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 뒤에 놓인 계산서…최휘영·신용한 면담이 드러낸 '지방 문화분권'의 기회와 딜레마
"청주공항 중심 관광 콘텐츠 함께 만들자"…장관의 제안 뒤에 선 '관광객 4000만 시대' 국가 전략 돔구장·U대회 등 7대 현안 건의한 충북…전국 9곳 돔구장 유치전과 5633억 U대회 예산 갈등이라는 이중 변수 국제대회 시설 '사후활용 실패' 반복 막을 해법은…"유치 경쟁보다 운영 설계가 성패 가른다"
[KtN 임우경기자] 19일 오전 충북 청주 충북도청.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신용한 충청북도지사와 함께 도청사를 둘러보고, 도청에 조성된 그림책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 뒤 마주 앉았다. 신 지사 취임 후 문체부 장관의 첫 충북 방문. 화기애애한 장면 뒤에서 오간 담화의 실질은, 그러나 만만치 않은 계산서였다. 장관은 '외래 관광객 3000만 조기 달성'이라는 국가 목표에 대한 충북의 기여를 요청했고, 지사는 돔구장 건립을 포함한 7건의 현안 지원을 건의했다. 중앙의 전략과 지방의 숙원이 교환된 이날 만남은, 새 정부 '지방 중심' 문화·관광 정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어디서 충돌하는지를 보여주는 축소판이었다.
왜 장관은 '청주공항'을 먼저 꺼냈나
담화의 첫 화두는 최 장관이 던졌다. 그는 "외래 관광객 3000만 명 조기 달성을 위해서는 청주국제공항을 중심으로 한 충청권 지역 관광이 중요하다"며 지방 공항으로 입국한 관광객이 지역에 더 오래 체류하도록 "충북만의 특색 있는 관광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이 발언의 배경에는 뚜렷한 정책 좌표가 있다. 문체부는 지난 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방한 관광객 목표를 4000만 명으로 상향하고, 김해·대구·청주·양양·무안 5개 지방공항을 거점으로 입국부터 숙박·체험까지 잇는 '방한관광 골든루트' 조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강정원 문체부 관광정책실장은 "현 정부 관광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지방"이라고 못 박았다. 기존 목표였던 '2030년 3000만 명'은 올해 방한객이 2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2028년 조기 달성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청주공항의 지표는 이 전략의 실증 사례다. 올해 1~7월 국제선 이용객은 131만6212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1% 늘었고, 전체 이용객에서 국제선 비중이 약 44%까지 커졌다. 상반기 국제선 여객 100만 명 돌파는 1997년 개항 이후 처음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27만 명)의 4배가 넘는다.
그러나 구조적 약점도 분명하다. 공항으로 들어온 관광객이 지역에 머물지 않고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통과형 관문' 문제다. 최 장관 스스로 지난 5월 "지방에는 숙박 여력이 있는데도 상품 개발과 교통, 콘텐츠 연계가 충분하지 않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날 '체류형 콘텐츠 공동 개발' 제안은 바로 이 빈틈을 겨냥한 것이다. 신 지사가 건의한 '청주공항 거점 메가 관광권 지정·육성'과 '충북 관광기업지원센터 조성'은 이 국가 전략에 충북을 공식 편입시켜 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이해관계의 교차점 ①: 전국 9곳이 뛰어든 돔구장 유치전
신 지사가 건의 목록 첫머리에 올린 것은 돔구장이었다. 그는 "충청권 메가시티 상생발전과 충청권 초광역 체육·문화거점 구축을 위해 충북 청주에 돔구장을 건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경쟁의 밀도다. 정부는 K팝 초대형 공연과 스포츠 경기를 함께 치를 복합형 돔구장 2곳(5만 석 대형 1곳, 중형 1곳)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지난 3월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을 발주했다. 여기에 부산, 충남 천안·아산, 충북 청주, 경기 광명 등이 잇달아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6·3 지방선거에서 돔구장 건립을 공약한 지자체는 광역 4곳, 기초 5곳 등 모두 9곳에 달한다. 현재 국내 돔구장이 서울 고척스카이돔 하나뿐인 현실에서, 수천억~1조 원대 사업을 놓고 벌어지는 '유치 전쟁'이다.
