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패션보다 먼저 온 트렌드, YOKE FW26의 기본형 경제
검은 블루종·빛바랜 작업복·와이드 팬츠의 반복…새로운 옷보다 익숙한 옷의 작은 차이를 파는 시장
[KtN 박인경기자]YOKE의 FW26 세 번째 물량에서 카프 나파 가죽 재킷은 16만5000엔, 미니멀 블루종은 14만3000엔이다. 색이 빠진 코듀로이 커버올과 이지 팬츠는 한 벌에 9만5700엔이다. 베이비 알파카 브이넥과 기자 코튼(Giza cotton) 케이블 니트에는 나란히 4만4000엔의 가격이 붙었다.
품목은 낯설지 않다. 짧은 가죽 블루종과 넓은 팬츠, 브이넥 니트, 아가일 카디건, 빛바랜 작업복은 최근 남성복 시장에서 반복돼 왔다. 검은색과 회색, 갈색, 올리브색을 섞은 옷차림도 여러 브랜드가 공유한다. YOKE는 이미 익숙해진 옷에 가죽과 편직, 탈색, 봉제의 차이를 더했다.
16만5000엔짜리 카프 나파 가죽 재킷은 카 재킷에 좁은 라펠과 플랩 포켓을 달았다. 소매산을 높여 어깨와 팔의 형태를 잡고 큐프로 안감을 넣었다. 라이더 재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속 장식과 큰 포켓은 덜어냈다. 가죽 외투의 거친 인상을 줄이고 테일러드 재킷에 가까운 형태로 다듬었다.
14만3000엔짜리 가죽 블루종은 앞지퍼와 밑단 밴드를 남기고 포켓을 절개선 안에 넣었다. 가죽 가장자리는 접지 않고 컷오프로 마감했다. 두 가죽 제품의 차이는 멀리서 드러나는 장식보다 소매산과 안감, 절개선, 봉제에 모였다. 소비자는 새로운 외투 형태보다 이미 아는 외투의 세부 차이에 값을 치른다.
트렌드는 선택을 쉽게 만든다. 검은색 블루종과 회색 와이드 팬츠, 단색 니트를 함께 입으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어도 활용하기 쉽고 다른 브랜드의 옷과 섞기도 수월하다. 판매 가능성이 확인된 품목 안에서 원단과 길이만 바꾸면 브랜드가 떠안는 부담도 줄어든다.
패션은 같은 옷을 반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몸의 움직임과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 옷의 구조도 달라져야 한다. 주머니의 위치와 소매의 각도, 허리선과 바지 폭, 원단의 무게가 새로운 착용법을 만들어낸다. 유행하는 기본형에 비싼 소재를 입히는 일과는 구별된다.
코듀로이 셋업은 현재 패션 시장의 흐름을 선명하게 담고 있다. 면 100% 코듀로이에 안료를 입힌 뒤 다시 색을 벗겨 오랫동안 입은 듯한 표면을 만들었다. 소매와 몸통에는 농담 차이가 생기고 골이 눌린 부분은 먼저 닳은 옷처럼 보인다. 노동과 세탁이 남겨야 할 흔적이 공장에서 완성됐다.
커버올은 작업 현장에서 몸을 보호하고 공구를 넣기 위해 입던 옷이다. 큰 포켓과 단순한 단추, 넉넉한 품에는 쓰임이 있었다. YOKE의 커버올은 셔츠처럼 가볍게 입을 수 있도록 두께를 줄였다. 작업복의 기능은 약해지고 작업복이 쌓아온 외형과 사용감은 남았다.
한때 낡은 표면은 오래 입었다는 사실과 낮은 교환가치를 뜻했다. 지금은 안료를 입히고 벗기는 별도 공정을 거쳐 높은 가격을 만드는 요소가 됐다. 새 옷을 구입하면서 이미 지나간 시간의 흔적까지 사는 셈이다. 작업복의 역사는 디자인 자원이 됐고, 사용감은 판매 가능한 표면으로 바뀌었다.
니트의 가격도 소재의 통상적인 서열을 따르지 않는다. 알파카 100% 브이넥과 면 100% 케이블 니트가 같은 4만4000엔이다. 알파카 제품은 부드러운 촉감과 보온성, 얕은 목선과 긴 리브를 갖췄다. 기자 코튼 제품은 두 차례 머서라이즈 가공을 거치고 케이블 조직을 곡선으로 비틀었다.
동물성 섬유와 면의 가격이 같다는 사실은 소비자가 원료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다. 편직과 가공, 재단, 유통, 브랜드 이름이 한 가격 안에 섞인다. ‘베이비 알파카’나 ‘기자 코튼’이라는 명칭은 제품을 설명하지만 판매가를 단독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5만2800엔짜리 보일드 울 아가일 스웨터는 익숙한 무늬를 편직 방식으로 바꿨다. 방축 처리한 울과 처리하지 않은 울의 수축 차이를 이용해 아가일이 평평하게 놓이지 않고 앞으로 부풀도록 만들었다. 검은색과 짙은 회색의 색 차이는 줄이고 편직물의 높낮이로 무늬를 남겼다. 세 번째 물량 가운데 기본형을 바꾸려는 시도가 가장 구체적인 제품이다.
YOKE는 FW26 컬렉션에 ‘Beyond Form’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장 아르프(Jean Arp)의 유기적인 형태와 비대칭을 끌어왔다. 7만1500엔짜리 메모리 태피터 풀오버는 후드에 와이어를 넣고 허리에 조임끈을 달았다. 착용자가 와이어와 끈을 움직이면 옷의 폭과 주름이 달라진다. 장 아르프에서 출발한 구상이 옷의 구조와 직접 만나는 제품이다.
나머지 착장에서는 변화의 폭이 좁아진다. 검은 셋업과 회색 상의, 와이드 팬츠, 긴 올리브색 외투가 이어진다. 유기적인 곡선과 비대칭은 소매산과 바지 폭, 니트 조직의 굴곡으로 작아졌다. 파리 런웨이에서 내세운 미술적 구상은 매장에 도착하면서 입기 쉬운 기본복 안에 정리됐다.
입기 쉬운 옷은 자주 팔리고 오래 입을 가능성도 크다. 검은 블루종과 단색 니트, 넓은 팬츠를 만드는 일 자체가 후퇴는 아니다. 다만 높은 활용도와 디자인의 새로움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익숙한 형태를 정교하게 완성한 옷에는 완성도라는 가치가 있지만, 익숙함을 미술적 배경과 고급 소재로 감싸는 순간 평가는 달라져야 한다.
YOKE FW26 세 번째 물량에서는 트렌드가 패션보다 먼저 자리를 잡았다. 검은 블루종과 와이드 팬츠, 빛바랜 작업복이라는 유행의 틀 안으로 카프 나파와 베이비 알파카, 편직과 컷오프 봉제, 장 아르프의 이름이 들어갔다. 옷의 형태보다 설명과 가공이 더 많이 바뀌었다.
패션이 트렌드를 뒤따르기만 하면 브랜드의 차이는 비싼 원료와 복잡한 공정으로 좁아진다. 소비자도 이미 아는 옷의 작은 차이를 찾기 위해 더 큰 비용을 부담한다. 다음 계절의 변화는 새로운 수식어보다 몸과 생활에서 시작돼야 한다. 오래 입을수록 편해지는 재단, 실제 사용에 맞는 주머니, 세탁과 수선 뒤에도 유지되는 형태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트렌드는 패션이 만든 결과일 때 오래간다. 순서가 뒤집히면 남는 것은 비슷한 옷과 더 높은 가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