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②] 러시아관 복귀에 심사위원 전원 사임…상은 관람객 손으로

EU 지원금 200만 유로 철회 보도, 러시아관은 일반 공개 중단 전문가 심사 사라지고 ‘관람객 사자상’ 신설…국가관 책임 구조 도마

2026-08-21     임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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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임민정기자]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심사위원 없이 문을 열었다. 황금사자상 수상자를 선정할 국제심사위원 5명이 개막을 열흘 앞두고 전원 사임했다. 러시아관과 이스라엘관을 수상 심사에서 제외하려던 심사위원단과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비엔날레 재단의 충돌이 사임으로 이어졌다고 AP통신과 가디언 등은 보도했다.

비엔날레 재단은 전문가 심사를 대신해 관람객 투표로 수상자를 정하는 ‘관람객 사자상’ 두 개를 신설했다. 러시아와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국가 단위 전시가 투표 대상이다. 개막일로 예정했던 시상식은 폐막일인 11월 22일로 미뤘다.

러시아관은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 복귀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관 참가를 문제 삼아 비엔날레에 대한 200만 유로 규모의 지원을 철회했다고 르몽드와 아트뉴스페이퍼가 지난 7월 보도했다. 러시아관은 개막 전 언론에 공개됐지만 일반 관람객을 받지 않고 외부 영상으로 전시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러시아관 논란은 전쟁 중인 국가의 예술을 허용할 것인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가관 운영을 맡은 참가국, 전체 행사를 관리하는 비엔날레 재단, 재정을 지원한 EU, 문화정책 권한을 가진 이탈리아 정부가 서로 다른 결정을 내렸다. 참가를 승인한 주체와 정치적·재정적 책임을 지는 주체가 일치하지 않는 구조가 드러났다.

4년 만에 돌아온 러시아관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5월 9일 개막해 11월 22일까지 열린다. 코요 쿠오가 생전에 구상한 ‘단조로’를 주제로 110명의 작가와 팀이 본전시에 참여했다.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베네치아 시내에는 모두 100개의 국가 단위 전시가 마련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비엔날레에서 철수했다. 2024년에도 국가관을 열지 않았다. 2026년 복귀 결정이 알려지자 우크라이나 정부와 러시아 반체제 예술가, 유럽 정치권에서 반발이 나왔다.

쟁점은 러시아 국적 작가의 전시를 금지할 것인지가 아니었다. 참가국이 자국 명의의 국가관을 운영한다는 점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국가관은 개인 작가의 독립 전시와 달리 국가나 공공기관이 커미셔너를 정하고 작가와 전시를 선정하는 문화외교의 장이다.

비엔날레의 국가 단위 전시는 운영 방식이 하나로 통일돼 있지 않다. 자르디니의 상설 국가관과 아르세날레의 임차 공간, 베네치아 시내의 외부 전시장이 함께 국가 단위 전시 목록에 들어간다. 작품 선정과 예산, 운영 방식도 참가국이 각각 결정한다. 비엔날레 재단은 전체 행사와 공용 체계를 관리하면서 국가 단위 전시를 공식 프로그램에 포함한다.

러시아관의 문을 누가 열었는지 따지려면 작가의 국적만 볼 것이 아니라 참가 신청과 승인, 공간 운영, 재원, 공식 홍보를 나눠 살펴야 한다. 2026년 논란에서는 각 단계의 책임과 권한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EU “지원 철회할 수 있다” 사전 통보

EU는 개막 전부터 재정 지원 철회 가능성을 밝혔다. 4월 29일 유럽의회 회의록에는 유럽교육문화집행청이 러시아관 복귀 결정이 유지될 경우 200만 유로의 지원금을 철회할 수 있다고 비엔날레 측에 공식 통보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러시아관은 공식 참가 목록에 남았다. 르몽드와 아트뉴스페이퍼는 EU가 7월 비엔날레 지원금 200만 유로를 최종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비엔날레 재단이 러시아관의 복귀를 허용한 결정이 EU의 지원 조건과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적용됐다고 두 매체는 전했다.