이해관계 구도는 복합적이다. 충북 내부만 봐도 도는 기존 오송 구상을 접고 이달 초 청주에 5만 명 규모 복합 아레나 건립 방침을 밝혔고, 청주시도 별도 전담팀을 꾸려 공모 참여를 준비해 왔다. 밖으로는 같은 충청권인 충남이 천안아산역 인근에 약 1조 원 규모 5만 석 돔을 추진 중이어서, '충청권 상생'을 명분으로 내건 두 도가 실제로는 같은 파이를 놓고 경쟁하는 형국이다.
최 장관은 불과 하루 전인 18일 박수현 충남지사에게서도 돔구장 협력 요청을 받았다. 정부 입장에서는 특정 지역에 힘을 실어주기 어려운 구도이며, 실제 이날 면담에서도 최 장관은 돔구장에 대한 확답 대신 "논의 사항을 실무 협의로 챙기겠다"는 원론적 답변에 머물렀다.
이해관계의 교차점 ②: U대회, '지원 요청'과 '융합 주문'의 온도차
개막을 약 1년 앞둔 2027 충청 유니버시아드대회를 놓고도 두 사람의 방점은 달랐다. 신 지사는 "성공 개최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며 범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반면 최 장관은 "경기 운영 못지않게 대회 기간 충북을 찾는 이들이 문화와 관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준비가 중요하다"며 '스포츠·문화·관광 융합형 대회'로의 설계 전환을 주문했다.
이 온도차의 밑바닥에는 예산 갈등이 있다. 총사업비 5633억 원(국비 30%, 지방비 53%, 자체 17%)으로 확정된 이 대회는 물가 급등에도 예산이 고정돼, 10년 전 광주 U대회(6800억 원, 현재 물가 환산 시 약 8000억 원)보다 오히려 1200억 원 이상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직위는 지난 6월 4개 시도에 최대 280억 원의 운영비 추가 지원을 요청했으나 시도들은 난색을 표했고, 7월에는 기획재정 당국을 찾아 정부 증액 협의에 나섰다. 지사의 '지원 절실' 발언은 이 국면에서 나온 것이며, 장관의 '융합 대회' 주문은 추가 재정 투입보다 기존 자원의 연계 효율화에 무게를 둔 응답으로 읽힌다.
'유치'가 아니라 '그 이후'를 설계해야
이날 담화에 등장한 돔구장과 U대회 경기장은 모두 대규모 시설 투자를 동반한다. 관건은 반복돼 온 '사후활용 실패'의 전철을 피하는 것이다. 인천은 2014년 아시안게임 경기장 유지·관리비로 연간 약 280억 원을 지출하면서 건설 부채를 2029년까지 매년 1000억 원씩 상환하고 있고, 비인기종목 경기장 다수는 단순 행사장으로 전락했다. 반면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은 할인점·영화관 등 수익시설 유치로 연 120억 원대 임대수익을 올리며 흑자 전환에 성공한 대조 사례로 꼽힌다.
전문가들의 제언도 같은 방향이다. 지난해 8월 충청 U대회 정책 토론에서 전용배 단국대 교수는 고정된 예산 구조의 한계를 지적하며 중앙정부의 전향적 지원을 촉구했고, 국제대회 시설 연구자들은 "수요예측과 사후관리, 운영방안을 대회 전에 확정하지 않으면 시설은 혈세 먹는 하마가 된다"고 경고해 왔다.
충북이 구상하는 돔구장이 스포츠·K팝 공연·e스포츠·박람회를 아우르는 복합 운영 모델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은 이런 교훈을 의식한 설계로 보이지만, 연간 운영수지와 콘텐츠 수급 계획의 구체성이 공모 경쟁력을 가를 전망이다.
최 장관은 담화를 마치며 "중앙정부에서 정책의 큰 틀을 결정하더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지역과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논의한 사항은 실무 협의를 통해 꼼꼼히 챙겨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충북도는 7개 현안의 국비 반영을 위한 후속 협의와 공모 대응에 나선다. 이날의 악수가 실제 예산서와 2027년 여름의 경기장, 그리고 청주공항을 통해 충북에 머무는 관광객의 숫자로 이어질지 — 검증의 시간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