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대통령만 모르는 지지율 하락
숫자는 청와대에 도착했지만 민심은 도착하지 않았다…학습을 멈춘 권력과 현상유지의 늪
[KtN 박준식기자]4월 67%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8월 45%로 내려왔다. 자동응답 방식의 여러 조사에서는 40% 안팎과 30%대까지 떨어졌다. 중도층 긍정 평가는 73%에서 43%로 낮아졌고, 90%를 웃돌았던 민주당 지지층과 진보층의 긍정 평가도 각각 74%, 72%로 내려왔다.
수치는 청와대에 도착했을 것이다. 민심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하다.
청와대는 지지율 하락 뒤 부동산과 민생에서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주거 불안을 알고 있으며 공급 확대와 정책 집행으로 평가받겠다고 했다. 부동산 회의가 이어졌고 공급계획에는 속도가 더해졌다.
대응은 빨랐지만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국민이 불안을 말하자 정부는 기존 정책을 더 강하게 집행하겠다고 답했다. 정책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성과가 늦게 나타났을 뿐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부족한 것은 변화가 아니라 시간이며, 필요한 것은 수정이 아니라 속도라는 태도다.
권력은 정보를 받지 못해서보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굳어질 때 더 위험해진다. 불리한 사실이 올라와도 기존 판단을 뒷받침하는 의미로 번역된다. 반대 여론은 정책 오류가 아니라 홍보 부족이 되고, 지지율 하락은 방향 상실보다 성과 지연으로 해석된다. 내부 비판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정치적 흔들기로 분류된다.
대통령만 모른다는 말은 숫자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숫자가 전하는 의미를 자신이 믿는 세계 안에서만 해석한다는 뜻이다.
유시민 작가는 8월 24일 이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유부터 다시 말했다. 권력을 얻으려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가를 바꾸는 데 필요한 권한을 요구한다고 믿었다고 했다. 학습하며 발전하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내렸었다. 취임 1년여가 지난 뒤 “학습은 중단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유시민 작가의 표현은 거칠었고 대통령의 의도까지 단정한 대목도 있었다. 이 대통령을 ‘오만한 권력자’로 규정하고 민주당 전당대회를 ‘왕정’과 ‘귀족정’에 빗댄 평가는 반론의 여지가 크다. 과장된 수사를 걷어내고 나면 권력의 학습 능력에 대한 비판이 남는다.
학습은 지식을 더 많이 갖는 일이 아니다. 현실이 자신의 믿음과 충돌할 때 믿음의 일부를 고치는 능력이다. 보고서를 더 많이 읽고 회의를 더 자주 열어도 처음 세운 판단이 달라지지 않으면 학습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 의견을 들은 뒤 같은 정책을 더 빠르게 추진하는 일은 실행력을 강화한 것이지 현실에 의해 변화한 것이 아니다.
권력자에게 학습은 보통 사람보다 어렵다. 판단을 바꾸는 순간 과거의 판단이 완전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모와 관료, 여당과 야당 앞에서 오류 가능성을 드러내야 한다. 지지층에는 혼란을 주고 야당에는 공격할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권위가 무오류에서 나온다고 믿는 권력은 수정보다 고집을 선택한다.
민주적 권위는 틀리지 않는 능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틀렸을 때 고칠 수 있다는 신뢰에서 나온다.
선거는 가장 현명한 사람에게 5년 동안 오류 없는 판단을 맡기는 의식이 아니다. 시민이 일정한 기간 권한을 위임하되 비판과 여론, 의회와 정당을 통해 계속 수정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느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와 숙의, 조정과 수정에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
속도만을 통치 능력으로 받아들이면 민주주의의 느림은 무능처럼 보인다. 반대는 발목잡기가 되고 숙의는 지연이 된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설득할 시민보다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바뀐다. 권력은 더 빠르게 움직이지만 현실을 고칠 기회는 줄어든다.
현상유지도 흔히 오해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현실의 변화에 맞춰 자신의 판단을 바꾸지 않으면서 기존 행동을 반복하는 상태도 현상유지다.
현상유지에 빠진 권력은 오히려 분주하다. 회의가 늘고 대책은 더 크게 발표된다. 추진본부가 생기고 집행 시한은 앞당겨진다. 정책 이름과 숫자는 바뀌지만 처음 세운 방향은 그대로다. 움직임이 많을수록 변화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도 강해진다.
정부의 부동산 대응에도 같은 위험이 놓여 있다. 8·3 세제개편안에는 찬성 46%, 반대 41%로 찬성 의견이 조금 더 많았다. 같은 조사에서 55%는 전세와 월세가 오를 것으로 내다봤고 부동산 정책 전체에 대한 부정 평가는 56%에 달했다.
정부는 세제개편의 원칙과 공급 목표를 말했다. 국민은 정책 비용이 어디로 이동할지를 계산했다. 다주택자 과세에 찬성하면서 임대료 상승을 걱정했고, 공급 확대에 동의하면서 입주까지 감당해야 할 월세와 대출이자를 살폈다.
정부는 2030년 공급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세입자는 다음 계약 갱신일을 향해 움직인다. 정부가 미래의 주택 수를 계산하는 동안 국민은 다음 달 빠져나갈 돈을 계산한다. 같은 부동산을 말하지만 시간의 단위가 다르다.
7월 신규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연 4.48%,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4.19%를 기록했다. 청년층 고용률은 전년 같은 달보다 1.6%포인트 낮아졌고 청년 취업자는 19만1000명 감소했다. 생활물가도 1년 전보다 2.5% 올랐다.