지원금 철회와 대러시아 제재 위반은 구분해야 한다. 공개된 유럽의회 회의록과 언론 보도만으로는 해당 조치가 제재법 위반에 대한 법률 처분인지, 보조금 협약의 조건에 따른 행정조치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비엔날레 재단에 대한 형사·행정 제재가 아니라 이미 예정된 문화지원금을 중단한 조치라는 점도 다르다.

러시아 국적 예술가와 러시아 국가관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 반대하거나 망명한 러시아 작가의 전시까지 일률적으로 제한할 경우 국적에 따른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국가관은 참가국의 이름과 재원을 내걸고 운영되기 때문에 개인 작가의 표현과 같은 기준만 적용하기 어렵다.

EU는 지원금을 중단할 수 있지만 비엔날레의 참가국을 직접 결정하지는 않는다. 비엔날레 재단은 러시아관을 공식 프로그램에 포함할 수 있지만 EU 지원이 그대로 유지될 것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 참가 승인과 재정 지원이 서로 다른 기준과 권한으로 움직인 결과다.

심사위원단과 재단의 충돌

비엔날레의 수상제도도 무너졌다. 국제심사위원단은 본전시 참여 작가와 국가관을 심사해 황금사자상과 은사자상 등을 선정하는 기구다.

2026년 심사위원단은 솔란지 파르카스를 위원장으로 조이 버트, 엘비라 디앙가니 오세, 마르타 쿠즈마, 조반나 차페리 등 5명으로 구성됐다. 비엔날레 재단 공식 발표에 따르면 재단은 4월 30일 5명 전원의 사임서를 접수했다.

재단의 발표문은 사임 사실과 명단만 공개했다. 사임 이유와 재단·심사위원단 사이의 협의 과정은 밝히지 않았다.

AP통신과 가디언 등은 심사위원단이 국제형사재판소 절차와 관련된 국가 지도자가 있는 국가관을 수상 심사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고, 러시아와 이스라엘이 대상이 됐다고 보도했다. 비엔날레 재단은 참가 자격을 유지한 국가관을 심사에서 배제하는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심사위원단이 작품 평가를 넘어 참가국 정부의 행위까지 수상 기준에 포함할 수 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심사위원의 독립적 판단이라는 주장과, 재단이 승인한 국가관을 국적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섰다.

국가관 제도 자체가 예술과 국가를 결합한 장치라는 반론도 있다. 참가국 정부와 공공기관이 예산을 투입해 대표 작가를 정하고 국가 명의로 전시하는 만큼, 작품과 국가의 행위를 완전히 분리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5명 전원의 사임은 의견 차이를 조정할 절차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남겼다. 심사위원이 정한 평가 기준을 재단이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 참가 승인과 수상 자격을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하는지에 관한 명확한 규정도 공개되지 않았다.

황금사자상 대신 관람객 사자상

비엔날레 재단은 심사위원단의 사임을 발표한 4월 30일 ‘관람객 사자상’ 신설을 함께 알렸다. 본전시 참여 작가와 국가 단위 전시에 각각 한 개씩 모두 두 개를 수여한다. 기존 국제심사위원단을 새로 구성하는 대신 관람객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투표에는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를 모두 방문한 입장권 소지자만 참여할 수 있다. 두 전시장의 입장 기록이 확인되면 두 번째 방문을 마친 뒤 이메일로 투표 링크가 발송된다. 한 사람이 본전시 작가와 국가 단위 전시에 각각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결과는 폐막일인 11월 22일 발표된다. 

관람객 투표는 전문가 중심의 수상제도를 대중에게 개방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도입 과정은 사전에 준비한 제도 개혁과 거리가 있다. 심사위원단 전원 사임이라는 비상상황에서 기존 시상을 대신하기 위해 마련됐다.

