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감각의 산업③] D.S. & Durga, 버리는 포장을 ‘보관하는 상자’로 바꾸다

‘피치 콘크리트’ 색상과 이미지 전면 배치…재사용을 내세운 고급 향수 포장, 감축보다 소장에 초점

2026-08-23     박채빈 기자
D.S. & Durga Bottles the Nostalgic Magic of 2000s New York Romance With “Ain’t That Sweet”. 사진=D.S. & Durg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채빈기자]D.S. & Durga의 신제품 ‘Ain’t That Sweet’는 향수병을 꺼낸 뒤에도 상자를 남겨두도록 설계됐다. 로고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다른 물건을 담을 수 있을 만큼 견고하게 제작했다. 제품을 보호하고 폐기되는 포장재가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 공간에 남는 보관함을 제안한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비 몰츠(Kavi Moltz)는 상자에 ‘두 번째 생애’를 부여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향수를 꺼낸 뒤 작은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구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브랜드가 기존부터 사용해온 ‘피치 콘크리트’ 색상도 포장 전면으로 끌어냈다.

“향수마다 가진 세계는 풍부하고 다채로우며 생명력이 넘친다. 이미지를 추가하고 ‘피치 콘크리트’ 색상을 앞에 내세우는 편이 각 향수의 성격을 더 잘 드러낸다고 판단했다. 상자가 쓸모 있기를 바랐다. 브랜드 표시를 최소화한 견고한 상자로 만들어 다른 물건을 담는 두 번째 용도를 갖게 했다.”

포장을 개봉과 함께 역할이 끝나는 부속품에서 제품 경험의 일부로 바꾼 선택이다. 향수병만 진열하는 대신 상자까지 보관하게 만들면서 브랜드가 소비자의 공간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진다. 포장의 재사용과 브랜드 이미지의 지속이 같은 설계 안에 들어갔다.

갈색 병에서 복숭아색 상자까지

D.S. & Durga는 독학으로 조향을 익힌 음악가 데이비드 세스 몰츠(David Seth Moltz)와 건축가 출신 카비가 2008년 설립했다. 데이비드가 향과 음악을 맡는다면 카비는 제품이 소비자에게 보이는 방식을 설계한다. 건축에서 다뤘던 색과 구조, 재료와 사용성이 작은 향수 상자로 옮겨왔다.

‘Ain’t That Sweet’의 향수병에는 호박색 액체가 담겼다. 검은색 원통형 뚜껑과 크림색 라벨, 검은 글자가 대비를 이룬다. 캠페인에서는 갈색과 주황색 조명을 사용해 대추야자, 시나몬, 바닐라, 연유가 만드는 향의 온도를 시각적으로 연결했다.

포장에 적용한 ‘피치 콘크리트’는 콘크리트의 회색 대신 복숭아색 계열을 앞세운 브랜드 고유의 색상 표현이다. 단단한 재료를 연상시키는 명칭과 따뜻한 색이 함께 놓인다. 견고한 상자라는 물성과 달콤하고 온화한 향의 인상을 하나의 색채 체계 안에 묶었다.

카비는 이전보다 과감한 포장을 원했다고 밝혔다. 향수병과 제품명 위주로 정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미지와 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상자의 외관은 배송과 진열을 위한 포장인 동시에 제품에 설정된 이야기를 보여주는 별도의 매체가 됐다.

50㎖ 225달러, 100㎖ 300달러에 판매되는 향수에서 포장은 구매 직후 폐기하기 어려운 물건으로 만들어진다. 단단한 구조와 절제된 로고, 브랜드 고유의 색상은 상자를 제품에 포함된 소장품처럼 다루게 한다. 고가 향수의 경험이 내용물에서 용기와 상자로 확장되는 방식이다.

향료를 이미지로 바꾼 캠페인

D.S. & Durga Bottles the Nostalgic Magic of 2000s New York Romance With “Ain’t That Sweet”. 사진=D.S. & Durg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Ain’t That Sweet’의 시각 이미지는 향료를 직접 설명하기보다 단맛과 질감을 확대한다. 황금빛 액체가 흐르는 포크 옆에는 각진 흰색 덩어리가 놓인다. 액체의 점성과 단단한 물체의 대비가 제품에 들어간 대추야자, 프랄린, 연유와 향신료를 추상적으로 전달한다.

제품 사진에서는 향수병이 포크 위에 세워지거나 접시와 식기 사이에 놓인다. 향수와 디저트의 경계를 흐리면서 구르망 향수라는 성격을 시각적으로 강조한 구성이다. 음식의 향을 몸에 사용하는 제품으로 바꿨다는 점도 병과 식기를 함께 배치해 드러냈다.