18~29세의 대통령 긍정 평가는 31%, 부정 평가는 51%였다. 30대에서도 긍정 40%, 부정 52%로 부정 평가가 앞섰다. 청년층이 정책의 명분을 이해하지 못해서 돌아선 것이 아니다. 정부가 약속한 미래보다 자신의 통장에서 먼저 빠져나가는 현재에 반응했다.
정치는 국민이 옳은 정책을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정책이 국민의 삶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권력이 배우는 일이다. 정부가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만큼 정부도 국민의 생활로부터 설득당해야 한다.
청와대가 성과를 더 많이 내면 일부 지지율은 돌아올 수 있다. 공급이 늘고 물가가 안정되며 금리가 내려가면 생활의 부담도 줄어든다. 경제적 성과만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부분도 남아 있다. 중도층에 이어 민주당 지지층과 진보층의 결집까지 약해진 변화는 정책 결과만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에 대한 불만과 맞닿아 있다.
8·17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민석 대표는 54.08%, 정청래 후보는 45.92%를 얻었다. 당원들은 대통령과 가까운 당 대표를 선택하면서 다른 세력까지 지우지는 않았다.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정 후보와 가까운 인사들이 지도부에 들어갔다.
54%는 안정적인 당정 관계에 대한 선택으로 읽을 수 있다. 46%는 민주당의 자율성과 다른 목소리를 남겨달라는 요구로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이 54%만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46%를 반대로 간주하면 당원들이 만든 균형은 사라진다.
여당은 대통령의 결정을 집행하는 조직만이 아니다. 지역과 계층의 불만을 권력 중심부에 전달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여당이 청와대의 결정을 설명하는 일만 맡으면 대통령은 더 강해지는 대신 더 고립된다.
권력 주변의 침묵은 명령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사와 당직, 공천에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한다고 믿는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 말을 고른다. 참모는 대통령의 판단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고, 관료는 이미 결정된 정책을 실행할 방법을 만든다. 여당 의원은 지역에서 들은 불만보다 정책 성과를 먼저 설명한다.
대통령 곁에서 반대가 사라지면 권력은 넓은 동의 속에 있다고 믿는다. 침묵을 지지로 오해하고, 공개적인 이견이 없는 상태를 통합으로 받아들인다. 불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전달 경로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지지율이 내려간 뒤에야 드러난다.
유시민 작가의 비판 뒤 여권에서 ‘악담’, ‘저주’, ‘반명’이라는 반응이 나온 일도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발언의 과장과 오류를 반박하는 일은 당연하다. 정부 출범을 함께 지지했던 사람이 실패를 말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민주주의에서 지지는 충성과 다르다.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면서 정책과 인사에 반대할 수 있고, 집권당을 지지하면서 청와대의 권력 운영을 비판할 수 있다. 비판의 내용보다 발언자가 어느 편인지를 먼저 따지면 지지와 숭배의 경계는 흐려진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에서 얻은 49%는 대통령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가 아니었다. 민주당 전통 지지층, 진보·개혁 세력, 윤석열 정부 이후의 변화를 원한 중도 유권자가 서로 다른 요구를 안고 결합한 결과였다.
정치적 연합은 차이를 없애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차이를 유지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찾을 때 만들어진다. 대통령에게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을 ‘반명’으로 밀어내면 집권 기반은 순수해질 수 있지만 넓어지지는 않는다. 순수한 소수는 박수를 크게 칠 수 있어도 선거와 국정을 지탱할 다수가 되기 어렵다.
지지율은 통치의 목표가 아니다. 여론조사 숫자에 따라 정책을 바꾸는 정부도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지지율에 흔들리지 않는 일과 지지율이 전하는 정보를 무시하는 일은 구분돼야 한다.
개혁은 때로 반대를 무릅써야 한다. 장기적인 공익을 위해 단기적인 지지율 하락을 감수할 수도 있다. 개혁이라는 이름이 정책이 만든 예상 밖의 비용과 권력의 독단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목표가 옳다고 확신할수록 수단이 국민의 삶을 훼손하지 않는지 더 자주 살펴야 한다.
청와대는 지지율 하락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기존 정책을 더 빠르게 추진하는 일을 해답으로 삼고 있다면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은 민심이 아니라 숫자다. 숫자는 보고서에 적을 수 있지만 민심은 자신을 바꿀 준비가 된 권력에게만 도착한다.
학습하는 대통령은 여론에 끌려다니는 대통령이 아니다. 자신의 판단과 현실이 어긋났을 때 현실을 탓하지 않는 대통령이다. 정책을 수정하는 일을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 의견을 권력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오류를 줄이는 자원으로 사용하는 대통령이다.
김민석 대표 체제의 당정협의와 부동산 세제 조정, 연도별 주택 착공 실적은 청와대의 판단이 달라졌는지를 드러낼 일정으로 남아 있다. 공급계획의 숫자보다 실제 입주, 정책 설명보다 반대 의견이 반영된 결정이 쌓여야 변화도 국민의 생활에 도착할 수 있다.
권력은 멈춰 있을 때만 현상유지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부지런하게 같은 방향으로 달릴 때 더 깊은 늪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필요한 결단은 속도를 더 높이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달리는 방향을 다시 살핀 뒤, 필요하다면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민주적 권위는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보다 되돌아올 수 있는 힘에서 오래 유지된다.