관람 조건도 국가관마다 다르다. 자르디니의 상설 국가관과 베네치아 도심에 흩어진 전시장은 위치와 접근성에서 차이가 난다. 공간 규모와 대기시간, 운영시간, 홍보비도 다르다. 관람객이 모든 국가관을 본 뒤 비교하는 구조가 아니어서 인지도와 동원력이 투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관은 일반 관람객에게 내부를 개방하지 않았다. 외부에서 영상물을 볼 수 있도록 운영했다. 다른 국가관과 동일한 관람 조건에서 평가받는다고 보기 어렵지만 공식 국가 단위 전시 목록과 투표 대상에는 남았다.

관람객 사자상은 기존 황금사자상과 선정 방식이 다르다. 국제 전문가의 심사 결과가 아니라 입장권 소지자의 투표로 결정된다. 기존 상을 그대로 대체했다고 표현하기보다 심사위원단이 사라진 뒤 별도의 상이 신설됐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러시아관 앞 분홍색 연기

갈등은 개막 전시장으로 이어졌다. 러시아 반체제 예술집단 푸시 라이엇과 우크라이나 여성단체 페멘 활동가들은 5월 6일 러시아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분홍색 복면을 쓴 참가자들은 색 연기를 피우며 러시아의 국가관 복귀를 비판했다. AP통신은 시위가 경찰의 통제 아래 약 30분 동안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관 앞에서도 가자지구 전쟁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예술은 학살에 반대한다’ 소속 활동가들은 이스라엘관의 행사 제외를 요구하고 참여 작가와 전시장 노동자에게 파업을 제안했다.

5월 8일에는 한국과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일본 등 여러 국가관이 전면 또는 부분 폐관에 참여했다. 주최 단체는 20곳 이상이 동참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 폐관 시간과 방식은 국가관마다 달랐다. 가디언은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문을 닫은 곳을 약 12곳으로 파악했다. 폐관 국가관 수를 하나의 숫자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가관의 일시 폐쇄는 전쟁에 대한 항의인 동시에 운영 권한이 분산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비엔날레 재단이 전체 행사를 열더라도 개별 국가관의 커미셔너와 작가, 노동자는 운영을 중단할 수 있다. 참가국 정부의 입장과 현장 구성원의 선택이 다를 수도 있다.

국가관은 누구를 대표하나

베니스 비엔날레는 국가관 경쟁을 통해 권위를 쌓았다. 각국이 독립된 공간과 예산으로 전시를 마련하면서 세계 미술의 흐름과 국가별 문화정책을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었다.

전쟁이 국가관 안으로 들어오자 같은 제도는 책임을 분산하는 구조가 됐다. 비엔날레 재단은 러시아관의 참가를 유지했다. EU는 지원금 철회로 대응했다. 심사위원단은 사임했고 작가와 전시장 노동자는 수상 거부와 폐관에 나섰다. 러시아관은 일반 공개를 중단하면서도 공식 참가 지위는 유지했다.

각 주체가 서로 다른 수단을 행사했지만 최초의 참가 승인과 후속 협의 과정은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 러시아관 참가가 어떤 절차와 계약을 거쳤는지, EU 지원 조건과 대러시아 정책을 사전에 검토했는지, 심사위원의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자료도 제한적이다.

전쟁 중인 국가를 모두 배제하는 기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에 반대하는 작가의 표현 기회까지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 개인과 국가기관을 구분하고 국가관의 재원, 운영 주체, 정부 관여 정도를 공개한 뒤 참가와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작품의 정치성을 논하기 전에 전시제도의 정치성을 드러냈다. 국가관은 참가국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비엔날레의 국제적 권위를 얻는다. 재단은 전시의 자율성을 내세우지만 EU를 비롯한 공공 재원과 제도에 연결돼 있다. 심사위원에게는 독립적 판단을 요구하면서도 판단의 범위는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관람객 사자상의 결과는 11월 22일 나온다. 수상 결과보다 먼저 확인할 사안은 러시아관 참가 승인과 EU 지원금 철회 과정, 심사위원단과 재단의 협의 내용이다. 참가 기준과 심사 권한, 공공지원 조건을 명문화하지 않는다면 다음 비엔날레에서도 문을 연 주체와 책임지는 주체가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