 개별 계약서가 공개되지 않은 만큼 평균가격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참가비가 전체 비용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은 확인된다.
국가 단위 전시 100곳에 병행전시 31곳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5월 9일 개막해 11월 22일까지 열린다. 코요 쿠오가 생전에 구상한 ‘단조로’를 주제로 110명의 작가와 팀이 본전시에 참여했다.
비엔날레 재단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국가 단위 전시는 모두 100곳이다. 자르디니에 29곳, 아르세날레에 25곳, 베네치아 도심에 46곳이 배치됐다. 기니와 적도기니, 나우루, 카타르, 시에라리온, 소말리아, 베트남은 올해 처음 참가했다.
본전시와 국가관 바깥에서는 31개의 공식 병행전시가 열린다. 비엔날레 예술감독의 승인을 받은 비영리기관의 전시다. 장소는 베네치아 곳곳의 팔라초와 도서관, 옛 교도소, 창고 등으로 흩어져 있다.
관람객이 구입하는 비엔날레 입장권은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에 적용된다. 비엔날레 재단은 병행전시 대부분이 무료지만 일부는 별도 입장권을 요구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병행전시의 운영비가 비엔날레 입장권 수입으로 직접 보전되는 것은 아니다.
공식 병행전시로 선정된 기관은 비엔날레 홈페이지와 안내 체계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세계 각국의 미술관장과 큐레이터, 컬렉터, 언론이 베네치아에 모이는 기간에 전시를 선보인다는 이점도 얻는다. 장소를 구하고 작품을 제작해 관람객을 맞는 과정은 주최 기관의 책임이다.
비영리만 신청…실행 단계에서는 자본력 필요
병행전시 제도는 상업화랑이나 영리기업에 직접 열려 있지 않다.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비영리기관만 신청할 수 있다. 비엔날레의 명성을 이용한 상업행사의 무분별한 편입을 막고, 본전시와 국가관에 포함되지 않은 작가와 지역에 공식 참여 통로를 제공하는 장치다.
신청 자격이 비영리라고 해서 전시비용까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공간이 없는 기관은 전시장부터 임차해야 한다. 작품 제작과 포장, 국제운송, 설치·철거, 보험, 조명, 음향, 경비, 통역, 홍보비도 필요하다. 작가와 큐레이터, 운영인력의 항공료와 숙박비까지 더하면 전체 예산은 빠르게 늘어난다.
베네치아의 도시 구조는 운송과 설치를 복잡하게 만든다. 차량이 전시장 앞까지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에서는 작품과 자재를 배로 옮겨야 한다. 역사적 건물을 전시장으로 사용할 때는 내부 구조와 보존 상태에 맞춰 설치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 대형 구조물이나 영상·음향 장비를 사용하는 전시는 현지 기술인력과 안전관리 비용이 추가된다.
공간의 위치도 관람 성과를 좌우한다. 산마르코 광장과 주요 수상교통 노선에 가까운 전시장은 관람객이 찾기 쉽다. 도심에서 멀거나 골목 안쪽에 있는 공간은 수많은 전시 사이에서 발견되기 어렵다. 전시장의 주소와 동선이 작품의 노출 기회를 결정하는 변수가 된다.
국제 재단이나 기업 후원자를 확보한 기관은 넓은 공간과 대형 작품, 장기간의 운영인력을 선택할 수 있다. 예산이 적은 기관은 공간과 전시 기간, 작품 수, 홍보비를 줄여야 한다. 같은 공식 병행전시라도 관람객을 만나는 조건은 같지 않다.
비엔날레 재단은 기획의 전문성과 비영리성을 심사하지만, 선정된 기관의 제작비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작품이 베니스에 도착할 수 있는지는 기관의 재정과 후원망에 달렸다. 제도상 문은 비영리기관에 열려 있지만 실제 진입 과정에서는 자금 조달 능력이 작동한다.