패키지에 이미지를 추가한 이유도 향수마다 가진 색과 분위기를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이 카비의 설명이다. 소비자는 향을 맡기 전 상자와 사진을 통해 제품의 온도와 질감을 먼저 접한다. 포장은 운송 과정에서 병을 보호하는 구조물이면서 후각 정보를 시각으로 바꾸는 광고 지면이 된다.

D.S. & Durga Bottles the Nostalgic Magic of 2000s New York Romance With “Ain’t That Sweet”. 사진=D.S. & Durg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흰색 접시 위에 놓인 대추야자와 검은 바닐라 꼬투리, 밝은 크림색 덩어리는 향의 재료를 정물처럼 배열한다. 갈색과 검은색, 크림색은 향수병의 호박색 액체와 검은 뚜껑, 크림색 라벨로 반복된다. 제품과 캠페인 이미지, 포장 색상이 같은 계열 안에서 연결된다.

대추야자 케이크와 골든 밀크가 연인의 늦은 밤을 설명한다면, 정물 이미지는 해당 이야기를 판매 공간에 맞게 압축한다. 향료 이름을 읽지 않아도 짙은 단맛과 우유의 부드러움, 바닐라의 익숙함을 연상하도록 구성했다. 제품을 직접 맡을 수 없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포장과 이미지가 향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재사용과 감축 사이

향수업계에서 상자는 병을 보호하고 제품의 가격대를 보여주는 역할을 맡는다. 두꺼운 종이와 내부 받침, 인쇄와 코팅을 더한 포장은 개봉 순간의 만족을 높이지만 내용물을 꺼낸 뒤에는 쓰임이 급격히 줄어든다. D.S. & Durga는 상자를 보관함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사용 기간을 늘렸다.

재사용과 포장 감축은 서로 다른 접근이다. 포장 감축은 상자의 크기와 무게, 재료의 종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재사용은 포장을 그대로 두되 소비자가 다른 용도로 오래 사용하도록 설계한다. ‘Ain’t That Sweet’의 상자는 재료를 줄이기보다 견고하게 만들어 남겨두는 쪽에 가깝다.

상자를 다른 물건을 담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환경 성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소비자가 실제로 보관함으로 사용할 때 두 번째 용도가 생긴다. 사용하지 않으면 기존 향수 상자와 마찬가지로 폐기된다. 재사용을 선택하고 지속하는 책임이 소비자에게 놓이는 구조다.

브랜드 표시를 줄인 디자인은 재사용의 범위를 넓힌다. 로고가 크게 들어간 상자는 광고물의 성격이 강하지만, 최소한의 표시는 생활용품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브랜드를 드러내기보다 색과 구조를 남긴 선택은 상자를 서랍이나 책상 위에 두기 쉽게 만든다.

동시에 포장을 소장품으로 만드는 전략은 고급 향수의 가격과도 맞물린다. 소비자는 빈 상자를 보관하면서 구매 경험과 브랜드를 함께 기억한다. 상자의 두 번째 생애는 생활용품으로서의 재사용인 동시에 고가 제품의 흔적을 오래 남기는 방식이다.

포장의 수명까지 제품에 포함한 향수

‘Ain’t That Sweet’의 패키지는 향수를 사용하기 전과 사용한 뒤의 시간을 모두 겨냥한다. 개봉 전에는 색과 이미지로 제품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병을 보호한다. 개봉 후에는 작은 물건을 담는 상자로 남는다. 포장이 맡는 역할을 구매 순간에 한정하지 않은 설계다.

재사용 여부를 소비자의 선택에 맡긴 구조라는 점에서는 한계도 남는다. 상자를 회수하거나 다시 충전하는 순환 체계가 아니라 개인이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방식이다. 제품의 수명이 끝난 뒤 포장재를 생산 단계로 되돌리는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D.S. & Durga가 전면에 내세운 표현도 환경 보호보다 쓸모와 보관에 가깝다. ‘두 번째 생애’는 포장 폐기물을 줄였다는 수치가 아니라 상자를 한 번 더 사용하도록 만든 디자인 개념이다. 친환경이라는 폭넓은 표현보다 보관성과 재사용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다.

‘Ain’t That Sweet’는 8월 25일부터 D.S. & Durga 공식 온라인 스토어와 일부 판매처에서 출시된다. 향수는 사용하면서 줄어들지만 상자는 내용물이 사라진 뒤에도 남도록 만들어졌다. 소비자가 상자를 보관함으로 사용할 때 패키지의 두 번째 용도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