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③] 73평 한국관은 무엇을 남기나…31년 된 국가자산의 성적표
1995년 개관 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상설 운영 ‘해방공간’ 전시부터 일본관 협업·한강 참여까지 수상 실적 넘어 관람객 전달력과 후속 성과 따져야
[KtN 임민정기자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전시가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관을 임차해 사용하는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자르디니에 연면적 242.6㎡, 약 73평 규모의 상설 전시관을 갖고 있다. 1995년 문을 연 뒤 미술전과 건축전이 번갈아 열릴 때마다 한국 작가와 건축가를 세계 미술계에 소개해 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따르면 한국관은 지상 1층, 전시장 3개로 구성됐다. 건축면적은 219.7㎡, 연면적은 242.6㎡다. 1994년 11월 착공해 1995년 5월 준공검사를 받았다. 운영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맡고 있다.
자르디니에서 상설 국가관을 운영하는 아시아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한국관은 비엔날레 때마다 빌려 쓰는 임시 공간이 아니라 31년 동안 유지해 온 문화외교 거점이다. 어느 작가를 출품했는지뿐 아니라 공간을 어떻게 활용했고, 전시가 끝난 뒤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까지 따져야 하는 이유다.
2026년 한국관에서는 최빛나 예술감독이 기획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가 열리고 있다. 최고은과 노혜리가 참여했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을 비롯한 문화예술인 5명이 펠로로 이름을 올렸다. 일본관과의 협업도 전시의 주요 축이다.
올해 전시는 하나의 완성된 설치작품에 머물지 않는다. 펠로십과 출판, 수행 프로그램, 국제 네트워크를 결합했다. 전시 이후에는 서울 귀국전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순회전도 예정돼 있다. 73평짜리 국가관을 전시 기간에만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후속 활동을 생산하는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한국관을 ‘살아 있는 기념비’로
전시 제목인 ‘해방공간’은 1945년 일제강점기 해방부터 1948년 남북 정부 수립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한국관은 분단과 정부 수립으로 끝난 과거의 한 시점이 아니라 갈등과 투쟁, 공동체 형성이 계속되는 미완의 과정으로 해방공간을 해석했다.
전시는 1945∼1948년의 역사와 2024년 비상계엄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이어진 집회 경험을 연결했다. 한국관이라는 국가 전시공간을 고정된 기념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기념비’로 바꾼다는 구상이다.
최고은의 ‘메르디앙’은 잘라내거나 찢은 동파이프로 구성됐다. 노혜리의 ‘베어링’은 왁스를 입힌 수천 개의 오간자 원형 조각과 나무·점토 구조물로 이뤄졌다. 재료와 형태가 다른 두 작품은 한국관 안팎을 잇는 관람 동선을 만든다.
‘요새’와 ‘둥지’는 국가가 가진 상반된 속성을 가리킨다. 요새가 방어와 경계의 공간이라면 둥지는 생명을 품고 돌보는 장소다. 국가관을 국가의 권위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축물로만 다루지 않고 보호와 배제, 소속과 이동이 충돌하는 공간으로 다시 읽었다.
한강과 가수·작가 이랑, 사진가 황예지, 활동가이자 농부인 김후주, 작가 크리스티안 냠페타는 펠로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전시 기간에는 ‘베어러’로 불리는 수행자들이 한국관을 돌며 정해진 활동을 하고 관람객과 공간을 돌본다.
베어러는 전시 안내원과 역할이 다르다. 공간을 관리하면서 매일 정해진 수행에 참여하고 관람객과 전시의 관계를 잇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모집 공고에는 1개월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하며 왕복 항공권과 베네치아 체류 숙소, 월 300만원의 사례비를 제공한다고 명시됐다.
전시를 관람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계속 움직이고 돌보는 과정으로 만든다는 기획이다. 폐막 뒤에는 베어러의 활동 인원과 수행 프로그램 횟수, 관람객 참여가 전시의 성과를 판단할 자료가 된다.
‘해방공간’은 베니스에서 얼마나 읽힐까
1945년부터 1948년까지의 해방공간은 한국 현대사의 분단과 정부 수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기다. 한국인에게도 짧게 설명하기 어려운 정치·역사적 개념이다. 식민지배와 냉전, 분단의 배경을 모르는 해외 관람객에게는 더 낯설 수밖에 없다.
올해 한국관은 해방공간의 역사와 2024년 이후 한국 사회의 경험을 연결하고, 이를 팔레스타인과 수단, 이란, 헝가리 등 다른 지역으로 확장했다. 작품뿐 아니라 펠로십과 수행자, 출판물, 네트워크 활동도 전시의 일부로 제시했다.
전시가 다루는 역사와 지역, 프로그램이 넓어진 만큼 이를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한국 근현대사의 배경을 모르는 관람객이 작품과 공간만으로 해방공간의 의미를 읽을 수 있는지, 도록과 안내문을 통해서만 기획에 접근할 수 있는지는 현장 경험을 통해 평가해야 한다.
미술전시의 성과를 관람객 설문이나 체류시간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난해한 역사와 개념을 다룬다는 이유로 전시의 가치를 낮출 수도 없다. 다만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국가관이라면 기획자가 제시한 개념이 실제 관람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전달됐는지는 살필 수 있다.
