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휘영 장관의 K-축구 혁신, ‘경청’을 넘어 유소년 축구의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KtN 임우경기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9일 충남 천안 코리아풋볼센터에서 열린 ‘2026 K-축구 혁신위원회 경청회’에 참석해 유소년 선수와 지도자, 학부모 등 축구 현장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날 경청회는 박지성·유승민 공동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원 전원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으며, 유소년 축구의 경기장 부족, 혹서기·혹한기 대회 운영, 학생선수의 학습과 입시 부담, 여자축구 성장 경로 등 한국 축구의 기반을 흔드는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이번 행사의 핵심은 ‘대표팀 성적’이나 ‘축구협회 운영’ 중심으로 반복돼 온 한국 축구 개혁 논의를 유소년 현장으로 옮겨왔다는 데 있다. 국제대회에서 한 번의 성과가 나오면 열광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책임론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정작 어린 선수들이 어떤 환경에서 훈련하고 성장하는지는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나기 쉬웠다. 최휘영 장관의 현장 방문은 K-축구 혁신이 경기 결과가 아니라 선수의 성장 조건을 바꾸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마음껏 뛸 곳”이 없다는 유소년 축구의 현실
경청회에서 현장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운동장 부족이었다. 유소년 축구 선수에게 경기장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니다. 기술을 반복하고, 동료와 호흡을 맞추며, 실전을 통해 판단력과 경기 감각을 키우는 성장 공간이다. 하지만 학교 운동장과 공공체육시설은 수업, 타 종목, 생활체육, 지역 행사 등 여러 수요가 겹쳐 축구팀이 안정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전용구장이 없는 학교팀이나 클럽팀은 제한된 시간 안에 훈련을 끝내야 하고, 방과 후 늦은 시간이나 주말에야 구장을 확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문제는 훈련량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회복시간과 학습시간, 이동시간까지 압박한다. 특히 지역에 따라 시설 접근성이 크게 다르면, 선수 개인의 재능이나 노력보다 거주지와 소속팀의 여건이 성장 가능성을 좌우하게 된다.
유소년 축구장 부족은 결국 경기 수 부족으로 연결된다. 경기는 훈련으로 대체할 수 없는 교육 과정이다. 선수는 경기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압박 속에서 판단하며, 실수 이후 다시 회복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대회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고, 연습경기 공간조차 충분하지 않다면 선수들은 다양한 전술과 상대를 경험할 기회를 잃는다. 현장에서 제기된 “경기와 운동장이 부족하다”는 호소는 시설 민원이 아니라 선수 육성 체계 전체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경고다.
최 장관이 풀어야 할 과제는 단순히 새 축구장을 많이 짓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학교 운동장, 공공체육시설, 유휴부지, 생활체육 공간을 유소년 축구와 연계해 실제 이용 가능 시간을 늘리는 방식이 함께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교육청·축구협회와 함께 지역별 시설 수요를 조사하고, 유소년팀의 우선 이용 시간과 정기 대관을 보장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시설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 선수들이 일주일에 몇 시간,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동장에서 뛰는가다.
폭염과 한파 속 대회, 성적보다 앞서야 할 선수 건강권
혹서기와 혹한기에 집중되는 대회 운영도 이날 경청회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한여름 고온다습한 날씨나 겨울철 강추위 속에서 이어지는 경기는 선수의 경기력과 안전을 동시에 위협한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유소년 선수는 성인 선수보다 기온 변화, 탈수, 피로 누적에 취약할 수 있어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대회 일정이 방학과 주말, 시설 대관 가능 시간에 맞춰 편성되는 현실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운영 편의가 선수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폭염 속 경기에서 탈수와 열탈진 위험이 커지고, 한파 속 경기에서는 근육 부상과 컨디션 저하 가능성이 높아진다. 선수들은 다음 경기 출전을 위해 통증이나 이상 신호를 참고 뛰는 경우도 있어,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대응하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최휘영 장관은 현장에서 혹서기·혹한기 대회 환경이 선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취지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환경 개선과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발언은 정책으로 구체화돼야 한다. 기온·습도·체감온도를 반영한 경기 연기 또는 취소 기준, 경기시간 조정, 쿨링브레이크 의무화, 의료 인력 배치, 급수·그늘 공간 확보, 경기 간 최소 휴식시간 등의 전국 공통 기준이 필요하다.
핵심은 지침의 존재가 아니라 집행력이다. 대회 주최 측이 성적 일정과 예산, 대관 문제를 이유로 기준을 우회하지 않도록 문체부와 대한축구협회, 시도협회가 책임 체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안전 기준 준수 여부를 대회 평가와 지원금 배분에 반영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유소년 축구에서 ‘강한 선수’는 위험한 환경을 견디는 선수가 아니라, 안전한 환경에서 꾸준히 성장한 선수여야 한다.