대형 재단에는 투자, 중소 기관에는 위험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를 여는 효과는 관람객 수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세계 미술계 관계자를 한 도시에서 만날 수 있고 공식 행사 참여 경력도 남는다. 전시가 해외 미술관 초청과 작품 소장, 작가의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대형 재단과 화랑에는 베니스에서 지출한 비용을 장기 투자로 볼 여지가 있다. 화랑이 병행전시의 단독 주최자로 참가할 수는 없지만 비영리기관이나 재단과 협력해 작가를 지원할 수 있다. 작가의 시장가치와 기관의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지면 전시비용을 이후 사업에서 회수할 수 있다.
신진 작가와 중소 기관에는 같은 계산이 적용되기 어렵다. 수억원을 투입해도 언론 보도나 후속 전시, 작품 판매로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공공지원금이나 민간후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선정된 뒤에도 규모를 줄이거나 참가를 포기할 수 있다.
공식 병행전시 31곳의 전체 사업비와 후원금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공간 임대료와 운송비, 현지 고용 인원, 공공지원금과 민간후원의 비율도 공식 통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비엔날레 진입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기관이 그 비용을 감당하는지는 개별 결산서와 계약서를 확보해야 알 수 있다.
기업 재단과 공공 문화유산의 결합
올해 공식 병행전시에는 국립 마르차나 도서관과 불가리 재단이 마련한 전시도 포함됐다. 라라 파바레토와 모니아 벤 하무다가 참여해 도서관의 역사적 공간에 설치작품을 배치했다.
마르차나 도서관의 기념 공간은 무료로 개방된다. 코레르박물관과 국립고고학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관련 전시에는 입장권이 적용된다. 공공 문화유산의 공간과 민간 재단의 자본·기획력, 비엔날레의 국제적 인지도가 결합한 사례다. 마르차나 도서관·불가리 재단 병행전시
병행전시가 도시 곳곳으로 퍼지면 팔라초와 창고는 전시 자산으로 바뀐다. 작품 운송업체와 시공사, 기술인력, 경비업체, 통역사, 숙박·외식업체도 비엔날레 수요에 참여한다. 문화행사의 예산이 건물 임대와 물류, 고용, 관광 소비로 이동하는 구조다.
베네치아 시민이 얻는 효과는 따로 따져야 한다. 전시 시공과 운송, 경비, 통역 분야에서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관광객 집중은 교통 혼잡과 숙박 수요를 늘린다. 비엔날레의 경제효과를 관람객 수나 호텔 매출만으로 평가하면 수익이 누구에게 돌아가고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무료 관람의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공식 병행전시 대부분이 무료라는 점은 관람객에게 이익이다. 본전시 입장권을 구입하지 않아도 세계 각국의 현대미술을 볼 수 있고, 평소 공개되지 않는 역사적 공간을 방문할 기회도 얻는다.
무료 관람은 전시비용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입장료 대신 주최 기관의 자금과 공공지원금, 기업 후원, 재단 출연금, 개인 기부가 비용을 부담한다. 관람객은 무료로 전시장에 들어가지만 누군가는 임대료와 제작비, 인건비를 지불해야 한다.
비엔날레 재단은 올해 개막일 관람객이 약 1만명으로 2024년보다 1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개막 전 행사에는 2만7935명이 방문했고, 이 가운데 취재진은 3733명이었다.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공식 병행전시가 얻는 노출 효과도 크다.
11월 22일 폐막 이후에는 전체 관람객 수가 발표될 예정이다. 병행전시 31곳이 지출한 제작비와 공간 임대료, 고용 규모와 후원금 구조가 함께 공개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권위는 130년의 역사와 초청 작가, 국가관 경쟁에서 나온다. 권위를 실제 전시로 바꾸는 과정에는 공간 임대와 수상 운송, 설치 노동, 공공지원금과 기업 후원이 필요하다. 참가비와 전체 사업비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비영리 병행전시가 누구에게 열린 무대인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폐막 뒤 확인해야 할 수치는 관람객 수만이 아니다. 병행전시별 총사업비와 공공·민간 재원의 비율, 현지 고용과 공간 임대수익까지 공개돼야 베니스 비엔날레가 만든 문화적 성과와 경제적 부담을 함께 계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