누적 관람객과 평균 체류시간, 안내 프로그램 참여자, 외국어 자료 이용 현황, 해외 언론과 미술기관의 반응은 폐막 이후 한국관의 전달력을 보여줄 지표가 된다.
한일 협업, ‘최초’ 다음을 보여줘야
2026년 한국관은 일본관과의 협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국과 일본은 자르디니에서 상설 국가관을 운영하는 아시아 국가다. 두 국가관 사이의 물리적 경계와 동선을 전시의 일부로 활용했다.
최고은의 동파이프 작품은 한국관을 넘어 일본관으로 이어졌다. 일본관에서는 퀴어 아티스트 에이 아라카와-내시가 ‘풀 아기, 달 아기’를 선보였다. 6㎏ 무게의 아기 인형을 관람객이 안고 전시장을 둘러보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는 참여형 작업이다.
해방공간이라는 주제와 한일 양국의 역사적 관계를 고려하면 협업의 상징성은 작지 않다. 국가별 대표성과 경쟁을 전제로 한 비엔날레에서 두 국가관이 경계를 넘어 작품과 관람 동선을 연결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협업의 성과는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동기획과 작품 제작, 프로그램 운영, 인력 교류가 어느 범위까지 이어졌는지 살펴야 한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공동 출판물과 연구, 후속 전시로 연결되는지가 지속성을 판단할 기준이다.
일회성 설치를 넘어 한국관과 일본관의 운영 방식에 변화를 남겼는지가 이번 협업의 최종 성적표가 된다.
공개모집으로 최빛나 감독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5년 2월 24일부터 3월 24일까지 2026년 한국관 예술감독을 공개 모집했다. 서류심사를 거쳐 4개 팀이 전시계획 발표와 인터뷰 대상에 올랐고 최빛나 감독이 최종 선정됐다.
한국관 사업은 예술감독과 작가 선정, 작품 제작, 현지 설치, 전시장 운영, 인력 체류, 홍보·출판, 건물 관리로 구성된다. 폐막 뒤에는 사업별 집행내역을 구분해 공개할 필요가 있다. 전시 제작비와 건물 유지관리비, 현지 운영비, 항공·숙박비가 각각 얼마인지 알아야 공공재원이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판단할 수 있다.
비용을 적게 쓰는 것이 곧 효율성은 아니다. 대형 국제전은 작품 운송과 보험, 현지 시공, 장기 체류에 상당한 돈이 든다. 필요한 지출을 줄이면 전시의 완성도와 안전, 참여자의 노동환경이 함께 낮아질 수 있다. 사업 목표와 지출 항목, 결과를 함께 비교해야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한국관 운영과 별도로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된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도 지원한다. 올해 본전시 참여자로 선정된 류용은에게는 6000만원을 지원했다. 한국관 전시비와 본전시 참여 작가 지원금은 서로 다른 사업이다.
한국관 사업의 전체 규모를 계산할 때도 건물 운영과 한국관 전시, 본전시 작가 지원, 연계 행사를 구분해야 한다. 성격이 다른 사업을 하나의 ‘베니스 예산’으로 묶으면 비용과 성과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
수상보다 오래 남을 성과
한국관의 국제적 성과는 수상 기록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1995년 개관전의 전수천을 시작으로 1997년 강익중, 1999년 이불이 세 차례 연속 특별언급을 받았다. 2014년 국제건축전에서는 조민석이 커미셔너를 맡은 ‘한반도 오감도’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2015년에는 임흥순이 본전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수상은 한국 미술과 건축의 국제적 위상을 알리는 성과다. 수상하지 않은 해의 전시를 실패로 규정할 수는 없다. 국가관 참여가 작가의 해외 전시와 미술관 초청, 작품 소장, 국제 공동기획으로 이어졌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올해는 기존 국제심사위원 5명이 전원 사임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의 황금사자상 심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비엔날레 재단은 관람객 투표로 본전시 작가와 국가 단위 전시를 각각 선정하는 ‘관람객 사자상’을 신설했다. 2026년 한국관의 결과를 역대 수상 실적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관은 베니스 전시 이후에도 프로그램을 이어간다. 2027년 봄 아르코미술관 귀국전과 같은 해 가을 로스앤젤레스 한국문화원 순회전이 예정돼 있다. 펠로십과 해방공간 네트워크도 전시 이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후속 전시는 한국관의 성과를 확인하는 두 번째 무대다. 베니스에서 제작한 작품과 연구, 출판물이 국내 관람객에게 어떻게 소개되는지, 일본관 협업과 국제 네트워크가 귀국전과 순회전까지 이어지는지를 살필 수 있다.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11월 22일 폐막한다. 한국관의 누적 관람객과 프로그램 참여자, 집행예산, 해외 보도와 후속 초청 실적도 이후 집계된다. 73평짜리 상설 국가관의 가치는 건물의 희소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베니스에서 시작한 전시가 다음 작가와 기관, 국내 관람객에게 무엇을 남겼는지가 31년 된 국가자산의 성적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