학생선수 문제, ‘공부냐 축구냐’의 선택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국 유소년 축구의 또 다른 난제는 학생선수의 교육과 운동이 충돌하는 구조다. 경청회에서는 최저학력제와 입시, 출결 규정 등 교육제도가 종목 현장과 충분히 조응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학생선수는 대회 참가와 이동, 훈련으로 인해 수업 결손 가능성이 높고, 시험 및 진학 준비와 경기 일정이 중첩되면 부담은 더 커진다.
이 문제를 ‘운동선수도 공부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 접근하면 해결이 어렵다. 학습권은 반드시 보장돼야 하지만, 현재 제도가 선수의 특수한 경기 일정과 이동 여건, 훈련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면 실질적으로는 운동과 학습 모두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학업을 포기할 자유가 아니라, 운동을 이어가면서도 배움을 지속할 수 있는 유연한 교육 시스템이다.
문체부와 교육부, 시도교육청이 공동으로 학생선수 지원체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대회 참가 기간의 학습 결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온라인 수업과 학습 멘토링을 확대하고, 학교별로 다른 출결 처리의 혼선을 줄일 공통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상위권 입시와 선수 선발에 지나치게 종속된 유소년 축구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경기력 평가뿐 아니라 학업·진로·인성·부상 예방까지 포괄하는 선수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유소년 선수 가운데 모두가 프로선수나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선수생활 이후에도 지역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진로교육과 직업 전환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축구를 그만두는 순간 ‘실패자’가 되는 구조라면, 한국 축구의 저변도 건강하게 넓어질 수 없다.
여자축구, 대표팀 격려를 넘어 성장 사다리를 세울 때
최휘영 장관은 경청회 이후 대한민국 여자 U-20 축구 국가대표팀을 격려하고, 코리아풋볼센터 시설도 둘러봤다. 이는 여자축구와 유소년 축구를 한국 축구의 미래 기반으로 보겠다는 상징적 행보다. 그러나 여자축구의 현실은 대표팀 성과와 격려의 메시지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여자 유소년 선수가 축구를 시작한 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성인무대로 이어지는 과정은 여전히 충분히 촘촘하지 않다. 팀 수와 대회 수, 지역별 육성 기반, 진학 선택지, 여성 지도자 비율, 성인 리그와 직업 경로 등 여러 조건이 함께 작동한다. 특정 지역에 팀이 없으면 선수는 이른 나이에 장거리 이동이나 전학을 고민해야 하고, 진학 단계에서 선택지가 줄어들면 축구를 계속할 의지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여자축구 정책은 등록선수 숫자만 늘리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역 거점형 여자 유소년팀을 늘리고, 초·중·고·대학·성인리그를 잇는 연계 리그를 강화하며, 여성 지도자와 심판, 트레이너의 진출 기반도 함께 확충해야 한다. 여자 U-20 대표팀을 향한 격려가 의미 있으려면, 그 대표팀에 오르지 못한 수많은 여성 청소년 선수에게도 계속 축구할 수 있는 길을 보장해야 한다.
경청회의 성패는 ‘후속 공개’에 달려 있다
K-축구 혁신위원회 경청회는 출발점으로서 분명한 의미가 있다. 박지성·유승민 공동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현장 구성원의 문제 제기를 직접 듣고, 최휘영 장관이 주무부처의 책임을 언급한 것은 기존의 일방향적 정책 방식과 다른 접근이다. 하지만 경청이 곧 혁신은 아니다. 유소년 선수와 학부모, 지도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나왔는가’가 아니라 ‘언제 무엇이 바뀌는가’다.
문체부는 경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과제별로 정리하고, 담당기관과 협력기관, 예산 방향, 추진 기한을 공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혹서기·혹한기 대회 개선은 단기 과제로, 유소년 구장 확충과 이용체계 개편은 중기 과제로, 학생선수 제도와 여자축구 성장 경로 재설계는 범정부 중장기 과제로 구분할 수 있다. 각 과제에 대해 정량·정성 지표를 마련하고 정기적으로 이행 상황을 공개해야 정책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대표적인 점검 항목으로는 유소년 우선 이용이 가능한 축구장 수와 주당 이용시간, 연령대별 공식·비공식 경기 수, 폭염·한파 시 대회 일정 조정 건수, 선수 안전사고 현황, 학생선수 학습지원 참여율, 여자 유소년 등록선수와 상급학교·성인무대 진출률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가 축적돼야 ‘투자 확대’와 ‘혁신’이 선언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정책이 된다.
최휘영 장관에게 주어진 역할은 크다. 한국 축구의 개혁은 한 번의 회의나 단기간의 성적 반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린 선수가 안전하게 뛰고, 충분히 경기를 경험하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고, 성별과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성장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핵심이다. 천안 경청회에서 나온 목소리를 예산과 제도, 시설과 교육, 그리고 지속적인 공개 평가로 연결할 수 있을 때 ‘K-축구 혁신’은 비로소 현장의 언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